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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회 말씀

마가복음 14장 / 예수님처럼 깨어 있으라

작성자hanson|작성시간24.11.19|조회수369 목록 댓글 1

https://youtu.be/cwm99lo7tpI

예수님처럼 깨어 있으라

마가복음 14:1-72(신p.79)   찬송 325장 / 사도신경 / 찬송 341장     20241119

 

오늘도 마가복음 14장에 기록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 마가복음 14장 말씀에는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의 핵심이 되는 십자사역을 준비하는 모습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대제사장으로서 기름 붓는 사건과 자기 백성과 언약을 하는 성찬식, 그리고 겟세마네기도와 예수님의 죽음을 위한 재판과정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성찬식이나 겟세마네 기도의 의미가 중요하기 때문에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서 기록을 합니다.

 

그러나 마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 내용을 기록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마지막 때 예수님의 명령대로 제자들이 깨어 있었는지, 문지기의 비유를 통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마가복음 13:34절-35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깨어 있으라! 명령을 하시고 네가지 때를 말씀하셨습니다.

저물 때, 밤중에, 닭 울 때, 새벽에”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느 시간에도 깨어 있지 못했고 욕심 때문에, 또 자기 유익을 따라 넘어지고, 실족하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는 이런 모습을 통해 진정한 제자는 깨어 있는 자들이라! 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사역과 또 문지기의 비유를 통해 전정한 제자는 어떤 사람인가?

오늘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마가의 메시지를 잘 들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일단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을 위한 기름부음의 사건부터 설명을 하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마가복음 14:3절-9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한 여인이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게 됩니다.

베다니라는 동네는 나병환자들이 사는 곳입니다. 보통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가시면 나사로의 집에 머무시게 되는데 이 나사로도 나병환자였습니다.

 

나병환자의 집안이니까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사로나 마리아와 마르다는 헌신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과 예수님의 제자들을 섬긴 것입니다.

 

이 모습을 늘 지켜 시몬이라는 사람이 자기도 예수님을 한 번 대접하고 싶었던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를 한 것입니다.

 

그 때 “한 여인이” 값비싼 향유 옥합을 가지고 나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여인이 가지고 나온 향유가 굉장히 귀한 것이라는 것을 마가는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부자였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이 가지고 나온 향유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명품은 아는 사람이 알아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가는 이 여인이 가지고 온 향유는 “비싼 것 중에서 매우 비싼 것인데, 순전한(최고 깨끗한) 나드향유를 귀한 병에 담아 가지고 왔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베다니 마리아는 결혼 자금으로 쓰려고 평생 모은 돈을 가지고, 귀한 향유를 마련했는데, 그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헌신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제자들이 이 비싼 것을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 허비했다! 라고 하면서, 화를 내면서 이 여인을 책망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4절 말씀에 보시면, 여기도 어떤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지만, 요한복음 12:4절 말씀에는 “계산이 빠른 가룟 유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고, 또 300데나리온이나 하는 이 향유를 허비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300데나리온 하면 잘 안 와 닿지죠! 1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기 때문에 5만원만 잡아도 1,500만원이 되는 돈입니다. 10만원이라면 3,000만원입니다.

 

여인들이 결혼을 준비할 때 혼수품으로 준비를 하는 귀한 기름입니다. 이 향유를 아내는 남편을 위해 평생을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생각할 때 이 귀한 기름을 그렇게 한 번에 다 부어 버리면 어떻게 하나, 이걸 팔면 300데나리온, 3천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왜 그냥 허비하냐?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이것이 허비하는 것으로 보였지만, 예수님의 눈에는 사랑의 헌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6절 말씀에 보시면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라고 말씀을 하시고,

 

또 8절-9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제자들을 책망하시면서 “그는 … 힘을 다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라고 칭찬을 하십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말씀하시기를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언뜻 보면, 아니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까지 칭찬을 하시지?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이 뭘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기름부음의 사건은 예수님의 입장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사역을 앞두고 인류의 죄를 속하기 위해 대제사장의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데, 이 대제사장이 속죄의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구별하기 위해서 기름을 부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을 통해 예수님께 기름을 부음으로 대제사장의 사역으로 구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이 행한 것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의 사역, 속죄의 사역을 의미하기 때문에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 이 여인의 한 일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마리아의 사역이 바로 죄인들을 위한 속죄의 사역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필 이 여인을 통해 기름을 부었을까요?

그것은 누가복음에 보시면 이 의미를 제일 잘 설명을 해 놓았습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7:47절 말씀에 보시면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마리아는 가난한 나병환자의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창녀로 또 죄인으로 부끄러운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죄 많은 이 여인을 하나님이 사랑해 주셔서,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베다니 마리아는 그 어느 누구보다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큰 사랑으로 하나님께 헌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사역을 위해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이 사역을 그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7:47절을 한 번 찾아 보시기를 바랍니다. 거기 보시면,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마리아는 많은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에 누구보다 많은 사랑으로 하나님께 헌신을 한 사람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복음이 증거 되는 곳마다 이 여인의 헌신을 이야기 하라! 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우리가 어떤 사람이 인생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내어놓고 헌신 할 수 있는가? 가장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이 가장 큰 헌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아름답고 온전한 헌신을 한 여인이 바로 이 베다니 마리아인 것입니다.

 

여러분도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헌신하고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기쁨으로 헌신하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마가는 10절 말씀부터 문지기의 비유에 나오는 때에 대해서 기록을 하게 됩니다.

 

첫 번째 때는 “저물 때” 입니다. 이 저물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성찬식을 행하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성찬식을 행하게 될 때 이 글을 쓴 마가의 집에 있는 다락방에서 성찬식을 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때 예수님께서는 “저물 때, 깨어 있으라”라고 말씀하셨는데,

제자 중에 한 사람이 자기 욕심에 사로잡혀 실족하게 됩니다.

 

그 제자가 바로 가룟유다 입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팔아 넘기게 됩니다.

 

여러분 18절 말씀에 보시면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가룟 유다는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자기 욕심에 눈이 가려져서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잠자는 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욕심에 갇혀 스스로 넘어지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깨어서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하십니다.

 

그래서 21절 말씀에,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라고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주시면서 “언약식”을 행하십니다. 법적으로 자기 백성과 계약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22절 말씀에, 떡을 주시면서 내 몸이라 먹으라!, 말씀이 내 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23절 말씀에 또 잔을 주시면서, 24절 말씀에 보시면,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씀 하십니다.

 

여러분 이 예식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속죄의 피를 믿음으로 이제 하나님의 백성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기로 언약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언약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자들은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메사야의 사역입니다.

 

여러분 이 언약식은 입으로 떡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믿음으로 말씀을 순종하고, 내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 늘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는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가룟유다는 떡을 받아먹고, 또 포도주를 마셨지만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 먹었습니다.

 

왜 예수님을 팔아 먹었을까요?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계신분이라는 것을 눈으로 봤기 때문에 이 예수님께서는 능력으로 타락한 유대의 지도자들을 쓸어버리고, 또 로마의 군사들을 몰아내시고 이스라엘을 독립하게 되는 왕이 될 것이라! 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가룟유다의 욕심이고, 자기의 욕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가룟유다는 성찬식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과 언약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의 내용인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고, 내 죄의 값을 지불하는 십자가와 회개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가룟유다는 자기 스스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목메어 죽었고, 심판을 받게 됨으로 사망의 길, 멸망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물 때 깨어있으라!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제자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저와 여러분이 깨어있지 않으면, 또 이 성찬식의 의미를 바로 알지 못하면, 자기 욕심 때문에 예수를 믿다가 스스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멸망의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과 언약한 성도라면 말씀을 따라가고, 또 십자가를 믿고 늘 회개함으로, 지금 죽어도 내가 천국에 갈 수 있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늘 깨어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32절 말씀에 두 번째 때가 나옵니다.

밤 중에”입니다.

 

성찬식을 마치고 밤 중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감람산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때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34절 말씀에 보시면 “깨어 있으라” 말씀을 하십니다.

기도로 깨어 있으라!, 자기 사명을 위해서 기도하라! 라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사명을 알고, 그 사명을 위해 기도하는 자가 깨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62절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명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인간의 육신은,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갔으면 좋겠지만,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자기 사명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깨어 있지 못합니다.

여러분 37절 말씀에 보시면,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

 

38절 말씀에도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일에 깨어 있지 못합니다.

 

세상에 일에 너무 바빠서 이리 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하나님의 일에는 깨어 있지 못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시간의 한계, 육신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시간과 이 육신의 건강을 우리가 잘못 관리하게 되면, 진짜 사명 감당해야 할 때 피곤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육신이 약하다는 말은 시간을 잘 못 관리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마음은 기도 해야지, 성경 봐아야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지 하지만, 실제 삶 속에는 세상의 일이 더 바쁩니다. 그래서 몸이 피곤한 것입니다.

 

주일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도 피곤하고, 매일 새벽에 기도하는 것도 힘듭니다.

 

어른들은 돈 버는 일에 메여 있고, 시간이 좀 나면 취미 생활에 바쁘고, 늦은 시간까지 TV 드라마를 보고, 또 게임을 하는 데는 깨어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 일에는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죄에 메여 있는 우리는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내 사명에 깨어있지 못하고, 기도에 깨어있지 못한 이 제자들은 결국 로마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다 도망을 가게 됩니다.

 

진짜 믿음을 드러내야 할 그 때 도망을 갑니다. 진짜 예수님이 도움이 필요할 때 다 흩어지고 도망가고, 자기 살자고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가 버립니다.

 

여러분 50절 말씀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결국은 기도로 깨어있지 못하고, 사명으로 깨어 있지 못하면 결정적인 순간에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성실함으로 사명과 기도에 깨어 있는 믿음 있는 성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연결해서 세 번째 때가 나옵니다. 닭 울 때”입니다.

 

여러분 41절 말씀에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잡히시고, 대제사장의 집에서 유대인의 법정에 세워져 재판을 받게 됩니다.

 

53절 말씀에 보시면 “대제사장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다 같이 손을 잡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때 베드로가 도망가지 못하고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갑니다.

 

그런데 이 베드로가 실족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장담을 했던 사람입니다.

마가복음 14:29절 말씀에 보시면,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1절 말씀에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큰 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기도로 깨어있지 못할 때, 여지없이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66절 말씀에 보시면, 대제사장의 여종이 베드로를 알아보고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었었도다”라고 말할 때,

이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나는 그런 사람 몰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큰 소리쳐도 소용없습니다.

또 그 사람이 이 사람이 분명히 “그 도당이라”라고 말합니다. 함께 있던 사람이라”라는 뜻입니다.

 

그 때도 베드로는 “부인했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한 사람이 또 말합니다.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함께 있던 사람이잖아!” 라고 말할 때

 

71절 말씀에,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면서”나는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소리칠 때 “그 때 닭이 두 번 울었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71절-72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역시 닭 울 때도, 이 제자들은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욕을 얻어 먹을까 봐, 예수님 때문에 매맞을까 봐, 예수님을 모른다! 고 소리쳤습니다.

 

결국 마가는 문지기 비유에 나오는 때에 제자들은 아무도 깨어있지 못했다! 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는 제자들은 깨어 있지 못했지만 오직 한 분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이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마가복음 15:1절 말씀에 보시면 “새벽에”예수님께서는 홀로 깨어 십자가의 사역, 메시야의 사명을 감당하게 될 때,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영생으로 가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라고 기록을 합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께서 성령을 약속하셨고, 성령이 오시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오셔서 거듭나게 하시고, 또 내 영혼을 깨워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하게 하신다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도행전 1:8절 말씀에 보시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게 될 것이라”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가는 이 문지기의 비유를 통해 오늘 우리 성도들에게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는 우리가 깨어 있지 못하면,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할 수 없다! 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처럼 자기 이익을 따라가고, 제자들처럼 육신의 약함 때문에 지치고 피곤하고, 베드로처럼 결정적인 어려움이 올 때, 예수님을 버리고 부인하고 도망가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 시대를 분별하고, 내게 주신 이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깨어 이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그런 일꾼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떠나서, 성령을 떠나서는”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마가는 마가복음 14장 말씀을 통해, 예수님처럼 깨어서 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진짜 제자요, 진짜 성도라는 이 메시지를 오늘 우리들에게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이런 멍청한 제자들처럼 잠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 정신차리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하는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예수는 누구이고, 성령은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인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어야 하고, 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계명의 말씀도 우리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옥함을 깨뜨린 베다니 마리아가 진짜 사명에 깨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최선의 것으로 헌신함으로 복음이 증거되는 곳에서 그를 기억할 만큼 칭찬을 듣게 됩니다.

 

오늘도 고난을 받으면서도 사명 감당했던 이 예수님의 모습과 사랑으로 헌신했던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달아서 내 생명이 다하는 그 날 까지 이 사명 감당할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 들으며, 이 땅에서 행복한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영적인 삶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기도문

합심기도

1.  오늘도 말씀충만 성령충만을 통해 내게 주신 사명 감당하게 하옵소서.

2.  나라와 민족을 위해 섬기는교회 공동체를 위해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

3.  개인의 기도제목을 따라 기도하고 오늘 하루 삶을 또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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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모르드개 | 작성시간 25.01.3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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