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수필작가
서경희
│대표 작품│
머플러 휘날리며 외 4편
서 경 희
머플러 휘날리며 바람 부는 외출에서 돌아온 날 바람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오래 전 아는 사람으로부터 머플러 하나를 선물 받았다. 포장을 푸는 순간 고마운 마음은 잠시, 어쩌면 그리 내 마음을 몰라주는지 망설임 없이 서랍 속에 던져 두었다. 당연히 내 옷 어디에도 어울리지 않을 그것이 ‘잊어버린 그대’가 되어 장롱 속에서 고독한 몇 년을 보낼 때도 나는 눈길 한 번 준 적이 없다.
그런데 무심코 오늘 그것이 눈에 와 닿아 슬쩍 외출복에 맞추어 보던 나는 순간 반짝 별빛을 느꼈다. 평범하던 나들이 차림새가 갑자기 화사한 봄빛으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불현듯 봄날이 다가와 벚꽃이 막 피어나는 듯했다. 뜻밖의 즐거운 마음으로 외출을 했는데 만난 사람마다 머플러가 예쁘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어리둥절하다. 그리도 예쁜 나의 것을 내가 정녕 몰라보았다니. 아니다, 사실 그 머플러는 그다지 예쁜 것이 아니고 내 의상도 평범했다. 그런데 그 두 개의 평범한 옷과 머플러가 멋지게 어우러져 고아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아 놀라워라, 차마 버리지는 못했지만 영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주인을 잘 만나 이렇게 놀라운 비상을 하다니.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다시 보이는 젊음과 사랑처럼 뜻밖에 다가온 이 감동은 나에게 이 세상을 다시 보라 일러 주었다. 이미 있었던 옛날의 젊음이 이제야 아름답듯, 이제야 나는 이미 있었던 세상의 한 진실을 알아낸 듯하다. 서로 어울려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들이 부지기수라 해도, 진정 그 높은 뜻을 이제야 다시 헤아리게 되는구나.
궁합(宮合)이 맞았던가. 혼담에서 남녀의 사주를 오행에 맞춰 길흉을 헤아려 보는 것이 궁합이다. 그러니 그 속에는 아무도 모르는 천지 기밀의 조화로운 소망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런 조화의 운기가 오늘 내가 입은 한 벌의 옷에도 작용하여 그처럼 산뜻한 신세계가 탄생되었다고, 지금 나는 작은 바늘을 큰 몽둥이로 과장하고 있지만, 가장 아름다운 우리말이라고 하는 그 ‘어울림’을 직접 아름답게 경험한 기쁨이 크다.
우리의 삶에서 정말 중요한 일은 바로 이렇게 조화(調和)를 잘 맞추어 가는 일일 것이다. 있던 것도 없어지고 없던 것도 다시 살아나는 이 신통술의 세계가 있어 세상에는 한가로움이라는 것도 있는 것이다.
옛 문장가는 조화를 일러 ‘국물 맛을 맞추는 일’과 같다 했는데, 은근한 깊이의 국물 맛을 절로 내는 말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존재라도 혼자서는 국물 맛을 우릴 수 없다. 반드시 함께 어울려야 그 맛은 난다. 서로 어울려 잘 우러난 국물 맛을 내는 그 세계에서 사람들은 희망과 겸손을 배운다. “말똥구리는 제가 굴리는 말똥을 사랑하므로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고, 용 또한 자기에게 여의주가 있다 하여 말똥구리를 비웃지 않는다.”
우리의 선조가 일찍이 이렇게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이 세상 모든 존재는 각자 본디부터의 고유한 빛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말똥구리가 함부로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또 용이 말똥구리를 비웃지 않듯, 이 세상에 값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 잘 맞춘 국물 맛은 말똥구리와 용이 서로 부러워하거나 비웃지 않으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그런 것이다.
나를 업신여기지 말라.
매정히 눈길 한 번 준 적 없던 그 쓸모없던 나의 머플러가 이제 우아한 모습으로 용기 있게 부르짖는다. 바람에 나부끼는 가냘픈 머플러 한 장이 내게 살아 있는 숭엄한 실존의 진리를 가르친다.
주위를 둘러본다. 내 주위의 무엇과 무엇이 어울리면 환한 빛이 날까? 무엇과 무엇이 어울리면 천하 통일의 새 세상이 열릴까?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라도 주인을 잘 만나면 모두 영웅호걸이 되는 것을. 그런데 그 주인은 어디에 있는가? 잘 보면 곳곳에 있다. 안목이 말을 해 준다. 서로 알아주는 사랑의 안목이 있어야 무명의 용사가 영웅이 될 것이다.
내 장롱 속 머플러가 존재의 빛을 찾아 오늘의 영웅이 될 때까지 수년의 세월이 흘렀다. 더디 알아본 나의 무능이 미안하나, 그래도 사랑의 연이 있었던 거다.
머플러가 휘날리면 휘파람 소리가 난다.
머플러야 본시 따뜻함보다 싱그러움이다. 입은 옷과의 어울림이 절대적 생명이다. 잘 맞춘 머플러 하나는 고목에서 노래하는 황홀한 새소리와 같다. 머플러는 또한 삶의 귀여운 애교 같은 것이다. 애교는 잘못 부리면 추물이다. 오늘 내 머플러가 보여 준 눈부신 애교는 오랜 나의 침묵을 봄눈처럼 녹여 버렸다.
머플러 휘날리며 경쾌한 삶의 리듬을 듣는다.
배반의 사랑
어이할 거나 또 사랑에 빠지고 말았네.
올해도 어김없이 나는 첫사랑을 배반하고 두 번째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어떻게 고백해야 할까? 내 이 변함없는 배반의 사랑을. 사랑이란 원래 막무가내로 쳐들어오는 것이니 나인들 어쩔 수가 없다.
여름이다.
해마다 똑같이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계절이 바뀌는 이 길목에 서서 나는 또다시 열에 들뜨고 있다. 남들은 더운 여름을 싫다 하지만 나는 뜨거운 여름의 그늘에 앉아 사랑의 흥분에 빠진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온통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이 여름의 너울은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결국 나를 유혹에 빠뜨리고 마는 쾌남아의 정열이다.
지난봄, 나는 봄에게 맹세했다.
세상에 어찌 이리도 아름다운 모습이 내게로 오는가. 누가 뭐래도 나는 이 봄의 아름다움을 천하에 알리는 한 마리 호랑나비라고, 그 순정의 진실을 의심 없이 드날렸다. 화사하게 웃음 짓는 봄 처녀의 어여쁨은 내가 전에 다른 계절에게 가졌던 모든 애정을 송두리째 아닌 것으로 만들고 말았다. 감격하고 소리쳤다. 오직 내 사랑 그대뿐, 결단코 이 사랑은 변치 않으리라. 봄날의 햇살은 그렇게 내 가면의 옷을 유감없이 벗게 했다. 이제야 나잇값을 한다고 느긋해 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불과 몇 달 후인 지금, 나는 또 흔들리고 있다. 희미해져 가는 옛사랑의 맹세 앞에 새로 찾아온 이 초록의 애인은 또 다른 매력과 사랑의 감정을 불끈 솟아나게 한다. 푸른 물이 뚝뚝 듣는 초록의 군무를 보면 내 정수리에 찬물이 쏟아진다.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나는 통째로 그 초록 웅덩이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세상에 이 여름만 한 계절이 없으니 진정 당신의 매력을 사랑한다고 홀랑 고백하고 말았다.
그런데 나는 또 몇 달 후면 배반의 칼을 뺄 것이다.
가을이라는 천하제일의 현숙한 아름다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애인에게 눈물 흘리며 사랑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을 만난 후 나는 나의 헛된 무게를 괴로워하노라, 이제 가진 것 모두를 내려놓고 홀연히 그대를 따라 가벼운 잎으로 흩날리겠노라.
그러다 또 몇 달 후, 겨울이라는 엄숙한 철학도에게 내 마음은 다시 뺏길 것이다. 고요히 갈아입은 두꺼운 옷 속으로 진중히 내일을 가다듬는 신실한 그 청년에게 태연히 사랑 고백을 하고 말 것이다.
나는 늘 이랬다.
해마다 줏대 없이 네 번의 사랑을 번갈아 했다. 50년을 그렇게 헤맸다. 이것을 보면 이것이 좋고 저것을 보면 저것이 좋아, 나도 모르는 내 심중이 어디에 있는지 그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떠밀리기만 했다. 그러나 나를 떠다민 그 대상은 오직 ‘자연’이라는 당신이니, 나를 패륜아로 만든 이 아름다운 범인을 누가 힐난하겠는가!
그래서 다시 다잡는다. 더 이상 나의 오락가락에 대해 번민하지 말 것을. 꼭 하나만을 사랑해야 된다는 사랑의 법칙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런 강박관념은 미개인이나 가지는 것이다. 사랑하고 싶으면 마음껏 사랑하라.
나의 사랑을 시험하듯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명의 꽃미남은 변함없이 나에게 사랑의 헌화를 할 것이다.
올챙이와 나팔꽃
태어나자마자 인간의 손에서 자란 오소리가 성장한 후에는 야생으로 돌아갔다.
평생 ‘인간행태학’을 연구한 어느 학자가 동물의 선천적 특성에 대해 밝힌 한 대목이다.
이 글을 어디에선가 읽고 있는데 엉뚱하게도 나의 뇌리를 ‘올챙이’와 ‘나팔꽃’이라는 두 단어가 탁 때렸다. 불현듯 이어진 그 연결 고리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오소리가 자기도 모르게 돌아간 그 ‘야생’의 자리에 나의 올챙이와 나팔꽃이 대신 자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 올챙이와 나팔꽃은 나도 모르게 내가 가끔씩 돌아가는 내 유년의 야생 들판인 것이다.
내가 때때로 ‘그건 참 다행스런 일이었어.’라고 생각하는 일 중의 하나가 내가 태어나서 자란 유년의 뜰에 대한 행복한 기억이다. 누구에겐들 유년이 없을까마는, 나는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 도시의 한 변두리 마을이었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스럽고 자랑스럽게 여겨지는 것이다.
대구시 산격동, 그곳은 행정 구역으로는 대도시 대구이지만 실제 분위기는 순수한 시골 마을이었다. 달성 서씨 집성촌이기도 한 그 서당골 마을에서 나는 그야말로 ‘나도 모르게’ 자연의 영양분을 충실히 섭취하며 튼튼한 뿌리를 키울 수 있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은 아니지만 야트막한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한 그 마을은 내가 가끔씩 나도 모르게 오소리가 되어 돌아가는 곳이다.
눈이 왔어요. 지붕 위에도 소복소복, 장독대에도 소복소복…….
그때는 눈이 참 많이도 왔다. 그 하얗고 소복하던 겨울이 끝나면 파릇파릇 새싹 돋는 봄이 정직하게도 달려왔다. 그 파릇한 봄날이면 은근히 열 올릴 일이 나를 꼭 기다리고 있었는데, ‘올챙이 잡기’였다.
길 앞으로 난 신작로를 따라 낮은 등성이를 넘으면 산 동네에 작은 못 하나가 있었다. 지금은 높다란 아파트가 그날의 촉촉함을 다 묻어 버렸다. 그 못가에서 바라본 별보다 많은 올챙이들의 군무는 어린 나에게 너무나 신비스러웠다. 볼록한 배와 앙증스런 꼬리로 봄바람처럼 하늘거리던 그 예쁜 것들을 청정 물가에 서서 바라보며 나는 홀딱홀딱 반하고 있었다.
올챙이는 올챙이끼리 통하는 것일까.
뭐 땀시(무엇 때문에) 올챙이가 그토록 좋았을까, 다시금 싱그럽다. 내 봄날의 바람기를 다스려 주었던 그 올챙이를 더러 그릇에 담아 집에 가져오기도 했다. 집에까지 따라온 나의 올챙이는 동네 또래들의 부러운 구경거리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못내 올챙이한테 미안한 일이 있다.
그릇에 담아 산길을 걷다 무겁고 귀찮아서 가끔 쏟아 버린 적이 있었다. 맨땅에서 파닥거리며 괴로워하던 그 올챙이의 모습은 지금도 나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나를 원망하였을 어린 올챙이, 내 봄기운에 도취되었다가 나는 살생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그런 기운에서 벗어날 무렵 우리 집 앞마당에서는 채송화며 나팔꽃이 호랑나비를 유혹하기 시작한다. 여름이 온 것이다.
‘왜 이제야 일어났니? 내가 여태 너를 기다리고 있었잖아.’
아침에 눈을 떠서 밖을 보면 언제나 나보다 먼저 일어나 뚜따뚜따 나팔 불고 있던 나팔꽃. 나는 또 그 나팔꽃에 이유 없이 매료되고 있었다. 무턱대고 좋아하고 있었다. 좋아한다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그것이 내 안에 와 있는 것이니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냥 그 나팔꽃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기쁨과 희망에 나부끼곤 했다.
자연에 대한 향수가 없이는 큰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큰일을 할 사람은 자연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문학도 분명히 큰일이다. 문학은 자연과 인생을 다시 사랑하는 일이다. 자연에 대한 기쁨과 생명에 대한 사랑은 어른이 되어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유년의 야생을 거치며 저절로 얻어 가는 것이다.
나에게 그런 소중한 유년의 뜰이 없었다면, 만약 야생의 들판과 살을 섞으며 자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돌아갈 곳을 잃은 철창 속 오소리가 되었을지 모른다.
올챙이가 신나게 헤엄치고, 나팔꽃이 방긋 피어나 웃음 짓는 그 자연의 뜰에서 나는 지금도 마음을 씻는다.
수필과 사진
우리 동네에 사는 어느 여자 탤런트는 실물이 사진보다 놀랄 만큼 못하다. 순 화장 덕이라고 사람들이 수군댄다.
언젠가 길 가다 만난 또 한 사람의 남자 탤런트는 반대로 화면에서보다 훨씬 멋져 보였다.
우리도 자주 경험한다.
변함없는 내 얼굴이 사진 속에서 가끔 날아갈 듯 예쁘기도 하고 느닷없이 궁상스럽기도 한 것을.
내 얼굴의 표정이 그때 그랬으니까라고 말해 버리기에는 사진이라는 중간 다리가 참 야릇하고 요상한 무엇인 것 같다.
언젠가 친구들과 소풍을 가서 만장일치로 사진 안 찍기 결의를 한 적이 있다. ‘얼굴이 너무 늙게 나오니까’가 그 이유였다.
나이가 들수록 사진 속의 나는 더욱 가속의 모습으로 나이 들어 가고 있어 겁이 난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진짜 내 모습이 그것이 아닐까, 더욱 겁이 난다.
“아저씨, 왜 이리 늙게 찍었어요?”
“아, 사진은 거짓말 안 합니다.”
일전에 나는 어느 사진관에서 그렇게 다툰 적도 있다.
사진이란 정말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다.
예쁘거나, 밉거나, 젊거나, 늙거나 모두 그 사람의 모습을 가리지 않고 다시 그려 줄 뿐이다.
그런데도 엄밀히 말해 사진은 내가 아니다. 나를 피사체로 세운 또 하나의 만들어낸 세계이다. 다시 말하면 거기에는 촬영이라는 허구의 세계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수필이라는 글을 쓴다.
수필은 진솔한 고백의 문학이며 체험의 문학이니 가공의 세계가 있을 수 없다고 수필 창작의 기본은 가르친다. 상상이 제아무리 날개를 펴도 어디까지나 내 손안의 일이라고 수필은 큰소리로 말한다.
그래서 나는 고민을 한다.
과연 나는 나의 수필 속에서 나의 진솔한 모습을 얼마나 잘 드러내고 있는가를. 내가 아무리 열심히 나를 벗기고 입히며 진솔하게 표현한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허구에 불과할 것이다. 문학이라는 허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어낸 허구가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창작 세계의 허구일 것이다. 창작이라는 다리를 건너며 본래의 내 자신이 도금을 당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 모습의 사진이 촬영의 허구를 거치듯, 내 정신의 글도 창작의 허구를 건너는 것이다.
수필과 사진은 그래서 닮았다.
수필과 사진은 둘 다 사람을 피사체로 하여 그 사람을 창조하는 또 하나의 진실이며 허구다.
사진이 거짓말을 하지 않듯이 우리도 거짓말로 글을 쓰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것이 진정한 내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다. 그러나 어쩌면 진정한 내가 아닐 것 같은 사진 속의 그 모습이 진짜 나이고, 어쩔 수 없이 미화된 글 속의 모습이 진짜 내가 아닐까 여겨질 때가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는 다르다.
사진 속의 나와 글 속의 나는 모두 남이 아는 나이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도 바로 그 남이 아는 내 모습일 것이다. 그리하여 최대한 자연스럽게 사진이 잘 나오도록 하기 위해, 최대한 진솔한 모습이 아름답게 표현되도록 하기 위해, 나는 부단히 내 얼굴을 쓰다듬고 내 글을 가다듬는다. 그래도 잘 나온 사진이나 잘 쓰인 글은 누가 뭐래도 아름답고 훌륭한 내 자신이 아닌가.
사진을 찍을 때마다 더 예쁘게 나오기를 기대하며, 글도 더 아름답게 쓰이길 원하며, 나는 늘 그렇게 본래의 나보다 더 훌륭한 모습이기를 바라며 살아간다.
사진과 수필은 꼭 닮았다.
밀까(推), 두드릴까(敲)
나의 가장 좋은 여자 친구는 진리”라고, 과학자 뉴턴은 말했다. 그리고 어느 문학가는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가 문학이라고 했다.
‘문학은 나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받고 불이 반짝 켜졌다. 나에게도 문학이 나의 사랑하는 나무임에는 틀림없으니 뭔가 분명한 답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다. 그런데 저 뉴턴과 같은 명쾌한 명언 하나가 생각나지 않았다. 다행히 내가 글을 쓰면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 ‘퇴고’라는 것을 생각해 내고, ‘나는 퇴고를 위하여 글을 쓴다.’라는 말을 만들어 보았다. 그럴듯하다. 정말 나는 퇴고를 위하여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니 문학은 나에게 ‘퇴고’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퇴고(推敲), 누구나 알고 있듯이 시문을 지을 때 자구(字句)를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치는 일을 말한다.
서기 800년경 중국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는,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 : 스님은 달빛 아래 절간 문을 두드린다)”이라는 시구를 놓고 갈등에 빠진다. 두드릴 고(敲)를 밀 추(推)로 고칠까, 그만둘까? 두드리고 미는 시늉까지 해 보며 그는 작품 세계에 골몰했다. 그러다 글벗이었던 당시 최고의 문장가 한퇴지(韓退之)가 “고(敲)가 좋겠네”라고 하여 그렇게 하였고, 그 퇴(推)냐? 고(敲)냐? 고민하던 이야기가 오늘의 ‘퇴고’라는 말을 낳은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발음인 밀 추(推)가 당나라 때는 퇴(推)였던 관계로 ‘추고’가 아닌 ‘퇴고’로 굳어진 것이다. ‘추고’가 옳다고 우기는 사람도 있으나, 오랜 세월 자연스럽게 퇴고를 거친 ‘퇴고’라는 말이 그대로 좋은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은 알 것이다.
아무리 일필휘지하듯 흔쾌히 쓴 글이라도 다음 날 내 눈에는 그것이 가을 나뭇잎처럼 바스락거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나뭇잎에 물이 오를 때까지는 기약 없는 시간이 흐른다는 것도 알 것이다. 적시고 말리고 떼 내고 붙이기를 수없이 해야 하는 우직한 다듬이질 없이는 한 문장도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또한 잘 알 것이다. 처음부터 완성된 인격을 갖고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이 없듯이, 우리는 아무도 처음부터 완성된 글을 쓰지 못한다. 두드릴까, 밀까를 수없이 되풀이하는 그 ‘퇴고’라는 과정에서 철부지 아이가 중후한 교양인이 되는 것이다.
인생을 배운다. 인생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나는 퇴고라는 과정을 통하여 글을 다듬어 갈 때마다 새로 인생을 배우고 새로 인생의 신비에 눈떠 간다. 내 삶의 수양도 여기서 이루어진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간이 허물을 남기듯이 아무리 노력해도 글은 허물을 남긴다. 인생과 글은 똑같이 먼 ‘길 없는 길’을 가는 나그네다. 그 글이 하나씩 허물을 벗을 때 나는 삶의 허물 하나씩을 벗어 가는 쾌감을 느낀다.
두드릴까, 밀까를 수없이 되풀이하다 보면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머나먼 길이 편안한 자연의 길이 되어 나타나곤 한다. 풀리지 않는 문장에 가로막혀 오도 가도 못 하다가 시원한 바람처럼 내달리기도 하고, 털고 털어도 털리지 않던 흙 묻은 옥이 별안간 얼굴을 씻고 환한 빛을 내기도 한다.
그리고 퇴고는 무엇보다 내게 무엇을 버릴 줄 아느냐를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다. 아깝다고 버리지 않으면 아름다운 꽃밭이 잡초 밭이 된다. 문장의 아름다움은 꽃밭의 아름다움처럼 절로 사람의 마음을 향긋하게 한다. 그것을 위해서는 잘 버리고 잘 취할 줄 아는 균형 감각이 중요하나, 잘 버린다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편안하지 못한 것을 편안한 것으로, 평범한 것을 감동적인 것으로 바꾸고자 하는 그 일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퇴고는 또 다른 창작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 창작의 뿌리는 ‘다시 보는 눈’에 있다. 다시 보는 눈은 놀라운 눈이고,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 눈은 바로 ‘아는 만큼 보이는’ 격조의 눈이다. 독서와 사색, 부단한 감각의 훈련이 그런 눈을 만들어줄 것이다.
밀[推]까? 두드릴[敲]까를 고민하는 나의 시간은 언제나 내가 쓰는 짧은 글의 수십 배에 달한다. 그때마다 내게도 보이지 않는 글벗 한퇴지가 나타나 ‘이렇게 해 보게나.’ 하고 넌지시 일러 준다.
아! 그 순간의 빛남이여, 법열의 기쁨이여.
│서경희 작품론│
서경희의 작품 세계
이 동 민
수필가. 수필평론가
서경희 수필가가 자신의 글에 대한 평을 부탁하였다. 전화를 받는 동안 내 머릿속에는 한때 애독했던 그의 글들이 무질서하게 왔다 갔다 했다.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도 자꾸 시골의 한적한 마을에서 자란 듯한 그의 글 이미지도 떠올랐다.
며칠 뒤에 스스로 선정한 작품이라면서 다섯 편을 보내왔다. ‘머플러 휘날리며’ ‘배반의 사랑’ ‘올챙이와 나팔꽃’ ‘수필과 사진’ ‘밀까(推), 두드릴까(敲)’이었다.
우리의 수필은 대체로 서정성이라는 것을 많이 깔고 있다. 으레 과거에 대한 회억을 정감으로 칠하여 풀어낸다. 그런데, 그가 선정해서 보낸 글을 읽으면서 지레짐작하였던 서정성은 ‘올챙이와 나팔꽃’ 이외에서는 읽을 수가 없었다. 작품을 읽고 그 작품 속에 담겨 있는 작가의 사유를 읽어내고, 해석해 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글을 썼든 그건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왜 갑자기 난감해 하였을까? 나를 난감케 하였던 그 점이 바로 서경희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여성이 쓴 수필이면 으레 서정적 추억 일변도의 글일 것이라는 내 짐작의 어긋남이 바로 서경희의 작품 세계인 것이다.
‘머플러 휘날리며’는 서두를 “머플러 휘날리며 바람 부는 외출에서 돌아온 날 바람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로 시작하였다. 문득 그의 수필은 바로 이 ‘깨달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여겨진 것이다. 말하자면 사색과 성찰이 묻어나는 그런 것이다. 사색과 성찰은 감성의 활동이기보다는 이성의 활동으로 보아야 한다. 미리부터 서정성을 염두에 두었던 내가 당황하였던 이유이다.
그런데 무심코 오늘 그것이 눈에 와 닿아 슬쩍 외출복에 맞추어 보던 나는 순간 반짝 별빛을 느꼈다. 평범하던 나들이 차림새가 갑자기 화사한 봄빛으로 날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불현듯 봄날이 다가와 벚꽃이 막 피어나는 듯했다.(…)
아 놀라워라. 차마 버리지는 못했지만 영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것이 주인을 잘 만나 이렇게 놀라운 비상을 하다니.
―머플러 휘날리며
이렇게 그의 글에서는 성찰을 통해서 놀라움을 경험하는 일이 자주 있어 보인다. 의상, 머플러 같은 것은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물적 대상물이다. 그러나 조화로움을 느끼고, 감탄하고, 마침내는 깨달음을 얻는 주체는 작가 자신이다. 작가가 자신의 감정을 대상에 이입한 결과이다. 우리의 바깥에 있는 모든 대상은 이런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런 대상을 상대로 작가의 깨달음이 감성이 되어 독자에게 공감을 준다면 잘 쓴 수필이 된다. 솔직히 말해서 이성적인 방법으로 공감을 이끌어내는 일은 쉽다. 논리적이 되면 수용자의 선택은 제한되기 때문이다. 이런 양식의 글이 감성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면 문학 작품으로서 좋은 수필이 되는 것이다.
서경희의 작품은 서정적인 글과 에세이류의 글의 경계선에 머무는 것이 많다. 그렇다고 하여 분명히 에세이류의 글이라고 말해 버리기에는 선뜻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이것을 그의 작품 세계로 보고자 한다.
우리의 수필이 서정 일변도의 하소연적인 내용이(독백이기보다는) 많은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글쓰기 방식은 유의할 가치가 있다. 성찰을 통한 깨달음에서 얻는 감동은 단순히 감성을 울려 줌으로써 얻는 것보다 더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배반의 사랑’은 자연에 대한 사랑을 그의 방식대로 풀어 쓴 글이다. 자연의 사계절은 불변의 존재가 아닌, 끊임없이 변하고 바뀌어서 각자 독특한 맛과 색깔을 낸다. 그 변화된 계절을 사랑하게 되는 자신을 ‘배반의 사랑’이라고 표현하였다. 제목이 산뜻하다.
나의 사랑을 시험하듯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명의 꽃미남은 변함없이 나에게 사랑의 헌화를 할 것이다.
―배반의 사랑
‘배반의 사랑’의 결어이다. 이 글에서 몇 가지 의미의 상징화를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그의 말대로 자연에 대한 사랑의 상징이다. 서두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작가는 도회지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학교를 다녔고, 지금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그에게 자연은 가까이 가질 수 없었던 결핍의 존재였을 것이다. 그가 소망하고, 소유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그것뿐일까?
나의 뇌리를 올챙이와 나팔꽃이라는 두 단어가 탁 때렸다. -생략- 다시 말하면 그 올챙이와 나팔꽃은 나도 모르게 내가 가끔씩 돌아가는 내 유년의 야생 들판이기 때문이다.
―올챙이와 나팔꽃
인간의 손에서 자란 오소리가 다 자란 후에는 결국 야생으로 돌아가더라는 글을 읽고 그가 쓴 글이다. 그가 결국 돌아가고자 한 상징 언어는 ‘올챙이’와 ‘나팔꽃’인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수필집 ‘장미와 안개꽃’의 여러 곳에서 밝히고 있는 유년은 대도시가 아니었다. “나의 고향은 대구시 북구 산격동이다.”라고 토로하였듯이 주변에는 올챙이와 나팔꽃을 지천으로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한 동네에 아재와 아지매가 수두룩했던” 달성 서씨 양반네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던 곳이었다. 그가 보낸 유년의 터는 도회지의 생활과 거리가 먼 시골이나 다름이 없었다. 거기에다 경상도의 양반 성씨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서 자랐다. 문중, 혹은 집안이라고 불리는 동네의 특징은 윤리적으로 강한 보수 성향이다.
그의 글을 평하는 자리에서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유년의 경험이 평생 동안 우리의 사유와 사색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글에서도 그런 영향이 많이 감지되고 있다. 그의 글에서 도회지의 생활이 아닌 시골의 생활, 자연에 대한 그리움, 그리고 유년 생활로 회귀하고 싶은 무의식적인 소망을 자주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살고 있는 도회지의 생활에 대한 정신적인 거부감일 수도 있다. 도회지의 삭막한 인정에 대한 피로감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막연히 이상향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인간 심리를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연에로의 회귀가 우리들의 공통된 심리일 수도 있지만, 글쓰기에서 얼마나 적절히 잘 표현하느냐에 따라 작가의 자질과 성향을 알 수 있다.
또 하나는 “해마다 줏대 없이 네 번의 사랑을 번갈아 했다.”라는 그의 말을 되씹으면서 읽기를 해 보자. 50년이나 하였다는 그의 사랑의 행위를 왜 ‘패륜아’라고 지칭하면서 의미화하였을까? 계절에 대한 사랑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그의 내면에는 사랑은 불변해야 하고, 이리저리 대상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패륜아라는 말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하였듯이 ‘양반 성씨의 집성촌’을 들먹인 이유가 유년기에 내면화되는 가치관이 평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언급이 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를 다닐 때 모범생이었던 그가 선생님의 숙제를 눈속임으로 하여 가져갔다가 들킨 ‘운동회’라는 작품이 있다. 그때 선생님은 아무런 벌도 내리지 않았다. 그 사실을 수십 년이 흐른 이제야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고백한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가 수십 년 동안 왜 그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느냐는 것이다.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그에게 중요한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그 가치관에 지배를 받으며 살아왔다는 뜻이 된다. 말하자면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감히 생각도 못 할 뿐더러 생각하는 것조차도 죄스럽게 생각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에는 사회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유와 성찰이 많이 보인다. 결국은 사회가 욕구하는 가치관에 순응하면서 삶을 꾸려왔다는 것이다. 그러면 작가는 과연 자신의 도덕적 삶에 만족하면서 살았을까?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사랑의 대상을 바꾸는 것을 계절이라는 대치물로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마음 깊숙이는 가치 순응적인 삶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있음을 계절이라는 대상물에 빗대어서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평범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정신세계가 이러하다 하더라도, 하나의 작품을 통하여 그런 점을 공감하고 확인했다면, 독자가 가질 수 있는 작품 읽기의 보람이 아닐까 한다.
글쓰기에서 이런 방식은 필요하다. 너무 은유적인 표현은 오히려 진실을 감추는 결과가 올 수 있다. 시가 은유의 방법인 데 비해 수필은 직설적인 것이어서 보다 솔직한 표현으로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다. 너무 솔직함은 또 나름대로 문제가 되기 때문에(마광수의 여러 글들) 수필을 쓰는 사람들이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 작품에 대해 다른 해석도 가능하지만 자칫하면 작품의 참뜻을 읽기보다는 읽기를 위한 작품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작가가 최근에 쓴 글에는 마광수에 관한 것이 있다. 마광수의 도덕적 결손을 너그럽게 봐주고 있는 ‘내가 미쳤나 봐’라는 글이다. 내가 그의 작품을 가치 순응적이라고 말한 것과는 좀 다른 모습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말을 들어 보자.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한 시인을 만난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이것이 그 이유이다. 그가 만난 사람은 도덕적 결함을 지닌 마광수가 아닌 ‘시인’ 마광수였던 것이다. 그가 그의 글에서 여러 번 토로하였듯이 문학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이 수필에서 그가 쓴 글을 독자들이 수용하느냐, 아니냐는 것은 별문제가 아니다. 그래야 서경희의 작품을 읽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는 마광수와 마광수가 쓴 글을 분리하였다. 그의 심리 기저에 도덕성과 예술이라는 갈등 구조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은 그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일 것이다.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는 어떻게 풀고 있을까? ‘수필과 사진’에서 창작의 허구라는 말을 함으로써 무언가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내 모습의 사진이 촬영의 허구를 거치듯 내 정신의 글도 창작의 허구를 건너는 것이다.
―수필과 사진
이 글은 어쩌면 그의 수필론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나도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러나 나는 단순히 허구이기보다는 숨어 있는 의미를 담고 있는 허구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내면의 진실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면 그 한계를 극복할 읽기의 방법론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밀까, 두드릴까’는 그의 글쓰기 방법론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글쓰기를 할 때 퇴고와 수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고민을 한다. 다섯 편의 글을 내게 보낼 때도 “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조금 고쳐야겠다.”라는 말을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서경희의 정신세계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그는 ‘완벽주의자’에 가깝다. 글쓰기 방법론을 말하기 이전에 조금의 실수, 조금의 결점도 쉽게 수용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의 일단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완벽주의자의 특징은 사회의 가치관에서 쉽게 이탈하지 못한다는, 말하자면 도덕주의자라는 뜻이 된다.
그의 글을 읽어 보면 감정을 가공 없이 생경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사유와 사색을 거쳐서 순화하고 정화시켜 드러낸다. 내가 그의 글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바로 사유와 성찰을 잘 거친 글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서정성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의 초기 작품을 읽어 보면 강한 서정성이 묻어난다.
그 후 바람이 계속 불고 우리 집 감나무는 완전히 나목이 되었다. 나긋이 비껴선 가지 사이로 하늘은 더 넓어지고 그 사이로 곧 눈발이 흩뿌릴 것이다. 그런 어느 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 감잎을 좀 더 주워 놓았어야 했는데, 약하기엔 너무 적어” 아! 그 순간 나는 아찔한 현기증이 일었다. 배반이고, 혼란이었다.
―착각(1978)
나는 지금도 때때로 꿈속에 내가 자라난 그 옛집 담을 끼고 흐르던 작은 도랑물소리를 들으며, 그 위로 놓인 낮은 다리를 건너 대문으로 들어서는 작은 나의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이사(1985)
70년대와 80년대에 쓴 그의 수필은 문장이 깊은 감성의 촉수를 건드릴 만큼 정감에 젖어 있다. 이런 문체를 최근에 쓴 그의 글에서는 잘 만나지지 않는다. 작품이 담고 있는 세계가 바뀌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의 수필집을 읽은 소감은 첫 번째 작품집과 두 번째 작품집에서 조금 차이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첫 번째 책에는 유년 시절을 또는 예전 어느 날을 회상하는 글이 많은 반면에, 두 번째 책에는 현재의 생활과, 오늘의 생활에 대한 비평적인 시각을 담은 글이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 사색과 자기 성찰을 다룬 글이다. 여러 번 말하지만 바로 이것이 서경희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자기특색이다.
너무 서정성 일변도로 흘러가는 우리의 수필을 생각하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여 서경희의 글이 꼭 해답을 주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도 말하였지만 그의 글은 경계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사색과 성찰도 결국은 사회적 가치에 순응하기 위해 자기 합리화의 방편으로 삼는 것이라면, 수필에서 또 하나의 문제점만 던져 주는 것이 아닌가? 유념해 볼 일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서경희의 작품 내면에 흐르고 있는 것은 감성적인 것과 서정적인 것이 잘 조화되어 나타나는 특유의 성찰의 세계로, 정서와 사상의 등가가 잘 이루어진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서경희는 문학을 전공하고, 수십 년간을 수필을 써 온 중견 작가이다. 중견 작가답게 그의 글에는 사색을 통한 무게감이 조화롭게 느껴진다. 탄탄한 문장력과 어문 실력 또한 그의 글을 살아 있게 한다. 그의 말대로 문학의 길은 먼 여정이므로 더욱 전진하여 더더욱 좋은 글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기 바란다.
│문학적 자전│
붓 가는 대로
서 경 희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말이 말을 많이 낳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무척 좋아한다. 소설보다 시적이고 시보다 서사적인 수필이라는 글에, 단련된 자기 붓이 없다면 무엇으로 감당을 할까. 아무 붓이나 들고 멋대로 쓰는 글이 수필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붓은 아무나 드는 것이 아니다.
‘붓’은 의미도 좋고 어감도 좋다.
지적이면서 딱딱하지 않은 멋스러움이 그대로 배어 있다. 나의 수필은 한 마디로 그 붓같이 되는 것이다. 그런 붓에 먹물을 듬뿍 묻혀 자연스럽게 써 가는, 말 그대로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수필이라는 문학이니 참으로 멋지지 않은가.
그런데 나의 붓을 내 맘대로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미 붓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보통의 경지가 아니다.
옛날 추사(秋史) 선생은 난초를 그릴 때 그 경지를, “법이 있어서도 안 되고, 법이 없어서도 안 되는(寫蘭有法不可無法亦不可)” 것이라 했다는데, 알 듯 모를 듯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런 대단한 경지야 물론 아니지만, 수필이 ‘붓 가는 대로 쓰는’ 나만의 법칙이 작용하는 글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촌철살인의 명쾌함이나 비몽사몽 봄날의 안개 같은 분위기가 좋아, 아름다움이라는 잡히지 않는 무엇을 사람의 마음에 와서 잡히는 무엇으로 만드는 것이 좋아, 나는 수필이라는 글을 나만의 법칙에 따라 사랑하며 쓴다.
그런데 그 나만의 법칙을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시절 까닭도 모르고 큰 백일장에 뽑혀 나간 일이나, 중고교 시절 국어 교과서의 좋은 글들을 시험에 안 나와도 무조건 외웠던 일들이 아마 그 법칙을 만들어 가는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다. 좋은 소재를 만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설레던 그때, 어설프게 흉내 낸 남의 붓도 내 문학의 사춘기 시절을 아름답게 한다.
‘붓 가는 대로’ 쓸 수 있는 수필에 자연히 붓을 쥔 사람의 모든 것이 묻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추사 선생처럼 ‘법 없는 법’으로 마음의 난초를 그려야 하니, ‘법’이 있는 다른 부류의 문학보다 한 수 위의 격조를 말할 자격이 충분하다.
문제는 그 격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때로 내가 쓴 글에서 꽃밭의 향기를 맡고 자랑하다 돌아서 낯 붉히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세월이 흘러가면서 함께 흘러갈 ‘붓 가는 길’이 있다는 것이 못내 고맙고 다행스럽다. 그리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