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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파 파조 시제 및 제20회 정기총회 개최

작성자편집자|작성시간12.08.29|조회수329 목록 댓글 5

해남파 파조(派祖) 시제(時祭) 및 제20회 정기총회 개최

전남 해남군 문내면 충평리 산94-1 선영 묘역(2012428)

해남종친회(회장 珍福)428일 토요일

전남 해남군 문내면 충평리 산94-1 선영 모역에서 해남파 일가 종친들이 모인가운데

9() 현조(顯祖)님 이하 11분의 조상님의 유덕을 기리는 봄 시제(時祭)를 모셨다.

해남파 종친들은 시제를 모신 후 스무번째 정기총회 모임도가졌다. 총회는 진복(珍福)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행기(幸基) 총무의 2012년도 감사결과 보고와 2011년도 수입지출현황 등에 대한 상세한 보고가 있었다. 수십년만에 시제에 참례한 세완(世浣)내외는 고향거주 종원들의 환영을 한 몸에 받았다.

 

해남종친회는 지난 55일 대종회 정기총회가 끝난 후 인근장소에서 별도의 모임을 갖고 서울과 경기지역 거주 해남파 종친들이 매월 1-2회 모임을 정기적으로 갖기로 하고 재경해남종친회 회장에 성용(成容) 종원, 2명의 부회장에 태진(泰辰), 행남(幸男) 종원, 고문 진환(珍煥)종원을 선출하고 해남파 문중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참석자 : 해남지역 20(부녀 포함). 서울지역 22(부녀.어린이 포함) 42

해남파 파조 時祭 및 제19차 해남종친회 정기총회 개최

 

해남(海南)종친회(회장 珍福) 19차 정기총회가 2011430일 전남 해남군 문내면 충평리 산94-1 소재 새로 조성된 선영(先塋)에서 열렸다. 묘역에서 정기총회가 열리게 된 것은 지난해 가을시제에서 향후 시제를 봄에 지내기로 하고 종원들의 많은 참가를 독려하기 위해 매년 4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모시기로 결정한데 따른 것이다.

 

이날 정기총회는 9() 현조(顯祖)님 이하 7분의 조상님이 모셔진 묘역에서 시제(時祭)를 모신 후 해남 거주 종원 22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진복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행기 총무는 2011년도 감사결과보고와 2010년도 수입지출현황을 상세하게 보고하고 문중발전을 위한 의견들도 나눴다. 이날 총회에는 서울 거주 행남 종친과 창녕 거주 정식 종친께서 먼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종친모임에 참석.

 

참석자 : 42

해남지역 : 춘길. 백운. 진석내외. 형열내외. 정식내외. 진복. 성용내외. 행기. 기오내외. 팔문. 행남. 한귀. 철규. 영관. 갑린 . 영석 . 철규 .(22)

서울.경기 : 연식. 정식. 용희내외. 행기. 문환. 태현. 하진. 상훈 . 수웅내외. 행남. 태균내외. 태광내외.태일내외. 영운. 찬우. (20)

 

해남파 입향선조 묘제 해남 문내면서 奉享
신묘년부터 4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모시기로

해남파 파조(派祖) 9世 진(縉) 현조(顯祖)님 이하 7분의 조상 묘역을 금년 5월 새로 조성한 후 처음으로 한 자리에서 조상님들을 모시는 묘제(墓祭)가 10월23일 해남군 문내면 충평리 산94-1 묘역에서 봉향되었다.

 

이날 시제에는 종친 및 부녀회원 포함 22분의 자손들이 참제하였고 제수(祭需)상은 23세손(世孫) 성룡(成龍)내외가 간소하지만 정성을 다해 장만하여 모셨다. 제향에 참제한 분들중에는 창녕에 거주하는 22세손 정식(正埴)씨와 거동이 대단히 불편한 23세손 주산(周山)씨 두분이 참제하여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고맙기 그지없고 이 두분의 참여정신이야말로 우리 문중자손들이 모두 본 받아야 할 일이 아닌가 되짚어봅니다.

 

시제를 모신 후 금년 조상묘역조성사업에 기여한 공이 많은 진복(珍福), 성룡(成龍)내외, 행기(幸基), 기오(奇吾)씨 등 5분에게 공로패를 수여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해남종친회(海南宗親會 회장 珍福)는 직장에 다니는 자손들의 시제참여를 독려하기위해 내년부터 날짜를 4월 4째주 토요일에 모시기로 하고 일가친척들에 이를 널리 알리기로 했다.

 

시제(時祭)는 조상을 모시는 제사로 일간친척간에 화목하고 단합하여 가문이 더욱 발전해 나가라는 큰 뜻이 담겨있다.(참제자: 종균, 춘길, 백운, 진석, 성태, 정식, 진복, 성용, 행기, 주산, 영관내외, 종실내외, 용건 등 22명)

《서흥김씨대종보 제56호|2011.2.3

  

해남파 파조 9世 진(縉) 묘소 이장

제18차 정기총회도 5월2일 해남서 열려

 

해남파 파조(派祖) 9世 진(縉) 현조(顯祖)와 14세 여중(麗重) 顯祖 등 7분의 조상 묘역이 2010년 5월 새로 조성되었다.

 

백운(白雲) 고문이 해남종친회의 숙원사업인 해남파 파조(派祖) 9世 진(縉) 현조님과 14세 여중(麗重) 현조님을 4월22일 이장(移葬)하는 과정에서 15世 진기(震起), 16世 재경(再景), 18世 복손(復孫) 현조님 묘 자리에 물이 고여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에 긴급회의를 소집, 참석자 전원의 동의를 얻어 7분에 대한 신묘소를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장은 5월3일부터 시작해 근 일주일간의 작업 끝에 5월8일 완료되었다. 이장 완료한 조상묘는 해남파 파조(派祖) 9世 진(縉), 14세 여중(麗重), 15世 진기(震起), 16世 재경(再景), 재운(再雲), 17세 치공(致公), 18世 복손(復孫) 현조 등 7분이다.

 

해남파 파조(派祖) 9世 진(縉) 현조의 묘소는 후손들의 잘못으로 수백년동안 실전(失傳)해오던 것을 찾아보기로 하고 91년 5월 종균(鐘均), 준귀(俊貴), 백운(白雲), 진복(珍福)씨 등 네 자손이 영암군 학산면 용산리 諱 총(總) 현조 선산 현지 답사를 시작했다. 결정적인 확신을 갖게 된 것은 기홍(基弘·作故), 희술(熙述), 남영(南永). 희우(熙于), 대식(大埴)씨 등 많은 호남파 종친분들의 조언과 협력이 뒷받침이 되었다.

 

2008년 2월 이장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위원장에 백운(白雲)고문, 해남종친회 행기(幸基)총무를 간사로하여 14명의 위원과 연식(連植) 고문 등 4명이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2년여의 추진작업 끝에 2010년 5월8일 동 사업을 완료하기에 이르렀다.

 

백운고문은 이장 과정에서 파묘(破墓)하니 500년이 넘는 시간 속에도 진(縉) 현조의 해골(骸骨)과 뼈가 그대로 있고 관(棺) 상부가 석회로 되어 있어 파묘작업이 어려웠으나 이런 자리가 바로 명당(明堂)자리가 아닌가 가슴 깊숙이 느껴졌다고 당시의 감회를 전해왔다. 

해남종친회(海南宗親會)는 5월2일 해남군 문내면 동영리 우수영내 팔팔음식점에서 13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8회 정기총회를 가졌다. 진복(珍福)회장은 참석해주신 종원과 부녀회원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 후 2010년도 정기감사 결과보고 및 년간 재정수입, 지출현황 등을 상세하게 알리고 매년 시제도 따뜻한 봄날 일요일로 정하여 직장근무 자손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날짜를 잡아 공지하기로 했다.

 

해남종친회 서울지역정기총회는 해남지역의 현안사업 때문에 회장과 총무가 참석못하고 대신 진환(珍煥) 부회장이 대종회 회의가 끝난 직후 8명이 참석한 가운데 해남에서 보내온 유인물(2009년도결산서, 移 葬費 精算書)을 배부하고 문중현안에 도모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다음은 새로 조성된 묘역에 세워진 해남파 파조(派祖) 9世 진(縉) 현조 비문이다.

《서흥김씨대종보 제55호|2010년9월22일》

휘  진  현조  비문(諱  縉  顯祖  碑文)

 

     서흥김씨는 동국(東國) 갑족(甲族)으로 근원이 원대하다. 시조(始祖) 휘(諱) 보(寶)는 신라대보공(新羅大輔公) 휘 알지(閼智)의 34세손으로 경순왕(敬順王)의 6대손이요 보국대안군은열공(輔國大安君殷說公)의 5대손으로 금오 위중랑 장(金吾 衛中郞 將)이시다.

 

2세 휘 덕인(德仁)은 좌우 위정용 장군(左右 衛精勇 將軍)이요 3세 휘 천록(天祿)은 1270년 삼별초의 난을 평정하고 1274년 원(元)이 일본을 정벌할 때 출정하여 크게 세운 공으로 匡靖大夫 도첨의시랑  찬성사상 장군 판판도사사(匡靖大夫 都僉議侍郞  贊成事上 將軍 判版圖司事)에 오르시고 서흥군(瑞興君)으로 봉군(封君)되다. 이리하여 후손들의 관향(貫鄕)을 서흥(瑞興)으로 쓰게되다.

 

시조 휘 보(寶)의 8대손 휘 진(縉)은 통정대부 예조참의(通政大夫 禮曹參議) 중곤(中坤)의 손자요 봉훈랑 의영고사(奉訓郞 義盈庫使) 휘 소형(小亨)의 3자(三子)이시다. 휘 진은 유년부터 천품이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음사(蔭仕)로 직장(直長)을 지내셨으며 해남파(海南派)의 파조(派租)이시다.

 

배(配)는 숙인(淑人) 기계유씨(杞溪兪氏)로 슬하에 생일자(生一子)하니 휘 신(頣)이요 일찍이 학문에 면려하여 문사(文思)가 깊고 음사(蔭仕)로 사헌부 감찰에 이르시다 배는 숙인 창녕성씨(昌寧成氏)로 슬하에 생(生) 4남 4녀하니 장남 휘 윤문(允文)은 생원(生員)이요 차남 휘 윤장(允章)은 사헌부 감찰이요 3남은 휘 윤준(允濬)이요 4남은 휘 윤철(允哲)이요 장녀는 전승손(全承孫) 차녀는 강문필(姜文弼) 3녀는 민 번(閔 蕃) 4녀는 김 곤(金 琨)에게 출가하다.

 

봉훈랑 의영고사(奉訓郞 義盈庫使) 휘 소형(小亨)의 종손 한훤당(寒暄堂) 휘 굉필(宏弼)이 1498年 무오사화때 점필제(佔畢齌)․김종직(金宗直)선생을 사사(師事)했다는 죄목으로 평안도 희천으로 유배되니 모부인(母夫人)의 상소에 의하여 1500年 경신년(庚申年)에 전라도 순천으로 이배(移配)되다. 이때 중부(仲父) 휘 총(緫)과 계부(季父) 휘 진(縉)이 조카 휘 굉필을 보고자 순천으로 간 것이 영암, 해남에 세거(世居)의 계기가 되다.

 

휘 굉필은 1504년  갑자사화때 가죄(加罪)하여 사사(賜死)되고 1507년 원죄(寃罪)가 풀려 도승지(都承旨)로 승직(陞職)되었으며 1517년에 우의정(右議政) 1575년 영의정(領議政)으로 증직(贈職)되어 문경공(文敬公)으로 시호(諡號)된 뒤 문묘(文廟)에 오현(五賢)의 수현(首賢)으로 종사(從祀)하다.

 

휘 진(縉)의 묘를 실전(失傳)해오다가 1987년 봄 5대 현조 휘 진(縉), 신(頣), 윤뮨(允文), 상(祥), 순의(順義)의 단비(壇碑)를 근수(謹竪)하다. 1991년 종균(鍾均), 준귀(俊貴), 백운(白雲), 진복(珍福) 네 후손이 영암군 학산면 용산리 휘 총(緫)의 선산 현지 답사를 시작으로 오랜 세월 탐색한 결과 휘 진(縉)의 묘를 이장하다. 비문(碑文)은 보책(譜冊)과 경현록(景賢錄) 가문(家門)의 보감(寶鑑)에 의거하여 그 유덕(遺德)을 영전(永傳)하고자 행적을 약술(略述) 자(玆)에 명기(銘記)하다.

 

서기 2010년 경인(庚寅) 3월 상완(上浣)
13대 손  백  운 근찬(十三代 孫 白    雲  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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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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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우편배달 | 작성시간 12.08.29 잘읽었습니다. 저는 영남장파 25세손 이고 김굉필 선생님의 15대손입니다.
  • 작성자김정식 | 작성시간 12.08.30 자료정리잘해서글과사진함께너무수고많았읍니다 다시한번고마움과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기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8.30 정식종원님 창녕에 태풍피해는 없는지요?
    행기 총무님이 사진과 자료 보내주시어 카페에 올릴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김병국 | 작성시간 12.09.09 진복회장님 그리고 행기총무님 수고가 너무 많습니다.
    사진과 행사 내역을 보니, 해남종친회가 얼마나 활성화되었는지를 알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 작성자대종회 | 작성시간 22.08.18 백운 고문님이 계실때 처럼 과거의 활성화된 해남종친회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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