CAFE

새벽기도회 말씀

마가복음 7장 / 바리새인들과의 논쟁과 이방인의 믿음

작성자hanson|작성시간24.11.08|조회수193 목록 댓글 0

https://youtu.be/hsSdZWjOhEs

바리새인들과의 논쟁과 이방인의 믿음

마가복음 7:1-37(신p.64)    찬송 386장 / 사도신경 / 찬송 380장      20241108

 

오늘도 마가복음 7장에 기록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 마가복음 7장 말씀에는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인 지도자였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잘못 된 신앙을 책망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이방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마가는 이렇게 당시에 잘못된 지도자들과 은혜를 받는 이방인들을 비교하면서 누가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인가? 하는 것을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가의 의도를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을 한 번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마가복음 7:1절 말씀에 보시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예수님과 논쟁을 하게 되는 데! 이 논쟁은 믿음의 논쟁이 아니라 대적하기 위한 논쟁이고, 예수님을 죽일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는 논쟁입니다.

 

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것을 보고,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지 않는다고 시비를 걸게 됩니다.

 

여러분 5절 말씀에 보시면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신앙의 기준을 가지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판단한 것입니다.

 

여러분 장로들의 전통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약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함으로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바벨론에 70년간 포로 생활을 할 때 에스겔 선지자나 에스라같은 학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아서 우리가 이렇게 망했다”고 하면서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더 많은 규례와 전통을 만들게 되었은데 이것이 장로의 전통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로의 전통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던 “십계명과 레위기”말씀을 더 잘 지키기 위해 조금씩 추가해서 만든 규례들 입니다.

 

그런데 신구약중간기 4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가르침이 사라지게 될 때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람들이 만든 전통을 지키는 것이 신앙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들이 만든 전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신앙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들은 그것이 잘 못되었다는 것 조차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그들의 신앙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십니다.

 

여러분 6절-7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게 되면서, 하나님이 진짜 신인지 우상이 진짜 신인지 구별할 수 없게 되어서 망하게 된 것처럼,

 

신약시대에 와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똑 같은 실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될 때 자기 지식으로, 자기 전통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외식이고,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대부분의 교회의 성도들이 이런 실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교회에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가르치지도 않고, 또 잘 배우지도 않습니다. 어릴 때, 주일학교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배우지도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느냐? 어른들이 하는 것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하는 말이 다르고,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하나님을 섬기고, 한 성령을 통해 은혜를 받고, 같은 말씀을 깨달았다면, 어느 교회, 어느 성도들을 만나도 다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교회의 전통을 따르는 것이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아니라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지도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전통으로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을 비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 예를 들면서, 고르반”이라는 전통을 가지고 이 지도자들을 책망을 합니다.

 

여러분 10절-11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모세가 준 율법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말씀하셨는데, 부모님께 드려야 할 물질을 “고르반이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되었다”고 하면서 하나님께 예물로 드려 버리고, 부모님들께는 아무것도 드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르반이라는 말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이라는 말입니다.

원래는 하나님께 드릴 것은 제물로 따로 구별을 하고 또 부모님께 드릴 것도 따로 구별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님께 드릴 것도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고르반이 되었다! 하면서 하나님께 드려버리고 부모님께 드릴 것은 자기가 그냥 써버리는 것입니다.

 

정작 부모를 공경하라! 는 이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지 않으면서, 내가 하나님께 예물로 다 바쳐 버렸으니 하나님을 굉장히 잘 섬기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3절 말씀에 보시면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이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런 식으로 마땅히 이웃에게 해야 할 일도, 공동체 속에서 해야 할 일도 제대로 순종하지 않으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헌신하고 또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처럼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신앙으로 포장을 한다! 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외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니 이것이 죄인 줄도 모르고, 회개하지도 않으니, 그 마음은 점점 악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다 모으시고, 이런 신앙이 왜 죄가 되는 것이고, 왜 잘못되었는지를 설명을 하십니다.

 

여러분 14절 말씀에 보시면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말씀하시면서

 

무슨 음식을 먹든지, 손을 씻지 않고 먹었다고 해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우리를 더럽게 하고 부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정죄하는 그 악한 마음, 회개하지 않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이 사람들을 더럽게 하는 것이고, 부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손을 씻지 않는 것은 장로의 전통이고, 또 회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것이 무슨 뜻이냐?”고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마가는 이것을 놓치지 않고 기록을 해 놓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진지하게 말씀하셨는데, 이 제자들은 이것이 무슨 말씀인지를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18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라고 책망을 하시면서 다시 자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이것은 강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입으로 먹는 음식은 소화가 되어 지고 뒤로 나가면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씻지 않는 손으로 음식을 만졌다고 내 마음이(내 영혼이) 더러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변화되지 못한 마음(회개 하지 않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다른 사람들을 죄인 되게 할 뿐 아니라 자기도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에 나오는 이 악이 사람들을 더럽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20절-23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드러나게 하는 종교의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죄를 회개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이”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먼저 변하고 깨끗해지면 겉으로 드러나는 삶은 저절로 바뀌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서 “내가 이 정도 헌금을 하고, 또 어떤 직분을 맡아서 섬기고, 또 얼마나 많은 봉사를 하고 있가”하면서 이 정도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 하는 생각을 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내가 오늘도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것은 없는가? 늘 회개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엎드리는 자가 정말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이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그런 성도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진정한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유대인도 아니고 어떤 지위를 가진 사람도 아니고 자기의 얼마나 연약한 자이고, 얼마나 비천한 자인지를 아는 사람이라”고 소개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24절 말씀 이하에 보시면 “두로 지방에 있는 이방 여인의 믿음을 소개를 하게 되는 것 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한번 비교를 해 보라는 것입니다. 외모는 종교인인데 마음이 더러운 자와 외모는 더러운 이방인인데, 마음이 깨끗한 자를 한번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24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갔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두로 지방은 페니키아 지역에 있는 이방 나라입니다.

 

기거서 “더러운 귀신에 들린 어린 딸을 고치기 위해 한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 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26절 말씀에 보시면 “헬라인, 이방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수로보니게라는 말이 수리아베니게(페니키아)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느냐!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방인들을 개로 비유한 것입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말입니다.

 

그때 그 여인은 교만하게 대들거나 대적하지 않고, 더 엎드리게 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자기 스스로 낮아진 것입니다.

 

자기를 개라고 말씀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마음이 겸손한 마음, 넓은 마음입니다.

여기서 믿음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5:28절 말씀에는 똑 같은 것을 기록하면서, 이 믿음을 더 강조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그 딸이 나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마가복음 7:30절 말씀에는 “진짜 집에 가보니 귀신이 떠나갔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이방 여인은 더러운 귀신이 들리 딸을 데리고 왔습니다. 외모는 더럽지만,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엎드릴 때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깨끗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그 마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는 31절-37절까지 말씀에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고치는 사건을 기록을 합니다. 이 기록은 다른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사건입니다. 마가가 특별히 기록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기록한 겁니다.

 

여러분 31절 말씀에 “두로에서 시돈을 지나 데가볼리를 통과해서 갈릴리 호수”에 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지역도 이방인들이 있는 지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들도 이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받게 될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듣지 못하면 말도 못하게 됩니다”그래서 듣지 못하고 말을 더듬는 이 사람을 데리고 가셔서 손가락으로 양쪽 귀에 넣으시고 침을 밷어 혀에 손을 대시면서 “에바다”하실 때, 그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풀어짐으로 분명하게 말을 하게 되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바로 알아 듣지 못하면, 바른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잘 알아듣고 바른 말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4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의 탄식이 나옵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에바다! 라는 말은 성경에서 여기 딱 한번 나오는 말입니다. 마가 만 사용한 단어입니다. 너는 열려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37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은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하는 사람이라”라고 소문을 내고 다니게 됩니다.

 

마가는 지금 이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는 겁니다.

 

에바다”모든 사람들의 귀와 입이 열려져서 “바로 듣고 바로 말하는”것을 내가 원하신다! 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합니다. 바른 진리를 듣고, 깨닫게 될 때 바른 말, 진리의 말, 바른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마가는 자기의 전통으로 신앙 생활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신앙과 이방인들의 믿음을 비교하시면서 누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 은혜를 누리는 사람인가? 비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겉으로만 종교인들인 바리새인들이냐?

마음이 깨끗한 이방인들이냐?

마가는 오늘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내 열심, 내 직분, 내 전통을 가지고 종교 생활하면서 그냥 만족하는 구론 신자는 아닌가? 한번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이 “에바다!!! 듣는 귀가 열리고, 바른 말을 하는 이 입이 열려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오래 다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큰 일을 했느냐? 직분을 가졌느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인 줄 알고 회개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받는 자라는 것을 여러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 자신의 삶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내 인생의 문제가 해결 되어지는 그런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영적인 삶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기도문

합심기도

1.  오늘도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그런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2.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섬기는 교회와 가정과 자녀들의 믿음을 위해서

3.  개인의 기도제목을 따라 기도하고 오늘 하루 삶을 또 시작하겠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