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
마가복음 10:1-52(신p.70) 찬송 400장 / 찬송 292장 20241113
오늘도 마가복음 10장에 기록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 마가복음 10장 말씀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는 당시에 종교지도자들이나 나름 힘있는 사람들 그리고 제자들까지도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없다고 책망하는 내용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마가는 12제자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빨리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가의 집에 자주 들르셨고, 마가의 집에 있는 다락방에서 성찬예식을 하신 것을 보면, 예수님의 마음을 깨달은 마가를 예수님께서는 귀하게 여기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복음서를 제일 먼저 기록하게 되었고, 또한 이렇게 당시 영적인 지도자들이나 열 두 제자들이나 수 많은 백성들조차도 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날카롭게 지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앞서서 일을 하고 욕심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또 자기의 자랑거리를 만들려고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마가복음을 자세히 살피면서, 이런 부분을 좀 깨닫고, 훈련 받음으로 좀더 바르고, 정확한 믿음과 신앙으로 교회를 섬기고 또 바른 은혜를 받아 누리는 그런 성도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말씀을 잘못 해석해서 오류를 범하는 바리새인들과 욕심 때문에 바른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하는 부자 청년에 대해서 말씀을 합니다.
먼저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의 어리석음을 마가는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마가복음 10:1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역에 있다가 예루살렘이 있는 유대지역으로 내려와 말씀을 가르치십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익숙하게, 습관대로) 가르치시더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여기 전례대로라는 말은 “늘 익숙한 대로, 습관대로”라는 말씀 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때 유대에 있는 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려고 물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2절 말씀에 보시면, 바리새인들은 이혼의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겁니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남편이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법적으로 이혼 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 놓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옛날에 유교의 전통을 따라서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칠거지악” 이라고 해서, 남편이 아내를 쫓아낼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되는 7가지 악한 행동이라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남자들의 욕심을 유교라는 철학사상을 근거로 해서 법을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욕심을 법으로 만든 겁니다.
이것처럼 당시 유대인들도 이런 상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의 근거는 모세의 율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3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라고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물어 보는 것입니다.
그때 4절 말씀에 보시면,“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 하였나이다”라고 하면서 당당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남자는 이혼할 수 있도록 율법에 기록해 두셨다! 라고 오해를 한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욕심을 이루기 위해 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잘 못 인용한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무지와 욕심이 만나게 될 때, 잘못된 관행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설픈 기독교인들이 범하기 쉬운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 “자기 생각에 옳은 것 만을 딱 잘라서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전체의 의미를 살피지 않고, 부분적인 해석을 한 것입니다. “이혼 증서를 써서 아내를 버리라는 말씀이 있으니까, 그 말씀만 읽고, 아내를 버려도 되지 않느냐?”라고 해석을 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의 진짜 의미를 다시 설명해 주십니다”
여러분 5절 말씀에 보시면,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이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법을 주신 것은 사람의 마음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혼증서를 써서 아내를 내보내는 법이 없다면, 만약 남편이 여자가 마음에 안 들 때, 그 아내를 괴롭히기 위해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와서 평생 상처를 주든지, 아니면 죽여 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이혼증서라는 법으로 여자를 보호해 주기 위해, 이런 명령을 기록해 놓은 것이라! 고 설명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부부의 의미는 6절 말씀에 또 설명을 합니다.
“창조때부터 부부라는 것은 부모를 떠나 한 몸이 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짝지어주고 하나되게 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욕심과 죄성이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대로 살지 못하고, 자꾸 아내를 괴롭히고 심지어 죽이려고 하니, 할 수 없이 “여자를 위해 보호하는 법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또 악한 꾀를 내어가지고, 또 이 법을 이용해서 “합법적으로 아내를 버리는 법으로 이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을 안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의 대표적인 죄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씀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 적용을 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나라 백성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도 자칫 잘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입맛대로 해석해서 잘 못된 상식을 만들게 되고, 또 불신들에게도 욕을 먹는 그런 기독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실 때 가정에서 또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교회에서 끊임없이 말씀을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에서나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가르치지 않게 될 때, 자녀들은 바른 믿음을 가지지도 못하게 되고, 또 자기 기준에 맞추어서 나름대로 이정도 착하게 살면 되겠지, 적어도 불신자처럼 안 하면 된다! 고 생각하면서 적당히 죄를 짓고 그냥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날 교회 와서 회개하면 다 되는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회개만 하면 다 용서해 준다”이 말 한 마디만 믿고 자기에게 적용을 한 것입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성질 부릴 것 다 부리고, 욕할 것 다 욕하고, 막살면서 나는 교회를 다니고 있고, 늘 회개하니까! 천국 갈 거야! 하면서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이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바리새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나, 인내가 없고, 욕심과 교만과 불순종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마음이 변화되지 않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10절 말씀에 보시면, 놀랍게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똑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마가가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10절 말씀에 보시면,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마태복음 19:10절 말씀에는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자를 마음대로 못 바꾸면 장가가기 힘들겠다! 라는 말은 바리새인들과 똑 같은 생각을 이 제자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 대부분 남자들은 이런 상식과 이런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1절-12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합니다.
“욕심으로 아내를 버리고 또는 남편을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나 남자에게 장가가는 것은 간음이다, 욕심이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느냐?
바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이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13절 말씀에 보시면, 제자들이 어린아이를 꾸짖는 것을 보시고, 책망 하십니다.
그냥 두라! 그리고 그 어린아이를 품에 안으시고,“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이런 마음을 가진 자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15절 말씀에 보시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여기“받들지 않는다”라는 말은 “받아들이지 않는 자, 배우지 않는 자”라는 말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욕심 없이,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욕심으로 신앙 생활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도 욕심으로 신앙생활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빨리 성공해야지, 빨리 부자 되야지, 하나님 덕 좀 봐야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마가는 17절 말씀에, 한 부자 청년의 잘 못된 신앙을 소개를 합니다. 거기 보시면, 한 부자, 관원이요 청년인 한 사람이 영생을 질문하러 옵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끓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이 사람은 젊은 사람이요(마 19:20), 또 관원이면서(눅 18:18) 잘 사는 사람(막 10: 22절)이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부족할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당시에 젊은 나이에 부자가 되고, 관원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는 일입니다.
아마 아버지가 부자이거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요즘말로 하면 금수저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 청년은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처럼 교만하게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순수하게 영생의 문제에 대한 확신을 얻으려고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17절 말씀에 보시면,“예수님께 나와 꿇어 앉아 질문을 하는 것을 보면, 사모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가장 성경적인 답을 주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19절 말씀에 보시면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이 언약의 말씀을 믿고, 십계명과 레위기 율법을 지킨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절 말씀에 보시면, 이 청년이 이 계명들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라고 너무 쉽게 말을 하는 겁니다.
유대인의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모세오경과 구약성경을 다 듣고, 배웠다는 것입니다.
그때 21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정말 그 청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해 주십니다.
“네가 말씀을 다 지켰다고 하는데, 아직도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합니다.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좋은 환경에 태어나서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부와 영광을 주었는데, 자기가 잘해서 이 모든 것이 생겼다고 착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대로, 가난한 자를 위해 그 물질을 나눠 주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그 때 “왜 내가 내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하는가” 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이 부자 청년은 재물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21절 말씀을 잘 보시면, “…네게 있는 것을(네가 붙잡고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느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말씀대로 네게 준 부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면, 이 땅에서 더 많은 것을 누릴 뿐 아니라 하늘에서 보화가 있게 될 것이라!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2절 말씀에 보시면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청년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보다 재물을 더 귀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물 때문에 영생을 포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포기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그 재물과 함께 이 땅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부자 청년은 자기 스스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알고 있고, 다 지켰다고 생각을 했지만, 사실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믿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가지고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의 영혼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재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고, 제자도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있는 동안에 “재물이 있는 자,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 여러가지 정치적인 상황을 볼 때, 부자가 되고 또 많은 권력을 가졌다는 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와 결탁이 되든지 당시의 정치세력과 하나가 되어서 부정부패 하지 않고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은 당시 배경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당시에 이런 재물에 관심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는 관심 없는 자들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25절 말씀에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자가 천국에 못 가는 것은 아니지만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때 또 예수님의 제자들이 놀라서 말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는가?”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데!
이 말은 제자들도 역시 이 부자 청년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27절 말씀에 보시면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말은 “사람의 방법으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의 방법으로는 된다”는 말씀 입니다.
예수를 믿고 말씀을 순종함으로 영생을 소유한 자는 이 땅에서 부족함이 없이 살게 됩니다. 또 재물이 많다고 해서 부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부자 입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 사람이 더 큰 부자와 비교하면서 나는 더 많이 가져야 된다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 사람은 이미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입니다.
이러 사람들은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돈을 더 벌기 위해서 말씀대로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일하기 보다는 부정과 불법과 편법을 동원하면서 불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고, 이렇게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전에 그 청년은 재물은 많이 있고 이 땅에서는 부자라는 말을 듣겠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부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부족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재물이나 권력이 목적이 되어 예수를 믿는 자들은 진정한 성도의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때 28절 말씀에 보시면, 베드로가 자랑스럽게 이야기 합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우리는 다 버렸으니 영생을 얻을 자격이 되지요? 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복음을 위해 가족들이나 자기 기업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자들은 “현세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겠지만, 내세에 영생을 얻게 된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당시 유대인들이 나중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는 세리와 창기들이 먼저 될 수도 있고, 또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말씀을 깨달은 이방인들이 먼저 될 수도 있다! 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의 말은 맞기는 맞는데, 정말 베드로와 제자들이 진짜 다 버렸는지? 확인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죄사함과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할 것을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34절 말씀에 보시면
“그들은 능욕하며 침 밷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세 번째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예고 입니다.
그런데 35절 말씀부터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제자들은 “함께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왕이 되면 바리새인들처럼 부자 청년처럼 “높은 자리에 앉겠다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35절 말씀에 야고보와 요한이 “우리의 구하는 것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36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질문을 할 때, 이 야고보와 요한은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말씀을 합니다. 제자들의 마음 속에도 이런 욕심이 있는 겁니다. 권력과 부를 한번 누리고 싶다는 겁니다.
여러분 41절 말씀에 보시면, 다른 10제자들의 생각도 마찬가지 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었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제자들은 십자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높은 자리를 보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위해 헌신 할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처럼 다스릴 욕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겉모습은 다 버렸다고 해놓고. 그 마음 속에는 아직 버리지 않는 것이 있는 겁니다. “자기 욕심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 높은 자리, 많은 재물을 얻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목사들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목회를 한다면 이 제자드로가 똑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하시기 전에 마지막 사역인 “바디메오의 눈을 뜨게 하는 사건을 통해” 제대로 볼 수 있어야 주님을 따를 수 있다는 것을 설명을 합니다.
여러분 46절 말씀 이하에 보시면, “디메오의 아들 바디메오라는 맹인이요”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문을 듣고 소리를 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거지였던 바디메오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내어버리고.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바디메오의 입장에서는 가진 것 모두를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50절 말씀에 보시면, 자기의 “겉옷을 내어 버렸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사실 당시 거지에게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추위를 막을 수 있는 겉옷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바디메오는 이 겉옷까지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바디메오에게 묻습니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제자들에게 한 질문과 똑 같은 질문입니다.
그러나 바디메오가 예수님께 구하는 것은 “높은 자리도 아니고, 많은 재물도 아니고,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제대로 보게 되면, 모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믿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고, 그리고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따르는자 제자가 되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인생의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기 때문에, 이 땅에서 백배나 받고, 부족함이 없고, 죽어서는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나, 부자 청년이나, 깨닫지 못하는 제자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바디매오처럼 바른 것을 보지 못하면, 제자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진지하게 보시고, 하나님께서 정말 성도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번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어린아이같은 이런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바디메오처럼 밝히 보고 깨달아서,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시고, 또 내세에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오늘도 묵묵히 내게 주신 이 사명 감당하며, 남은 생애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영적인 삶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기도문
합심기도
1.오늘도 정직하고 순수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나라를 섬기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2.나라와 민족을 위해 섬기는 교회와 가정을 위해서
3.개인의 기도제목을 따라 기도하고 오늘 하루 삶을 또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