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자들에게 주시는 마지막 기회
요한계시록 9:1-21(신p.407) 찬송 579장/ 찬송 505장 20220508
오늘은 2022년 5월 두 번째 주로 어버이 날이면서 어버이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부모님의 대한 은혜와 사랑을 다시 한번 기억하고 감사하라는 의미에서 어버이주일로 지키게 됩니다.
원래 이 어버이 주일은 어머니의 날과 어머니 주일에서 시작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아버지는 늘 바깥일로 바쁘시고, 어머니가 아이들 육아를 하고 양육을 하다 보니 어머니의 수고와 섬김과 사랑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같이 섬기자고 해서 어버이 주일로 지키게 된 겁니다.
사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천륜이고 인간의 도리이지만 기념일로 지킨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이 어머니 주일도 1930년에 처음 구세군에서 제정을 했고, 우리 교단에서 1960년이 되어서야 어버이 주일을 지키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부모님을 섬기는 법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B.C 1400년에 지금부터 3,400년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규례를 주시면,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은 부모도 공경해야 한다는 법을 주셨습니다.
출애굽기 20:12절 말씀에 보시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고, 신명기 6:15절에는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는 말은 ‘카베드’무겁게 여려라! 는 뜻입니다.
잠언서 23:25절에는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부모(어미)를 기쁘게 하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성도들에게 부모를 섬기는 법을 주셨고, 또 신약의 사도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 하나님의 법을 가르치게 됩니다.
그 중에 제일 잘 설명을 한 구절이 사도 바울이 기록한 에베소서 6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에베소서 6:1-3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아래서 듣다, 경청하다) 이것이 옳으니라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값지다,귀하게 여기다)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사도들은 성도들에게 설명을 합니다.
자녀 된 자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된다! 이게 옳다(의로운 것이다), 이게 상식이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물론 이 부모님은 믿음있는 부모님과 적어도 상식적인 부모님을 말씀 하는 겁니다. 악을 행하는 부모를 순종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라!” 하나님의 약속에 있는 첫 계명이기 때문에, 이 첫 계명을 지킬 때 결국은 네가 잘되고 이 땅에서 장수하게 된다! 오랫동안 복을 받게 된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이것을 법에 기록을 하고, 기념일을 정해서 지키는 것일까요?
그만큼 이 사회가 이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모른척하고 그냥 지나가니까, 이런 법을 만들어서 지키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앞으로 더 말세가 되면, 이런 기준도 다 무너지게 될 겁니다.
이미 부부가 무너지고, 가정도 무너지고, 부모 공경도 옛 말처럼 되어지고 있습니다. 가족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후서 3:2절 말씀에 보시면 이미 바울이 예언을 해 놓았습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때,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 하지도 않게 될 것이라”고 기록을 해 놓았습니다.
이 말은 마지막 때가 되면 반드시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가정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고, 그 가정에 생명을 선물로 주신 분도 하나님 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부모는 공경해야 한다는 법을 주셨고, 이 법은 주님 나라 갈 때까지 변하지 않는 법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법을 지킬 때 이 땅에 있는 동안 잘 되고,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과 이런 이 말씀의 기준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것입니다.
이런 말씀의 기준이 내 마음에 있어야, 회개할 수도 있고, 잘못된 길을 가도 돌아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기준이 없다면 뭐가 옳은지도 모르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이라는 시간이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내가 뭔가 이루어 놓고, 뭔가 좋은 환경이 되면, 남 부럽지 않게 되면 부모님께 잘 해 드려야지! 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면 부모님은 우리를 기다려 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겸손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이 말씀을 마음에 묵상함으로 순종할 때, 좋은 부모가 되시고, 좋은 자녀가 되어서,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복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번 어버이 주일을 맞아 다시 한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있는 지를 점검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들을 사랑하게 될 때, 말씀에 기록된 복을 받아 누리는 대구샤론교회 성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불신자들을 향한 마지막 기회
그리고 오늘도 우리가 함께 읽은 이 요한계시록 9장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우리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이 요한계시록 9장에는 앞서 요한계시록 8장에서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를 통해 경고했던 세 개의 나팔 중에 두 개의 나팔이 불려지게 될 때 불신자들에게 임하는 재앙과 심판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마지막 심판을 앞두고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에게 주시는 마지막 회개의 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요한계시록의 전체적인 구조를 한번 더 확인을 하고 오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일곱 인의 시대가 지나가고 나면, 일곱 나팔이 나오게 되는데, 이 일곱 나팔 중에 네 개의 나팔이 불려지면 자연과 천체에 큰 재난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세 개의 나팔을 강조하는 삽입구절이 나오고 남아 있는 세 개의 나팔은 화가 준비가 되어 있다고 광고를 하게 됩니다.
독수리가 날아 다니면서 화, 화, 화가 있게 될 것이라! 남아 있는 세 개의 나팔은 지금까지 보다 더 큰 화가 남아 있다! 라고 광고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화가 누구에게 임하는 화인가?
마지막 시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주시는 화! 라는 겁니다. 오늘 이게 핵심 입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께서 불신자들에게 어떻게 재앙을 내리시는 지를 한 번 보겠습니다.
여러분 요한계시록 9:1절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무저갱에 갇혀 있는 귀신들을 풀어 줍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기 보시면,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이 나오고 이 별이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기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은 보통“타락한 천사를 상징합니다”이 이미지는 이사야서 14:12절 말씀에서 나온 것입니다. 거기 보면 “땅에 떨어진 별”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14:12절 말씀에 보시면, 사탄을 아침의 아들 계명성(빛을 여는 밝은 별, 샛별, 금성이라는 뜻) 이라, 이 샛별 처럼 빛나던 사탄이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교만하게 될 때 땅에 떨어져서, 스올, 땅 밑에 있는 구덩이에 떨어짐을 당하게 되었다! 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별은 타락한 천사를 상징을 하고, 또 이 천사가 “무저갱의 열쇄를 받게 되었다”는 것은 열쇠를 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여기 열쇠를 주신 분이 있다는 것은 제한 된 사역이라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리고 이 무저갱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프흐레알=구덩이, 아뷔소스=밑이 없는, 밑이 없는 구덩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밑이 없는 구덩이를 번역할 때 “무(없을 무), 저(밑 저), 갱(구덩이 갱)”말 그대로 밑이 없는 구덩이, 무저갱 이라고 번역을 한 것입니다.
무저갱이라는 말은 밑이 없는 구덩이 라는 말입니다.
이 밑이 없는 구덩이, 무저갱은 성경에“악한 영들을 심판 때까지 가두어 놓은 감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군대 귀신을 내 쫓을 때 이 귀신들이 언급을 합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8장 말씀에 보시면, 거라사인의 지방에 군대 귀신들린 청년을 예수님께서 고치실 때, 그 귀신들이 예수님께 호소하는 장면을 보면,
이“무저갱이라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 군대 귀신들에게 그 청년에게 나오라고 할 때, 그 군대 귀신이 “제발 저 무저갱에 들어가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이 무저갱이라는 곳이 “악한 영들을 심판 때까지 가두어 두는 곳”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8:30-31절 말씀에 보시면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무저갱이라는 곳은 물리적인 장소라기 보다는 귀신들이나 마귀가 갇혀 있는 감옥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곳에도 이와 비슷한 표현들이 기록이 되어 있는데요,
베드로후서 2:4절 말씀에도 보시면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는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유다서 1:6절 말씀에도 보시면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라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흑암에 가두어”큰 날의 심판까지 결박해 둔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결국 흑암, 구덩이, 밑이 없는 구덩이 다 같은 곳이라고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심판 때까지 지나치게 악을 행하는 귀신들을 가두어 두는 곳이 바로 “무저갱이라는 감옥”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이 타락한 천사에게 하나님께서 이 무저갱의 열쇠를 주어서 이 악한 귀신들을 잠시 동안 내어놓게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 귀신들이 무저갱에서 나와서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제안된 사역을 하는데 그게 뭐냐? 불신자들을 괴롭게 하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사실 이게 첫 번째 화 입니다.
그리고 그 무저갱에서 나온 귀신들의 모양을 설명하는데, 그 모양이 마치 구약성경에 나오는 메뚜기처럼 때를 지어 다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9:2-3절까지 말씀에 보시면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와 그 구멍의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그들이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엑수시아)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기 악한 귀신들을 “황충”이라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이 황충은 “메뚜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메뚜기도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을 내릴 때 나왔던 그런 이미지, 그 그림에서 가져 온 것입니다.
황충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애굽 사람들의 농작물을 다 갉아먹은 것처럼 마지막 때 불신자들을 괴롭히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마치 “전갈같이 치명적인 능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황충들을 나오게 한 목적이 뭐냐? 이게 중요합니다.
4절 말씀에 잘 보시면,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황충들은 원래 농작물들을 먹어 치워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황충들에게 “풀이나 수목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는 자들을 해라”고 명령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말은 요한계시록 7장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의 이마에 인을 표시해서 구별했는데, 여기 인을 받지 않는 자들이라는 것은 땅에 환난이 일어나고 재난이 일어나는 극한 상화 속에서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거부했던 사람들 즉 불신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황충들은 불신자들에게 고통을 주어서 괴롭게 하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황충, 정확하게 이야기 하면, 악한 귀신들이 불신자들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데, 그 기간이 5절 말씀에 보시면, 다섯 달 동안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것은 통상적으로 팔레스틴 지방에 메뚜기가 활동하는 기간이라고 합니다.
4월에서 8월까지 한 다섯 달 동안 활동하는 것을 근거로 해서 말씀을 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굳이 악한 귀신들을 통해 불신자들을 괴롭게 하는 이유는 뭘까?
두 가지로 해석을 합니다.
하나는 이 불신자들은 더 이상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런 고통이 주어져도 절대로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다고 보는 분들이 있고,
또 하나는 그래도 이런 죽을 고통이 생기면 그 중에서 하나라도 회개하는 자가 있지 않을까? 마지막 기회를 주시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는 후자로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마지막으로 기회는 주시지 않을까? 말로 해도 안되고, 재앙으로도 안되면 이제 큰 고통을 통해서라도 회개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해석을 합니다. 어째든 여러분도 하나를 선택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6절 말씀에 보시면, 이런 엄청난 고통이 주어지지만 절대로 죽지 못 합니다.
6절 말씀에“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제한 된 기간 동안이지만 극심한 고통을 더하셔서 이런 악한 자들이라도 이제 돌아와라! 마지막까지 한 사람이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이게 진짜 마지막 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시는 겁니다.
말씀을 전해도 안 듣고, 지구 전체에 재앙이 일어나고 엄청난 재난이 벌어져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몸에 죽을 고통을 더 하심으로 한 사람이라도 돌아오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9절 말씀에 보시면,
종말의 심판이 더딘 이유은 “하나님이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 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7절부터는 이렇게 고통을 주는 황충들의 특징을 설명을 합니다.
황충의 모양은 전쟁을 준비하는 말 같다고 말씀을 합니다.
“강력한 힘”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또 머리에 금 같은 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다는 것은 가짜 승리를 가지고 속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다는 것은 “사람처럼 지혜롭게 일한다는 것”이고,
8절 말씀에는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것이고”
또 사자의 이빨을 가졌다는 것은 “강력한 포식자와 같이 다 먹어 치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9절 말씀에는 철 호심경, 갑옷으로 무장을 한 것은 “자기 방어도 철저하게 한다는 뜻이고”
날개 소리가 병거와 많은 말들이 달려가는 소리가 난다는 것은 “강력한 군대와 같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를 합니다.
그리고 10절 말씀에는 전갈 같은 꼬리를 가진 것은 그 영향력이 전갈같이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이 꼬리로 5달 동안 해할 권세를 가졌다는 것은 불신자들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악한 영들이 세상의 임금처럼, 세상의 왕들처럼 돈과 권력과 음란과 쾌락으로 사람들을 휘어 잡고 사람들을 망가트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황충들, 귀신의 영들에게는 왕이 있는데, 무저갱의 사자 즉 히브리어 “아바돈” 헬라어로는 “아볼루온”이라고 합니다.
무저갱의 사자라는 말은 “무저갱의 천사”라는 말입니다. 사탄을 말하는 것이고, 아바돈이나 아볼루온 다 “파괴자라는 뜻으로 마귀, 사탄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이 무저갱에서 나오는 황충들은 악한 귀신들의 영을 말하는 것이고, 이 사탄이 왕이 되어서 악한 귀신들과 함께 강력한 능력으로 결국 불신자들에게 죽을 고통을 준다는 것입니다.
어떤 고통을 주는지, 무슨 고통을 주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죽기를 구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고통이라 고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탄에게 무저갱의 열쇠를 주어 불신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그래도 이 악한 자들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깨닫고, 돌아 올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끝까지 돌아오지 돌아오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더 이상 돌아올 사람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이 마귀와 함께 이 불신자들을 심판을 하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신자들의 고통받는 제한 된 기간이 지나가는 것을 세 개의 화 중에서 첫 번째 화가 지나갔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12절 말씀에 보시면
“첫째 화가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불신자들에게 임하는 극심한 고통의 기간을 첫째 화 라고 성경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13절 말씀에, 쉬지 않고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게 됩니다.
13절 말씀에 보시면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 제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둘째 화의 시작입니다.
여기에 하나님 앞 “금 제단”은 금 향단 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금 향단 뿔에서 소리가 났다는 것은, 지난 번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이런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도록,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도록 기도할 때 이런 일들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14절 말씀에 보시면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유브라데 강에 있는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게 되니까 사람 1/3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군대들이 나오게 되었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기 결박된 천사는 요한계시록 7:1절에 땅 네 모퉁이에 서서 바람을 붙들고 있는 네 천사와 같은 천사라고 봅니다.
이 네 천사를 놓아 주니까, 사람들을 죽일 군대가 나오게 되는데,
이 군대는 16절 말씀에 보시면 “마병대들, 말로 된 군대들이고 그 숫자가 이만만이나 됩니다” 이만만이면 2억이나 되는 숫자입니다.
이 마병대가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사람 1/3을 죽이게 된다는 겁니다”
이것은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죽을 고통을 주어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을 때, 이제 남아 있는 사람들의 1/3이나 되는 사람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 1/3이라는 개념은 죽는 사람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직 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20절 말씀에 보시면, 이 사람들은 “아무도 회개 하지 않는다고 말씀을 합니다.” 결국 이 남은 자들은 확실하게 불신자들이라는 겁니다.
20절 말씀에 보시면,“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다’는 말을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
귀신들을 믿고, 절하고 섬기고, 금, 은, 동, 나무, 돌로 된 우상을 섬기고 살인 복술(마술이나 약을 먹는 것), 음행, 도둑질을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면서 절대로 회개하지 않는 다는 겁니다.
여러분 결국 이 모습이 마지막 시대 불신자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았고, 마지막에 이런 악한 귀신들을 통해 죽을 고통을 주어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런 불신자들은 심판하실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불신자들의 마지막 심판의 모습을 기록해 놓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불신자들이라도 끝까지 사랑하시고, 기다리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기록 해 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 불신자들은 돌아오라! 돌아오라! 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에 보시면 불신자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들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이사야서 55:7절 말씀에 보시면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에스겔서 18:23절에 말씀에도 보시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 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을 합니다.
에스겔서 18:31-32절까지 말씀에도“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악한 자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왜 자꾸 죽으려고 하느냐? 돌아와서 살아라! 라고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도 예수님께서 말씀을 합니다. 누가복음 15:7절 말씀에 보시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 기뻐하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누가복음 15장 말씀에 보시면, 죄인이라도 돌아오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비유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99마리의 양이 있어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 있으면 찾아 다니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99마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 보다 더 기뻐하신다! 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열 드라크마를 가진 여인이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렸을 때,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는 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한 드라크마를 찾게 되어 지면,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리고 기뻐한다! 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를 버리고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다 잃어 버리고 거지가 되어 돌아와도 돌아오기만 하면,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고, 잔치를 베푸는 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이고 하나님이 마음이라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요한계시록 9장에는요, 이렇게 불신자들이 돌아오기를 끝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기록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돌아오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 밖 없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공의 입니다.
요한계시록 9:20절 말씀에 말씀하는 것처럼 “귀신들을 섬기고, 금, 은, 동, 나무, 돌로 만든 우상에게 절하고,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하는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결국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회개 하지 않는 자들과는 대조적으로, 회개하는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기록을 하게 되는데요, 그 사람들이 누구냐?
“바로 유대인들이 마지막으로 회개하고 돌아오게 됩니다”
여러분 그 내용은 요한계시록 11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14절 말씀에 보시면 “둘째 화가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와가 속히 이르는도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여기까지 둘째 화의 단락입니다. 그 사이에 설명하는 요한계시록 10장이 삽입 구절이 들어가 있는 겁니다.
이 내용은 11장에 가서 다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요한계시록 9장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을 수 있기를 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고, 끝까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끝까지 참으시지만, 결국 회개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가 심판하실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면, 다시는 이런 죄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끝까지 믿음의 길을 달려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6:11절 말씀에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라고 말씀을 합니다.
요한계시록 2:26절 말씀에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라고 말씀을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도 주님 나라에 갈 때가지 끝까지 이 믿음을 붙드시고, 늘 자신을 돌아보며, 말씀 앞에 엎드리는 삶, 성령 충만한 삶,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의 이런 영적인 삶의 모습이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