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에게)자신을 증거하는 예수님
요한복음 7:1-53(신p.155) 찬송 80장 / 사도신경 / 찬송 96장 20250104
오늘도 요한복음 7장에 기록된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이 요한복음 7장 말씀에는 초막절 절기가 되었을 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유대인들과 논쟁을 하는 내용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유대지도자들과의 이 논쟁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기가 되면 갈릴리 지방에 있는 사람들도 예배를 드리기 위해 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1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왜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가 하면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5장 말씀에 기록된 것처럼 “예루살렘에 있는 베데스다 못가에서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시고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 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증거하시는 바람에”이 유대인들에 미움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안식일도 지키지 않으면서, 자기를 하나님인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했다!, 신성모독했다! 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면 확실한 증거를 얻어서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갈릴리 지역에서는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면서 이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소문을 들은 유대인들은 더더욱 예수님을 보면 불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3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께 “유대로 가서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 주라”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예수님의 동생들 입장에서는 아버지 요셉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가정을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장남인 예수님인데, 제자들과 함께 들로 산으로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기적을 행하고만 있으니, 제대로 일을 하려면 당시 수도인 예루살렘에 가서 유명한 사람이 되든지, 지도자가 되어서 집안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은 세상적인 관점에서 예수님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이 예수님의 동생들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나 메시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5절 말씀에 보시면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을 인간적인 마음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그저 유명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속된 말로 성공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시면, 유대지도자들이 신성모독 죄로 죽이려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습을 자기 동생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동생들을 먼저 예루살렘으로 보내시고, 나중에 혼자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게 됩니다.
그리고 14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셔서 하시는 일은 “성전에서 율법을 가르치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중에 가장 핵심적인 사역은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게 오늘 우리 교회의 사역이 되어야 하고, 오늘날 목사들의 사역이 되어야 합니다.
당연히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교회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법당에서는 불경을 배우고, 이슬람 사원에서는 코란을 배우듯이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를 사모하고, 열심으로 배우셔야 합니다.
여러분도 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는 이유는 “자신이 행하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16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는 내용은 나를 보내신 이, 하나님의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미 구약에 말씀하신 율법을 가르치는 것이라! 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율법의 의미를 깨닫고 행하게 될 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17절 말씀에 보시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율법의 핵심이 되는 내용이 뭡니까? 바로 레위기 말씀입니다. 이 레위기의 핵심적인 주제가 뭡니까? 바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는 것입니다.
그 율법의 핵심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율법의 의미를 알고 행하게 되면, 하나님의 거룩함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바로 행하게 되면, 위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밑으로는 “내 이웃을 내 자신같이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듣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행하는 자는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절 말씀에 보시면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겉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자꾸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유대지도자들과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여러분 19절 말씀에는 너희들은 율법은 지키지 않으면서 나를 죽이려고 한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20절 말씀에는 “언제 우리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냐”라고 따집니다.
그래서 21절 말씀에 보시면, “이 한 가지 일 때문이라”라고 말씀 합니다.
이 한가지 일이 뭐냐? 이것은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치는 사건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을 때 그 날이 바로 안식일 이였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범했다. 율법을 지키 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설명을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친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대로 죄인을 거룩하게 한 것이라, 생명을 살리는 일을 했다! 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2절 말씀에 할례를 가지고 비유해서 설명을 합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이 안식일에도 성전에서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너 희에게 할례를 행한 것처럼, 너희도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지 않느냐?”그런데 사실 이 할례라는 것은 “아브라함 때 주어진 것인데”모세가 준 율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오해를 한 것입니다.
은밀하게 말하면 이 할례는 아브라함 때 주어진 것이고(창세기 17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모세 때에 주어진 것입니다. 이 율법이라는 것은 출애굽기 20장 이후와 또 레위기 말씀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할례라는 것은 은밀하게 율법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식일에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는 할례도 행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살을 잘라내고 피를 흘리고 하는 이런 할례 하는 것은 허락을 하면서, 안식일에 사람의 병을 고쳐 전신을 낫게 하는 것을 보고 왜 잘 못되었다고 하느냐? 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말씀으로 판단을 해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말하지만 그 말씀의 의미를 다 알지 못하면서 작은 지식으로 예수님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있는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9절 말씀에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바르게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도 않으면서 말씀대로 순종하는 예수님을 비판하고 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잘 못된 것입니다.
이 유대인들은 자기가 말씀을 잘 모르고, 오해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잘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만 해도 사실은 대단한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잘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 수도 없고, 또 예수님을 제대로 믿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이 말하는 바른 믿음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도 이런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닌다고, 직분을 받았다고 이 말씀이 저절로 알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교만하게 될 뿐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이든, 직분을 받은 사람이든 성경을 잘 배워서 말씀대로 해야 문제도 없고, 또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25절 말씀에는 또 다른 주제를 말씀을 합니다. 요한복음 7장 말씀의 핵심 주제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출생지를 가지고 무시를 합니다”
여러분 27절 말씀에 보시면 “…원래 성경에 보면, 그리스도(메시야가)가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라고 기록이 되어 있는데, 우리는 예수님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갈릴리 시골 출신의 목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겁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는 그 출생지를 알 수 없는 신비한 사람이 라는 이런 메시야 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잘못된 메시야 관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나세렛 출신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또 요셉의 아들이고 목수 출신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메시야 일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때부터 예수님께서 예수님이 어디서 왔는지, 그 근본 출생을 설명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28절-29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 (29절)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 하시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 입니다.
29절 말씀에“내가 그에게서 나왔고, 그가 나를 보냈다”라는 말은 하나님에게서 이 예수님이 나왔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나를 보냈다는 말은 곧 내가 하나님과 같다! 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 자신이 구원자로, 메시야로 이 땅에 온 것이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 시대 눈에 보이는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 만을 말하지만,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구원역사를 볼 때,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이 땅에 예수님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내 근본, 출생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구약의 예언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내가 나왔고,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다” 내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온 메시야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이야기 이지만,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알아들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31절 말씀에 보시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알아들은 사람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믿지 못하는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기준으로 예수님을 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32절 말씀에 보시면 “대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고 사람들을 보냈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꼬투리를 잡으려고 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 때 예수님께서 한 발 더 나아가셔서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게 되시는지 도 말씀을 합니다”
33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은 십자가로 죄사함의 문제를 다 이루시고 난 뒤에는 부활하심으로 다시 하늘로 올라가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사실 이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도 참 어차피 알아듣지 못할 사람들에게 뭐할라고 앞으로 하실 일까지 말씀하시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말씀은, 이 글을 일게 될, 우리를 위해서 이 말씀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체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을 분명하게 알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죄인을 구원하시고, 또 하늘로 올라가신 다는 것입니다.
왜 하늘로 다시 올라가시는가? 마지막 심판을 위해서 입니다.
이제 종말의 때가지 기회를 주시지만 끝까지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9:27절-28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이런 내용을 기록을 해 놓았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기 두 번째 나타난 다는 것은 “마지막 심판을 위해 다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죄를 없이 하시려고,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또다시 하늘로 올라가시는 이유는 마지막 때, 믿지 않는 자들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시기 위해서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시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를 모릅니다.
그저 자기들의 수준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때문에 “이게 뭔가?” 그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36절 말씀에 보시면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게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유대의 지도자들은 하나님 말씀도 모르고, 예수님이 누구인도 모르면서 자기의 힘과 권력으로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만 하는 것입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고 배우려고 하면 되는데, 세상에서 힘이 있는 자들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그 사람을 없애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앞으로 성령이 오시면, 모든 사람들이 밝히 알게 되고 구원을 받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구원에 대한 초청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계획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37절-39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내가 믿으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지 않고, 깨닫지 못하면 믿을 수 없었지만, 앞으로 성령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는 그런 시대가 되면, “목마른 사람, 사모하는 사람, 깨닫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오기만 하면, 성령을 통해 내 속에서부터(내 배에서= 내 마음 속에서부터) 깨닫게 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목마른 사람”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진리에 목말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해서, 진리에 대해서 목마른 사람, 사모하는 사람이 결국 성령을 통해 진리를 깨닫게 되어지고, 영적인 시원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세상에 목말라 하지 마시고, 전리에, 말씀에 목말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난 뒤에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든 사람들에 이 성령이 임하게 됩니다.
이 때 모든 사람이 성령을 통해 예수를 밝히 알게 되고, 그 삶이 변하여서 새 사람이 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도행전 2장 말씀에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술절 이후로부터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성령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시는 그런 시대가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예수님에 대해서 알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서든 듣고 깨닫게 하심으로 내 마음에 분명한 믿음을 주시는 그런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상에 있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지도 않고, 영적인 일에 관심이 없는 자들은 결국은 “예수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죄의 문제가 해결 될 수 없고, 죄가 있으니 심판을 받아 영생을 얻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진리를 사모하지 못하고, 세상을 사모 하다가는,
이 땅에서 누려야 할 복도 못 누리고, 세상이 흘러가는대로 끌려 다니게 되는 것입니다. 학교로, 직장으로, 세상의 죄의 모습으로 끌려 다니다가 자기 욕심과 이루지 못하는 꿈만 쫓아다니다가 결국 시간만 허비하고 후회하는 인생으로 끝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말씀에 보시면 “아비들이나 자녀들이나 청년들이나,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남종이나 여종이나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성령을 받게 되고, 또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결론에 보면, 그래도 당시 알아듣고 믿는 사람도 있었고, 또 자기 갈 길을 가는 자들도 있었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46절 말씀에 보시면, 유대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잡으라고 사람을 보냈더니 도리너 예수님을 믿고 왔습니다.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예수를 믿느냐?” 라고 말을 합니다.
예수를 죽이러 갔던 사람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지고 돌아온 것입니다.
또 50절 말씀에는 니고데모가 바리새인들을 반대합니다.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왜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느냐? 라고 책망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바로 믿지 않는 자들은 여전히 자기 갈 길만 갑니다.
예수를 죽이려고 합니다. 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53절 말씀에 상징적으로 표현을 합니다.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자기 갈 길을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오늘 저와 여러분은 성령이 임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삶을 살아가야 되지만, 영적인 일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움으로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이 땅에서 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그런 성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의 물질이나 사람이나 환경 때문에 절망하고 좌절하거나, 욕심에 이끌려 죄를 짓는 삶을 살지 마시고, 천국을 소망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도와주며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영적인 삶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기도문
합심기도
1. 오늘도 우리 마음에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게 될 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 천국 백성으로 이 땅에서 섬기는 삶, 나눠주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2.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시고, 섬기는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 기도하시고
3. 개인의 기도제목을 따라 기도하고 오늘 하루 삶을 또 시작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