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강릉시 홍제동 지명유래

작성자無實无虛|작성시간06.02.15|조회수845 목록 댓글 3
홍제동 지명유래


흙베리
강릉교도소에서 영동대학 정문까지의 남대천둔치쪽 낭떨어지를 말한다


흙베리소 예전에 남대천이 회산쪽으로 흐를 때 흙베리 앞에 있던 못으로 주변에 삼척심씨의 큰 기와집 들이 있었다. 강릉지방에 큰비가 와서 포락이 나 남대천 물줄기는 못을 덮치니 못이 묻혀버렸다. 소에 살던 이무기가
기와지붕에 올라서서 크게 울부짓다 용이 되어 승천하였다고 한다.


성하(城下마을 영동대학 아랫골의 마을로 명주성의 아랫마을이란 뜻이다.


송골 [松谷]
흙베리 북쪽 마을로 장도산과 강릉교도소 사이골로 이 골에 사는 최근무(崔根茂1933생) 씨 집이름이 송골집이다.



갓바위골
카페'아름다운풍경' 있는 곳에서 산골짜기로 산중턱에 삿갓모양의 큰바위가 있다. 갓바위는 갓버섯, 남성의 성기와 비슷하여 예전에는 자식을 낳아 줄것을 기도하는 기자석(祈子石)으로 숭베되었다.



원두(院頭)골
강릉시 상수도사업소로 이어지는 골로 지금 산마루식당이 있는 골. 옛날 홍제원이 있는 위골이란 뜻이다.



동녘골
강릉교도소가 있는 골. 공제마을의 동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공제(公堤)
흙베리 아래부터 강릉경찰서 남문파출소 위쪽을 말한다. 조선 선조때 강릉부사 김첨경(金添慶,강릉부사
1561.5∼1565.5)이 남대천이 자주 범람하여 들을 메워 농사를 지을수 없게 되므로 넘치는 물을 막기 위해
남대천 제방을 쌓아서 마을을 잘살게 만들었다. 김공(金公,김첨경강릉부사를 높여 부른말)이 만든 제방이라 하여 공제라 하였다.



버덩마을
영동자동차학원 주변마을이 널다란 벌판으로 되어있고 버덩에 있는 마을이란 뜻



윗공제
영동고속도로 교량 위쪽마을에서부터 흙베리 아래쪽 일대를 말한다.


아랫공제
영동고속도로 교량 아래쪽으로 지금 홍제동사무소가 있는 마을이다.


행(杏)나무 신일가스충전소 위쪽이되며 그린포도원이 있는 골. 골입구 집옆에 큰 은행나무가 있었고 그 집은 은행나무 집이라 불렀으며, 골짜기는 행나무골이라 불렀다.



천고봉(天鼓峯)
강릉시청 뒷산이며 산형국이 북처럼 생겼다하여 천고봉이라 부른다.


천고봉마을
신일주유소 뒤 산마을로 여덟집이 살고 있으며 강릉최씨 성서파의 집성마을이다.


채약(採藥)골
강릉시청이 위치한 골로 예전에는 이골에 약초가 많이 자생하였다.
고속버스터미널이 옮겨오기전 이골에 포광(浦廣)이 있었는데 이 포광위에서 1950년 9월 24일 3학도 학생들이 희생되었다.



산제(山祭)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강릉시 상수도사업소 서북 구렁으로 청룡암과 홍제암 중간골이다. 이골 김상기씨의 논이 있는곳에 산제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새냉이[山篁]골
청송연립에서 강릉의료원까지의 골로 발락고개 위쪽에 서낭당이 있었고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1929년에는 32가구 184명이 살았다.



공기등(拱旗登)
명주성 서쪽에서 윗맴소 국사여서낭 정씨 묘가 있는 곳을 지나 천고봉, 삼우아파트 뒷산까지 연결되는
능선이다. 예전 측량할 때 이 능선에 기를 꽂았다 하여 생긴이름이다.



공기동(公器洞)
삼익아파트 뒤쪽 마을로 고려27대 충숙왕때 부마 최문한이 강릉에 부임하여 이곳에 주기부(酒器府)를 두면서, 부이름을 공기동이라 했다. 강릉최씨 대종회에서 2000년 11월에 종암재사를 짓고 조상들의 위폐를 모시는 사당을 지었으며 3세 최윤, 4세 최자점의 묘소가 있다.



싸이렝터
1950∼60년대 대우 푸르지오아파트 예정지가 높은 산일 때 정오(낮12시)를 알리는 긴 경적을 울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발락고개
강릉초등학교에서 종합터미널으로 넘는 고개로 구 무선국 앞고개이다. 전설에 의하면 용지각에서 온 용마가 용이되어 이 고개를 넘을 때 힘이 들어 발락발락 거리면서 겨우 넘었다 하여 발락고개로 불리워졌고, 고개 아래 비름돌에서 비름풀을 먹고 강릉대학 뒷산에서 소리를 질렀다 하여 강릉대학 뒷산은 마명산(馬鳴山) 이라하였다. 마명산은 명당으로 알려졌으며 강릉 최씨시조 최문한의 묘가 있다.



비름돌
발락고개 서쪽 농업기반조성공사가 있는 주변으로 발락고개를 넘어온 용마가 이곳에 와서 비름풀을 먹었다 한다.



북바우골
강릉 종합터미날에서 공기동을 지나 강릉문화원 앞쪽 위촌리로 가는 길목에 있는 바위가 큰 북처럼 생겼다하여 붙인 이름이다. 교동택지가 개발되면서 1996년도에 지금 공기동 앞 밭가로 옮겨 놓았다.



골 말
강릉초등학교 북쪽골로 골을 넘으면 교동 솔거리가 나온다. 골안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풍수를 하는 지사들은 이골 위쪽을 옥녀금반형(玉女金槃形) 명당이 있다 한다.



빙허루(憑虛樓)
강릉여자중학교 뒤쪽 토성로쪽에 있던 문. 지금은 없다


맴소[蟬淵]
원래의 위치는 맴소서낭당 바로 앞에 서낭당쪽 소나무와 건너편 소나무가 맞다은 곳의 진벌이었는데 소가 생겨 맴소라 하였고 산의 지형은 매미가 허물을 벗는 형국인 탈선형(脫蟬形)이라 한다. 여름이면 맴소 주변 에는 매미소리로 가득하였고 지금의 맴소는 약 10m 떨어져 있다.



윗맴소[上蟬淵]
강릉교도소 관사, 상선연노인정, 국사여성황 정씨묘가 있는 마을을 말한다. 윗맴소마을 남쪽에는 옛날 홍제원이 있었다.



개실골
형제막국수 윗쪽이며 장도미골 아랫골로 여덟세대가 산다. 골 막바지를 넘으면 성산면 위촌리로 중원자재 창고가 있는 곳과 연결된다.



장도미골
지금 맴소가 있는 골로 농경지가 계속되고 골막다른 곳에 김동근씨 한 가구만 살고 있다.



비똘배기
홍제동사무소 위쪽 영동고속국도 교량지점에 비석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비똘바위라 하였다. 1975년 영동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없어졌다.



비돌[碑石]
1950년 6월25일 북괴가 불법남침한지 2달이 지나서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탈환되자 남침했던 북한 잔류군이 무리와 인원을 정비하여 강릉을 칠때 홍제동에 사는 조국수호결사대 학생과 비똘배기 앞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그때 훈련되지 않은 학생들과 마을 청년들이 강릉수호를 위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그 자리에 마을 주민 누군가 비를 돌로 꽂아 놓았는데, 그 비를 비똘이라 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감재갈그 | 작성시간 06.09.16 잘 봤쑤야!스크랩해 가우야!
  • 작성자심술 | 작성시간 08.11.27 참 뭐이 모르는 이름도 많네요. 우리친구들한테 알코주러떠갑니다.
  • 작성자깔깔이 | 작성시간 10.12.27 흙베리소는 용강소라했는데....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