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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재료

레위기 4장은 속죄제(1),(레4: 1-12)”

작성자생명의 목장|작성시간26.06.17|조회수15 목록 댓글 0

레위기 4장은 속죄제(1),(레4: 1-12)

 

레위기 4장은 제사장이 죄를 범했을 때

다음에 회중이 죄를 범했을 때또 족장이 죄를 범했을 때

마지막에 평민이 죄를 범했을 때 이런 순서로 되어 있다.

기독종교는 특별히 죄라는 문제가 아주 심각하고 복잡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죄인이다.’ 거기서 출발한 것이 기독교니까

교회가면 일차적으로 ’ 문제를 제일 먼저 다루고 있어서다.

 

레위기의 제물의 순서에 따르면 속죄제가 먼저가 아니고

번제가 먼저 있고, 소제가 있고화목제가 있고속죄제가 있다

기독교는 죄부터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니까맨 처음에 죄부터

해결해야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생각하게 될 만큼 고정되어 있다.

 

그런데 왜 레위기의 순서는 그렇지 않는가

이것이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번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만족을 드리고 그 다음에 소제로

이어져 내려와서 하나님과 제사장이 함께 먹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교통이 된다는 말인데 번제가 있어야 교통이 된다

교통이 되고 난 다음에 화목이 생겼다.

 

그런데 화목이 됐으면 그만인데 왜 속죄제가 또 있나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 사람과 아무 상관없을 때

그 때는 그 사람에 대해서 잘못에 대하여 전혀 문제가 안된다

그런데 내가 그 모르던 사람과 화목을 하니까 비로소 죄가 생각난다.

 

그래서 로마서의 순서에 따르면 죄가 먼저 나오게 되어 있다

그런데 레위기에는 죄가 먼저 안 나오고 번제가 먼저 나왔다

쉽게 말하면 화목이 먼저 나왔다죄가 회개되어야 화목이 될 것 같은데

레위기에서는 화목이 된 다음에 죄 문제가 나왔다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는 너무나 죄가 중하니까 교회를 못 가겠다 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것은 자기 양심 안에서자기 생각 안에서 이것은 나쁜 것이다

이것은 옳은 것이다.’ 하는 것이다이는 선악을 판단하는 상식 지식 양심이다

내가 죄인이구나.’라고 판단한 것이다그래서 누구에게나 인간은 다 죄인이다.” 

하면, “그렇죠죄 안 진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알고 난 후의 문제인 것이다. 

빛이 들어오지 않은 깜깜한 방에서 자기 얼굴에 지금 때가 묻었다던가

검댕이기 묻었다던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과, 빛이 들어온 다음에 

‘아, 내 얼굴이 왜 이렇게 검은가.’ 그렇게 아는 것은 아주 다른 것이다. 

 

요한1서에서 죄를 먼저 얘기하지 않고 “하나님은 빛이시다.”시작. 

요한 1서와 레위기는 딱 맞는 것이다. 요한 1서에서는 말씀으로 하고, 

레위기에서는 그림으로 우리에게 보이고 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 안에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그러니까 그 안에 사귐이

있게 되면 그 안에서 비로소 죄 문제가 나오게 되어 있다.

 

빛과의 사귐을 갖다 보니까 자기 안에 죄가 보인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관념은 그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까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지는 그것이다. 유대인의 관념은 하나님을

만나니까 나는 아무 것도 아니더라 하는 것이다. 하나는 생각이고

하나는 실제적이다. 이방인은 허망한 생각이고 유대인은 실제적이다. 

 

그러므로 화목제가 있고 난 후에 속죄제가 나오게 되었다. 

하나님과 화목한 결과가 오니까 그 때 죄가 문제가 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죄씻음’이란 것이 생기게 된 것이다.

 

우리가 화목이 짙으면 우리 안에서 어둠도 조금도 용납이 안된다. 

만일 정말로 친하다면, 정말로 화목이 있다면, 정말로 화목이

있는 속에는 조그마한 어둠도 용납이 되지 않는다. 

결국 화목이 있고 난 후에 죄 문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진정한 죄사함이라는 것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내가 그냥 생전 처음 만난 사람한테 “나는 당신에게 잘못했습니다.” 

한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가? 그렇지 않고,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를

지나야 비로소 완전한 속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속죄의 순서이기도 하다. 우리가 속죄를 받는 과정을

순서적으로 생각한다면 내가 먼저 번제가 되고, 번제가 된 결과로써

내가 그와 함께 음식을 나누고, 그런 다음에 내가 화목이 되면

그 때 그는 나의 죄를 용서하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죄를 먼저 회개할 것인가, 

아니면 먼저 우리가 번제가 되어 화목할 것인가? 

화목이 되어야 용서가 된다.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항상 정죄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언제라도 용서가 된다. 그렇지만 항상 정죄를

하고 있는 사람은 적은 죄라도 용서가 안된다. 

 

속죄의 순서로 봐서도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 다음에

속죄제가 오는 것이 정상적이고, 또 속죄의 당위성을 봐서라도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가 있은 다음에 속죄제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가 죄를 깨닫는 것을 봐도 우리는 번제와 소제와 화목제가

있은 다음에 우리 죄를 깨닫는 것이 정상적이고 실제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종교인들은 자기 생각 속에 있는 죄,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서의 죄가 아니라 독자적으로 자기 스스로

자기를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죄를 가지고 일생동안 씨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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