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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5.바로의 저항

작성자생명의 목장|작성시간19.06.22|조회수16 목록 댓글 0

애굽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느냐 가서 너희의 역사나 하라 또 가로되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를 쉬게 하는도다 하고 바로가 당일에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 소용의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로 가서 스스로 줍게 하라 또 그들의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자 하나니 그 사람들의 고역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출 5:4~9]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바로의 저항이 5장 이후에 있는데 하나님의 구원은 사탄에게 노예된 인간을 건져내서 하나님을 섬기는 그에 백성이 되게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바로의 저항은 사탄의 저항을 대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으신 사람을 탈취하여 자신의 노예로 삼아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것이 사탄의 일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인권을 말살하는 것이다 사람의 본분을 말살하는 것이니 그렇다 그래서 구원은 인권회복이라고 할수 있다 사람의 근본된 권세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광야에가서 절기를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게내 백성을 내놔라고 요구를 했다 광야는 세상과 구별된 곳이고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는것은 희생을 드리는 것인데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이다 그랬더니 바로가 저항을 하면서 그 백성을 안내주게 된것이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부인하고 그분의 요구를 무시하고 이스라엘을 가지 못하게 했다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겠다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일뿐 아니라 자기가 신이 된 사람인데 다른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는 여호와를 모른다 나와는 상관이 없다 너희들 신과 나는 관계없고 내가 애굽의 신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보내지 않겠다는 말이다 오늘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면 다시말해 하나님이 부르신다고 전하면 왜 내가 부름을 받아 가느냐고하고 당연히 그 뒤의 사탄은 왜 내 백성을 빼얏아 가느냐고 할것이 당연하다. 그래서 바로가 저항하고있는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수 있다.

절기는 본질적으로 단체적이다 그래서 단체적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절기를 지킨다면 이것은 바로에 대한 반항이니 그렇게하라 하지 않을것이 당연하다. 애굽의 모든백성 세상의 모든백성은 바로를 섬겨야되고 종인데 그들이 다른데가서 다른 신을 섬기는것은 바로에 대한 반항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것은 용납하지만 단체적으로 섬기는것은 절대적으로 용납이 안되는 것이다. 모든 애굽인들이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면 자기의 자리가 없어지는 것이니 결사적으로 막으려하는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하나님 백성의 모임, 절기를 지키려면 모여야 되는 것인데 이 모임은 최종적인 경배이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목표를 달성할수 없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경배해도 세상을 바로가 잡고 있어서 세상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단체적으로 하나님을 경배를 해야 비로소 바로가 떠나가고 사람은 바로로부터 해방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신앙은 바로에게 별로 영향을 주지 못한다 바로에게 문제가 되는것은 단체적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에 단체적인 모임이 없다면 하나니은 아무것도 할수 없다 개인의 사정을 들어주기 위해 하나님이 계신것이 아니고 하나님은 자기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 자기의 나라 자기의 권세를 세상위에 펼쳐야 되는데 개인은 있지만 단체가 없으면 하나님의 권세는 들어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아 천당에 간다고 생각하니 바로에게는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바로는 이 땅위에서 자기 백성이 필요하지 죽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와 정치가 야합을 하는 것이다 정치는 그런 방향으로 나가면 오히려 도와준다 선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어서 나라일에 복종을 잘하니 잘써먹고 죽은후에 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땅위에서 단체적인 하나님 백성의 희생, 절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탈취당한 세상을 다시 찾아 오기 때문이다 인간의 긍국적인 구원은 개인에 있는것이 아니고 사회적인 구원에 있고 그분은 그분의 나라를 세우기위해 개인을 구원한 것이지 개인에 목적이있어 개인을 구원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바로와 대결은 단체적인 대결이다 절기의 희생 제물은 개인적인 제물과는 다른 것이다 개인적으로 죄가 있어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 것하고 전 민족이 모여서 희생을 드리는 것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자기를 위해서 희생을 드리고 요즘 말로 기도하고 회개는 할수 있었겠지만 그것은 하나님에게는 별로 소용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단체적으로 그 백성이 돌아오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바로는 결사적으로 절기를 지키지 못하게 방해를 하는 것이다.

일제시대에나 공산주의 사회에서 기독교를 말살하려는 것이 개인적인 신앙은 상관없지만 그들이 모여 사회가 되는것은 문제가 되니 단테적으로 모이는 것을 막는 것이다. 지금 중국에서는 개인적으로 숨어있던 사람들이 이제 나와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예배를 본다고 한다.

개인은 좋지만 단체적인것은 안된다는 것이 사탄을 대신하는 바로의 생각이고 정책이다 그래서 바로는 이스라엘이 절기를 지키는것에 절대로 용납할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핍박을하게 된 것이다.

짚을 주지않고 스스로 구해 벽돌을 예전과 같은 숫자를 만들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개을러 이런 생각을 한다고 했다 세상은 우리가 모이는 것을 아주 비 생산적이라 생각한다 모여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보다 공장에 나가 일하는 것이 더 낳다고 생각한다 또한 공산 주의자들의 이론이다.

그래서 어찌하든지 집회를 방해 하려는것을 방해하려는 것이 사탄의 일이다 그래서 모이기를 힘쓰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헛된 말이다고 정죄를 했는데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헛된 말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간은 하나님을 나타내야 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모두 자기 이름을 빛내려고 모인 것인데 하나님의 이름을 빛내자는 것은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돈벌이하는데 가서 하나님을 나타내자는 말씀은 소용없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는 이말을 듣고 헛된 말이다 한 것이다.

그리고 개으르다고 했는데 세상에는 부지런한 사람도있고 개으른 사람도 있는데 부지런한 것도 개으른것도 세상적인 목적 때문이다 개으른 사람은 자기 편하자는 것이고 부지런한 것은 자기 넉넉하자고 부지런한 것이어서 하나님하고는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개으른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부지런한 사람은 좋은 사람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에서는 개으르나 부지런하나 매 한가지다 절기를 지키느냐 마느냐가 중요하다 하나님을 섬기느냐 마느냐 이것만 중요하다 하나님을 섬기는것은 인간 생존의 목적인 것이다.

왜 사람은 열심히 살아야 되고 부지런해야 되는 것인가 바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세상은 자기가 부자가 되기 위해서이고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것일 뿐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세상은 존재는 있지만 목적은 없는 사람들이다 대통령부터 시작해 좋은이 나쁜이 부지런한 사람 개으른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모두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일뿐 목적이 없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이 모두 그렇다 그러면 짐승하고 똑같은 것이다.

짐승도 생존의 목표는 있고 무엇때문에 사는지 목표는 없다 사람에게만 있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에게 없다면 짐승과 똑같아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존재하는 것과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사는것은 아주 다른 문제인 것이다.

생존은 동물적이고 생물적인 것이다 생물이 살려고 하는것을 보면 아주 놀랍다 인간보다 더 지혜롭기도하다 그래서 사람이 생존 뿐이라면 그들보다 낳을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세상에서 우리가 지혜를 가지고 능력을 가지고 산다는 것을 자랑할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거룩하고 신성한 목적은 인간에게만 있다 인간에게 있는 이 목적은 인격적인 목적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이것이 빠져버리면 다른 생물과 다를바가 없다. 그래서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모든 것들은 다 신성한 목적 거룩한 목적에 통제를 받을 필요가 있다. 거룩한 목적에 통제받지 않는 생존전략은 생물학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유가 어디있는가 그 사는 이유에의해 생존이 제한되야하고 통제 받아야 하는 것이다. 거룩한 목적을 위해서 통제 받을 필요가 있는것이 바로 인간이다.

절기를 지키러 광야로 간다했는데 광야로 가는것은 애굽은 생존만 있는 곳이다 그래서 광야로 간다는 것은 거룩한 목적을 수행하러 간다는 뜻이다 광야는 생존에 아주 불리한 곳이다 생존에 제일 좋은곳은 애굽이다. 그러니까 생존의 땅에서 거룩한 목적을 이루는 땅으로 옮겨갔다는 뜻이다.

바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절기를 가로막는 사탄의 화신이다 이것이 두가지 면으로 나타나는데 객관적으로는 바로로 세상의 힘으로 나타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막는 객관적인 세력으로 들어난다.

그리고 주관적으로 자기 속에 있는 것이다 사탄에게 사람이 사로 잡혔기 때문에 자기 속에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섬기고 절기를 지키는것을 싫어한다 밖으로는 세상과 바로가 그것을 억압하고 있고 안으로는 사탄에게 사로잡힌 자기 본성이 그것을 싫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하나님께 절기를 지키는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속에 다 바로가 들어있다고 할수 있는 것이다 자기가 왕이되고 주인이 되려하는데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것이 있게 된다 자기목적 자기영광 자기욕심을 채우려하다보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수없는 주관적인 바로가 자기에게 생긴 것이다. 이것은 자아가 사탄에게 소유당했기 때문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인생의 목적이 오직 생존하는 것이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삶에 수단과 삶에 목표를 구별할 필요가 있고 그것이 구별된 사람이 되야한다 삶에 목표가 여기에 명백하게 제시되어 있다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나가서 여호와께 절기를 드리려한다 사람은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으로 축제를하는 그것이 인생의 목적이다.

그래서 우리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을 영화롭게하는 집단이 되고 단체가 되고 나라가 되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때 그때 인생이 인생다운것이 생기고 인간으로서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바로의 저항에 대해서 보면서 밖으로 안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것이 있다 어떤 이유로든 이유를 들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것이 밖에서 안에서 진을 치고 있는것을 발견하게 된다.

기도합시다 감사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가 일생을 사탄에게 메여서 살면서도 메인줄 모르고 우리는 우리의 방향을 잃고 목표를 잃고 그저 어떻게하면 생존할까 하는것에 전인생을 다 허비하고 마지막에 가면 갈곳이 없는 인생이 되게 되버린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거룩한 목적 안으로 우리를 이끄심을 감사합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백성을 불러내가지고 광야에 나가서 여호와게 절기를 지키는 그런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막을 건축하는 백성이 되게 하려고 부르신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역시 애굽에서 살던 사람들인데 우리를 불러내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과 동거하고 하남니과 하나인 사람으로서 세상앞에 표현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불러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 길에서 주님께 영원토록 절기를 지키고 날마다 주님을 표현하고 주님을 영화롭게하고 당신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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