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 앵봉산을 걷다
2026년 6월 18일
유월의 푸른 숨결이 가득한 목요일
서울을 크게 한 바퀴 감싸 안는 서울둘레길의 21개 코스 중, 이름만 들어도 다리가 묵직해진다는 ‘최고 난이도’의 16코스를 마주했다.
바로 은평의 지붕이라 불리는 봉산과 앵봉산 구간이다.
지난해 3월, 아직 잔설의 기운이 가지도 않은 이 길을 셋이서 도란도란 걸었었다.
오늘은 고맙게도 든든한 길동무가 한 명 더 늘어 총 네 명의 ‘독수리 사형제’가 출사표를 던졌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간다던가.
늘어난 머릿수만큼 배가 될 추억을 기대하며 가벼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산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해발 고도로만 보면 앵봉산(235.1m)과 봉산(209m)은 야산처럼 다정해 보이지만, 속살을 들여다보면 깊은 계곡과 숨 가쁜 봉우리들이 끝없이 밀당을 하는 거친 산이다.
특히 끝도 없이 펼쳐진 나무 계단들은 시작부터 숨을 턱턱 막히게 만들었다.
초입의 가파른 계단을 몇 개 오르자마자 누군가 약속이라도 한 듯 숨을 몰아쉬었다.
"오늘 급할 거 없잖아? 아주 천천히, 쉬엄쉬엄 가세나!"
만장일치였다.
우리는 속도경쟁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 푸른 오월과 유월의 경계를 즐기러 온 것이니까.
걸음의 속도를 늦추니 비로소 숲의 노랫소리가 들리고, 뺨을 스치는 싱그러운 바람이 느껴졌다.
조금 이른 점심 겸 간식 시간을 갖고, 숲속 벤치에 나란히 몸을 뉘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누려보는 야외 낮잠이었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을 이불 삼아 30분간 달콤한 오수(午睡)에 빠져들었다.
유월의 때이른 더위 탓인지 온몸이 찌뿌듯한 게 마치 물에 젖은 솜이불 같다.
서로의 부스스한 얼굴을 바라보며 허허실실 웃음을 터뜨리고는 다시 신발끈을 조여 맸다.
총 길이 10.2km. 누군가는 몇 시간이면 주파할 거리라지만, 우리의 시계는 무려 8시간 23분이 걸렸다.
숫자만 보면 느림보 걸음 같아도, 그 시간 속에는 삶의 깊은 대화와, 서로를 이끌어주던 손길과, 자연을 음미한 여유가 꽉꽉 채워져 있었다.
가장 험난하다는 코스였지만, 고맙게도 낙오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마침내 완보 도장을 찍는 순간, 다리는 천근만근 피곤했을지언정 마음만큼은 깃털처럼 가볍고 평온했다.
땀으로 흠뻑 젖은 하루의 마무리는 귀한 유황오리구이와 얼음처럼 차가운 맥주 한 잔!
목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찌릿한 맥주 한 모금에 오늘 흘린 땀방울이 눈 녹듯 사라진다.
"무사 완주를 위하여!"
부딪히는 잔 속에 유월의 푸른 추억이 찰랑이며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