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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동양무술과 복싱에 대한 완벽 분석 (펀글)

작성자山海|작성시간09.05.07|조회수441 목록 댓글 2

들어가며…
이 글은 제가 질문과 답변 란에 올렸던 글을 모아서 편집한 것입니다. 중간 중간에 한자어가
빠진 곳도 있고(윈도우즈의 한계), 각주를 달아야 할 곳도 있으며, 덧붙일 내용도 더 있는
터라, HWP 파일로 다시 편집했습니다. 참고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연걸 vs 타이슨이라는 정말(!) 기발한 의문에 대해, 비단 여기 무예동의 게시판뿐만
아니라, 스포츠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보니, 무술에 대한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 이견(異見)도
있고, 무술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듯한 억지도 적지 않군요. 그러나 무엇보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를 실제와 혼동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특히 이소룡과
이연걸을 절대시하는 듯한 시각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넘어 답답하기까지 합니다. 어떤
분께서, 무술 전문가의 의견을 물어오셨는데, 감히 제가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아무도
digitech님이 원하시는 학문적인(?) 답변을 하시지 않고 계셔서, 제가 우선 글을 좀 올려볼까
합니다. 그 첫 번째로 이연걸에 대해서입니다.


Ⅱ. 영화속 절대 강자들과 실제의 강자 분석
(1) 이연걸(Lee Lin Jei ; Jet Lee)
1. 이연걸은 소림사 출신이며 중국 무술의 대표자인가?
우선 현대의 소림사는 무술의 산실, 내지는 전수 장소라기 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일종의
소림사 랜드(?)화된 놀이 공원 비슷한 성격이 되어 버렸고, 그나마 수련되고 있는 무술들도,
살상을 위한 전통무술이라기 보다는, 아름다운 모양새를 위한 우슈에 가까운 것임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연걸은 중국무술학교 출신이지 소림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연걸은 산타(散打)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표연(表演) 우슈 선수입니다. 즉
멋지게 회전하고 도약하며, 멋진 동작을 얼마나 잘하는 가에 따라 10점 만점 기준으로,
얼마 얼마 감점 거리를 찾아내어서 채점을 하는, 일종의 무술적인 체조 경기인 우슈 대회에서
우승한 선수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즉 무술인이라기 보다는 무술적인 체조 경기의
숙련자라는 말이 맞습니다. 그런데도 그러한 식의 전(全) 중국 무술 대회에서 5연속 우승했다는,
그 이름만으로 중국 무술의 대표자라는 호칭을 부여할 수 있을까요?
앞서도 말했듯이, 그가 우승한 부문은 산타, 즉 실전(實戰) 겨루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표연 부문, 즉 얼마나 멋지고 화려하게 동작을 하는가에 따라 점수를 매기는 분야에서
4연속 우승하고, 귀국 후 한 번 더 출전한 대회에서 다시 우승했으므로, 5연속 우승이라고
하는 것이지, 실전의 겨루기에서 우승한 것은 아닙니다.

2. 우슈와 전통 무술은 어떻게 다른가?
우슈와 전통 무술의 차이는 뭘까요? 우슈라는 것은 중국 정부에서 사라져가는 전통 문화를
보존하자는 취지에서 각지의 전통 무술을 모두 모아서, 공통되는 동작들을 편집하여, 비슷한
성격의 동작이면 모두 한 이름으로 통일한 후, 멋지고 우아한 동작들을 위주로 재편집하여
만든 일종의 스포츠입니다. 우슈라는 명칭도, 무술(武術)을 중국어 발음으로 읽은 것입니다.

그러나 무술이라는 명칭과는 어울리지 않게, 체육적인 성격이 강하며, 살상(殺傷)을 목적으로
하는 전통 무술과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릅니다. 그래서 대만에서도, 우슈와 전통 무술의
대립이 심하여, 중화국술(中華國術)을 하시는 분들은 우슈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화려하고
보기만 좋은 동작만 한다 하여, 화권수퇴(華拳秀腿)라 부르며, 경멸하고 있다는 점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3. 이연걸은 얼마나 강할까?
이는 현문우답, 아니 우문우답(愚問愚答)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강하다는 것을 잴 수
있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 때문입니다. 어떻게 측정해야 할까요? 우슈에서 말하는 도약(跳躍
: 점프)높이? 우슈에서 말하는 형(形 : 자세, 형태)의 아름다움? 고난이도 동작, 예를
들어 체조술(體操術)을 얼마나 잘 하는가의 여부? 그러나 이러한 것으로 무술적인 강함을
측정한다는 것은 타당성이 없습니다.
무술이란 것은 본래 살상(殺傷)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 만큼, 살상 능력을 기준으로
재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문명사회 속에서 이러한 것을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서로 겨룸으로써 재어본다 해도, 극히 일부의 무술 대회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그 대부분이 법의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기에 말재주가 좋고, 모양새만 낼 줄 아는 사이비
무술가들이 설칠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환경 속에서 이연걸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을
측정한다는 것은, 첫째, 영화적 경력에 오점(汚點)이 될지도 모르므로, 우선 본인이 응하지
않을 것이고, 둘째로 법이 허락지 않을 것이므로 측정 자체가 지난(至難)한 일입니다.
비전문적인 호사가(好事家)들의 술안주거리 잡담 정도는 될지 몰라도 말이죠.
그러나 몇몇 에피소드를 조명해 본다면,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연걸은
영화 개런티 및 그 분배 문제 때문에, 삼합회(三合會 : Triad)와 말썽이 생긴 적이 있습니다.
홍콩의 영화계는 암흑가(暗黑街)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가난한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살던 이연걸이 돈에 대해 눈뜨기 시작한 후, 분배 문제에서 그들과의 불문율을 깨어버린
것입니다. 이에 그들은 이연걸을 납치한 적이 있는데,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무기를 휴대하지도
않은 적수공권(赤手空拳)의 서너 명이 이연걸을 에워싸자, 이연걸은 당황해하면서 속수무책으로
그냥 끌려갔었다고 하는군요. 다행히 이 일은 잘 해결되었지만, 이일 이후로 질린 이연걸은
자신의 보디가드를 고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이연걸이 찍은 영화, '보디가드'가
생각나지 않습니까? 역시 현실과 영화는 다르다는 것 아닐까요?

4. 이연걸의 영화에 대한 실제 무술인들의 반응
이연걸의 영화에 대해 실제 무술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다소 의외이지만, 우리
나라의 무술인들 중 그의 영화에 대해 격찬하시는 분이 적지 않더군요. 그렇다면 대만
본토나 홍콩의 중화국술인들은 뭐라고 하셨을까요?

1) 영화 '황비홍'과 무영각(無影脚)에 대해
황비홍이 실존 인물이었다는 점은 아실 것입니다. 사실 황비홍은 청대 말기의 남파 소림
홍권(紅拳)의 종사(宗師)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홍권이 이제는 희귀해진 터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소림권을 가르친다고 써 붙인 도장에서는,
홍권을 가르치는 곳이 드물지 않았습니다. 홍가장(紅家掌)이라고 불리는 손의 모양이 그
특징이죠. 영화에서 많이 보셨을 겁니다. 네 손가락은 오므리고, 검지손가락만 곧게 편
손모양 말입니다. 어쨌든 홍권은 짧고 힘있는 수기(手技 : 손기술)와, 안정된 자세에서
날리는 중하단의 퇴법(腿法 : 발차기)을 주무기로 하여, 힘으로 밀어붙인다는 느낌이 강한
권법입니다.
그러나 이연걸은 영화 속에서, 그런 홍권의 품격을 완전히 무시하고, 그 홍권과는 완전히
품격이 다른 우슈 장권(長拳)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시대를 충실히 재현하는 역사극
같은 것이 아닌, 대중적 흥행을 노린 상업 영화이니까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 참기 힘들었던 것은, 무영각(無影脚)에 대한 유치하기 짝이 없는 영화적
과장(특히 황비홍 2탄, 3탄)이었습니다. 사실 그 점은 중화국술인들에게도 혹평을 받은
바 있습니다. 비전문인들이 단순히 재미로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무술적인 도움을 얻기
위해서 보려 한다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영화라는 것을 말해둡니다.
참고로 무영각(無影脚)에 대해 덧붙이겠습니다. 이는 그림자가 없는 발차기라는 의미인데,
어떤 분은 그림자도 안 보일 정도로 빠른 발차기라는 터무니없는 해석을 붙이더군요. 여기서
말하는 그림자(影)라는 것은, 그 동작의 낌새, 즉 예비 동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발차기를 하기 전에 어깨가 움찔하는 동작이라든지, 주먹을 지르기 전에 손을 뒤로
당기는 동작이라든지 하는, 앞으로 무슨 동작을 할 것인지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는 낌새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낌새가 없다는 것은 예비 동작이 극히 작든지 아니면 거의 없거나,
혹은 그 예비 동작을 가려주는 다른 동작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당랑권의 취안요음퇴(取眼 陰腿)인데, 눈을 향해 공격을 하면서 낭심을
차올리기 때문에, 낭심으로 오는 발공격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홍권의
무영각 역시, 태권도나 기타 무술의 발차기와는 달리, 상체를 움직이지 않고 다리만으로
가볍고 빠르게 차올리거나, 그에 수반되는 눈가림 동작을 하여, 상대로 하여금 다리가
안 보인다는 시각적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발차기인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처럼 공중에 떠서 상대를 밀어붙이면서 계속 여러 번씩 차는 그러한 발차기는
무영각이 아닙니다. 그리고 설마 그러한 발차기가 실제로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는 분
계신가요? 그 장면은 와이어(wire)를 사용해, 배우를 공중에 매달아놓고 찍는 장면입니다.
상식적으로 그 정도는 알고 계시겠죠? 그래서 그런 비상식적이고, 중력을 무시한 체공
시간이 가능한 겁니다. 사족(蛇足)을 붙이자면, 공중에 떠서 재빠른 옆차기 형식으로 여러
번 차는 것은 가능합니다. 어지간히 무술 수련하신 분이면 3∼4번 정도는 어렵지 않게
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화 속의 동작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무영각을 그나마 가장 그럴듯하게 재현한 것은, 황비홍 1탄에서 제자인 임세영을 야단치면서,
옷자락을 펄럭 위로 휘날리면서, 그 속에 발차기를 숨겨서 임세영을 차올린 장면입니다.
그리고 영화 가자전사에서 사부 역할을 맡은 유가량이 설명하는 무영각이 진짜 무영각입니다.
비디오에서는 아마 '남방 무영발'이라는 어설픈 자막이 붙어있을 겁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영화 '태극권'에 대해
이 영화에 대해, 특히 우리 나라 사람들은 태극권의 진수니, 어쩌니 하시는 분들이 많은
모양인데, 그 영화를 찍고 난 후, 대만의 진짜 태극권 고수들 및 후계자 분들한테, 이연걸에
대해 얼마나 많은 비난이 쏟아졌는지 혹시 아시는 분 계신지요? 실제 이연걸은 전능 부문(거의
모든 부문)의 멋진 폼 내기에서 우승하긴 했지만, 태극권이 전공학과는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영화적인 효과를 위해 과장을 고려한다 해도, 진씨 태극권 특유의 전사경(纏絲勁)과
두경( 勁 : 한자에 자신이 없습니다)을 표현한다고 한 것이, 어설픔의 극치를 이루어,
그에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그러자 이연걸은 소림사에 찾아가서, 그 주지라는 분과 사진
한 장 같이 찍은 후 '이분한테 배운 후에 영화 찍은 것이니 비난 그만 하십시오.'라고
했다가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누구하고 같이 사진 한장 찍으면 그 분 제자라는
증거가 되나요?

5. 국내의 우슈에 대한 몰이해를 막기 위한 사족(蛇足)
우리 나라의 우슈는 제가 앞에서 말한 것들과는 좀 다릅니다. 전통 쿵푸(중화국술)를 기반으로
하되, 현대적인 분위기 속에서의 생존을 위해 우슈를 가르치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우슈인들은
산타, 즉 실제적인 겨루기에 상당히 강한 면모를 보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나라의 우슈인들이
무술인에 더 가까우면 가까웠지, 중국 본토의 우슈인들은 차라리 체조 선수나 곡예사에
더 가까울 망정, 무술인이라고 하기엔 힘들다는 점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중국 본토의 우슈 겨루기를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것은 이미 쿵푸의 독특함을 거의
완전히 상실한, 레슬링 + 격투기 + 태권도 + 복싱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실제 우슈
산타 교본을 보면, 이소룡의 언가드 포지션을 연상케 하는 자세가 나오며, 실제 기술들도
태권도와 레슬링, 복싱을 연상케 하는 것들로 꽉 차 있습니다. 즉 형(形)을 연무할 때에만
중국 무술의 형을 취할 뿐, 실제 겨루기에서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이 점이 전통 무술을
하시는 중화국술인들에게 가장 많이 비난받는 점이라 할 것입니다.


(2) 이소룡(李少龍 : Bruce Lee)
제 글의 두 번째입니다. 이소룡(李少龍)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해보죠. 영화 속에서 특출한
카리스마를 발휘한 터라, 실제 현실 세계에 그 이미지를 그대로 적용시켜, 그를 우상시,
절대시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은 듯 한데, 그 환상을 일소한다는 의미에서 이소룡에 대해
얘기해보죠.

1. 그가 과연 그렇게 강했을까?
이소룡, 확실히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절대
강자 인양 취급하는 것에는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를 실제와
착각하지는 마십시오. 거리의 불량배 몇 명과 맞서 싸워 이긴 것은 결코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가라데 사범 몇 명을 때려눕힌 것도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영화, '드래곤'이나
기타 전기(傳記) 영화 속에는 얼토당토않은 과장이 너무 많습니다. 특히 제이슨 스콧 리(이름이
맞나?)가 주연한 영화, '드래곤'에는 말도 안되는 과장과 헛소리(!)로 꽉 차 있습니다.
영화와 실제를 혼동하지는 말아주실 것을 재삼 부탁드립니다.

2. 무술 대회에서 연속 우승했을까?
연속 우승의 여부는 모르겠지만, 작은 몇몇 가라데 토너먼트에서 두어 번 우승한 것은
사실인 듯 합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이야기하시는 롱비치 가라데 선수권 대회에서부터는,
이소룡은 직접 참가하지는 않고, 현대의 쟝 끌로드 반담처럼 경기장에서 형(形)의 시범만
하고 내려가곤 했다는 점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거기서 주로 보인 것은 원 인치 펀치(one
inch punch)와 자신의 기술의 속도 시범이었죠.
자세히 설명하자면, 가라데 선수를 자신의 앞에 세워놓고, 이소룡은 자신이 어느 부분을
때릴 거라고 얘기해줍니다. 그리고는 상대를 주먹으로 타격합니다. 그러나 상대는 어느
곳을 때릴 거라고 얘기해주었는데도 이소룡의 주먹을 방어하지 못했죠. 이소룡의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에 감탄하기 전에, 이 이면(裏面)의 조건들을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
서구인들, 특히 앵글로색슨 계통의 백인들은 속도가 둔하고, 하체에 비해 상체가 발달하여
힘이 좋기 때문에, 상체의 힘을 주로 쓰죠. 그렇기 때문에 발보다는 손을 주로 쓰는 남방계
무술인 가라데가 더 맞았던 것이죠. 다시 말해 당시 서구 가라데 선수들의 속도는, 어지간한
수준의 선수라 해도, 군대에서 태권도를 조금이라도 배운 우리 나라의 군 제대자의 발차기
속도나 주먹 속도보다 더 느립니다. 속도보다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이소룡이 더 빨라 보였던 것뿐입니다. 그리고 이소룡은 자기 현시(顯示) 욕구가
유달리 강했기 때문에, 자신의 기술을 드러낸 반면, 중화국술인들은 절대 비밀주의를 고수했기
때문에, 감춰져 있던 기술들의 일각(一角)을 드러낸 이소룡이 절대 강자처럼 보였던 것뿐입니다.

3. 원 인치 펀치는 신화적인 것인가?
이런 말을 전통 쿵푸를 하시는 분께 하신다면 비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원 인치 펀치는
물론 대단한 것이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촌경(寸勁)이라 하여, 신체의 힘을 한군데
순간적으로 집중시켜 폭발시키는, 쿵푸의 발경(發勁)법 중에서 근거리(近距離)용으로 사용되는
방법 중 하나일 뿐입니다. 짧고 변화가 빠른 영춘권을 자신의 기술적 바탕으로 하고 있는
이소룡인 만큼, 그러한 손기술은 영춘권 특유의 발경법에서 나온 것이겠죠.
대단하긴 하지만, 신화적인 것도 아닙니다. 1∼10cm 정도의 거리에서 상대가 뒤로 튕겨나가게
하는 추법(推法)이나, 상대에게 격렬한 통증을 주는 격법(格法)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정확한 수련을 한다면 몇 년 이내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별 볼일 없는 수준의
저만하더라도, 무술 대회에서 호구를 입고 있는 상대의 몸을, 10cm 정도의 거리에서 바로
주먹으로 타격하여 상대를 KO 시키고 우승한 적도 있습니다. 물론 중간에 장애물―예를
들어 보호구―같은 것이 있건 없건, 충격을 관통시켜, 상대의 몸 내부를 폭렬(爆裂)시키는
투법(透法) 같은 것은 상당한 수준이 요구되죠. 국내의 어떤 쿵푸 관장님은 007 가방을
품에 안고 있는 상대를, 가방 위로 타격하여 가방은 말짱한 채, 상대의 늑골만 여러 개
골절시키신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문외불출(門外不出)이라 하여, 문파 밖으로 유출하지 않는 것이
전통 쿵푸의 계율입니다. 시범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소룡은 앞서 말했듯이,
자기 현시욕(顯示慾)이 유달리 강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을 드러냈어 자랑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그러한 것을 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계율상 침묵하면서 드러내지
않았던 다른 전통 무술인들에 비해 이소룡이 강해 보였던 것뿐입니다.

4. 이소룡을 최영의님과 비교할 수 있을까?
이소룡의 절대화를 하시는 분중, 이소룡을 가끔씩 무술계의 신화였던 오오야마 마쓰다쓰(大山
倍達 : 최영의)님을 감히 비교하려는 분이 계시는 듯 한데, 그런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넌센스라는 점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비전문인들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미지만 가지고
판단하실 지는 모르겠지만, 실제적인 점에게까지 그 판단을 적용하는 것은 삼가하셔야
할 것입니다.
실제 최영의님께 사람들이 질문한 적도 있습니다. "선생님과 브루스 리, 누가 더 강합니까?"
라고 말이죠. 최영의 선생님이 회고록에서 술회하시길, 그 질문에 어이가 없어서 그냥
웃고 말았다고 하시더군요. 뽐내면서 영화 속에서 자신이 무적(無敵)이라고 우기는 이소룡과,
실제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황소, 곰, 각종 무술의 고수들, 복싱 챔피언, 레슬링 챔피언,
갱, 그리고 한꺼번에 덤비는 100명의 가라데인들과 싸워서 다 때려눕힌, 실제 현실 속에서
무적(無敵)인 최영의님을 비교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됩니까?
그리고 이소룡의 방에 최영의님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그 사진을 때때로 바라보며, 수련을
했다는 것을 알고 계신지요? 물론 이소룡은 유명해진 다음엔 그 사진을 떼어버렸다고 하더군요.
유명해진 후의 이소룡은 누군가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라는 다른 무술인들의 말에는 침묵과 말장난으로 일관하였다는
점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그의 유명한 말이 있죠.

"나는 내가 천하제일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제 2인자라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이 무슨 궤변입니까?


(3) Boxing & Mike Tyson
복싱과 타이슨에 대해 말해볼까요? 그러나 저는 복싱이 전문이 아니기에 전문적인 얘기를
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렇기에 아마추어 복싱 선수와 실전 대련을 해본 경험과, 각종
매체를 통해 입수한 타이슨에 대한 정보를 근거로 얘기해보겠습니다.

1. 복싱은 얼마나 강할까?
복싱은 확실히 강합니다. 많은 분들이 규칙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실전에는 약하다고 하시는데,
역설적으로 말해서 그러한 규칙이 있었기 때문에 복싱이 강해졌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손 외에는 쓸 수 없고, 또 제한된 부분밖에 타격할 수 없다는 규칙으로 인해, 속도와 타격력에
대해 더 발전이 있었던 것이죠. 이러한 점은 태권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발차기를
할 수 없고, 잡을 수 없다고 한다면, 복싱을 이길 투기(鬪技)는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즉 주먹 지르기와 그에 대한 방어만을 놓고 본다면, 복싱은 최강입니다.

2. 복싱은 발차기에 약하지 않은가?
과연 그럴까요? 복싱의 각종 풋 워크와 바디 워크를 우습게 보지 마십시오. 상식적으로
아무리 잘 훈련된 무술인이라 해도, 손보다 발이 느립니다. 1초에 5번 이상이나 쏠 수
있는, 빠른 스트레이트성 잽을 다 포착하고 피하며, 심지어 그에 대해 카운터까지 가하는,
최고 수준의 복싱 선수들의 반사 신경이 발차기에 대응할 수 없다고 보십니까? 여러분들중
아무나 웬만한 수준의 복싱 선수를 앞에 놓고, 반격을 하지 말고 피하기만 하라고 한 후,
그 사람을 주먹으로 연속적으로 때려보십시오. 단언하건대 여러분은 그 사람을 단 한 대도
맞히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발기술은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야 가능합니다. 그러나 손기술은
아주 근접한 거리에서도 문제없습니다. 물론 약점이 있긴 합니다. 하단을 노리고 발차기를
하면, 그에 익숙하지 않은 복싱 선수들은 당황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발차기에 대응하기
위한 약간의 훈련만 한다면 복싱 선수들이 발차기에 약하다고 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전(實戰)에서 과연 발차기가 얼마나 먹힐까요? 태권도 고수들이시라면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생활을 할 때 신는 신발을 신으면, 발차기의 속도는 심한 경우, 맨발이나 수련용
태권도화를 신고 찰 때의 속도의 절반 이하로 떨어집니다. 그러나 손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전에서는 대개의 경우 손이 절대적입니다. 물론 세계 최고의 발차기 무술이랄 수 있는
태권도 고단자들은 예외임을 분명히 해 둡니다.

3. Mike Tyson은 얼마나 강한가?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라 함은, 곧 세계 최강의 주먹이라는 말과 동일하다고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타이슨은 험악하기로 유명한 흑인 빈민가에서 주먹으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흑인
할렘가의 현실에 대해 실감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은 모양인데, 흑인 랩 가수 중의 한
명인 스누피 다기 닥(Snoopy Doggy Dog)의 얘기를 인용해 보겠습니다.

"이건 내가 17살일 때, 동네 흑인 축구팀과 찍은 사진인데, 여기 찍힌 27명의 흑인 중,
지금은 3명이 정신이상, 7명은 감옥에, 12명은 총에 맞아 죽었다."

이것이 22살 때의 인터뷰인 점을 감안하면, 겨우 5년 남짓한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인 것입니다.
그런 험악한 동네에서 주먹으로 살아남은 사람, 아니 야수(野獸)가 바로 타이슨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주먹이 핵주먹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하다는 점에 주목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의 주먹의 파괴력은 1ton 짜리 자동차가 달려드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쿵푸를
하지만, 복싱 선수의 스트레이트의 속도로 날아드는, 경자동차 한 대 무게의 주먹을, 화경(化勁
: 부드럽게 흘려내는 방어법)으로 막아낸다는 것은 탁상공론에 가깝다는 것이 저의 의견입니다.
물론 하실 수 있는 분이 있긴 하겠지만, 당랑권의 고수이신 소신당 선생님(북파당랑적전
제 8대 장문인)께서도 복싱 선수의 주먹 공격을 화경으로 방어하겠다는 것은 바보짓이며,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고 하더군요.

4. 대(對) 복싱, 저의 개인적 경험
저는 어설프나마 쿵푸(당랑권)를 도장에서 지도한 적이 있고, 태권도도 교범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도장 내에서는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는 생각에, 타류대련(他流對鍊)을 해
오다가, 친분이 있는 관장님과 친구들을 통해, 아마추어 복싱 선수와 겨루기를 할 기회를
여럿 잡을 수 있었습니다. 복싱 링에서 발기술을 쓰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대련을 했었죠.
물론 팔꿈치 기술을 제외한 손기술은 모두 허용해 주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맨손에 헤드 기어였고, 그 선수는 연습할 때나 쓰는 아주 가벼운 글러브와
헤드 기어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페더급이었는데, 굉장한 속도 때문에, 화경이나
봉수(封手)는 포기하고, 별장( 掌)류의 기술을 사용해 같이 속도로 맞받았습니다. 그러나
4라운드까지 약속한 대련에서, 저는 판정승을 거두었을 뿐, KO를 위한 정타는 넣을 수
없었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지금까지 겨루어 봤던, 타 무술들의 고단자들의 속도와는 그
수준이 다른 속도였습니다. 저 개인적인 시각으로는 어지간한 무술 고단자보다 2배 이상은
빠른 손놀림과 몸놀림이었습니다. 복싱에 대한 편견―스포츠가 무술보다 강할 리가 있나?―이
깨지는 순간이었죠.



Ⅱ. 동양 무술 VS 복싱
글자 그대로 절대 강자였던, 최영의 선생님은 논외(論外)로 해두고, digitech님이 제기하셨던
질문에서 가장 근원적인 점이라고 할 수 있는, 복싱 대(對) 동양 무술이라는 관점에서
한 번 분석해보겠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무술 내지는 투기(鬪技)중 어느 것이 강한가
하는 질문은, 하나의 주체(主體)나 인격체가 아닌 것을, 인간화하고 가치화시킨 것에서
비롯된 질문이고, 답변 역시 그와 마찬가지가 될 수도 있기에 우문우답(愚問愚答)이 될
수밖에 없지만, 많은 분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무지에서 비롯된 오해를 일소(一掃)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서, 감히 분석의 글을 올려봅니다. 그 첫 번째입니다.

(1) 동양 무술과 복싱에 대한 편견
1. 제한된 기술 VS 다양한 기술
많은 분들이 지적하시는 점이 이것이더군요. 복싱 등 스포츠화된 투기(鬪技)들은 규칙에
의해 제한된 기술이기 때문에,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는 동양 무술에는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논리이더군요. 이 논리의 허점을 지적해 보겠습니다.
극단적인 비유를 들어보죠. 핵미사일 몇 개 갖고 있는 나라와, 재래식 무기―로켓포, 각종
대포, 각종 소총, 각종 탱크 등―들만 잔뜩 갖고 있는 나라가 서로 죽느냐, 죽이느냐의
전쟁을 했다고 해 봅시다. 누가 이길까요?
무술을 오래 수련하신 분이면 다 공감하시겠지만, 실전(대련)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술은
대개3∼5가지를 넘지 않습니다. 나머지 다른 기술들은 그 주로 사용하는 5가지 기술을
명중시키기 위한, 일종의 과정, 내지는 페인트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비전문인들께서는
알아두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기술들도 기회가 되면 즉시 사용합니다.
다양한 기술이라고 해도 그것이 공격하는 부위는 인체의 몇몇 부위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즉 아무리 현란한 움직임이라 해도, 그 현란함에 현혹되지 않고, 어디로 그 공격이 날아오는지만
잘 보고, 그 부위를 블록킹(blocking : 괘(掛) 혹은 폐(閉))하기만 하면 방어가 가능하단
얘기죠. 이것을 모르고 상대의 페인트나 페이크(fake), 혹은 끌어내기(誘導 : drawing)에
현혹되어 괜스레 어설픈 방어를 한답시고 손이나 발을 뻗으면, 그 틈속으로 파고드는 공격에
얻어맞게 되는 것입니다.

2. 동양 무술은 복싱보다 다양한 곳을 때린다.
네, 맞습니다. 얼굴(뒤통수 제외)과 상체(등 부분 제외)만을 공격하게 되어 있는 복싱과,
인체의 급소란 급소는 모두 공격하게 되어 있는 동양 무술은 타격 범위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양 무술이 복싱보다 유리하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우선 동양
무술의 대표중 하나인 쿵푸, 그중 저의 전공(?)이었던 당랑권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치는 곳은 여덟 군데입니다. 팔불타(八不打)라 하여 도의적(道義的)으로 때려서는 안되는
곳으로 치고 있는데, 자세한 언급은 생략하고, 팔타, 팔불타를 통틀어 대략적으로 말해보면,
우선 눈, 관자놀이, 인중, 인후(咽喉), 심장, 신장(腎臟 : 콩팥), 무릎, 낭심, 겨드랑이
등을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부분의 부위 중 낭심과 무릎을 제외하면, 복싱에서 완벽하게 방어할 수 있는
공격 부위입니다. 신장은 어떠하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복싱 선수의 등뒤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굳이 복싱 선수가 아니라 해도, 아니, 상대가 무술에 대해 문외한이라
해도, 실제 격투라는 상황하에서 서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면, 상대의 뒤로 돌아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영화나 무협지에 중독 되신 분이라면, 경공술(?)이나 고공
점프로 뛰어 넘으면 되지 않냐고 하실지도 모르지만, 그런 높이로 도약하려면 어느 정도의
도움닫기가 필요하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동체시력(動體視力)의 극한에
달했다고 해도 좋을 복싱 선수의 눈을 피해, 등뒤로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분이 점혈(點穴)을 얘기하시더군요. 점혈이 영화 속에서처럼 그렇게 간단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찌르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혈(死穴)이나, 말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아혈(啞穴) 등은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곳을 효과적으로 찌르는
방법 역시 각 문파마다 조금씩 그 방법을 달리 하여 전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곳을 정확하게 찌르겠다는 것은, 서로 격렬한 동작을 하고 있는 상대방의 급소만 골라
침을 놓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점혈이 위치만 정확하게 찌른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무술의 고수분들도 점혈침 같은 것들을 사용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혈을 덮고 있는 각종 인체 조직, 즉 근육이나 기타 여러 가지 조직들 속으로 찍어서, 기혈(氣血)의
흐름을 차단할 정도의 힘을 가하려면, 그 손가락은 무기화 되어 있어야만 합니다. 어설픈
손가락으로 점혈을 하려다간 손가락 골절이나 탈골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이지탄(二指彈)이나
기타 손가락 연공이 쿵푸에서 중요시되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복싱 선수처럼
잘 단련된 사람의 근육들 사이사이를 뚫고 들어가 정확한 혈을 타격할 수 있는 가능성은
과연 몇 %나 될까요? 게다가 가만히 있는 상대도 아니고, 굉장한 속도의 몸놀림을 하는
상대인데 말이죠.
그렇다면 남는 것은 낭심과 무릎 정도입니다. 적지 않은 분들이 이연걸이 가서 타이슨의
급소를 치면 끝나지 않겠냐고 하는데, 문제는 타이슨이 자신의 급소를 '때려주십쇼∼!'
하고 내밀어 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복싱 선수들이 낭심 방어에 대해 무관심할까요? '규칙으로
금지되어 있으니 안 때리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아예 신경 끄고 있을까요? 그리고 무릎
역시 그러할까요? 그렇다면 무릎과 낭심을 놓고 얘기해보겠습니다.

3. 복싱은 무릎과 낭심 공격에 약할까?
이는 무에타이와 복싱을 놓고 보면 이해가 될 듯 합니다. 낭심은 거의 본능적으로(!) 막게
되어 있으니 그렇다 치고, 실제 적지 않은 복싱 선수들이 무릎 및 하단을 향한 발차기
공격에 약합니다. 무에타이의 테츠 난(로우 킥)은 허벅지 근육이나 무릎 옆의 인대를 목표로
한다고 하는데, 그런 발차기에 대해 복싱의 기본 풋워크는 취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얘기가 되는데, 이왕 시작한 거 자세히 해 보겠습니다.
복싱같이 위력적인 지르기를 내기 위해서는 풋워크가 중요합니다. 무릎을 굽힌 채, 발끝에
체중을 싣고는, 타격 시에 발끝으로 몸을 앞으로 밀어내면서 무릎으로 그 힘을 배가(倍加)시켜서
상체로 전달하고는, 다시 허리와 등을 사용하여 위력을 냅니다. 이점 쿵푸의 발력(發力)
및 발경(發勁)의 방법과 그 원리적인 면에서는 비슷합니다. 그러나 앞꿈치에 체중이 실린
이러한 자세로는, 무에타이의 테츠 난을 방어하지 못합니다. 의심스러우시면 한 번 해보세요.
양발 앞꿈치에 거의 체중이 실리고, 앞발 앞꿈치에 체중의 절반 이상이 걸리는 복싱의
자세로는 테츠 난을 재빨리 피할 수가 없습니다. 피하기 위한 자세를 잡으려면 양발에
거의 동일한 체중을 걸든지, 뒷발에 체중을 걸어야 하며, 그러고 싶지 않다면 앞발 전체,
즉 뒤꿈치까지 지면에 닿게 하여 체중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서면 테츠
난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복싱의 위력적인 지르기를 낼 수가 없게 됩니다. 위력적인
지르기는 팔힘만으로 절대 낼 수 없다는 점, 비전문인들은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점도 복싱 선수가 테츠 난 및 기타 하단 발공격에 대해 전문가로부터 코치를
받는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최고의 격투 감각을 가지고 있는, 세계 챔피언 급의 선수들이
그러한 기술 및 그 기술의 활용을 위한 감각을 체득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이렇게
놓고 보면, 실제 승부를 한다 해도 그 승률은 50 : 50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누가 이긴다
진다를 점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연걸이 어떻다 저렇다 하는 것에는 저로서도
웃지 않을 수 없더군요. 그 이유는 앞서 설명 드린 글(첫 번째 글)을 보시면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글이 길어지므로 다음 글로 넘겨서 얘기를 계속하겠습니다.


(2) 동양 무술 재조명
동양 무술에 대한 환상을 깨려는 듯한 성격의 글이 되고 있지만, 동양 무술의 현실을 조명한다는
의의는 있다고 생각해서 계속 글을 씁니다. 비전문인들이 호기심 삼아 무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것 역시, 어설픈 도인(道人)인 척 하면서 폼만 잡았던, 많은 사이비 무술인들의 탓이며,
또한 그러한 것에 고고한 척 하면서, 별 간섭 않았던 무술인들의 탓이기도 하니까요. 이하
계속하겠습니다.

1. 원리를 무시한 기술만의 조합이라는 우행(愚行)
앞서 말씀드렸듯이, 각 문파[종류?]마다 그 기술이 다른 이유는, 그 기술에 위력을 싣기
위한 방법의 원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태권도의 시각(視角)으로
쿵푸의 발기술을 평가하고, 복싱의 시각으로 쿵푸의 손기술을 평가하며, 쿵푸의 시각으로
태권도의 발기술을 평가한다면, 이는 엄청난 오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마치 장자의 말처럼,
오리의 다리가 짧다 하여 길게 만들려고 한다거나, 학의 다리가 길다 하여 짧게 하려는
것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발력(發力)의 원리상의 차이점을 무시하고, 그냥 기술만 짜 맞추었기 때문에, 소위
종합 무술을 표방하는 몇몇 무술들이, 기예(技藝)의 차원에까지 오르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견공(犬公 : dog) 싸움이 되는 것이죠. 복싱의 손기술과 태권도의 발기술, 혹은 무에타이의
발기술은 겉보기 상의 조합은 가능할지 몰라도, 근본적인 융합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즉 어떤 무술의 원리를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겉보기만으로 쓸모 있다고
판단되는 기술들만 짜 맞춘다면, 그것은 절름발이 싸움 기술은 될지 모르지만, 인간의
잠재적인 힘을 다 끌어낼 수 있게끔 해 주는 무술로 화(化)할 수는 없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태권도의 발기술과 당랑권의 융합을 시도해보았지만, 태권도의 발기술을
위한 보법(步法 : 풋워크)을 취하면, 당랑권의 연속 수기(手技) 및 그 수기의 위력을 내는
것이 불가능해지더군요. 그렇다고 해서 당랑권의 보법(步法)을 밟으면, 태권도의 발기술이
불가능해지더군요. 결국 거의 90% 이상을 발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특정 무술의 규칙 하에서의
대련에서는 태권도를 사용하게 되었고, 손과 발을 다 사용할 수 있는 특정 무술의 대회에서는
당랑권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결코 이 둘은 융합할 수 없습니다. 쿵푸의 발기술이 태권도의
것과 다른 이유는 바로 힘을 내는 원리와, 상대와의 각도를 재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지 다르다는 것일 뿐, 그 우열(優劣)을 논하기는 지난(至難)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2. 동체시력(動體視力)
동체시력이란 움직이는 물체를 잡아내는 시력을 뜻합니다. 탁구 선수나 복싱 선수, 배드민턴
선수, 테니스 선수, 야구 선수, (대한)검도 선수, 태권도 선수들이 특히 동체시력이 뛰어나죠.
무술이란 것이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것이 목적일진대,
자신에게 날아오는 공격을 볼 수 있는 동체시력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동체시력은 좌우로 움직이는 물체와, 아래에서 위로 움직이는 물체를 아주 잘 포착합니다.
가장 취약한 것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체를 포착하는 능력입니다. 여기서 무술인의
고공 점프 공격이 어쩌고 하시는 분들의 말씀들의 허구성이 드러납니다. 세계 챔피언 급의
복싱 선수 앞에서, 머리 높이로 도약하여 공격을 하려 한다면, 도약해서 올라가는 도중에,
복싱 선수는 스텝 인(step-in)을 할 것이고, 공중에서 그 팔에 걸려 바닥으로 패대기쳐지고
말 것입니다.
앞서 여러 개 쓴 글들을 통해서, 기술의 다양함보다는, 정확하게 명중시킬 수 있는, 빠르고도
치명적인 위력의 기술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아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공격에 대응할 수 있는 인체의 반사 능력과, 그 반사 능력을 무력화시키면서,
기술을 명중시킬 수 있는 기술의 속도, 그리고 그 기술로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가 없는가,
즉 기술의 위력으로 논점이 옮겨갈 수 있겠죠? 그렇다면 이하 그 점들을 논의해보겠습니다.

3. 기술의 속도와 인체의 반사 신경
인체가 시각 및 기타 감각으로 현상을 인지하고, 그에 대한 대응책을 내기까지는 약 0.5초가
걸린다고 하더군요. 이 시간은 물체를 감각 기관이 인지하고, 그 인지의 신경 신호를 척수를
통해 뇌로 보내고, 그 뇌가 그 신호가 무엇인지 판단한 후, 어떤 행동을 취하라고 명령을
내려, 근육 조직이 움직이기까지의 시간을 전부 합친 것입니다. 이것을 도식화하면… (괄호
속의 숫자는 대략적인 것일 뿐,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① 눈에 영상이 들어온다(0.05초)
② 들어온 영상 신호가 척수(脊髓 : spinal cord)를 통해 뇌로 간다(0.1초)
③ 그 신호가 무엇인지 뇌가 판단한다(0.05초)
④ 대응책을 생각한다(0.05초)
⑤ 그 대응책을 신호로 해서 척수로 보낸다(0.1초)
⑥ 그 신호가 운동 조직에 전해진다(0.05초)
⑦ 운동 조직이 그에 따라 움직인다(0.1초)

전부 합쳐서 0.5초입니다. 비전문인들은 굉장히 빠르다고 하실 지 모르지만, 이는 턱없이
느린 속도입니다. 인체의 팔이 낼 수 있는 속도는 대략 80∼120km/h 정도라고 하더군요.
강속구 투수들의 공은 시속 150km가 넘지 않느냐고 하실 지 모르지만, 그것은 공의 속도이지,
팔의 속도가 아닙니다. 그 공은 팔힘으로 내는 속도가 아니고, 온몸의 힘을 팔에 전달시켜,
가속도의 합(合)을 통해 내는 것이라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어쨌든 복싱 선수나, 무술 고단자의 주먹의 속도가 시속 100km(이것도 굉장히 높게 잡은
것입니다만)라고 해 봅시다. 과연 0.5초라는 인체의 반응 시간이 빠른 것일까요? 시속
100km라면 1초에 27.7m를 움직입니다. 즉 0.5초면 약 13.8m를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즉
0.1초에 2.7m를 움직입니다. 운전하시는 분들이 장애물을 보고 브레이크를 밟아봤자, 이미
늦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브레이크를 밟기까지의 시간, 즉 0.5초 동안, 차의
속도가 시속 100km라면 이미 13.8m를 더 전진해버립니다.
무술인들이나 스포츠 선수들은 이 반응속도를 더 빠르게 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반복 훈련을 통해, 위의 도식에서 ②③④⑤번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반응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죠. 즉 0.2초에서 0.3초만에 반응이 가능하도록 훈련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속도는 인체의 조건 반사의 속도입니다. 우리가 뜨거운 것에 닿았을 때, 거의 무의식적으로
손을 확 끌어당기는 것과 같은 것이죠. 즉 상대의 기술에 대한 반응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조건 반사적으로 할 수 있게끔 수련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기술을 무난히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인체 반응 속도보다 기술의 속도가 빨라야 하겠죠? 여기서 빠르다고 정평이 난,
태권도 선수들의 발차기 속도를 한 번 계산해 봅시다.

4. 태권도 선수들의 발차기 속도
1988년, 국가 대표 태권도 선수 4명을, 전신 반응 측정기로 측정한 기본 발차기의 수행
시간입니다. 아래에서 '차는 발 떨어짐'이라는 것은 앞발이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에서,
뒷발, 즉 차는 발이 지면에서 떨어질 때까지의 시간입니다.

① 몸통 돌려차기
앞발 움직임 / 차는 발 떨어짐 / 타격
평균 0.288 / 0.454 /0.645 (초)
② 얼굴 돌려차기
앞발 움직임 / 차는 발 떨어짐 / 타격
평균 0.287 / 0.464 / 0.686
③ 몸통 옆차기
앞발 움직임 / 차는 발 떨어짐 / 타격
평균 0.289 / 0.483 / 0.775
④ 얼굴 옆차기
앞발 움직임 / 차는 발 떨어짐 / 타격
평균 0.269 / 0.465 / 0.778
⑤ 몸통 뒷차기
앞발 움직임 / 차는 발 떨어짐 / 타격
평균 0.269 / 0.520 / 0.756
⑥ 뒤후리기
앞발 움직임 / 차는 발 떨어짐 / 타격
평균 0.246 / 0.496 / 0.779
⑦ 몸통 돌개차기(턴차기)
뒷발 떨어짐 / 차는 발 떨어짐 / 타격
평균 0.492 / 0.846 / 1.053
⑧ 한발 나가 뒷차기
뒷발 떨어짐 / 뒷발 앞으로 착지 / 차는 발 떨어짐 / 타격
평균 0.523 / 0.773 / 1.047
⑨ 들어 찍기(내려차기, 찍기)
차는 발 떨어짐 / 최대 신전 / 타격
평균 0.496 / 0.844 / 0.921

수치상으로만 놓고 보면, 인체의 반사 능력의 속도상 절대 맞을 이유가 없죠? 그러나 맞는
이유는? 그리고 문외한들이 태권도 선수, 혹은 무술 고단자의 공격이 보이지도 않는다고
느끼는 이유는? 그것은 익숙하지가 않기 때문입니다. 경험이 없어서 눈에 낯설기 때문이죠.
바로 이 점이 수많은 무술들, 특히 중국의 무술이 자신들의 기술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결정적인 이유중 하나입니다. 상대가 자신의 기술을 몰라야, 자신의 기술이 효과적일
터이니까요.
어쨌든 이 경험, 즉 수련의 양은 거의 절대적인 변수입니다. 아니 상수(常數)라고 해도
좋겠죠. 물론 세부적인 요인은 더 있습니다만, 지나치게 전문적(?)인 얘기가 되니까 더
이상의 설명은 여기서 생략하고, 개개의 기술들의 속도를 다루었으니, 이제 파괴력을 다루고자
하는데, 그러한 파괴력 및 기타 문제는 다음 글로 넘기겠습니다.


(3) 동양 무술 VS 복싱
글 계속됩니다. 이연걸vs타이슨이라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질문에서 출발한, 어리석기
짝이 없는 대답이지만, 쓰다 보니 거기에서 발전해, 무술과 복싱, 그리고 동양 무술에
대한 학문적, 과학적인 접근(?)이 되어 가고 있군요. 어쨌든 할 말 다 해보겠습니다.

1. 파괴력의 문제
사람이 아무리 빠르고 힘이 세어봤자, 전혀 운동을 안한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적당히
운동을 하고 건강한 사람과, 극단적으로 빠르고 강한 사람과의 속도 및 힘의 차이는 3배
이상 날 수 없다는 것이, 현대 인체 생리학에서 거의 정설로 되어 있다는 점 우선 말해두고
넘어가겠습니다. 역도 선수들을 예로 들어 반론을 펴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 역도 선수들이
일반인들이 들어올릴 수 있는 무게의 몇 배 이상(300kg 이상)을 들어올릴 수 있는 것은,
힘도 있겠지만, 그 절반 가량은 요령과 기술에 의존한 것이라는 것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그 점 미리 못박아 두고 이야기 계속하겠습니다.
그리고 대개 다리의 힘은 팔의 3배가 넘는다고 하죠. 잘 훈련된 사람이면 5배가 넘는다고
하는 얘기도 들립니다. 그렇다면 태권도 고수들의 발차기는, 이론적으로 보면, 타이슨의
핵펀치의 위력인 1ton의 최소한 2∼3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2. 태권도 국가 대표 선수의 발차기 위력
타격시 발의 충격력(kg·m/sec제곱) (4명의 평균, 1988년 조사)

몸통 돌려차기 1098.5 (최대 1208)
얼굴 돌려차기 1036.5 (최대 1116)
몸 돌개차기 1019.3 (최대 1051)
몸통 옆차기 413.0 (최대 517)
얼굴 옆차기 352.5 (최대 382)
뒷차기 378.5 (최대 434)
한발나가뒷차기 422.5 (최대 465)
뒤후리기 560.3 (최대 678)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마이크 타이슨의 핵펀치보다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거의 비슷한
충격량이죠? 그러나 이는 뒤집어 말해서, 타이슨의 핵펀치의 위력이 태권도 고단자의 발차기
위력과 맞먹을 정도로 강하다는 얘기도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발차기 무술인
태권도의 발차기보다, 영화 속에서 멋진 폼을 잡아대는 이연걸의 발차기가 더 강하다고
자신 있게 말씀하실 분 계십니까? 다시 말하지만, 우슈의 발차기는 보여주기 위한 발차기임을
아셔야 합니다.

3. 발차기에 대한 환상
가히 세계 최강의 맨손 무술이라고 할 수 있는, 교꾸세이 가라데(극진 가라데)의 세계
챔피언의 돌려차기 충격력이 거의 1400N 정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손기술이
제한되어 있는, 태권도 경기나 기타 태권도화 된 소위 종합 무술들의 경기를 제외하면,
비록 발차기가 주먹 지르기보다 위력이 더 강하지만, 각종 이종(異種) 격투기 경기에서는,
주먹 기술에 의한 KO가 더 많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움직이는 상대를
정확하게 타격하는 것은 발차기보다 주먹 지르기가 더 수월하며, 또 발차기보다 손의 공격이,
만약 빗나갔다 해도, 대비책을 세우기도 쉽고, 체력 소모도 적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실제 발차기의 타격력은, 발차기의 자체 타격력도 중요하지만, 정확히 명중하느냐의
여부와, 그 타이밍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복싱 경기보다 태권도 경기에서의
KO 비율이 현저하게 낮은 이유 중의 하나는, 물론 보호구의 탓도 있겠지만, 중·상단을
향한 발차기의 (상대적인) 비효율성인 것입니다. 물론 무에타이는 KO 비율이 굉장히 높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팔꿈치 공격 및 무릎 차기로 인한 것이 대부분이며, 테츠 칸 코우를 비롯한
상단 차기나 몸통 돌려차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고려하셔야 할 것입니다.

4. 공중 기술에 대한 터무니없는 환상
문외한이 영화를 보고 쓴 글이라고 생각하고 웃어넘기긴 했지만, 타이슨이 주먹을 날릴
때, 공중으로 점프하여 연속 발차기를 하면 타이슨은 끝이다… 라는 정말 터무니없는,
아니 말도 안되는 글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공중 기술, 특히 공중 발차기에
대한 환상은 실제 무술 도장에서 수련생들을 지도할 때 종종 발견하며, 심지어는 어느
정도 무술을 오래 수련한 숙련자 분들도 그런 환상을 갖고 있는 분이 일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앞서 발차기의 속도 및 파괴력을 수치화 한 것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몸이 공중에
뜬다 싶으면, 그 속도와 파괴력은 떨어집니다. 실제 몸통 앞돌려차기와, 몸통 돌개차기의
속도를 비교해 보면, 몸통 돌개차기가 약 두배 가량 느립니다. 거기에 맞을 사람은 무술에
문외한이거나, 사이비 무술인이거나, 수련 부족 혹은 경험 부족인 무술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공중에 도약하려면, 예비 동작이 필요합니다. 즉 도움닫기 같은 것이죠. 도움닫기가
필요 없다고 해도, 도약하려면 몸을 움츠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 예비 동작을 보면, 숙련된
무술인 혹은 격투가는 미리 알아채어 버립니다. 도대체 실전이나, 혹은 실전에 가까운
격투 시합에서, 상대도 어느 정도 고단자인 그런 상황에서, 공중 발차기가 필살기(???)다
어떻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바보짓"입니다.
발이 공중에 뜨면, 다시 말해서 한 발이 뜨면, 10번 중 5번이 위험하고, 양발이 다 공중에
뜨면 10번 중 9번이 위험합니다. 십각구위(十脚九危)라 하여, 쿵푸의 구결(口訣)중 유명한
말이 있는데, 이는 10번 발로 공격하면, 그중 아홉 번은 이쪽이 더 위험하다는 뜻입니다.
시범 발차기의 화려함을 보고, 공중 발기술을 익히고 싶어하는 심정은 십분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 기술을 실전이나 시합에 쓰려고 한다면, 거기엔 패배와 부상(負傷)이 뒤따르는
경우가 90%입니다. 물론 개인의 실력차에 따라 편차가 상당할 것이고, 소수 고수분들은
공중 발차기를 시합에서도 상당히 잘 쓰십니다만(정국현씨가 좋은 예이겠죠), 그런 공중
기술에 대한 환상을 갖고 거기에 집착하는 시간 동안, 다른 기술을 수련한다면 더 큰 발전이
있지 않을까 싶군요.



Ⅲ. 동양 무술 비판
글 계속됩니다. 시작과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군요. 동양 무술에 대한 학문적,
과학적, 그리고 비판적인 접근(?)이 되어 가고 있다고나 할까요? 제목을 바꾸겠습니다.
즉 동양 무술, 특히 한국의 무술들에 대한 재조명입니다. 이하 계속하겠습니다.

(1) 동양(특히 한국) 무술에 대한 비판
1. 전제(前提) : 무술에 대한 개념 정리
무술이란 무엇일까요? 살상 기술, 혹은 전쟁 기술로서의 면모(面貌)는 쇠퇴했습니다. 그리고
스포츠와의 경계도 모호해졌습니다. 그래서 본인은 많은 선배님들과, 현역 관장님들, 그리고
후배들과 많은 토론을 했고, 적지 않은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결과 잠정적인 것이긴 하지만, 다음과 같은 가설을 세워 보았습니다.

"무술이란 육체와 정신을 소진(消盡)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 점이 젊을 때 한 순간 인체의
능력을 최고조로 상승시킬 뿐, 나이 들어서 헛된 것이 되거나, 병을 얻게 하는 대부분의
운동이나 투기(鬪技)들과 다른 점이다. 무술은 인체의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끌어내어
활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수록 강해지며, 점점 정련되어 무예(武藝)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자연(自然)에 따르는 것이 진정한 원리임(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을 깨닫게 되는 무도(武道)의 경지에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즉 육체와 정신의
때를 비워내고, 충만한 가능성과 자연과의 일체감으로 육체와 정신을 새로이 채울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무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가설이지만, 저 나름대로는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가설입니다. 일반적인 운동이나
투기(鬪技)들과는 무언가 다른 것이 무술이라는 막연한 직관(直觀)은 있었지만, 그 직관에
대한 논거를 찾지 못했고, 그것을 글로 정리하지도 못했었거든요. 이상과 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하여 글을 써 나아가겠습니다.

2.종합 무술, 혹은 실전 격투기???
지금까지의 글들에서 힘을 내는 원리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얘기를 했을
것입니다. 기술들은 그 원리 위에서 구성된 것입니다. 즉 원리를 알기 위한 중간 과정인
것이죠. 제가 <무술 기법의 원리>라는 글을 무예동의 자료실에 올려왔던 것도(지금은 사진
자료의 보충 및 기타 문제 때문에 중단된 상태임), 그러한 것을 실감한 이후부터입니다.

힘을 내는 원리에 대한 이론적, 실제적 이해가 없이, 단순히 기술만을 짜 맞추는 데에만
급급한, 수많은 사이비 종합 무술들, 혹은 실전 격투기를 표방하는 것들의 한계는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한계에 부딪치게 되면, 단순히 어떤 기술을 덧붙이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자연히 원리상 맞지도 않은 기술들만 이것저것 덕지덕지 붙은 짜깁기
격투기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익혀야 할 기술들의 가짓수는 많아지는데,
정작 그 기술들을 수련하는 수련생들의 실전 능력은 점점 낮아져만 가게 되는 것입니다.
특정 무술을 비난하거나 폄하(貶下)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합기도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합기도는 대동류 합기 유술의 합기법(合氣法)을 상실한지 오래입니다.
양심적이고 실력 있는 합기도인 이시라면 이점 인정하실 것입니다. 태권도의 발기술과
쿵푸의 발기술은 융합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대응 능력을 높인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합기도의 체계 속에 넣어버렸습니다. 자연히 그 기술들의 상호 충돌로 인해, 위력을
포함한 전반적인 수준이 떨어지게 되자, 그 근원적인 원인에 대한 고찰을 하지 않고, 다른
기술을 덧붙이는 것으로 해결하려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여러 실력자 분들께서 분열되어 나와, 각자의 협회를 만드는 바람에 지금의 합기도 계는
사분오열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전철을 밟는 사이비 무술가들이 합기도의
이름을 걸고 나온다는 점,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합기도는 술기를 비롯하여, 각종 기술들의 과잉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한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나온 것이 아닌, 원리가 다른 무술들의 기술 일부만 뽑아낸
것이기 때문에, 기술 하나 하나는 강할지 몰라도, 전부 한꺼번에 수련하는 경우, 인간
내면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자연히 합기법이나 발경법 등의
무술의 근원적인 발력(發力) 방법을 원용(援用)하는 기술들이 아닌, 근력과 골격, 체격에
의존하는 기술들이 되어 버렸기에, 체급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게 되어 버립니다. 무술
본래의 취지가 퇴색되어 버리는 것이죠. 작은 사람이 큰 사람을 이길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무술일진대, 체급 차이가 있다고 해서 상대를 못이기는 것이 무술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싸움 도구일 뿐, 무술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3. 인체 속도의 한계를 무시한 관절기 & 유술의 허상
합기도 얘기를 자꾸 꺼내서, 그것도 좋지 않은 얘기를 자꾸 해서, 합기도인들께는 송구스럽기
짝이 없지만, 합기도를 하시는 현역 관장님들과 친분이 있는 터라, 그 분들과 많은 토론을
한 후에, 그분들도 동의하신 이야기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니 양해바랍니다.
그리고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사이비 합기도이지, 정통 합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몇몇 사이비 합기도의 술기, 즉 관절기의 비실용성은 많은 분들에게서 제기되어 왔습니다.
이는 합기법이 전승되지 않게 된 탓도 있겠지만, 그 약점 극복을 위해 덧붙인 술기들이
터무니없는 것들인 탓도 있습니다. 사실 모 협회 산하의 합기도 고단자분들, 그리고 사범
되시는 분들과 도장간의 실전 대련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합기도는 처음이었지만, 금나술(擒拿術)을
익히면서, 관절기의 무시무시함을 알고 있었던 데에다가, 합기도라고 하면 바로 관절기를
연상했던 터라, 관절기에 상당한 대비를 하고 대련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태권도의 발차기와 쿵푸의 발차기(특히 하단 발차기), 그리고 복싱 혹은 가라데의 손기술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공격해 오더군요. 일순 어이가 없었습니다. 합기도의 술기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그리고 방권술(防拳術)이라 하여 날아오는 주먹을 잡아서 던지거나 꺾는
기술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만들어서 덧붙인 그 기술들은 실전의 원리, 그리고 대동류 합기 유술의
원리를 바탕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에 별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날아오는 주먹을
잡아서 기술을 걸어 던지거나 꺾는다고 해 봅시다. 날아오는 주먹은 한동작입니다. 그러나
기술을 걸어서 던지거나 꺾는 동작은, 방권술의 동작을 보면 최소한 두세 가지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공격을 잡았다고 해도(사실 상대가 무술에 문외한인 경우가 아니면, 거의 불가능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의 연속 공격이 들어오기 전에, 그 잡은 손을 꺾거나 해서 제압하거나
내던지려면, 합기법을 모르는 다음에야, 여러 단계의 동작을 해야만 합니다. 즉 상대가
한 동작을 하고 다음 동작을 하기 전에, 이쪽은 2∼3단계의 동작을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즉 최소한 상대보다 3배는 빨라야 상대의 주먹을 잡아서 꺾거나 내던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이죠. 이것이 가능합니까?
앞서 제가 언급한, 인체의 속도와 힘의 차이는 3배 이상 날 수 없다는 인체 생리학의 정설을
상기해주십시오. 게다가 그런 술기들을 안정적으로 사용하려면, 상대보다 4배 내지 5배
빨라야만 합니다. 그러나 상대가 움직이지 않는 인형도 아니고, 꽤 숙련된 무술인이라고
했을 때, 그러한 압도적인 속도 차이를 낼 수 있을까요? 애초에 불가능한 전제를 두고
만들어진 것이 많은 사이비 합기도의 술기인 것입니다.

4. 무술은 없다???
이상의 점을 놓고 보면, 동양 무술의 강함은 허상이거나 만들어진 환상처럼 보입니다.
과연 무술은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대의 무술이 약해진 것일 뿐입니다.
화려한 영화적 소품으로서의 가치와, 화려한 곡예적, 체조적 기술의 시범적 가치만이 조명되다
보니, 힘의 원리, 기술의 원리에 대한 것은 이미 묻혀져 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음 글에서 제 개인적인 의견을 써 보겠습니다.


(2) 그렇다면 무술이 가야 할 길은?
제 글의 마지막 결론 부분입니다. 물론 이 글 뒤에 제가 사족(蛇足)으로 덧붙일 글은 아직
좀 있습니다만, 일차적인 마무리는 여기서 짓고 다시 글을 계속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미리 말해두지만, 이 글은 쿵푸를 바탕으로, 노장 철학을 원용하여 정리한 글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전문적이라고 느끼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독(精讀)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특히 무술을 하시는 분이라면 더욱 더 자세히 읽어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주장하고픈
무술 철학의 일부이니까요.

1. 유능제강(柔能制剛)????
무술을 하신 분이면, 유약승강강(柔弱勝强剛)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랑권에는 팔강(八剛) 십이유(十二柔)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여덟 가지 강맹한 기술과
열두 가지 부드러운 기술의 원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태산압정(泰山壓頂)이라는 것이 대표적인
강맹함의 요결(要訣)이라 할 수 있다면, 사량발천근(四兩撥千斤)이 유법(柔法)의 대표적인
요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능제강(柔能制剛), 이유제강(以柔制剛) 운운하는 이론은 그럴 듯 하지만, 막상
실전(實戰)이라는 상황이 되면, 체격이 크고 작으냐, 혹은 힘이 세고 약하냐에 따라 판가름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에 수련생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적지 않은
타류대련(他流對鍊)이나 타류시합을 했지만, 유법(柔法)이 통용되는 경우는 근래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고, 강맹한 기술만이 효과적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단련을 해도 선천적으로 큰 체격과, 강한
힘을 타고난 사람보다 강한 힘을 가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술의 본래 의의란
한갓 말장난이었을까요? 무술이란 결국 비슷한 체격과 비슷한 힘을 가진 상대에게만 통용되는
것이었던 걸까요? 그리고 설혹 단련을 하여 단단한 몸과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해도,
나이가 들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혀는 부드럽고 이빨은 단단하지만 혀가 오래가고 이빨이 먼저 망가진다."

많은 것을 시사해 주는 말입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강한 힘을 내기 위해서는 온몸을
팽팽하게 긴장시켜야 합니다. 이는 노자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자연스러운 상태가 아닌
사연(使然)에 의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런 몸으로 내는 기술, 즉 강맹한 기술들로 상대와
승부를 내려면, 강(剛)과 강(剛)의 충돌이 되는 것입니다. 결과는? 어느 한쪽은 반드시
부러지겠죠. 이런 식으로 부딪치고 다치며, 깨지게 되면 설혹 이긴다 해도 적지 않은 후유증이
남게 됩니다. 저 역시 그러한 점이 없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요?

2. 강해지기 위해서는 물과 같아라.

"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强者莫之能勝, 以寄無以易之"
천하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이 없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는 이것을
이길 것이 없으니,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노자의 말이지만, 이는 무술의 원리와도 바로 상통되는 말입니다. 사실 태극권을 비롯한
쿵푸의 중요한 요결(要訣)중 함흉발배(涵胸拔背)와 전신송개(全身 開)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유지하고, 상대의 공격에 저항하지 않고 흡수하듯 움직여서 화경(化勁)을
해 내면, 설혹 그 방어가 실패하여 상대의 공격에 맞는다 해도, 그 충격량은 대수로운
것이 아닌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사실 위의 말이 노자의 말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보지 않았다면, 수련시의 구결(口訣)을
듣는 것으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이는 태극권의 기법의 원리를 '아주 조금' 이해하고,
당랑권의 방어 기법이 태극권의 원리를 원용(援用)한 것임을 알고 나자, 더욱 더 무게
있는 말이 되었습니다. 비단 방어뿐만 아니라 공격을 하는 데에 있어서도, 이는 글자 그대로
진리였습니다.
물이 흐르는 듯한 움직임, 그런 움직임을 호흡과 일치시켰을 때에만, 비로소 만력(蠻力)이
아닌, 굉장한 에너지가 나오는 법입니다. 오랫동안 정확한 무술을 수련해 오신 분이라면,
최소한 한두 번쯤은 그러한 것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강하게 때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맞은 상대가 글자 그대로 뒤로 튕겨 날아가서 뻗어버리는 그런 경험 말입니다. 그러한
것을 경(勁)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이러한 공방(攻防)에서의 효율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신체 보존에 있어서도, 노자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3. 자신의 신체를 상하게 하는 것이 무술인가?
보통 말하는 강인한 신체 상태를 유지시키려다 보면, 외공(外功)중에서도 경공(硬功)을
위주로 해야 하는데, 이런 경우 적지 않은 장애가 오게 되며, 나이가 들어서 통풍(通風)을
비롯한 각종 고질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실제로 많은 무술계의 선배 제현 분들 중에서는 이런 분이 드물지 않습니다. 날씨가 조금만
궂어도 정강이의 시린 통증이나 발등의 통증을 호소하는 분들이 계신 것이죠. 젊어서 너무
강맹한 수련만을 하신 탓인데, 특히 무에타이 계통에 이런 분들이 적지 않으며, 태권도를
하시던 분들은 고관절이나 허리의 통증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압도적입니다.
이는 모순(矛盾) 아닌 모순입니다. 무릇 무술이란 약자가 강자에 대항하여 자기 보존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던가요? 그 자기 보존이란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건강의
유지도 포함합니다. 그런데도 건강을 위해, 양생(養生)을 위해 수련한 무술이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결과를 불러온다면, 이것이 모순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본다면
다음 말은 깨닫게 해 주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論早定則知早嗇, 知早嗇則精不竭"
(일찍 아끼고 검박할 줄 알면 정기가 고갈되지 않을 것이다.)

무술적인 강함이라는 것이 과연 건강을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요? 무릇 한 개체가
존재하고 삶을 영위함은, 건강한 몸을 바탕으로 하는 것일 겁니다. 이 대지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을 때에만, 세상 모두가 존귀하다 하는 가치를 추구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4. 위학일익(爲學日益), 위도일손(爲道日損)

"학문을 하는 것은 매일 채워 가는 것이고, 도를 하는 것은 매일 버려 가는 것이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뒤통수를 한 대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는 중학생이던
시절, 사부님께 들었던 말과 너무나 비슷했던 것입니다. 사부님의 말씀을 노트에 적어두곤
했는데, 그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많은 수(手)를 배워서 하나 하나 다 외우고 있으면 최고라고 생각하지? 매일 매일 쌓아
올리기만 하면 언젠가는 헛된 것이 된다. 그 기술들이 어디서 나오는 건지 생각해라. 그래야만
그 기술들을 모두 버려서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는 법이다."

그때는 막연히 아는 기술의 숫자만 늘리기에 급급하기보다는, 그 기술들을 확실히 체득(體得)하는
것에 더 집중하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넘어갔었습니다. 그러나 그 진의(眞儀)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군대 복무 시절, 한국 체육대학 재학 중 입대한 태권도 선수와, 어찌 어찌하다 보니 시합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태권도 규칙대로 한 탓도 있었고, 상대는 80㎏이 넘었으며, 저는
57㎏에 불과했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고전을 금치 못했습니다. 방어에만 급급했던
것이죠.
태권도를 깨기 위해서는 태권도를 배워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에, 제대 후에 태권도장에
입문했습니다. 1년 남짓 배우고 교범(敎範)이 되고 몇 번 시합을 나가보고서야 뭔가 알
수 있었습니다. 태권도의 겨루기용 기술은 극히 단순했던 것이죠. 앞돌려차기, 뒤돌려차기,
내려차기, 뒤차기 이 네 가지가 전부였고, 나머지는 보조, 혹은 응용 그리고 변용에 불과했던
것이었죠. 물론 시합이라는 제한된 규칙 속에서 적응하다 보니 그런 형태가 된 것이었겠지만,
이에 저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십 가지의 투로(套路)를 외우느라 애썼었던 것이 어리석은 짓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이죠. 그러나 곧 알 수 있었습니다. 분명 그 수많은 투로를 외우고 익혔던
것은 잘못은 아니었습니다. 잘못은 그 투로를 기계적으로 반복하기만 했던 저에게 있었던
것이죠. 그 투로들을 구성하는 기술들은 당랑권의 권리(拳理)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인데, 저는 그 투로들을 수련하면서 그 권리를 익히려 하기보다는, 단순히 기술의 가짓수에만
집착해 왔던 거죠.


5.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 만물은 음陰을
등에 지고 양陽을 품으면서 충기沖氣로써 조화를 이룬다."

저는 당랑권의 도(道), 즉 권리(拳理)를 바탕으로 해서 나오는 기술들 하나 하나를 외우고
익히려고만 했을 뿐, 그 근본이 되는 권리(拳理)에 대해서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수학 문제를 어떻게 푸는가 하는 유형과 공식의 암기에만 급급했을 뿐, 어떻게 해서 그런
공식이 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어두웠던 것이라 하겠죠.
그 이후로 기술을 수련할 때는 그 기술이 어떠한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권리(拳理)라는 것을 알게 될수록, 기술에 대한
집착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주로 사용하는 기술의 가짓수도 갈수록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실전(實戰)에 대한 대응 능력은 더욱 더 향상되었고, 응용 변화를 논하는
수풀이에서는 거의 막히는 적이 없었습니다. 이는 그해 출전했던 무술 토너먼트에서 증명되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결승전까지 유효타를 위해 사용한 기술들은 3가지에 불과했던 것이죠.
그 이전까지의 무술에 대한 저의 태도는 위학(爲學)이었던 것이죠. 그러나 그런 식의 소유하고
암기하고 차곡차곡 쌓아올려가는 배움은, 오히려 도(道)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어쩌면 지극한 기(技)라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도(道 : 무술의 拳理)와 합치되어
나오는 그런 것이 아닐까요?
사부님의 말씀은 바로 위도일손(爲道日損)을 뜻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그 말씀을 다시
풀이해서 적어보면 다음과 같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술은 기술을 많이 익히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을 하나 하나 버려서
그 기술들로부터 자유로워짐으로써 완성되는 것이 무술이다."

이것이 바로, 많은 무술 고수분들이, 문파에 거의 상관없이, 어느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
그 동작들이나 대응 방법이 거의 비슷해지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기술의 가짓수를
늘리기에만 급급한, 우리 나라에 난립하고 있는 수많은 소위 종합 무술들이 그 한계를
드러내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Ⅳ. 마치면서…
무술에 대한 환상, 그리고 무술 영화 배우들에 대한 환상은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느 무술이 세고 약하냐 하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오류에서 비롯되는 질문들은
도대체 왜 계속 나오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무협지나 황당무계한 무술 영화들 탓이라고
하시는 분이 적지 않겠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해일 뿐, 그 근원적인 것은 아닐 듯 합니다.
물론 무협지나 무술 영화는 무술에 대해 속된 말로 '뻥'을 때립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속에서 표현하는 '뻥'을 사실 그대로 믿는 일부 대중들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대중들의
잘못된 시각을 개선하려 하지 않는 무술인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
외에도, 또 다른 부정적인 시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이죠.
무술을 좋아하여 나름대로 열심히 수련해 온 저는, 몸담고 있던 도장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은 이후, 빈터나 공원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수련을 하곤 했는데, 그 모습을
보고는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모여들어, 조금씩 지도해주며 같이 야외 수련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방어(?)를 해야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몇 번 있은 후로는 그만두게 되었죠.
몇몇 불량기 있는 학생들(?)이 와서는 '웃기고 있네, 너 여기서 뭔 짓 하는 거냐?' 하며,
다짜고짜 시비를 걸어오곤 했었기 때문이었죠. 이에 저와 같이 수련하던 친구는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왜 그러냐? 배드민턴이나 줄넘기, 혹은 맨손체조 같은 걸 하고 있으면
'운동하나 보다.' 하고 무심히 넘기면서, 무술 연습을 하고 있으면, '흥, 꼴값 떨고 있네.'
'뭐하는 거야? 저 자식. 괜히 이런 데서 폼이나 잡고 말이야.' 이런 식으로 보니 말이야.
물론 전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대해. 마치 위험물을 대하는
듯 피해 가질 않나, 아니면 시비를 걸어오질 않나. 도대체 왜들 그러는 거지?"

사람들이 무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시각의 또 다른 예를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시비를 걸어온 사람들이 한 말에는 무술이란 무언가 특별한 것, 혹은 아주 무가치한 것이라는
인식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위험물을 피해 가듯이 황급히 피해 가는 사람들에게는,
'무술이란 싸움하는 기술이므로, 무술 하는 사람들은 깡패로 돌변할 수도 있다.' 라는
선입관이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이웃 중국과는 아주 큰 대조를 보인다 할 것입니다. 아침에 공원에 나가 보면,
건강을 위해 간소화된 태극권을 하는 노인들을 비롯하여, 각자 자기 나름대로 운동을 하는
사람 외에도 무술을 수련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고 하더군요. 심지어는
여러 종류의 무기를 들고 수련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곳의 사람들은
그 누구도 그런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우리
나라는 무술에 관해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실력과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정작
무술에 대한 인식만은 아주 비뚤어져 있는 것입니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죠. 고려 시대에만 하더라도, 무술에 뛰어난 사람들이 출세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신의 난이 일어난 사회적 배경을 들추어보면 알 수 있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나라에는 숭문(崇文)사조가 퍼져서 무술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풍조 때문에 수많은 외침과 굴욕을 당해 왔으면서도, 아직까지 무인(武人)이나
무술(武術)에 대한 경시 풍조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일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군 가산점 폐지 운운하는 것을 보면 말이죠.
그리고 앞서 영화나 무협지 같은, 무술을 너무나 왜곡시켜 표현하는 매체에 대해 얘기를
했었지만, 사실 현장에서 활동하는 무술인들조차 자기 스스로 '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세계에서 산다'고 생각하는 듯, 마치 삐뚤어진 도가(道家)의 수련을 하는 사람들처럼,
보통 사람들을 약간 눈 아래로 보거나 하며, 알게 모르게 일반인들로부터 경외(敬畏)시
되거나, 경원(警遠)시 되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현대 산업 사회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동양 무술이 거의 신성시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이라고 하는 그 지역의 사람들도, 정신과 육체를 각각
다른 존재로 인식한 채, 인간성이 황폐화되어 가도 물질 문명만을 발달시켜 온 자신들에게,
태권도를 비롯한 동양 무술이 크나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무술을 알량한 싸움 기술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다음 글을 한 번 보죠.

"미래의 체육은 '움직임 예술(Movement art)' 로써 전개되어야 한다. 체육의 이러한 방향에
동양사상과 동양 운동 형식. 즉, 무술과 춤 등이 주된 역할을 담당하리라고 본다. 동양
사상은 인간이 정신과 육체가 분리된 별개의 존재가 아닌, 통합된 전체라는 사상을 밑바닥에
깔고 있다. 그러한 사상적 기반에서 행해지는 무술과 같은 운동 형식은, 이원적(二元的)인
서구 체육에 획기적인 의미를 던져 준다. 동양 운동 형식의 주된 요점은 '체험함' 에 있다.
'추상적' 이기보다는 '구체성' 에 초점을 둔다. 미래의 생산적 목표가 아닌, 현재의 행위에
몰입한다. '객관적' 이 아니고, '주관적' 이다. 활동 자체를 만끽하고 빠져듦으로써 조화를
이룬 몸을 느끼고, 인간의 자각을 고무시킨다. 자기 표현의 생생한 활동이자 자유의 체험에
이르는 잠재성을 풍성히 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글에 대해 동양 무술을 너무 과대 평가했다는 비난부터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현대 사회에서의 무술의 가치라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무술은 한 마디로 말해서 살인에 쓰이기 위해 고안된 기술이었습니다. 그러나 끔찍하고도
효과적인 대량 살상 무기가 속속 등장하고, 법과 제도라는 것으로 개개인이 보호됨에 따라,
그 의미는 퇴색되었습니다. 살인술로서의 무술의 가치가 상실된 지금, 무술이 계속 그러한
점만 고집하면서, 보통 사람들과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져 존재한다면, 스스로 소멸할 뿐입니다.
물론 무술이라는 것이 현대인의 삶속에 스며들 수 있는 생활 체육이 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살인 기술만이 아닌 정신 수련 및 육체 단련의 한 방법으로서,
그리고 스포츠로서 변화하지 않는 이상은 존속하기가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무술인들 스스로가 이러한 점을 자각하고, 기술적, 정신적 측면에서 무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해외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대접받고 있는데도, 막상 본토인
국내에서는 천덕꾸러기―특히 실전 능력 면에서―취급을 받거나, 애들용 과외 수업 정도로
인식되는 현실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사실, 여러 무술 경기의 텅빈 관객석,
심지어는 국기(國技)인 태권도 시합장에서도 썰렁하기 짝이 없는 관객석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물론 이러한 점은 시합 규칙의 개정 및 기술 구조개선 등의 노력이 뒤따라야
하는 문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쿵푸, 합기도, 태권도를 비롯한 여러 무술을 수련하고 있는 분들, 그리고 그 무술을
지도하고 계시는 분들, 혹은 지도하실 분들은 스스로가 무술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자부심은 자만심과는 다릅니다. 무술에 뛰어난 기량을 가졌다고
해서, 일반인들을 얕잡아 보는 무술인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무술쟁이들은…'
같은 자조(自嘲) 섞인 푸념을 하면서, 실의에 빠져 있는 무술인도 적지 않습니다. 최소한
그러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무술의 지혜적 특성상, 대중적인 것이 되기는 힘들겠지만,
최소한 대중과 가까운 거리에서 대중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진정 살아 있는 무술, 무술인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상으로 저의 부족하기 짝이 없고, 또 본의 아니게 적지 않은 분들에게 무례함을 범했을
수도 있는 글을 마치겠습니다. 만약 저의 글 속에서, 특정인이나 특정 단체에게 결례가
되는 부분이 있거나, 오류가 있다면 저에게 연락 주십시오. 논거가 확실한 비판이라면,
즉시 받아들여 수정하겠습니다.

 

 이상 mantis11이었습니다. (E-mail : mantis11@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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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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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권명안 | 작성시간 09.05.16 좋은 글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철인28호 | 작성시간 09.07.04 이해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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