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모임-히브리서]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예수
-이현래 목사-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히브리서 13장 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했다.
바울서신을 보면 대부분 끝에는 교회생활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가 마지막 가는 곳은 교회니까 꼭 교회생활을 뒤편에 붙여 놓았다. 앞에서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고 형제 사랑하기를 그치지 말고 혼인을 귀히 여기고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히13:8).” 이런 말을 했으니까 사실 그때 당시에 한 말로 보면 다른 목적을 가지고 한 말이겠지만 이 안에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다. 이 말을 예수님은 선재하신 분이라고 해석하는 분도 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었느니라. 하니까 그렇게 해석하는 분도 있다.또 여러분이 잘 아시는 데로 우리나라에서는 조*기 목사가 이 말을 아주 잘 쓰는 말이다. 왜냐하면 그때도 병이 고쳐졌고 지금도 병이 고쳐진다 그 말이다. 그래서 그때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신 것이나 지금 고쳐주신 것이나 다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다는 이 말을 굉장히 병 고칠 때마다 강조하는 그런 말이기도 하다. 오늘 내가 말씀드리려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고 히브리서가 처음부터 그리스도가 누구냐 그 얘기를 하고 있다. 탁월하신 그리스도, 천사보다 탁월하고 아론보다 탁월하고 선지자보다 탁월하고 그것을 지금 얘기하고 있다. 천사들은 사람들이 숭배하는 대상이지만 부리는 영이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후사가 될 수 없고 아들은 하나님의 후사로,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을 이어갈 자로 그렇게 소개하면서 비할 데가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가 부딪히는 큰 문제는 희랍세계에 들어가서 그리스도보다는 다른 것이 많이 교회로 쓰였다. 지금으로서는 좀 극단적일지는 모르지만 예수실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서구사회에서 예수는 이미 다 상식적으로 아는 사람, 이렇게 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기독교 역사, 문학, 신학 이런 것만 남았는데 이런 게 지금 별로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그 시대 시대마다 어떤 신학사상이 필요했겠지만 지금 이렇게 21세기가 되면서 그런 것이 별로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가 없어도 되게 되어 가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왜 우리나라에도 신자들이 자꾸 줄어드는가? 이미 서구에서 일어난 일이다. 유럽에서는 벌써 교회가 텅 비어있고 루터교가 있는 독일의 경우 종교세를 내니까 다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거기 사제들은 국가 공무원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유지되고 있으니까 교회당은 텅텅 비어가고 있다. 교회 와도 되고 안 와도 되고 집에서 성경 보면 되고 그렇게 지금 되어 가는 것 같다. 미국도 차차 그렇게 되어 가고 한국도 차차 그렇게 되어간다. 왜냐하면 예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절대적으로 필요하면 그렇게 되겠는가. 문화는 필요하지만 예수가 꼭 있어야 될 이유가 없다. 순복음 교회 같은데서 병자를 고치면서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다. 이 말을 강조하면 먹힌다. 왜냐하면 봐라 병이 고쳐지지 않냐 그때도 고쳐지고 지금도 고쳐지지 않느냐 이러면 사람들이 얼른 감동이 된다. 그래서 히브리서가 지금 꼭 필요한 말씀이 아닌가 싶다. 예수 그리스도가 왜 유일한가. 꼭 예수가 아니면 안 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나도 지금 막판에 와서 생각해보니까 내내 예수, 예수 했는데 지금은 그 예수가 별로 필요 없는 시대에 왔다. 있으나 없으나 다 별 문제가 없다. 예수 없으면 안 될 일이 뭔가 이것이다. 없으면 꼭 안 되는 것이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만 있어도 우리가 다 혜택을 받을 수가 있다. 나도 처음에 시작할 때 지금 생각하면 예수를 몰랐던 것 같다. 예수가 없어도 상관이 없었다. 뒤에 숨어 계신 하나님이 내 뒤를 다 봐줬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움직임이 있었다. 나를 옮겨주신 것도 예수님이 옮겨 줬다기 보다는 숨어 계신 하나님이 옮겨줬고 나를 형통케 하신 분도 예수님이 했다기 보다는 숨어계신 하나님이 해 주신 것이고 전능하신 이가 나를 옮기신 것이다. 마치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옮겨서 광야를 지나서 가나안에 입성하게 해서 나라를 세우게 하신 분이 예수님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이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에게는 예수가 필요가 없다. 그들은 메시아를 기다렸지만 과거처럼 그렇게 애굽에서 인도하고 그런 메시아가 필요하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그런 예수 같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그런데 지금 기독교도 그렇게 되었다. 기독교도 문화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하니까 종교가 모든 것을 다 해결하니까 예수가 뭐가 필요하냐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사람과 얘기하는데 자기가 먼저 묻더라. 이 목사님은 다른 사람과 뭐가 다르냐고 묻더라. 나는 예수를 알아가는 것이 좀 다르다고 하니까 예수를 알기를 뭐를 아느냐, 다 아는 예수를. 미국 사람들은 예수는 자기들이 아는 상식이다. 우리가 공자님 알듯이 그렇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가 뭐가 필요하겠는가? 아무 필요가 없어가는 시대니까 더구나 젊은 사람들에게는 필요가 없다. 우리도 5-60년대에는 가난하고 못살아서 뭔가 도움이 필요한때이니까 도우실 분으로서 기독교를 찾고 했지만 이제는 3만불 시대가 되고 4만불 시대가 되면 거의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그런 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 왜 그가 꼭 없으면 안 되는가? 석가모니로는 안 되는가? 공자님으로는 안 되는가? 하는 문제가 제일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지금까지 늘 해왔지만 천사보다 우월하고 아론보다 우월하고 선지자보다 우월하신 그 예수가 무엇 때문에 특별하게 우월한 것이냐? 무엇이든지 문제를 보면 근원에서 잘못되고 그런 것 같다. 아주 태초에 근원에서 뭐가 조금 잘못되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아주 크게 잘못되게 된다. 옛날에 광주에서 조선대학교를 건립할 때 그때 정말 원시적인 공법으로 건물을 지었다. 광주에 계신 분들은 봤으면 알겠지만 철근이 귀할 때라서 완전히 벽돌로 7층 건물을 쌓아 올린 것이다. 벽돌로만 벽을 쌓아 올려야 하니까 벽이 엄청나게 두껍고 넓다. 그런데 그것이 지을 때 말이 많았다. 3도가 기울었니 5도가 기울었니 별말이 다 나왔다. 지금도 안 넘어지고 있는데 높이 올라갈수록 밑에 기초에서 조금만 틀어져도 위에 올라가면 엄청나게 틀어진다. 그러면 건물이 망가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 문제도 그 근원에서 착오가 생긴 것 같다. 별거 아닌 것 같은 문제가 생겼다. 잘 알고 계시는데 죄를 범했다고 표현이 되어 있기 때문에 죄, 죄 늘 그런다. 원죄라고도 하는데 원죄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더라. 나도 원죄라는 것을 몰랐으니까 예수님이 왜 나 때문에 죽었나? 이것을 모르겠더라. 아무리 해도 모르겠더라. 내가 예수님이 내 대신 죽어줘야 할 그만큼 큰 죄를 졌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해결이 안 되었다. 누구한테 물어보기도 어려운 그런 문제였다. 명색이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하고 있으면서 누구에게 물어보겠는가. 그래서 참 곤란했다. 속으로는 이것이 아무래도 그것은 아닌데 부흥회 같은데 가면 강사들이 하는 말이 당구치고 술 먹고 별짓을 다 하다가 하나님을 만나서 회개해서 이렇게 됐다고 하면 차라리 나도 저렇게 했더라면 차라리 좀 알려나 이런 생각도 했다. 그렇게 해보지 않았으니까 소소한 잘못은 있지만 그것 때문에 하나님 아들이 와서 일부러 죽어줄 일까지는 나는 없다고 생각했다. 원죄라는 것을 모르니까 그랬다. 우리가 이제 보면 아주 간단한 문제이다. “네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했고 사탄은 와서 네가 이것을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 같이 될 것이라는 말에 넘어가서 먹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주 간단하다. 큰 살인죄도 아니고 엄청난 죄가 아니다. 하나님 같이 되고 싶다. 그러면 지금 우리 사람들이 다 똑같이 다 하나님 같이 되고 싶다. 누구든지 다. 그러니까 별로 문제가 안 된다. 하나님 같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누구나 다 자기가 하나님 같이 되고 싶다. 그러니까 자기 죄를 모른다. 나는 하나님 같이 되고 싶으니까 자기가 자기를 어떻게 알겠는가. 거기서 위치가 조금 이탈된 것이 가면 갈수록 커져서 가인과 아벨에 가서 종교가 나오고 종교 속에서 살인이 나오게 되고 이렇게 퍼진다. 그 마지막이 결국 바벨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새로운 약속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찾아오신다. 길이 둘로 갈라졌다. 새로운 약속 속에는 생명의 약속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이 아들과 땅이다. 아들을 주겠다. 후사를 주겠다. 거기서부터 다른 세계가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위치가 이탈된 사람은 위치가 바르게 되어야 모든 것이 바르게 되지 위치는 그냥 놔두고 좋은 것만 하려고 하니까 위선자가 된다. 간첩이 와서 한국에 와서 나라를 위한 척하고 대한민국을 위한 척하면 그것이 위선이다. 그러니까 마찬가지로 사람도 위치가 이탈되어서 하나님을 위하려고 하니까 그것이 제대로 되겠는가. 자기가 자기 속에 하나님 같이 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또 하나님을 섬기자니 제대로 되겠는가. 그러니까 하나님을 열심히 섬겨도 자기 의를 위한 것이고 세상에 좋은 일을 열심히 해도 결국 자기 의를 위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구속이라는 문제가 나왔다. 원 위치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것은 출애굽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방안에서 먹고 그리고 나와서 유월절이라고 한다. 이 유월절을 구속의 절기라고 한다. 왜냐하면 원래 하나님 백성인데 지금 잘못되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바로의 백성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출애굽의 목적은 바로의 백성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바로가 말했다. 왜 나가려고 하느냐 하니까 우리는 한 사흘 길쯤 나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야 여기서 드리면 안 되냐? 애굽 땅에 제사드릴 데가 없냐?그랬다. 그랬더니 아닙니다. 우리는 꼭 사흘 길쯤 나가서 여호와께 제사들 드려야 됩니다. 이것이 출애굽 사건의 중요한 문제이다. 결국은 거기서 양의 고기를 먹고 피를 의지해서 나오게 된 것이 출애굽이고 유월절이다. 이 유월절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에 만찬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 유월절을 위해서, 마지막 만찬을 위해서 준비한 자리에서 떡을 주시면서 이것은 내 몸이다.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은 내 피다 이렇게 말씀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다시 먹을 때까지는 먹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말을 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제자들하고 나눈 마지막 말씀이었다. 그것은 결국 다 무엇을 얘기하는 것인가? 유월절, 원 위치로 돌아가는 것, 이스라엘은 하나님 백성이니까 하나님 백성으로 돌아가는 것, 인생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니까 그 피조물로 돌아가는 것, 동산지기로 임명받았으니까 동산으로 돌아가는 것,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니까 형상으로 돌아가는 것, 이것이 회개하는 것이다. 이게 원위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이다. 어디서도 내가 좋은 말씀을 들을 수가 있고 좋은 일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지만 내 원위치를 알고 찾아갈 길은 예수 안에서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예수 없이는, 예수가 아니면 절대로 이 원위치로 회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호와 하나님으로서도 안되기 때문에 아들이 오신 것이다. 왜 사람으로 와야 하는가? 왜 아들로 와야 되는가? 그 이유가 이 구속 때문에 그렇다. 다른 이유 같으면 하나님이 하셔도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구속 이외에 나는 다른 일을 예수님이 나를 도와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나를 도와주는 것보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를 도와준 것이다.보이지 않는 분이 했으니까 보이지 않는 그분이 나를 도와준 것이지 예수님이 나를 도와줬다는 표시가 없다. 그분이 당시에 병자도 고치고 이렇게 하신 것도 하나님을 나타낸 것이지 그분이 병 고치러 오신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예수가 없으면 구속이 불가능하구나. 그래서 사람으로 오셔야 했고 그래서 사람으로 오신 분이 필요했고 그래서 죽으시지 않으면 안됐고 하는 예수 사건의 모든 종착역이 우리의 구속 때문이다. 우리가 원위치로 돌아가니까 결국 예수를 만나게 된다. 예수를 만나니까 원위치로 돌아가게 되고 원위치로 돌아가니까 그분과 연합이 되고 하나님의 모든 계획이 다 예수 안에서 아멘이 되는 것이다. 아니라 함이 없다. 예수 안에서는 아니라 함이 없다는 것이다. 다 예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했다. 이 구속 이전에는 무엇을 해도 다 아직 안된 것이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그 많은 믿음의 선열들이 오만 것을 다 했고 경험을 했지만 예수가 아니면 아직 아멘이 아니다. 다 미뤄진 사건이다. 다음에 보자 다음에 보자하고 미뤄진 사건이다. 그런데 구속 안에서 비로소 그것이 실제가 되고 진실이 됐다. 이 사건이 그때만 하고 끝난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역사적 사실임과 동시에 진실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거기서 인간의 원형이 나타났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기도 하고 또 영원한 실제고 진실이다. 요즘에 사실과 진실이라는 말이 있던데 그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그때나 지금이나 예수를 보면, 쳐다보면 다 구원을 받는다. 광야에서 놋뱀을 쳐다보면 모두가 구원을 받았듯이 지금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지금 쳐다보나 옛날에 쳐다보나 앞으로 쳐다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이것을 영원히 증거하는 증인으로 그렇게 있어야 한다. 다음 일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다음 일은 걱정할 것이 없다. 그분과 하나되면 그분이 있는데 내가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분이 가는데 내가 갈 것이고 그분이 보좌 우편에 있으면 나도 보좌 우편에 있는 것이고 그분이 세상에 있으면 나도 세상에 있는 것이고 사도행전은 바로 그런 역사다.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한다는 것이 우리가 예수와 연합된 사람으로 행한다는 말이다. 새 생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홀로 사는 삶에서 홀로 하나님 같이 되려고 하던 삶에서 둘이 연합해서 하나님 뜻을 이루는 사람이 됐으니까 삶이 달라진 것이다. 내가 처녀로 혼자 사는 것 하고 결혼해서 부인으로 사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다. 같은 일이 아니고 전혀 다른 일이다. 처녀로서는 절대로 아기를 낳을 수가 없다. 그런데 결혼을 해서 부인이 되니까 아기를 낳는다. 완전히 이것은 다른 삶이다. 옛날 삶이 아니다. 사람은 같은 사람 같은데 연합을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다. 우리가 예수와 연합한다면 우리 삶은 다른 삶이 되는 것이다. 그분과 하나인데 어떻게 내 삶이 따로 있겠는가.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이런 말도 그런 말이고 주와 함께 행한다는 말도 그 말이다. 그와 함께 죽었으면 그와 함께 산다는 말도 그 말이다. 모든 말씀이 전부 이분의 구속 안에서 다 답이 왔다. 그러니까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다.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그때 그 예수로 말미암아서 구속을 받았으면 지금도 그 예수로 말미암아서 구원을 받는다. 그런데 조*기 목사는 이것을 병 고치는데 사용하더라. 봐라. 예수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지 않냐 이렇게 말한다. 그런데 그보다는 내가 말한 말이 맞지 않는가. 병자가 그때 고쳐지나 지금 고쳐지나 같다는 말은 결국은 오늘 우리가 구속을 받는 문제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간단한 말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주님 누구에게나 동일하신 주님, 언제나 동일하신 주님, 우리 구속의 주님 나는 남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의 구속이 아니라면 예수는 없어도 된다. 구속 이전까지는 유명한 사람이 많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런데 우리를 구속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석가모니가 나와 같이 죽어줄 수 없는 사람이고 공자님도 나와 같이 죽어줄 수가 없는 사람이다.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주님,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주님과 함께 우리가 연합할 수 있는 이 축복이 가장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최종적인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떻게 해서 하나님 아들 예수와 연합이 되겠는가. 아무리 해도 그것은 안되더라. 사람들이 제일 많이 생각하는 것이 기도이다. 기도해서 성령으로 하나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되지 않는다. 내 경험으로는 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당면한 문제는 그리스도가 왜 꼭 있어야 되는가? 왜 꼭 사람으로 돌아가는데, 사람 되는데 예수가 있어야 되는가?하는 이 문제가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 없어도 될 일은 수없이 많다. 그분이 아니면 안 될 일은 이 한가지 밖에 없다. 만유를 포함한 그리스도의 죽음, 이 안에 우리가 포함되어서 죽고 다시 사는 것, 이 문제가 아니면 예수님도 좋은 분이지만 그렇게 필요하지 않다. 지금 유대인들도 그런다.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한다. 유대인 회당에 가서 거기 지키고 있는 사람하고 얘기를 해봤다. 당신들이 예수를 죽인 사람이 아니냐고 권*일 목사가 얘기를 해봤다. 펄쩍 뛰면서 아니라고 한다. 자기들은 예수를 존경한다고 한다. 선지자로 존경한다고 한다. 죽인 사람들 몇 명이 잘못해서 그렇지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인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까 어디를 가도 예수는 존경받는다. 레닌도 스탈린도 그런 말을 했다는데 내가 지금 예수님이 나타나면 내가 모자를 벗고 경배하겠다고 했단다. 무엇을 보고 그랬겠는가. 구속의 주님이신 예수를 보고 그런 것이 아니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보고 그런 것이 아니고 그분의 교훈,그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그분의 교훈만 말한다면 어디가도 반대할 사람이 없다. 어디가도 누구도 싫어할 사람이 없고 반대할 사람이 없다. 초기에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때도 공자님 제자들, 유교하던 분들이 상당히 많이 참여를 했다. 왜냐하면 공자님 말씀이나 예수님 말씀이나 같다고 생각했다. 나의 아버님도 내가 교회를 나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는데 좋은 말씀이 있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나도 어려서 좋은 말씀이 있고 배울 것이 있다고 해서 교회를 간 것이다. 그래서 들어는 봤는데 가니까 이것이 맹탕이다. 한참 가다보니 맹탕이다. 내가 하나님도 모르겠고 아무것도 모르겠더라. 물론 다른 것도 다 필요하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 다 예수 안으로 와서 결론이 지어진다. 창세기 1장 1절도 예수 안으로 와서 완성이 된다. 참 피조물이 거기서 드러난다. 진짜 나를 지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했다고 하는 것이 예수 안에서 드러난다. 그러니까 유일하신 예수는 기독교에 대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허물어져가는 기독교에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없으면 필요가 없으니까 앞으로 다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만 방법으로 지금 젊은이들을 꼬시려고 교회에서 애를 쓰는데 꼬셔 놓았다고 그것이 하나님 나라가 되겠는가. 세상보다 더 재미있게 해서 교회를 오게 하려고 애를 쓰지만 그렇게 해서 하나님 나라가 되겠는가. 예수로 말미암아 구속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다. 그래서 나는 죽을 때까지 이 말씀을 전해야 되겠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모르지만 아직까지 나에게는 더 확실한 것이 없다. 나는 그래서 이것을 전파하고 전할 사람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여러분들이 필요한 것도 그것 때문에 필요하다. 여러분들이 증인이 되어 주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모두 그 일에 증인이라고 한 것처럼 이 일에 증인이 되어야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쓸 데 없으니까 나가세요.이렇게 될 것이다. 필요 없으니까 문 닫읍시다. 이렇게 되고 문 닫고 카바레 합시다. 이렇게 된다.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다. 구속의 증인, 베드로는 말했다. 천하인간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한다. 이것이 무식한 사람의 말이라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말이 많은데 이것이 무식한 사람의 말도 아니고 유식한 사람의 말도 아니다. 구원의 확실한 증인이로서 한 말이다. 천하인간에 다른 이름으로 구원을 얻을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 이 말을 그냥 세상에 나가서 하면 그 말만 해 놓으면 미친놈이라고 한다. 이런 넓은 세상에서 예수 아니면 구원을 못 받는다고 해 놓으면 누가 그 말을 알아듣겠는가. 우리보고 미쳤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미친놈이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무서운 것이 아니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헛된 증인이 된다.증거한다고 했는데 헛된 증인이 된다. 우리가 욕을 얻어먹더라도 핍박을 받더라도 참되게 증거하고 받으면 상관이 없다. 오히려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제대로 증거를 못해서 욕을 얻어먹으면 이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나를 보고 이러고저러고 있는데 진짜로 나를 아는 사람이 없다. 진짜로 나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모르고 그런다. 그것이 안타깝다. 여러분 오랫동안 같이 있어보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런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그래서 안타깝다. 진짜로 알고 그렇게 말하면 나는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겠다. ‘ 아 나하고 다르구나. ‘ 이것을 증거 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내가 가는 길과 저 사람이 가는 길이 다르구나. 이것을 확실히 알고 만일 핍박한다면 영광이겠다. 예수를 우리 인류를 구속할 완전한 대책이라고 내가 전했는데 그것을 보고 이단이라고 하면 내가 너무나 영광스러운 것이 아닌가. 여러분도 예수를 참으로 증거해서 안 좋은 소리를 들으면 영광스러운 것으로 생각해라. 진짜로 전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면 영광스러운 일이다. 예수는 이단의 괴수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이단이라는 말만 들어도 아주 행복한 것이다. 너무 감사한 일이다. 할 말은 끝이 없고 오늘은 이만큼 하겠다.”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 수고롭지 않은 말을 계속 할 수 있으면 좋다. 여러분이 수고롭지 않은 말을 계속 할 수 있다면, 바울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다고 한다. 항상 새로운 것이다. 여기 보면 그런 말이 있다. “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는 여기에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히13:12~15) 이런 말이 있다. 영문 밖으로 나가자. 얼마나 자랑스러운 말인지 모른다. 예루살렘 성 안에서는 수없는 선지자들이 죽었다. 영문 밖에 이 길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영문 밖에서 일어난 일이다. 성문 밖에서 일어난 일이다. 내가 서울에 가서 살던 곳은 영천이라고 독립문이 있는데 살았다. 거기 서대문 형무소가 있다. 옛날에는 그 지역이 아주 못사는 사람들이 살던 곳 일뿐만 아니라 백정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살던 곳이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와서 형무소를 지을 때 거기다 지었다. 거기는 영문 밖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잡혀가면 서대문 형무소로 갔다. 애국자라면 거기 들어가는 것이 영광이다. 지금 그것을 뜯고 아파트를 지었는데 옮겨서 기념물로 표본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바로 그 앞에 독립문이 세워져 있다. 우리는 영문 밖으로 나가서 예수의 증인들이 되자는 것이다. 좀 과격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