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과 인성의 연합으로 완결-신성한 생명의 분배(1)
(요16;5~11)
0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0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07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0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0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우리는 지금 큰 단원으로‘생명의 건축’에 대해서 말씀을 해 왔다.
생명의 건축이라는 개념은 교리의 건축, 사상의 건축, 제도의 건축이런 것에 대해서
생명의 건축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교회가 교리나 제도나 이런 것으로 건축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받은 새로운 생명으로 건축된다는 뜻이다.
생명의 건축을 하려면 생명을 분배해야 한다.
생명이 있어야 생명의 건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생명을 뿌려야 교회가 되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뿌려야 교회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사람에게 오면 사람은 구속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난 생명이 뿌려져야 교회가 된다.
교회는 교리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교회인 것과 교회 아닌 것을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요한복음14:1~16:33까지는 신성한 생명의 분배와 그 생명을 받고 있는
유기체로서의 교회에 관한 말씀이다. 그런데 이 교회는 세상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로 부터 더욱 핍박을 받는다는 것이다.
A.신성한 생명은 구속받은 인성 안으로 성령이 오심으로 이루어짐(요16:5~7)
그렇다면 과연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이 같은 인성 안에 어떻게
하나님의 신성이 들어와서 본성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율법(律法)으로는 이 일을 이루지 못했고, 성육신(聖肉身)의 약속은
예수에게서 성취되었으나 만민에게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신성한 생명이 인성 안으로 들어와서 온전하게 될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그래서 오늘의 제목은‘신성과 인성의 연합으로 완결되는 신성한 생명의 분배’다.
신성한 생명은 어떻게 분배되는가?
신성한 생명이 인성 안으로 들어와서 그것이 연합될 때 비로소 완전한 분배가 이루어진다,
분배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구속받은 인성 안에 과정을 거친 그 영이 와서
비로소 신성한 분배가 완성된다는 그 말이다.
이 방법 아닌 다른 길 즉‘내가 기도를 했더니 성령을 받았다’든지
이런 것 때문에 지금 기독교가 혼란을 가지고 있는데 이 정통적인 방법을 떠나서
씨를 아무데다 뿌리겠는가? 농사를 지으려면 거기다가 똥을 부어야 농사가 된다.
구속받은 인성 거기에 신성이 연합되는 것이다.
1.아들이 가심으로 그 영이 오심
그러면 이제 이것이 어떻게 만민에게 이루어질 것인가?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시고,
승천하여 보혜사를 보내심으로 구속받은 인성 안에 들어와
연합하심으로 완결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렇게 되는 것인가? 아들이 가심으로 그 영이 오신다.
“실상을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가 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왜? 내가 가야 그 영이 오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육신이기 때문에 우리와
연합할 수 없으니까 어떤 다른 형태라야 우리와 연합이 된다.
과연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이런 인성 안에 어떻게 하나님의 신성이
들어와서 본성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 이런 문제가 생긴다.
구속을 이루시고승천하여 보혜사로 왔다. ‘
승천(昇天)했다’는 말은 높이 되었다.영광을 받았다.
인간이 볼 때는 십자가에서 죽었으니까 비참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인간으로서 최고의 영광을 받은 것을 알 때 우리는 보혜사를 만나게 된다.
‘아~그가 인간으로서 최고의 자리에 갔구나!최고의 영광이구나!’
그것을 알 때 보혜사가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구속받은 인성 안에 들어와서 연합하게 된다.
이 연합을 통해서 태초부터 약속한 하나님의 약속이완결 될 것을 예언하였다.
하나님은 어차피 사람을 만들 때“우리 형상을 따라 우리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했으니까 형상이라는 속에는 뭐가 있어야 되는 것이다.
형상이니까“우리 형상을 따라 우리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었으니까!”
그 속에는‘우리’라는 그 분이 있어야 완결이 되는데
여기에 선악과가 들어갔기 때문에 빗나가 버리고 말았다.
이 선악과가 들어버린 형상을 원위치로 회복시키는 것이 구속이다.
원위치로 회복시켰으면 거기에 다른 것 즉신 성한 생명이 들어가야
하나님의 창조의 목표가 완성되는 것이다. 사람은 형상(形象)이고 하나님은 그 실재(實在)
-생명이 되어 둘이 하나가 될 때 그 때 하나님이“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라고 했던 목적이 이루어진다. 그래야 동산에 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실상은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지 아니 할 것이요
가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리라”하셨다. 예수님은 예언대로 성육신하셨다
그러나 그는 육신이시므로 자신을 분배하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떠나가는 것이 실상은 너희에게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지 않을 것이요 가면 보혜사가 너희에게 오리라”
예수님을 어떻게 나눠 주시겠는가! 그래서 제자들이 그 말을 듣고‘
감당하기 어렵다.어떻게 우리가 선생님을 찢어 먹겠냐!’이렇게 생각했다.
육신이기 때문에 분배할 수 없으므로 육신의 한계를 벗기 위해서
다른 형태로 변화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영양소를 급하게 주사로 넣으려 하더라도
그것을 주사액(注射液)으로 만들어야 한다.그와 마찬가지로 육신을 가진 한 인격을
모든 사람들에게 분배를 하려면 그 모양 그대로는 분배할 수 없고
어떤 다른 형태로 변화 되어야 한다.
신성한 생명이 우리 안에 와서 비로소 우리가 아담의 행사를 버릴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전에는 아담의 행사를 버릴 수 없다.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고 아무리 해도
이 신성한 생명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는 아담의 행사를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은 악에 약한 것이 아니고 선과 정의에 약하다. 구속은 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이 존재하는,지배하는 그 인격이 끝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악이 아니고 선이다. 십자가는 악이 끝난 것이 아니라 선이 끝냐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