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매년 미국에서 언론과 문필 분야에서 뛰어난 대중적 공로와 업적을 지닌 사람을 선정해 수여하는 상.
퓰리처상은 미국의 신문왕 조셉 퓰리처(Joseph Pulitzer)의 유언과 당시 미화 2백만 달러의 유산으로
1917년 창설된 저널리즘의 노벨상으로 일컬어지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 중의 하나이다.
그 중 에서도 사진 부문은, 인쇄매체의 발달로 신문과 잡지에서 사진의 영향력이 증대되자
1942년 신설되었으며 1968년부터 픽션과 피처 두 부문으로 나뉘어 시상되고 있다.
이 상은 높은 권위와 신망을 지닌 채 1917년 이래 매년 5월에 시상되어왔다.
퓰리처의 기부금은 컬럼비아대학교 이사회가 관리하는데,
매년 언론분야의 8개 부문(신문에서 수행한 가장 공로가 큰 공익사업, 가장 훌륭한 지방기사,
마감시간에 쫓기지 않고 쓴 최상의 지방기사, 최상의 전국기사, 가장 뛰어난 국제기사, 가장 뛰어난 논설,
최상의 시사만화, 최상의 뉴스 사진)과 미국문학 분야의 5개 부문(가급적 미국적 주제를 담은 최고의 소설,
최고의 희곡, 최상의 시집, 가장 뛰어난 미국 역사서, 공익활동이나 애국심을 주제로 한 최상의 전기 또는 자서전)에
걸쳐 수상자를 선정하고 상금을 지급한다. 언론분야의 퓰리처상 역대 수상자 중에는 종군기자 어니 파일(1944 수상)과 만화가
빌 몰딘(1945, 1959 수상) 등이 있다. 문학 분야에서는 20세기 미국 문단의 중요인물들이 이 상을 받았다.
한 편의 시나 소설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듯이 사진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들은 역사적인 사건에 초점을 맞춰 도처에서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고,
때로는 각국 정부에 행동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 중 몇 가지 작품을 소개한다.
![]()
세계무역센터 공격/Steve Ludlum /Sep. 11, 2001,Brooklyn,New York /The New York Time
Nikon F4, 180mm, Kodak Gold ISO800 Film
목숨을 걸고 세계 무역센터의 폭발 장면을 찍은 기자들은 타임지에 필름을 전달하기 위해
시야를 가득 메운 연기, 떨어지는 잿더미와 싸웠다.
스티브 루들럼의 이 사진은 다른 사진들과 함께 타임지에 보도 되었다.
![]()
수단의 굶주린 소녀 (케빈카터, 1994년 수상작 )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국토를 가진 수단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심각하고도 장기적인 위기에 처해있다.
민족과 종교적인 대립 때문에 벌어진 내전이 오랜기간 동안 계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가뭄과 전염병까지 겹쳐
19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1백만명 이상이 죽었다.
국제적이고 인도적인 차원의 원조 프로그램도 독재정권 아래에서는 거의 제기능을 못하고,
구조식량은 기아에 허덕이는 난민에게는 좀처럼 전달되지 않았다. 이 같은 실태를 보도하기 위해
수단 남부에 들어간 카터가 우연히 마주친 것은 아요드의 식량센터로 가는 도중에
힘이 다해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소녀의 모습이었다.
옆에는 살찐 독수리가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셔터를 누른 그는 당장 독수리를 내 쫓았다.
이 사진은 발표와 동시에 전세계의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퓰리처상을 수상한 후,
일부에서는 촬영보다 먼저 소녀를 도왔어야 했다는 비판이 일어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이 찍은 다양한 현실의 공포를 가슴 밑바닥에 담고 있던 그는
1994년 7월 28일 친구와 가족 앞으로 쓴 편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3살의 젊은 나이에.
![]()
전쟁 지대 /Muhammed Muheisen AP통신기자 CANON mARK Ⅱ Digtal Camer, 80-200mm lens
불타는 미군 험비 자동차 위에서 춤추는 이라크인의 모습
![]()
바로셀로나 올림픽 / Ken Geiger / July 8, 1992, Barcelona, Spain The Dallas Morning News
Canon EOS-1,Cnon 600 mm F4.0 lens, Kodak Ektapress 400 Film
나이지리아 선수들이 점수판에 공식적으로 3등(동메달)이 확인 되자 기뻐하는 모습
![]()
아이를 구출하는 소방관 (론 올시왱어, 1989년 수상작)
1988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고,
소방관 한명이 2살난 아기를 구출해내 인공호흡을 하며 필사적으로 아이를 살리려 하고 있는 사진이다.
하지만 그러한 소방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기는 병원으로 옮긴지 6일만에 숨지고 만다.
![]()
굶어 죽어가는 아이 [1984] 안소니 수오
에디오피아 전역을 기근과 전쟁이 휩쓸 당시, 안소니 수오는 덴버 포스트지의 가진기자였다.
덴버 포스트지는 기자을 파견해야 할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수오를 보내려다 취소한 일도 있었지만
그는 무조건 가겠다는 입장이었는데 그때 그는 27살이었다. 미국 밖을 처음 나간 것이었다.
큰 충격를 받았다. 참상을 직접 목격하는 일은 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그는 많은 메시지를 담은 사진을 찍었지만 관심을 보이는 이는 없었고 흔히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모습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그런데 몇년이 지나고 전 세계는 이 사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이후 지금도 전쟁과 기근은 계속되고 있으니
![]()
메모리얼 데이 /Anthony Suau /May 31,1983,Danver,Colorado /The Denver Post Nikon F3, Telephoto lens, Transparency Film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않는다.그러나 비석에 새겨진 기록은 다르다 2차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에서의
공로가 그의 비석은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20세기 가장 참혹한 세 전쟁에 참전했던 헌신적인 군인의 미망인이 비석을 부등켜안고 있다.
기사가 나간 다음 미국 곳곳에서 -내게도 낯익은 장면이었어요.-라는 내용의 전화가 끊이지 않고 왔습니다.
![]()
방콕에서의 만행 [1977] 닐 올레비치
좌익 우익의 학생들이 격렬한 싸움 좌익 학생들이 항복한 뒤 올레비치는 나무 근처에 사람이 모여있는 것을 보았다.
한 사람이 매달려 있었는데 분명히 죽은 사람이었음에도 성난 군중 앞에서 한 남자가 시체의 머리를 의자로 때로고 있었다.
주위에서 사진기자를 의식하는 사람은 없었고 죽음 앞에서 잔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저 군중들을 그는 사진에 담았다
![]()
미군포로의 귀환(살 비더,1974년 수상작 )
1973년 1월 27일 베트남 평화협정이 파리에서 조인되었다.
이에 따라 2월 12일부터 포로의 상호 석방이 개시되어 566명의 미군포로가 다시 고국 땅을 밟았다.
5년 이상이나 북베트남에서 포로 생활을 보낸 미국 공군 중령 로버트 스텀이 3월 18일,
고향 캘리포니아의 트래비스 공군기지에 내렸다.
그것은 아내와 4명의 아이들과의 감격어린 재회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사진을 찍은 AP통신사의 비더는 중령의 돌처럼 굳은 얼굴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
1973.퓰리처상 [Pulitzer Prize]
월남전-소녀의 절규(no more war).베트남 종군 기자인 현 콩 닉 웃 ( Hyun Cong Nich Ut ) 포착.무차별 폭격으로 거리로 밀려나온 민간인들,
그 중의 한 소녀가 불타는 옷을 찢어 던지고 벌거벗은 몸으로 공포에 떨며 울부짖으며 내달리고 있다.
1972.6.8.종전에도 크게 여향.
![]()
사이공식 처형(에드워드 T. 아담스,1969년 수상작)
1968년 2월 1일, 사이공 서부의 초론 지역에서 취재하고있던 AP통신사의 아담스는 손을 뒤로 묶인
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 간부가 사이공 정부군 해병대와 경찰에 체포되어 연행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뒤쫓아가자 지프가 멈춰서 있고 그곳에는 남 베트남 국가경찰장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관은 연행되어온 남자가 바로 앞에 서자마자 허리에 찬 권총을 뽑아 남자의 우측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이 충격적인 길 위에서의 처형장면을 담은 한 장의 사진은, 그때까지 베트남 전쟁을 정의의 싸움이라고 간주 하고 있던
미국의 여론을 반전으로 돌아서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
1966.풀리처상 수상
월님전-안전지대로의 도피(escape).UPI통신기자 사와다 교이찌.퀴논 부근 미군기의 마을 폭격으로 필사적 탈출.
종전후 기자가 사진 본인을 찾아 수상상금 생활비로 줌. 그후 미군을 따라 종군하다가 1970년 캄보디아 전선에서 전사했다
![]()
한 어린아이의 믿음과 신뢰(윌리엄 C 벨,1958년 수상작)
무엇인가를 구경하느라 한곳으로 시선이 몰린 군중들 틈에서 소년과 경찰이 함께 나누는 정다운 눈짓.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는 경찰관의 정중한 태도와 애정과 믿음이 듬뿍 담긴 눈으로 경찰관을 올려다보는 소년의 모습은
그때까지 <워싱턴 뉴스>지에 게재되었던 그 어떤 사진보다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장면은 정지된 순간으로 남아 늘 우리에게 따뜻함을 전해 준다.
![]()
한국전쟁/ Max Desfor /Dec .12.1950.대동강 / The Associated Press
4×5 Speed Graphic, Ektar, EktarF4 7-inch lens,Kodak Tri-x film
대동강 다리는 폭격으로 무너져 있었다. 피난민 수백명이 겁도 없이 그 뒤틀린 금속을 기어 넘고 있었다.
살을 에는 추운 날씨에, 바람까지 거셌다.
조금 후에 "다리 기둥을 기어 오르던 사람들과 다리 기둥은 모두 얼음장 같은 물에 잠겨 버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