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독후감

Re: 인간관계론Ⅱ

작성자구름재등|작성시간26.06.20|조회수36 목록 댓글 1

 
   존 블랭크 귀하
   귀사의 일이 번창하기를 기원합니다.
   
   이렇게 편지를 드린 건 귀사의 도움이 없이는 해결하기 힘든 어려움이 있어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상황을 정리해 보자. 애리조나주에 있는 목재 딜러가 존스 맨빌의 임원으로부터 이런 편지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데 편지 서두에 뉴욕의 이 유명한 임원이 상대방에게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도와달라고 한다. 애리조나주의 딜러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뉴욕에 있는 이 친구가 무언가 도움이 필요하다면 사람을 제대로 찾아왔군. 나는 언제나 너그럽게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했으니 말이야. 자, 어디 무슨 문제인지 한번 살펴볼까?)
 
   지난 해 저는 지붕 재처리재의 판매를 높이기 위해 딜러들이 본사에 가장 절실히 바라는것은 연중 끊임없이 DM을 발송하는 것이며, 그 비용은 본사가 부담해야 한다는 점을 회사 측에 설득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애리조나주의 딜러는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당연히 당신네가 부담해야지. 이익의 대부분을 당신네가 가져가니 말이야. 나는 임대료 내기도 버거운 상황인데 당신네는 수백만 달러를 벌잖아. 근데 이 친구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거야?')
 
   최근 저는 DM 계획에 참여했던 1,600명의 딜러들에게 설문지를 발송했고, 수백 통의 답변을 받았습니다. 보내 주신 답변은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며, 기꺼이 협조해 주신 딜러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런 결과에 힘입어 딜러 여러분에게 더 큰 도움이 될 새로운 DM계획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전년도 계획 시행 결과를 보고하는 회의에서 대표 이사로부터 실제로 매출과 연결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대표 이사라면 누구든 물을 만한 질문이었습니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 딜러 여러분께 도움을 청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표현은 괜찮은 표현이다. "여기에 답하기 위해서 딜러여러분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뉴욕의 거물이 속내를 털어놓고 있다. 이 말은 그가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애리조나주에 있는 존스 맨빌의 거래 상대를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리고 다이크가 자기 회사가 얼마나 큰 회사인지 이야기하는 데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히려 그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얼마나 의지하고 있는지를 솔직하고 부드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다이크는 상대방의 도움 없이는 회사 대표에게 올리는 보고서도 작성하지 못한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애리조나주에 있는 딜러도 인간인지라 이런 식의 어투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도움을 요청하는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지난해 발송된 DM이 어느 정도나 실제로 지붕 작업이나 지붕 재처리 작업으로 연결되었는지,
   2. 작업에 투여한 비용 기준으로 매출액이 얼마나되는지, 가능하면 센트까지 정확하게 계산하셔서 동봉한 엽서에 적어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내 주신 정보는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며, 친절하게 도움을 주신 점에 미리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판촉 담장 매니저
                                                                                                                           켄 다이크 올림
 
(마지막 문단에서 그가 얼마나 '나'는 낮추면서 '상대방'은 높이고 있는지 주목해 보기 바란다. 그가 '유용하게', '친절하게', '감사' 등의 말을 얼마나 잘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도 주목하기 바란다.)
 
 
나는 내 동향 출신 작가 호머 크로이와 프랑스 내륙 지방을 자동차로 여행하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구식 T형 포드를 길가에 세우고 근처 농부들에게 어디로 가야 가까운 읍내로 갈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깜짝 놀랄 만한 반응이 왔다. 나무로 만든 신발을 신고 있던 그 농부들은 미국 사람이면 누구나 부자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는 자동차를 보는 것도 정말로 드문 일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프랑스 여행을 하는 미국인들이라니! 아마 백만장자로 보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헨리 포드의 사촌 정도 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들보다 돈이 많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가까운 읍내로 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공손하게 그들에게 물어보아야 했던 것이다. 그것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무척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모두가 한꺼번에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 이런 드문 기회를 놓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한 사람이 얼른 나서서 다른 모든 사람의 입을 다물게 했다. 길을 가르쳐 주는 뿌듯함을 혼자서 독점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러분돠 한번 해 보기 바란다. 낯선 도시에 가게 되면 경제적인 면이아 사회적인 지위 면에서 여러분보다 낮은 사람을 붙잡고 이렇게 물어보라. "조금 곤란한 상황인데,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이러저러한 곳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실 수 있으실까요?"
 
 
   벤저민 프랭클린 역시 이런 방법을 써서 자신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적을 평생의 친구로 만들었다. 젊은 시절 프랭클린은 자신의 모든 저축액을 조그만 인쇄 회사에 투자해 놓고 있었다. 때마침 그는 필라델피아 의회에 선출직 직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모든 공문서 인쇄를 관장하는 자리였다. 이 일은 수입도 무척 좋은 자리여서 그는 그 자리를 유지하고자 했다. 하지만 위기가 닥쳐왔다. 돈많은 거물급 의원 한 명이 그를 무척 싫어했던 것이다. 단지 싫어할 뿐만 아니라 공공연하게 비난하고 다녔다. 
   위험해도 아주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프랭클린은 그 의원이 자기를 좋아하게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는 그것에 있었다. 적에게 호의를 베풀어서 될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았다. 그건 상대방의 의심을 살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비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초보적인 함정에 빠지기에는 프랭클린은 훨씬 현명하고 노련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와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적에게 호의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프랭클린은 돈을 좀 빌려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다. 그런 종류의 부탁은 절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상대방을 기쁘게 하는 부탁, 상대방의 허영심을 채워 주는 부탁,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부탁, 자신이 상대방의 지식과 업적을 존경하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그런 부탁을 했다.
   나머지 이야기는 프랭클린 본인을 통해 직접 들어 보자.
 
   "그의 장서 중에 대단히 진귀한 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써서 그 책을 꼭 한번 보고 싶으니 며칠만 빌려줄 수 없느냐고 부탁했다. 그는 즉시 책을 보내 왔다. 나는 그 책을 일주일 정도 가지고 있다가 그의 호의에 정말 감사한다는 말과 함께 돌려보냈다. 의회에서 그를 다시 만났을 때 그는 대단히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이전에는 그가 나에게 말을 건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그는 내 부탁은 언제든 기꺼이 들어주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너무나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우리의 우정은 그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와서 놀라는 이유 중의 하나; 지하 깊은 곳에서 폰 영상이 안 끊긴다. )
 
   프랭클린이 사망한 지 이제 150년도 넘게 지났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호의를 요청함으로써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던 그의 방법은 수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내 강좌의 수강생인 앨버트 B. 암젤은 배관 및 난방 장치를 판매한다. 그는 브루클린에 있는 한 배관업자를 고객으로 잡으려고 무척 애쓰고 있었다. 배관업자는 사업 규모도 무척 컸고, 신용도도 매우 좋았다. 하지만 암젤의 시도는 처음부터 난관에 걸려 넘어졌다. 배관업자는 거칠고 심술궂은 것을 자랑으로 삼는, 대하기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암젤이 그의 사무실에 들어설 때마다그는 입 한쪽에 시가를 물고 책상 뒤에 앉은 채로 그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오늘은 아무것도 안 사. 서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고. 자, 어서 나가!"
   그러던 어느 날 암젤은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그결과 거래를 시작하게 되었고, 친구 사이가 되면서 새로운 주문도 많이 받게 되었다. 
 
   암젤이 다니던 회사는 롱아일랜드의 퀸스 빌리지에 대리점을 새로 내려고 사무실 임대 관련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그지역에 대해서는 배관업자가 잘 알고 있고 또 사업도 많이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사무실을 다시 찾아갔을 때 암젤은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오늘은 무엇을 팔려고 온 게 아닙니다. 괜찮으시다면 부탁하나만 드릴까 해서 들렀습니다. 시간을 약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배관업자가 시가를 옮겨 물며 대답했다. "그럽시다. 무슨 일이요? 얼른 말해 보시오."
   그래서 암젤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 회사가 이번에 퀸스 빌리지에 새로 대리점을 열 계획인데, 그 지역은 사장님께서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지역 아닙니까? 그래서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구하러 왔습니다. 이 지역으로 오는 게 잘하는 일일까요?" 
 
   이것은 새로운 상황이었다. 몇 년 동안이나 이 배관업자는 세일즈맨을 쫓아내고 어서 나가라고 소리치는 데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껴 왔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세일즈맨이 조언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중요한 문제를 위해 자신에게 묻는 세일즈맨이라니.
   "여기 앉으시게." 그는 의자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시간 동안 그는 퀸스 빌리지의 배관업 시장에 관한 세세한 장단점에 대해 설명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상품 구매에서부터 재고를 정리하는 방법, 사업을 개시할 때의 주의점 등 모든 과정에 관한 행동 방침에 대해 자신이 아는 정보를 모두 꺼내 조언해 주었다. 
   그는 배관 자재를 도매로 공급하는 회사를 상대로 어떻게 장사해야 하는지 일러 주면서 자신이 인정받는 존재가된 느낌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개인적 영역으로까지 화제를 넓혀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렇게 점점 친해지더니 그는 결국 암젤에게 자신의 내밀한 집안 문제와 부부 사이의 다툼에 대해서까지 말하게 되었다. (외국인이 받은 충격적 모습; 10만원 밖에 안 되는 진료비에 놀라다. 내 아버지가 아팠지만 병원에 모시고 갈 수 없어서 돌아가셨다'는 아픈 회억으로 나는 창문을 열고 눈물을 흘렸다. 거리는 지금 비가 내리고 있다.)
 
   그 친구가 이렇게 변한 이유요? 그건 내가 그 친구에게 자신이 인정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그런 부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위에 이와 비슷한 메뉴얼(ㅎ)이 위에 하나 '떡 하니 버티고' 있지만 왜 이 편지가 기적의 5배나되는 결과를 거둘 수 있었는지 다시 한번 정색하고 읽어 볼 일이다.
 
   친애하는 아무개 씨
   이렇게 편지를 드린 건 저희에게 귀사의 도움 없이는 풀기 힘든 어려움이 있어 귀사의 도움을 청하고자입니다. 
   1년 전쯤 저는 카탈로그를 제공해야 한다고 회사를 설득했습니다. 왜냐하면 건축 회사들이 저희 회사에 가장 바라는 것은 건물을 수리하거나 리모델링하는 데 사용되는 모든 건축 자재와 부품을 볼 수 있는 카탈로그였기 때문입니다. 
   첨부해 드리는 자료는 그 결과로 나온 카탈로그이며, 이런 종류로는 처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재고가 거의 떨어지는 중이어서 이런 사실을 대표 이사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랬더니 대표 이사는 카탈로그가 원래 기획의도대로 제 역할을 다했다는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면 다시 새로 제작에 들어가도 괜찮다는 말을 했습니다. 어떤 대표 이사든 이런 질문을 하겠지만요. 
   그리하여 어쩔 수 없이 여러분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결례를 무릅쓰고 전국 각처에 있는 49개 업체 여러분에게 배심원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드리는 바입니다. 
   바쁘실 테니, 수고를 덜어 드리기 위해  이 편지 뒤에간단한 질문을 첨부했습니다. 답을 표시해 주시고, 혹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으면 덧붙여 적으신 다음, 동봉하는 회신용 봉투에 넣어 보내 주시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반드시 하셔야 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카탈로그가 여기에서 중지되어야 할지, 아니면 여러분의 경험과 조언을 바탕으로 다시 제작해야 할지 여러분의 의견에 따라결정하고자 합니다. 
   어떤 경우이든 여러분의 협력에 제가 진심 어린 감사의 뜻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판촉 담장 매니저
                                                                                                              캔 R. 다이크 드림
 
 
자, 다시 한번 당부의 말을 해야겠다. 이 편지를 읽고 여기에 사용된 심리 활용법을 기계적으로 베끼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진실하고 사실적인 칭찬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첨과 사탕발림으로 상대방의 자부심에 헛된 바람을 넣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칭찬과 인정을 갈망한다. 또 그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려고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하지만 누구도 사탕발림은 원하지 않는다. 아첨도 마찬가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에서 가르치는 원칙들은 여러분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올 때에만 효과가 있다. 나는 잔재주를 알려 주려고 이 책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나는 새로운 방식의 삶에 대해 말하고 있다. 
 


 
 
PART 6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7가지 방법

Aeven Rules For Making Your Home Life Happier

 

   내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건 사랑이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 사소한 일로 가(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Tis not love's going hurts my days, But that it went in little ways. 
 
 
1

결혼 생활의 무덤을 파는 방법

How to Dig your Marital Grave in the Quickest Possible Way

 

   지금으로부터 75년 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는 테바의 백작이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마리 유지니를 사랑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  황제 주변 사람들은 그녀가 스페인의 이름 없는 백작의 딸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했는데, 이에 대해 나폴레옹은 이렇게 대꾸했다. 

   "그래서 어떻다는 말인가?" 그녀가 보여주는 위엄, 젊음, 매력, 아름다움이 그에게 참된 행복을 맛보게 해 주었다. 황제의 자리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그는 모든 사람의 반대를 물리쳤다.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여인을 선택했노라." 

 

   행복과 부, 권력, 명예, 미모, 사랑, 존경 등 나폴레옹 3세 부부는 완벽한 사랑 이야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결혼이 만들어 내는 신성한 불빛이 이처럼 환하게 비친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이 신성한 불빛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타오르던 불꽃도 차가워지더니 이내 재가 되어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나폴레옹 3세는 유지니를 황후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 황제가 가진 어떤 능력으로도, 황제가 보여 주는 사랑도, 황제의 권좌에서 나오는 권능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녀의 잔소리였다.

 

   우지니는 질투에 눈이 멀고 의심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래서 황제의 명령도 가볍게 여기고, 황제가 혼자 있고 싶다고 해도 그 말을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녀는 국정을 논하는 공식 석상에도 마음대로 들어가기도 했다. 황제의 가장 중요한 회의를 훼방 놓기도 했다. 황제가 혼자 있겠다고 해도 다른 여자와 놀아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절대로 혼자 두는 법이 없었다. 언니에게 달려가서 남편을 험담하고, 불평하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항제의 서재로 밀고 들어가서는 온갖 잔소리와 욕설을 퍼부어 댔다. 호화스러운 궁전을 수도 없이 가지고 있던 나폴레옹 3세였지만, 그가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곳은 그 넓은 궁전에서 한 군데도 없었다.

 

   유지니가 이 모든 행동으로 과연 무엇을 얻은 것일까? 

 

   자, 여기에 답이 있다. E. A. 라인하르트의 명저 『나폴레옹과 유지니: 제국의 희비극』에서 인용해 보겠다. 

   "그리하여 나폴레옹은 밤이면 자주 부드러운 모자를 깊숙이 눌러 써 얼굴을 가리고 작은 문을 통해 궁전을 몰래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때때로 가까운 친구와 둘이서만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여인에게로 실제로 가기도 하고, 때로는 예전 모습 그대로의 큰 도시 이곳저곳을 걷다가 동화 속에서나 나올 듯한 거리를 지낙며, 유지니가 잔소리를 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상념에 빠지곤 했다."

 

   유지니의 잔소리가 가져온 결과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그녀가 프랑스의 권좌에 앉았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었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권세나 아름다움도 잔소리라는 치명적 결함 앞에서는 사랑이 시들어 버리게 했다. 유지니는 오래전 욥이 했던 것처럼 소리 높여 울부짖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심히 두려워하던 것이 나에게 닥쳤노라." 그녀엑 닥쳐 온 것일까? 그 가련한 여인은 질투와 잔소리를 통해 그런 결과를 초래했다. 

 

   잔소리, 그것은 사랑을 깨뜨리기 위해 지옥의 모든 악마가 만들어 낸 수단 중에서 가장 확실하며 악독한 것이다. 잔소리는 졀대로 실패하는 경우가 없다. 마치 맹독을 지닌 뱀에게 물린 것처럼 그것은 언제나 파괴하고, 언제나 소멸시킨다.

 

   톨스토이의 부인은 너무나 늦게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죽기 전 딸들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너희 아버지를 죽게 한 주범은 바로 나란다."  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그들은 어머니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끊임없이 불평하고, 끊임없이 비난하고,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톨스토이 부부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행복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이었다. 톨스토이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소설가라 부를 만했다. 그의 걸작 『전쟁과 평화 』와 『안나 카레니나 』는 인류가 가진 문학적 보고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톨스토이는 어찌나 유명했던지 추종자들이 밤낮으로 그를 따라 다니면서 그가 말하는 한마디 한마디를 속기로 받아 적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이제 자러 가야 할 것 같군." 이라고 이야기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 적었다. 러시아 정부도 그가 쓴 모든 문장을 인쇄할 정도였다. 그의 글을 엮은 책만 해도 100권은 족히 넘을 것이다. 

 

   명예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톨스토이 부부는 부와 사회적 지위, 많은 자녀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축복받은 부부도 찾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그들의 행복이 너무 완벽하고, 너무 강렬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두 사람은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지고한 행복이 ㄲ지지 않게 해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를 올릴 정도였다. 

 

   그러다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톨스토이가 조금씩 변한 것이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자신이 쓴 걸작들에 대해서 부끄러워했을 뿐만 아니라, 그 후로는 평화를 설파하는 전단지를 쓰는 일과 전쟁과 굶주림을 물리치는 일에 남은 생애를 바쳤다. 

 

   언젠가 자신이 젊었을 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죄를 고백했던 사람, 심지어 살인까지도 저질렀노라고 고백했던 이 사람이 이제는 글자 그대로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그는 자신이 소유한 땅을 모두 나누어 주고 빈자의 삶을 살았다. 그는 들판에 나가 나무를 베고 건초 더미를 쌓는 일을 했다. 신발을 직접 만들어 신고, 자신의 방을 직접 치우고, 나무 소재의 식기를 사용하며, 원수까지도사랑하려고 애썼다. 

 

   톨스토이의 삶은 비극이었다. 그리고 그 비극의 원인은 결혼에 있었다. 그의 아내는 사치를 좋아한 반면 그는 사치를 경멸했다. 그녀는 명성과 사회적 갈채를 좋아한 반면 그에게 이런 하찮은 것들은 절대로 유의미한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녀는 돈과 재산을 원한 반면 그는 부와 사적 소유는 죄라고 믿었다. 

 

   그가 자신의 책에 대한 판권을 아무런 대가 없이 포기하겠다고 고집하자, 몇 년 동안 그녀는 잔소리하고 야단치고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녀는 그 책들이 벌어 주는 돈을 원했다. 

 

   그가 말을 듣지 않으면 그녀는 히스테리에 빠져 입에 아편을 물고 마룻바닥을 떼굴떼굴 구르며 죽어버리겠다, 우물에 뛰들겠다고 톨스토이를 협박했다. 

   그들의 삶이 모두 다 이러했던 것만은 아니다. 다음과 같은 장면도 있었다. 이 장면이야말로 역사상 가장 슬픈 장면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미 말한 것처럼 결혼 초기에 그들은 너무나 행복한 순간을 수없이 맞이했다. 하지만 48년이지난 시점이 되자 그는 아내를 쳐다보는 것마저 끔찍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저녁이면 종종 상심한 아내는 애정에 굶주려서 그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앉아 50년 전 그가자신에 대한 사랑을 멋지게 노래한 일기 한 구절을 소리 내어 읽어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그러면 톨스토이는 이제는 사라져 버리고 남아 있지 않은 그 아름답고 행복했던 시절에 대해 읊곤 했다. 그러다가 부부는 모두 울음을 터뜨렸다. 오래전 그들이 꿈꾸던 아름다운 사랑과 현실의 삶은 너무 많이 달랐던 것이다.

   마침내 82세가 되었을 때, 톨스토이는 자기 가정의 불행을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아내로부터 도망쳤다. 1910년 10월 어느 눈 내리는 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차가운 어둠 속으로 끝없이 내달렸다. 

   11일 후 그는 기차 정거장에서 폐렴으로 죽은 채 발견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있는 곳에 아내가나타나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것이 그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다. 톨스토이 부인이 잔소리하고 불평하고 히스테리를 부린 결과는 다소('다소'는 왜 궂이 첨가했을까. 차라리 없애는 게 더 참담하게 느껴진다.) 참담했다.

(오늘은 토요일 2026년 6월 20일, 이 책의 끝부분을 다시 새 장에서 시작한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집자를 하고, 그 집자한 부분에서 갑자가 뻔적 하고 집자한 내용들이 사라져버렸고, 버벅 거리는 화면창이 생겼다가 재부팅하였고, 사라진 그 부분을 다시 집자하는 아픔 속에 오후에는 냉장고 전기가나갔다. 40A  메인 차단기를 교체하면서 우서방의 코치에 따라 물건을 샀으며, 활선을 조심하며 마침내 교체하여 정상운전하고 있다. 그런 오늘 아내의 생일 "내 생일인데 술을 안 먹겠다니요?" 속눈썹을 크게 떠서 어마 무셔라~~ 하고 웃는다. 술을 먹으면 깊은 속에서 청명치 않은 기류가 올라옴을 알기로 현재시간 19:04)

 

 

(21:39, 가족 모두 모여서 아내 생일 축하파티. 도토리묵, 날개와 다리의 치킨. 부드러운 돼지고기살, 청주에서 올라온 이서방, 토요일에도 출근했던 우서방, 오늘따라 울먹이는 도아는 지금은 웃고 있어요. 앉았다가 두번이나 뒤로 넘어졌대요. 과자를 챙기는 로아, 소소가 여섯개의 과자를 사줌. 오늘 교체한 차단기에 대하여 이서방에게 설명. 삼상 사선, 활선과 N선에 대하여. 이서방 지금은 잘 모를수도 있지만, 오늘 전기의 세계로 첫 발걸음 했다고 생각하게. 전기를 배워 놓으면 삶이 달라진다네. 거실은 술이 올라 떠들어대는 소소와 아내의 웃음소리 로아맘의 조용한 말과 로아의 노랫소리 등등 시끌벅적하다. 평민의 저녁이 있는 삶이 아마도 이럴 것이다.)

 

   잔소리할 만하니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독자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좋다. 그렇다고 하자. 하지만 지금 골자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잔소리를 해서 문제가 해결되었느냐, 아니면 문제가 극단적으로 악화되었느냐를 살펴보는 것이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드는구나.' 이것이 톨스토이 부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생애를 대단한 비극으로 만든 것도 역시 결혼이었다. 암살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점에 주목해 주기를 바란다.  부스가 저격했을 당시 링컨은 자신이 총에 맞았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23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그의 동료 변호사인 헌든의 표현대로 '가정불화의 고역'을 감내해야 했다. 이것도 완곡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25년 동안이나 링컨 부인은 끊임없는 잔소리로 남편을 괴롭혔다. 

   그녀는 항상 불만을 토로했고 남편을 비난했다. 남편에게는 마음에 드는 구석을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걸음걸이만 해도 그렇다. 남편은 등을 앞으로 구부린 채 인디언처럼 발을 똑바로 들었다 내렸다 하면서 다소 어색하게 걸었다. 그녀는 그의 걸음걸이를 보며 탄력이 없고 움직임에 우아함이 없다고 잔소리를 쏟아 냈다. 그녀는 그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자신이 마담 렌텔이 운영하는 렉싱턴의 기숙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발 앞쪽 끝을 먼저 디디며 걸으라고 바가지를 잔뜩 긁었다. 

   그녀는 머리에서 바로 위쪽으로 솟아 있는 그의 커다란 귀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심지어는 코가 삐뚤어졌다, 아랫입술이 튀어나왔다, 폐병환자처럼 보인다, 손발이 너무 크다, 머리는 너무 작다는 식의 말을 서슴없이 퍼붓기도 했다.(이 정도면 미친년 아닌가!)  

   에이브러햄 링컨과 부인 메리 토드 링컨은 교육, 환경, 기질, 취미, 사고방식 등 모든 면에서 서로 차이를 보였다. 그들은 늘 서로의 행동을 보며 기분이 나빠졌다. 

   당대 최고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는 앨버트 J. 베버리지 상원의원은 이렇게 적었다. "링컨 부인의 크고 날카로운 목소리는 길 건너편에서도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그 근처에 사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화를 터뜨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언제든 들을 수 있었다. 말로만 끝나지 않는 경우도 꽤나 많았다. 그녀가 폭력을 행사한 적이 많다는 것은 여러 사람이 익히 아는 사실이다." 

 

   한 가지 예를 살펴보자.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링컨 부부는 제이콥 얼리 여사의 집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여사는 의사인 남편이 죽은 후 하숙을 내야 할 처지에 있었다. 어느 날 링컨 부부가 아침을 먹고 있는데 링컨이 아내의 화를 돋우는 어던 행동을 했다. 그게 무엇인지 아무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미 화가 머리 끝까지 치솟은 링컨 부인은 뜨거운 커피를 남편의 얼굴에 확 끼얹어 버렸다. 더군다나 그 자리에는 그 둘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다른 하숙생들도 있었다. 주변이 조용한 가운데 링컨은 아무 말도 없이 모욕을 당한 채 앉아 있었고, 얼리 여사가 젖은 수건을 가져다 그의 얼굴과 옷을 깨끗이 닦아 주었다. 

 

   링컨 부인이 보여 주었던 질투가 어찌나 어처구니없고 극심하고 또 믿기 힘든 정도였는지, 75년이 지난 지금 그녀가 공공연히 벌였던 슬프고도 볼썽사나운 장면들에 대해서 단지 읽는 것만으로도 기가 찰 지경이다. 그녀는 끝내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고 말았다. 조금이라도 그녀에 대해 좋은 방향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초기 정신 이상 증세의 영향을 늘 받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녀가 했던 그 잔소리와 비난과 호통이 링컨을 조금이라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켰을까? 어떤 면에서는 한 가지 정도는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 그녀에 대한 링컨의 태도를 달라지게 했다. 링컨으로 하여금 자신의 불행한 결혼에 대해 후회하게 만들었다. 될 수 있으면 아내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게 만들었다. 

 

   스프링필드에는 변호사가 11명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그곳에서 먹고사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말안장에 짐을 싣고 데이비드 데이비스 판사가 재판하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며 법정에 서곤 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제8회 순회 법정이라면 어느 시골 마을에서든 일을 따낼 수 있었다 

 

   모든 변호사들이 일요일이 되면 스프링필드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냈다. 하지만 링컨만은 예외였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기가 두려웠다. 봄철 3개월, 그리고 다시 가을철 3개월 동안 그는 순회 법정을 따라 각지로 돌아다녔고 스프링필드 근처로는 절대로 가지 않았다. 이런 상태는 몇 년씩이나 계속되었다. 지방호텔의 생활 환경은 열악할 때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링컨은 집으로 돌아가 끊임없이 잔소리를 듣고 분을 못 이기고 미쳐 날뛰는 아내를 보고 싶지 않았다. 

 

   링컨 영부인이나 유지니 황후, 톨스토이 부인이 잔소리를 해서 얻은 결과는 이런 것들이었다. 그들이 한 것은 자신의 인생을 비극으로 만든 것뿐이다. 자신들이 가장 아끼는 것들을 부수었을 뿐이다. 

 

   남편들이 집을 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아내의 잔소리 때문이라고 한다. <보스턴 포스트>는 이런 관계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이 세상 아내들은 잔소리라는 삽으로 조금씩 결혼 생활이라는 무덤을 파고 있다."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음 방법과 괕이 해보라!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방법 1

   잔소리하지 말라.

   Don't, don't nag.

 

2

상대방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Love and Let Live

 

   "살아가면서 바보 같은 짓을 많이 저지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랑 때문에 결혼하는 미련한 짓은 절대 하지 않겠다."

   이것은 영국 재상 디즈레일리가 한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연애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는 35세가 될 때까지 독신으로 지내다가 자신보다 15세  연상의 어느 미망인에게 청혼했다. 50년이 세월이 흐른 그녀의 머리는 이미 희끗희끗해지고 있었다. 사랑 때문에 가능했을가? 아니다. 그녀도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끔 1년만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약속된 시간이 지났을 때, 그녀는 그와 결혼했다. 

(집자 終. 23:14 장도영, 용문산 전투, 청성부대 패잔병들과 중국군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다. 나는 자야 하고 졸립다.)

 

 

(26/6/22, 월 07:23) '집자를 하려다가 아마도 못하고 Off 한 거 같아'

 

 

(26/6/22, 월 21:32  논산 훈련소 간 전주임은 아들을 내려 놓고 울지 않았을까?  휴가를 낸 오늘, 탁소장과 가능하면 외면한 채 별채에서 '내일을 기다려' 악보를 완성했다. 그 기조는 오후 늦게 네시 넘어서 떡.참외.계란이 얹힌 접시를 보면서 풀렸다. '살림은 좀 하는가보구나.' 점심 전에 공창호회장님이 와서 전동드라이브를 빌려 가셨다. 바야흐로 더위가 찾아오면 인간관계는 어떻게 변화시켜야 좋을지 성찰해야만 하리라. 매년 점점 더 더워지리라 생각하니 걱정이 짜장 앞선다. 정빈이가 그런 투의 말을 단톡에 올려서 그냥 웃고 말았는데...)

 

   너무 밋밋하고 계산적이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불화와 싸움으로 얼룩진 결혼의 역사에서 디즈레일리의 결혼은 가장 뛰어난 성공 사례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디즈레일리가 선택한 부유한 미망인은 젊지도 않았다. 아름답지도 않았다. 똑똑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았다. 그녀는 문학과 역사에 대해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는 말을 해서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그녀는 그리스 시대가 먼저인지 로마 시대가 먼저인지조차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결혼 생활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는 천재적인 면이 있었다. 그것은 남편을 다루는 기술이었다. 

   그녀는 지적인 면에서 디즈레일리와 자신을 견주려 하지 않았다. 그가 똑똑한 부인들과 오후 내내 지겹도록 대화를 주고 받다 지쳐 집에 들어오면, 메리 앤은 가벼운 대화로 그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집은 그가 정신적 긴장을 풀고 메리 앤의 따뜻한 애정을 느끼며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러한 점에 대해 더욱더 기쁨을 느꼈다. 나이 들어가는 아내와 함께 집에서 보낸 이 시간이야말로 그의 삶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그를 도와주는 협력자이자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는 믿음직한 친구였으며, 그에게 아낌없이 솔직하게 충고해 주는 조언자였다. 매일 저녁 그는 하원에서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말하기 위해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 점이 중요한 부분인데, 그녀는 그가 어떤 일을 맡든 실패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30년이라는 세월 동안 메리 앤은 오로지 그만을 위해 살았다. 남편을 편히 살 수 있게 해 주는 것 때문에 그녀에게는 가지고 있던 재산조차도 가치가 있었다. 그런 대가로 그는 그녀를 우상처럼 여겼다. 그는 그녀가 죽은 후 백작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작위를 받기도 전에 자신의 아내도 자신과 같은 작위를 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빅토리아 여왕에게 간청했다. 그리하여 그가 백작이 되던 해인 1868년 그녀 역시 비콘스필드 백작 부인으로 봉해졌다. 

   그녀가 사람들 앞에서 아무리 바보처럼 보여도, 그리고 정신없이 행동하더라도 그는 그녀를 나무라는 법이 결코 없었다. 그녀를 질책하는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누구든지 감히 그녀를 비웃으려 하면, 그는 넘치는 애정으로 그녀를 옹호하고 나섰다.

   메리 앤은 절대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30년 동안 끊임없이 자신의 남편을 자랑하고, 칭찬하며, 존경했다. 생각해 보자. 그 결과는 어떤 것이었을까? 디즈레일리는 말했다. 

   "결혼한 지 30년이 지났지만 나는 한 번도 권태기라는 것을 느껴 본 적이 없다." 

   디즈레일리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메리 앤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결과는어땠을까? 메리 앤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남편 때문에 행복이 끊이지를 않아."

   그 둘 사이에는 서로 주고받는 농담이 있었다. "내가 돈만 보고 당신과 결혼했다는 거 알지?" 디즈레일리가 이렇게 얘기하면 메리 앤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이죠. 하지만 다시 결혼하게 된다면, 그때는 사랑 때문에 나와 결혼할 거예요. 그렇죠?" 그러면 그도 그녀의 말이 옳다고 인정했다. 

   메리 앤은 완벽하지 않았다. 하지만 디즈레일리에게는 그녀를 자신의 모습 그대로 놔두는 현명함이 있었다

 

   헨리 제임스가 한 말을 꼭 기억하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상대방이 나의 행복 추구 방식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나도 상대방의 독특한 행복 추구 방식을 그대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가족으로 함께 성장하기 』라는 책에서 릴랜드 포스터 우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자신에게 꼭 어울리는 사람을 고른다고 해서 성공적인 결혼생활이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자신도 꼭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음 방법과 같이 해 보라!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방법 2

   상대방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지 말라.

   Don't try to make your partner over.

 

 

3

이혼으로 가는 지름길

Do This and You'll Be Looking Up the Time-Tables to Reno

 

   "텁석부리 남편에 말괄량이 아내.

   세상 어떤 고난도 두렵지 않다네."

 

   글래드스턴은 정적에게는 무서운 사람인 반면 집에서는 절대 비판하는 법이 없었다. 만약 아침을 먹으러 갔는데 식구들이 아직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만의 온건한 방식으로 식구들을 나무랐다. 그는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래를 목청껏 불러 댐으로써 영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혼자 식탁에 앉아 식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리는 방법을 택했다.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 또한 그랬다. 여제가 다스린 나라는 인류역사상 가장 큰 제국의 하나였다. 그녀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던 국민만 하더라도 무려 수백만 명에 달했다. 여제는 정치적으로 종종 잔인한 폭군의 면모를 드러내며 쓸데없이 전쟁을 일으키거나 수많은 정적을 총살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요리사가 고기를 태웠을 때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미소를 보이며 그냥 먹었다. 이런 참을성은 미국의 대다수 남편들도 배울 만한 점이다.

 

   가정불화의 원인에 대해 미국 최고의 권위자인 도로시 딕스는 전체 결혼은 50%이상이 '실패'하고 있다고 확고하게 이야기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결혼이 이혼이라는 바위에 부짖쳐 깨지는 이유가운데 하나가 상대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비난이다.

   자녀를 꾸짖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여러분은 아마 여기에서 '하지 말라'는 말이 나오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틀렸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미국 잡지에 실린 글 중 최고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아버지는 잊어버린다」라는 글을 꾸짖기 전에 읽어 보라는 것이다. 작가의 동의를 얻어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요약본을 옮긴다.

 

   「아버지는 잊어버린다 」라는 글은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 써 내려간 짧은 글이지만, 많은 독자의 마음 문을 두드리면서 지금껏 수많은 사람이 항상 가까이 두고 읽는 명문으로 인정받고 있다. 글의 저자인 W.리빙스턴 라니드는

   "약 15년 전 처음 나온 이래로 「아버지는 잊어버린다』는 전국 각지 수백 종의 잡지와 사보, 신문에 실렸다. 또한 외국어로 번역된 경우도 그에 못잖다. 학교나 교회, 강단에서 내 글을 읽고 싶다고해서 허락한 경우만 해도 수천 번에 이른다. 방송으로 나간 횟수도 셀 수 없을 정도다. 가끔 짧은 글이 이상하게 '잘나가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이 글이 그런 경우다."라고 밝혔다. 

 

아버지는 잊어버린다

 

   아들아, 들어 보아라. 나는 지금 너의 잠든 모습을 보며 이 말을 한다. 고양이 발처럼 보드라운 주먹이 너의 뺨을 바치고 있고, 땀에 젖은 이마에는 곱실거리는 금발이 몇 가닥 붙어 있구나. 아빠는 네가 자는 방으로 혼자 조용히 들어왔단다. 조금 전 서재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감정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으로 네 침대로 왔단다. 

   아들아, 네게 화냈던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단다. 학교를 가려고 준비할 때 고양이 세수만 한다고 나는 너를 다그쳤지. 신발이 왜 그리 지저분하냐며 꾸짖고, 물건을 바닥에 내팽개친다고 화를 냈지. 

   아침 먹을 때도 잔소리를 했구나. 흘리지 말고 먹어라, 꼭꼭 씹어서 삼켜라, 팔을 괴고 먹지 마라, 버터를 너무 많이 바르는 것 아니냐 하면서 말이다. 내가 집을 나설 때 너는 놀러 가다가도 나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 아빠!" 했는데, 나는 인상을 쓰며 "어깨 펴고!" 라는 대답만 하고 말았구나.

   저녁에도 똑같은 일을 한 것 같구나. 집에 오는데 네가 무릎을 꿇고 구슬치기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단다. 네 양말에는 구멍이 숭숭 나 있었지. 집으로 오면서 너 보고 앞장서서 가라고 해서 네 친구들 앞에서 망신을 주고 말았구나. "양말이 얼마나 비싼데...... 네가 번 돈으로 양말을 산다면 이렇게 함부로 신지는 않겠지?" 이런 이야기를 하다니, 아들아, 아빠는 너무 많이 부끄럽구나.

   저녁에 서재에서 일하고 있는데 네가 상처받은 눈빛으로 살며시 서재로 들어 왔던 모습 기억하고 있지? 누가 방해하나 하고 짜증이 나서 내가 서류 너머로 쳐다보았을 때였다 너는 문가에서 망설이고 있었지! 아빠는 "그래, 원하는 것이 뭔데?" 하고 날카롭게 말했지.

   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갑자기 달려와서 내 목을 끌어안으며 나에게 입 맞추고는 조그만 팔로 나를 꼭 안아주었지. 네 가슴에 하느님이 주신 사랑이, 아무리 돌보지 않아도 결코 시들지 않는 사랑이 충만해 있는 것이 전해 오더구나. 그러고 나서 너는 탁탁거리는 발걸음 소리를 남기고 네 방으로 갔지.

   아들아, 네가 간 직후 아빠는 가슴이 저릴 정도로 무시무시한 두려움이 갑자기 밀려왔단다. 얼마나 무서웠던지 그만 서류를 떨어뜨릴 정도였지, 아, 나는 습관적으로 어떤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습관적으로 꾸짖고 야단치고...... 우리 아들이 되어 준 고마운 너에게 아빠가 주는 보상이 고작 이런 것들이었다니! 하지만 아빠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은 아니란다. 단지 아직은 어린 너에게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란다. 나는 어른의 잣대로 너를 판단하고 있었던 거야.

(금일 집자 終. 현재시간 10:30분 상기 글은 한 페이지 정도가 더 남았으므로 손가락이 아파서 내일로 넘긴다. 눈물 한 방울과 함께.. 우리 딸 은지. 서정이가 어렸을 때 혼줄을 잘만 내던 하사 출신의 이 못난 아빠라니ㅜㅜ)

 

 

(26/6/23, 성철선사의 제자였다는 분의, 아침에 일어나서 첫 발성의 중요성을 설파한 유튜버 방송을 보았다. 아침의 발성은 간단하다. "감사합니다. 모든 게 열려 있습니다." 

   하루를 끝내고 잠자리에 들면 또한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하루의 인연들에 감사를 전하고, 하루 내 나를 억압하던 두려움을 내려놓는다고 고백하며 마지막으로는 평화가 내 삶 안으로 흘러 들어옴을 맞이합니다 라며 맺는다. 이후는 조용히 잠을 청하면 된다. 7~8시간 동안 내 몸은 자연치유의 소중한 원기충천이 되는 것이다.)

 

   아들아, 너는 정말 착하고 좋은 아이란다. 조그만 네 몸 안에 언덕 너머로 밝아 오는 새벽만큼이나 넓은 마음이 들어 있다는 게 전해 왔단다. 네가 먼저 아빠에게 달려와 잘 자라고 입맞춰 줄 때 그것을 분명하게 느꼈단다. 아들아, 오늘 밤 나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단다. 아빠는 불도 켜지 않고 네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단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말이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건 아주 작은 속죄에 불과할지도 몰라. 네가 깨어 있을 때 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네가 잘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아빠도 잘 안단다. 하지만 약속할게. 내일 아빠는 진짜로 아빠다운 아빠가 되어 줄게. 네 친구가 되어서 너와 함께 즐거워하고, 너와 함께 아파할게. 혀를 깨무는 한이 있더라도 잔소리는 하지 않도록 할게. 주문처럼 이 말을 입에 달고 있을게. "아직은 아이일 뿐이다. 어린아이일 뿐이다."라고 말이야.

   아빠는 그동안 너를 어른으로 보고 판단하고 있었던 것 같구나. 하지만 아들아, 이렇게 작은 침대에서 피곤한 듯 웅크리고 자고 있는 네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네가 아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다. 네가 엄마 어께에 머리를 얹고 엄마의 품에 안겨 있던 게 바로 엊그제 일인데 말이야. 그동안 나는 너무 많은 걸 바랐구나. 너무 많은 걸 바랐구나.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음 방법과 같이 해보라!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방법 3

   비난하지 말라.

   Don't criticize.

(아침집자 終. 오늘도 내게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게 열씨미, 동료들과 화합하며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07:07 )

 

 

(26/6/24. 수요일 맑음 06:02)

4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지름길

A Quick Way to Make Every Happy

 

   남자들은 아내를 고를 때 자신의 허영심을 채워 주고 자신을 우월하게 만들어 줄 의사가 있으며, 또 그럴 만한 매력이 있는 여자를 원한다. 기업 임원을 찾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여성 임원의 경우 한 번 정도는 점심 식사 초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녀는 아마도 자신이 대학에서 배운 '현대 철학의 흐름'이라는 이미 몇 번 써먹어 낡아 빠지 메뉴를 접시에 담아 내놓고 나서는, 자기 밥값은 자기가 내겠다고 우기기까지 할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그 이후로는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하지 못하고 혼자 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대학을 나오지 못한 타자수는(한 여자는) 점심 식사에 초대받으면, 자신을 에스코트 하는 사람만을 바라보며 "당신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라고 졸라 댄다. 그 결과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녀가 엄청난 미인은 아니지만, 나는 지금껏 그처럼 즐거운 대화 상대를 만나 본 적이 없네." 라고 이야기하게 된다. 

  

   이 말은 로스엔젤레스 가족 관계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 중인 폴 포피노의 말이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잘 차려 입고 예쁘게 보이려 하는 점을 꼭 칭찬해 주어야 한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의상에 대해 얼마나 진지한 관심을 있는지를 잘 모르거니와, 알았다고 해도 순식간에 잊어버린다. 예를 들면, 남자와 여자가 다른 남자와 여자를 만난 경우, 여자는 상대 남자를 쳐다보는 경우가 드물다. 여자는 대개 상대 여자가 얼마나 잘 차려 입었는지를 살핀다

   몇 년 전, 할머니가 98세를 끝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나는 30여 년 전에 찍은 할머니 사진을 보여 드린 적이 있다. 시력이 좋지 않으셨던 할머니는 사진을 잘 보실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하신 질문은 

   "내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니?" 하나였다. 

   100년 가까운 세월이 남긴 흔적을 고스란히 몸에 지닌 채 침대에 누워 지낸 세월만으로도 지쳐 버린, 이제 임종을 얼마 남기지 않은 고령의 할머니가, 자신의 딸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흐릿한 할머니가 30년 전에 자신이 어던 옷을 입고 있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니! 나는 할머니가 그 질문을 하셨을 때 침대 곁에 있었다. 그때 받은 충격은 앞으로도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남성 독자들 중에 자신이 5년 전에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마음 또한 조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자들은 다르다. 우리 미국 남성들은 그 점을 깨달아야 한다. 프랑스의 상류층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만나는 여성의 옷과 모자를 칭찬하도록 교육받는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거듭해서 칭찬하도록 교육받는다. 5천만 명이나 되는 프랑스 남성들이 그렇게 한다면, 매우 합리적이고 올바른 이야기라고 보아도 되는 것 아닐까? 

   한 놈부의 아내가 고된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에게 저녁 식사로 산더미만 한 건초 묶음을 내 왔다. 남편이 화내며 제정신이냐고 소리를 지르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런, 당신이 알아차릴 줄은 미처 몰랐네요. 지난 20년간 꼬박꼬박 요리를 해 왔는데, 그동안 당신은 건초를 먹고 있는지 맛있는 요리를 먹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을 내가 느낄 수 있게 해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요."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아쉬움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던 러시아 귀족들은 이런 점에서는 꽤나 훌륭한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제정 러시아 상류층에서는 훌륭한 요리를 즐기고 나면, 꼭 요리사를 불러내 요리에 대한 칭찬을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여러분의 아내에 대해서도 이 정도의 배려를 하는 것은 어떨까? 

   만일 닭고기 요리를 하는데 닭고기가 아주 맛있을 정도로 노릇노릇 구어져 나온다면, 아내에게 맛있다는 말을 꼭 건네라. 여러분이 건초를 먹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아내에게 알려라. 아니면 금주법 시대의 여장부 '텍사스' 기넌이 클럽에서 늘 하던 말처럼 '열렬한 박수' 정도라도 아내에게 보내기를 바란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칭찬할 때는 아내가 정말로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주저하지 말고 표현해야 한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이 영국이 낳은 최고 정치가인 디즈레일리도 '아내는 나에게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을 결코 부끄러원 하지 않았다.

   며칠 전 잡지 하나를 보다가 이런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20세기 미국 최고의 연예인 에디 캔터를 인터뷰한 글에 나오는 이야기다.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내 아내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내가 어렸을 때 가장 가까운 친구였고, 내가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는 동전 한 닢까지 아끼며 모은 돈을 굴리고 굴려서는 상당한 재산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무려 다섯이나 (둘이라) 키워 냈습니다. 나에게 언제나 너무나 멋진 가정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내가 만일 조금이라도 이룬 것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은 전부 아내 덕입니다."

   할리우드는 런던의 로이드 보험사마저 고개를 가로저을 만큼 결혼 생활이 위태위태한 곳이다. 하지만 거기서도 눈에 띄게 행복한 생활을 하는 부부가 몇 쌍 있는데, 워너 백스터 부부도 그 가운데 한 쌍이다. 위니프레드 브라이슨이라는 이름으로 영화계에서 활약하던 백스터 부인은 결혼하면서 화려한 배우 생활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녀의 희생이 그들의 행복을 막을 수는 없었다. 워너 백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아내는 화려한 무대에서 관객이 박수를 받지 못하는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갈채를 보내고 있음을 아내가 알 수 있도록 노력했죠. 아내가 남편을 통해 행복을 맛보고자 한다면 그건 남편이 자신에게 헌신하고 있고, 자신을 칭찬해 준다고 느낄 때가 아니겠습니까? 그런 헌신과 칭찬이 진심일 때 남편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같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요?"

   바로 이것이다.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음 방법과 같이 해보라!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방법 4

   진심을 담아 칭찬하라.

   Cive honest appreciation.

(Writing books this morning, End. Now time 06:41)

 

 

(26/6/24, 18:54 간식(맛의 색깔없는 붉은 토마토와 전주임 제사 떡(노란 고물 묻은) 그리고 계란 하나)을 먹어서 저녁 생각이 없었는데, 쩡이가 도아.로아델꼬 와서 돼지고기와 김치를 만팔천원어치 사왔꼬 설라믄, 맛있게 먹는데 아! 손녀 도아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모습은 가히 천사의 하강에 다름없더라~  얘들 아빠는 제주도로 일주일 가량 일을 갔기에 이시간쯤엔 아가와 아내가 보고싶겠쥐)

 

 

5

작은 관심의 가치를 깨달아라

They Mean So Much to a Woman

 

   꽃은 아득한 옛날부터 사랑의 언어라고 알려져 왔다. 꽃은 특히 제철이라면 비교적 저렴하게 살 수 있고, 종종 길거리에서 할인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보통의 남편들은 아내에게 수선화 한 다발 사다 주는 법이 없다. 그 희소성만으로 보자면 꽃이 난초처럼 비싸거나(ㅎㅎ미국도 난초가 비싸구나!) 구름 덮인 알프스의 절벽에서 피어나는 에델바이스만큼이나 구하기 힘든 것으로 보일 정도다. 

   왜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야만 꽃을 사다 주려고 하는가?  왜 오늘 밤 당장 아내에게 장미 몇 송이라도 사다 주지 않는 것인가? 여러분에게는 실험 정신이 있다. 그러니 바로 오늘 한번 도전해 보자. 무슨 일이 생기는지 한번 보자.

   조지 M. 코언은 '브로드웨이를 가진 사나이'라고 알려질 정도로 많은 일을 감당하던 사람이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매일 하루에 두 번씩은 안부 전화를 드렸다. 그가 전화할 때마다 뭔가 커다란 소식을 전했을 것 같은가?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작은 관심이라는 것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이다. 작은 관심을 보인다는 것은 여러분이 그녀를 생각하고 있고, 그녀를 기쁘게 만들어 주고 싶고, 그녀의 행복과 안녕이 여러분에게 매우 소중하며 항상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사랑하는 그녀에게 보여 주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들은 생일이나 기념일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다. 왜 그런지는 영원히 여성들만의 비밀로 판도라의 상자에 남을 것이다. 보통의 남자라면 중요한 날을 기억하지 않아도 불편함 없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날도 있다. 예를 들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 미국이 독립 선언을 한 1776년, 그리고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이다. 필요하다면  앞의 두 날은 잊어도 되나 뒤의 두 날짜는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시카고에서 무려 4만 건의 이혼 소송을 진행하며 2,000쌍의 이혼 조정에 성공한 판사 조셉 새버스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정불화가 생기는 원인은 대부분 사소한 일에서 발견된다. 아침에 남편이 출근할 때 아내가 손을 흔들어 배웅해 주는 간단한 일만으로도 이혼을 피할 수 있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로버트 브라우닝으 ㄴ아내 엘리자베스 베럿 브라우닝과 가장 목가적인 결혼 생활을 영위했다고 여겨지고 있다. 그는 아무리 바쁘더라도 작은 칭찬이나 관심으로 끊임없이 두 사람의 애정을 키워가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병든 아내를 배려하는 모습이 어찌나 극진했던지 아내는 자기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언니, 요즘 나는 정말 남편이야말로 진짜 천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수시로 보여주는 이런 작은 관심의 가치를 잘 모르는 남자들이 생각 이상으로 너무 많다. 게이너 매덕스는 <픽토리얼 리뷰>에 기고한 글에 이렇게 썼다. "나쁘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가정은 이제는 정말로 새로운 습관을 도입할 필요가 된 것 같다. 예를 들면, 침대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은 많은 아내들이 즐겨야 하는 귀여운 것이 되겠다. 아내들에게 침대에서의 아침 식사는 남자들이 멋진 술집에 가는 것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사소한 사건들의 연속, 그것이 바로 결혼이다. 이런 사실을 무시하는 부부는 행복해지기 어렵다. 시인 에드나 세인트 빈센트 밀레이는 언젠가 이런 사실을 함축적이고도 짧은 운율로 표현했다.

 

   내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운 건

   사랑이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이 사소한 일로 가 버렸기 때문.

   Tis not love's hurt my days,

   But that it went in little ways.

 

   이 구절을 꼭 기억해 두기로 하자. 네바다주에 있는 리노 시에서는 토요일까지 이혼 소송이 진행되는데, 미국에서 열 쌍에 한 쌍 정도가 이혼 조정에 실패한다. 여기서 이혼하는 부부 중 얼마나 많은 부부가 실제로 비극이라는 문턱에 걸려 넘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단언컨대 정말 얼마 안 될 것이다. 만일 여러분이 며칠 동안 법정에 앉아 그 불행한 부부들의 증언을 들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사랑이 "사소한 일 가 버렸다."라는 것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바로 칼을 가져다가 이 구절을 오려 내 모자 안쪽에 붙여 놓으라. 아니면 거울에 붙여 놓고 매일 아침에 면도할 때마다 읽어 보라. 

   "나는 이 길을 단 한 번만 지나갈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풀거나 친절을 보여 줄 수 있는 아주 작은 기회라도 생긴다면, 지금 바로 그렇게 해야 한다. 미루어놓거나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이 길을 다시는 지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은가? 그렇다면 다음 방법과 같이 해 보라!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방법 5

   작은 관심을 보여라.

   Pay little attentions

 

 

6

행복을 원한다면 잊지 말아야 할 점

If you Want to be Happy, Don't Neglect(니그렉트;무시하다.등한시하다) This One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구름재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3 26/6/23
    '안나 코리아' 유튜브를 보고 있다
    그녀가 감탄하고 있는 코리아의 일상
    그게 맞을지도 모르지만 달의 뒷면은 모르는 것
    지금은 유튜버로 돈을 벌 수 있어서
    온통 코리아 사랑으로 도배하지만
    그런 그녀가 이쁘기도 이쁘지만
    안나가 얘기해줘서
    우리가 우리의 현재를 잘 볼 수 있어서 감사하지만
    나중에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전설
    한국의 삶이 얼마나 격렬한 삶의 터전인지 알고
    실망까지 겹치면 짐 싸서 영국으로 도망가리라
    유승준이라는 가수가 하나의 나쁜 예이지만..
    우려를 감출 수 없는 안나의 황홀한 코리아 찬사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