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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예배 말씀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유다의 믿음)

작성자hanson|작성시간13.09.04|조회수99 목록 댓글 0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유다의 믿음)

창세기 38:1-11 찬송 370/ 찬송 31020130825

 

오늘도 창세기 38장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원래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는 요셉의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요셉의 이야기를 하다가 오늘 38장 한 장에는 유다의 이야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의 12아들 중에 유다가 여자의 후손 즉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는 아들이 됩니다. 그 만큼 유다의 위치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요셉의 이야기 속에 유다가 썩여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유다가 12명의 아들 중에 왜 이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는가? 오늘 성경은 그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삶을 보면 처음에는 잘하다가 나중에 잘못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처음에는 엉망인 삶을 살다가 나중에 잘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다 같은 경우는 처음에 엉망인 삶을 살다가 나중에 잘 된 사람 중에 한 사람일 것입니다.

 

유다의 삶을 보면 한때의 잘못된 선택으로 말미암아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까지 갔던 사람입니다. 인생의 가장 절망적인 자리까지 내려갔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유다의 인생이 마지막에는 축복의 사람으로 변해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도 감당하지 못하는 큰 역할을 감당하게 됨으로 지도자의 면모를 갖추게 되고, 결국 유다의 후손을 통해 다윗이 태어나고 유다의 혈통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영광스런 삶을 살게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다는 어떻게 해서 인생가운데 이런 절망의 자리가 축복의 자리가 되어지고, 낙오자와 같은 인생이, 주인공과 같은 삶으로 바뀌어졌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그 해답을 찾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은혜를 함께 나누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유다의 인생의 첫 출발은 부모를 버리고 도망간 탕자와 같은 삶으로 시작을 하게 됩니다.

38:1절에 보면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여기 그 후 라는 말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을 미워함으로 들판에 있을 때 요셉을 상인들에게 팔아먹었던 사건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형제는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11명의 형제들이 있습니다.

르우벤, 시몬, 레위, 유다, , 납달리, , 아셀, 잇사갈, 스블론, 요셉 베냐민 이렇게 12명의 형제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이 라헬이 낳은 아들이라고 요셉만 아끼고 사랑을 하니까! 요셉 때문에 가정이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로 샬롬이라 가정에 평화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들판에 양을 칠 때 기회가 온 것입니다. 요셉 혼자 형들을 찾아 들판에 온 것입니다.

이때 가장 리더십이 강하고, 또 합리적이고 똑똑한 유다가 제안을 합니다. 창세가 37:26절에 보면 형제를 죽인들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차라리 장사꾼에게 팔아버리자 그럼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치고 가제 잡고 보기 싫은 요셉도 없애버리고 돈도 벌자고 제안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은 장사꾼들에게 팔리게 됩니다. 그리고 요셉의 옷을 벗겨 짐승의 피를 발라 아버지 야곱을 속입니다. 요셉이 짐승에게 잡혀 죽은 것 같다고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셉을 팔고, 아버지를 속인 사건의 주동자는 바로 유다 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가 옷을 찟고 대성통곡하며 슬피 울면서, 나도 같이 죽겠다 고 고통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본 유다는 더 이상 아버지 곁에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뜻밖에 아버지가 너무나 슬퍼하는 모습 때문에 아버지의 얼굴을 더 이상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37:34-35절에 보면 야곱의 슬퍼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자기 옷을 찟고 굵은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 그 모든 자녀가 위로하되 그가 그 위로를 받지 아니하여 이르되 내가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 아들에게로 가리라 하고 그 아버지가 그를 위하여 울었더라

 

아들들이 아무리 위로를 해도 듣지 않고, 오랫동안 요셉 때문에 울고 있는 겁니다. 차라리 내가 죽을란다 하면서 밥도 안먹고 누워있는 겁니다.

유다는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형제들을 떠나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탕자처럼, 아버지를 버리고 형제들을 버리고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여기서 문제는 선한 길을 떠난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동생을 종으로 팔아먹고, 또 그것을 숨기기 위해 아버지를 속이고, 아버지의 마음에 못을 박아놓고,

또한 그 죄와 그 악함을 회개하지도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해결하지 않고, 그 집을 떠나 자신의 삶을 살고자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8장은 그 후의 일을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첫출발은 너무나 잘되어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취해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아들 셋을 낳게 됩니다. , 오난, 셀라 그리고 큰아들 엘은 다말이라는 며느리를 얻어 장가까지 보냅니다.

많은 세월 동안 평안하게 지내는 것처럼 보입니다.

얼핏 계산을 해보아도 15년 정도 는 지나간 세월 입니다.

 

그러나 7절 이하를 보면

유다의 삶이 축복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7절에 보면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함으로 하나님께서 죽였다고 말씀합니다.

왜 악했는지는 성경을 기록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보시기에 악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유다는 가정에서 하나님을 믿는 아버지로서 본이 되는 삶을 살았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유다의 악한 모습이 그 자식에게 그대로 드러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치 사무엘상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의 영적인 어두움이 그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를 통해 드러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엘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하나님께 악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엘을 죽이십니다. 얼마나 악했으면 하나님께서 죽이시겠습니까?

 

10절에는 둘째 아들마저 하나님께서 죽이십니다.

여전히 죄명은 같습니다.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형 대신에 형수인 다말에게 들어가서 대를 잇게 하는 계대결혼의 풍습을 따라 다말에게 대를 잇게 했는데, 오난은 그것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악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난도 죽이십니다.

 

성경에는 이렇게 쉽게 아들이 죽었다고 기록을 하고 있지만, 막상 아들을 잃은 유다의 심정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일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이런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유다는 막내 셀라까지 잃을 까봐 며느리 다말을 자기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설상가상으로 자기 아내까지 죽임을 당합니다.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는 아버지를 떠난 뒤 자신의 삶을 꾸려나갑니다. 결혼도 하고, 자식을 낳고 잘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삶은 축복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아들이 엘과 오난이 죽고, 며느리는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고 사랑하는 아내 마저 죽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다는 자신마저 지키지 못하는 절망적인 순간까지 가게 됩니다.

 

유다는 친구였던 아둘람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에 양털을 깍으러 갔다가 자신의 정욕을 이기지 못하고, 창녀와 하룻밤을 지내게 됩니다.

 

유다의 무너지는 모습입니다.

아들을 잃고, 아내를 잃고 단란하고 아름다웠던 가정은 온데간데 없고, 창녀와 하룻밤을 지내는 비참한 신세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유다는 이렇게 비참한 탕자와 같은 모습으로 자신의 인생을 출발하게 되어 집니다.

 

죄를 품고 출발한 삶이었습니다. 회개하지 않는 삶이었기에 그의 인생은

죽음이 그 가정에 떠나지 않고, 슬픔과 한숨이 있는 삶으로 변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하나님의 역사는 여기서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유다를 변화시키시는가?

 

2. 하나님께서 환경을 통해 사람들을 통해 유다를 연단하십니다.

유다의 삶을 통해, 환경을 통해,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연단하십니다.

 

유다는 자식이 죽어나가고 사랑하는 아내가 죽는 모습들을 보면서 누구를 이해하냐 하면,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아버지 야곱은 4명의 아내와 12명의 아들을 거느리고 가정을 꾸려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다는 자기가 자식이 죽고, 아내가 죽는 고통을 격으면서 아버지 야곱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 라헬이 죽었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또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잃었을 때 마음이 어땠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유다는 그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사실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유다는 나중에 창녀인 줄 알았던 그 여자가 자기 며느리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사실은 친정에 쫓겨간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문이 났을 때 저런 못된 며느리가 있나? 당장 잡아와서 죽여버려야지! 하고 잡아 왔는데 사실 그 며느리와 하룻밤을 지낸 사람이 바로 자기였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8:26절에 보면

유다가 그것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유다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입니다.

이제까지는 내가 똑똑하고 내가 잘난 줄 알았는데, 내가 잘 난게 아니구나! 나보다 며느리가 더 옳았다! 이 때부터 유다는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유다는 이후에 아버지 야곱에게 돌아온 것을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42장에 보면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준 것처럼 7년의 풍년이 지나고 7년의 흉년이 시작되고, 2년쯤 되었을 때 온 땅에 양식이 바닥이 나게 됩니다.

이 때 야곱은 아들들을 애굽에 양식을 구하러 보내게 되는데 그 때 10명의 아들 중에 유다가 함께 가게 되어집니다.

 

유다는 아버지에게 돌아와 아버지의 힘이 되어주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때부터 유다는 11명의 형제 중에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유다를 연단하시기 시작합니다.

유다와 형제들이 애굽에 양식을 구하러 갔을 때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고 형들을 간첩이라고 몰아세웁니다. 그리고 시므온을 잡아놓고 돈은 양식자루에 넣어서 그냥 돌려보내게 됩니다.

 

그때 요셉의 형들이 주막에서 하룻밤을 머물 때 곡식자루에 돈이 그대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집니다. 그때 그 형들이 외치는 말이 있습니다.

 

42:28을 봅시다.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

 

유다는 꼼짝없이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애굽에서 간첩으로 몰려 죽게 되고, 양식을 사가지고 왔는데 돈이 그대로 자루에 들어있습니다. 까닥하면 양식은 훔친게 되는 것입니다. 이 무슨 일인가? 엄청난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왜 이러시나?

 

여러분 여러분도 인생가운데 이런 질문을 많이 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연이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왜 이런 일을 주셨을까? 거기에는 반드시 해답이 있을 줄 믿습니다.

 

유다는 환경을 통해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연단을 받게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연단을 통해 유다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연단하십니다.

 

유다는 돌아와서 두 번째 또 양식을 구하러 갑니다. 그때는 베냐민을 데리고 가게 됩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두 번째로 올 때 간첩이 아니라는 증거로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베냐민은 아버지 야곱이 제일 아끼는 아들입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지만 유다 나서서 아버지를 설득합니다.

아버지가 베냐민을 아끼는 것을 알겠지만 베냐민이 가지 않으면 우리 가족들이 다 죽습니다.

이 베냐민은 제가 반드시 데리고 오겠습니다. 목숨을 걸고 약속을 하면서 겨우 아버지 야곱을 설득해서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베냐민 때문에 결국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 친동생인 이 베냐민을 애굽에 남겨 두려고 베냐민의 곡식 자루에 은잔을 숨겨놓고 나중에 은잔이 발견 된자만 애굽에 남아 있으라고 명령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앞에 당했던 어려움보다 더 큰 고난이었습니다.

앞에서는 시므온이 잡혀있었지만, 이번에는 베냐민이 잡히면 집에 있는 아버지가 그 소식을 듣고 죽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것은 아버지를 두번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예전에 요셉도 자기가 팔아먹었는데, 이제 베냐민까지 죽으면, 더 이상 아버지를 볼 면목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환경과 사람들을 통해 유다를 연단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애굽의 국무총리 요셉을 누가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셨습니다. 이 요셉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유다를 단련하시고 연단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런 연단을 통해 유다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되어집니다.

유다는 이런 절박한 상황과 절망적인 상황 속에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악을 절발하신 것이라고 고백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44:16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이 유다의 죄가 무엇입니까? 동생을 팔아먹은 죄를 말합니다.

42:21절에보면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유다는 감당하지 못할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의 죄를 찾아내셨다고 고백합니다. 동생을 사랑하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동생을 종으로 팔아버렸습니다.

 

유다는 이런, 인생의 고통과 절망과, 어찌 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가운데 우리의 죄악을 적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발견 할 때 우리의 삶이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발견하고 깨달을 때 우리의 인생은 바뀌어지게 됩니다.

 

유다는 예전에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동생을 팔아먹고, 아버지를 속이고, 창녀와 놀아나는 탕자와 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악함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이렇게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연단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다는 이런 하나님을 통해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마음, 형제를 위해 희생하는 큰 사랑을 품는 사람으로 변화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유다는 예전의 유다가 아닙니다.

 

애굽의 국무총리 앞에서 자기의 형제들이 다 죽게 되었을 때 다른 형제들은 두려워 떨며 아무도 고개 조차 들 수 없는 상황에서 유다는 자기의 생명을 내어놓게 됩니다.

 

유다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함으로 사랑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유다는 요셉 앞에서 결단을 합니다.

가족들을 위해 아버지를 위해 동생들을 위해 자기 생명을 내어놓는 사랑의 결단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예전에 유다의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요셉은 유다에게 다른 것을 필요없고, 베냐민만 남겨놓고 가라고 제안합니다.

 

창세기 44:17절에 보면

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그런데 유다는 어떻게 합니까?

 

44:33절을 보겠습니다.

청컨대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한알의 밀알과 같은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유다는 사랑의 마음을 품게 된 것입니다.

예전에 요셉을 팔아먹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요셉 앞에서 요셉의 친동생인 베냐민을 위해,

자신이 종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유다를 이렇게 바꾸어놓았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요셉은 감동을 하게 됩니다. 예전에 자신을 팔아 먹었던 그 유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유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참지 않고, 자신의 요셉임을 밝히고,

형제들이 뜨거운 눈물로 상봉하게 되어집니다.

 

그리고 요셉이 이 모든 일의 정황을 정리하면서 고백을 합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을 합니다.

요셉을 종으로 팔리게 하고, 보디발의 집에서, 감옥 속에서, 연단하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여전히 유다를 연단히시는 분도 하나님이 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말합니다.

44:5절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앞서 보내셨나이다

7절에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여러분 여러분의 삶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즐거움 속에서, 또한 여러분의 고통과 고난과 절망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사람들을 통해, 또한 여러가지 환경을 통해 여러분의 죄를 적발하시고,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가실 것입니다.

언제까지 하시는줄 아십니까?

여러분이 바뀔 때까지, 변화될 때까지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를 연단하시는 그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꼈을 때,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자들로 바뀌어지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3. 마지막으로 끝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십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킨 유다는 절망의 삶에서 축복의 사람으로 바뀌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다는 처음에는 좋지 않게 출발한 인생이었지만, 점점 좋아지는 삶을 살게 되어집니다.

유다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하나님의 연단을 통해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 부모의 힘이 되어주는 사람으로 변합니다.

또한 형제들의 고통을 나누고 한 알의 밀알처럼 자신을 희생하고, 형제들을 끌어 않는 리더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믿음을 지키며, 변화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유다의 가문에 복을 주십니다.

 

이것은 아버지 야곱이 자식을 위해 기도하는, 축복기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을 만나고 바로왕을 만나고 고센땅에서 평안히 살게 되어지고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자식들을 불러놓고 한 사람씩 그 행한 대로 복을 빌어줍니다.

 

야곱의 축복이 유다의 삶과 그 후손들에게 그대로 임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49:8-12절까지 다른 형제들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게 됩니다.

8-10절까지만 읽겠습니다.

유다야 너는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참으로 유다는 고난의 삶을 살았지만 그 끝은 축복의 삶으로 끝이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유다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뜻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다는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아미나담은 나손을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세를 낳고 이새는 다윗왕을 낳게 됩니다.

 

이 다윗왕의 후손으로 인류의 구원자이시요,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게 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믿음의 사람, 축복의 사람은 태어나는게 아니라 만들어집니다.

처음에는 형편없는 인생으로 출발한 유다였지만, 그 삶의 여정가운데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할 때 믿음을 놓지 않을 때,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도 연약합니다. 우리의 옛모습과 우리의 옛 죄악 때문에 넘어지고, 때로는 절망의 자리에까지 이를 수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통해, 인생들을 통해 환경을 통해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손길들을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연단 하십니다.

 

우리의 환경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때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의 인생처럼 여러분들도 앞으로 점점 잘 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즐거움 속에서, 때로는 기가막히는 절망가운데서도, 고통과 고난 가운데서도, 그 속에서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고,

끝까지 믿음을 지킨, 유다의 가정과 후손이 모든 형제들 위에 복을 받고, 모든 형제들을 다스리는 복을 받았던 것처럼 여러분들의 삶과 가정에도 이런 은혜가 있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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