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사 10명 중 9명 “학생 문해력 심각한 저하”... ‘읽기 지구력’ 무너졌다
디지털 매체 범람 속 입시·진도 위주 교육이 원인... 현장선 “교육과정 자율성 보장해야”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한 교육 과제로 부상한 가운데, 학교 현장의 교사 10명 중 9명 이상이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를 심각하게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문해력 저하의 본질은 단순한 단어 암기력이 아닌, 긴 글을 끝까지 읽어내지 못하는 '읽기 지구력'의 문제라는 진단이 나왔다.
국가교육위원회 ‘문해력 특별위원회’의 정책 제안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전국 유·초·중·고 및 특수학교 교사 1,901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학생 문해력 실태 파악 및 지원 방안 마련 교원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교사의 92.7%가 “최근 5년 내에 비해 학생들의 전반적인 문해력 수준이 저하되었다.”고 답했다.(95% 신뢰도 수준에 오차범위 ±2.25%)
"단어 뜻 풀이 하느라 수업 진도 못 나가"… 교실 붕괴 위기
문해력 저하는 실제 교실 수업의 파행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사의 96.4%는 문해력 수준 저하로 인해 수업 및 학급 운영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학생들이 교과서에 나오는 기본적인 개념이나 제시문을 이해하지 못해, 교사가 단어 뜻풀이와 해석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면서 정상적인 교육과정 운영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교사들이 꼽은 문해력 저하의 가장 압도적인 사회문화적 원인은 ‘스마트폰, 숏폼, AI 등 디지털·미디어 환경의 변화(93.7%)’였다. 자극적이고 즉각적인 영상 매체에 노출되면서 활자 매체를 기피하는 현상이 심화되었다는 분석이다. ‘독서 활동보다 성과·스펙·효율을 중시하는 문화(53.7%)’가 뒤를 이었다.
낱말 부족 아닌 '읽기 지구력'의 위기… 학교 교육 체제도 도마 위
학생들이 가장 취약함을 보이는 영역은 ‘긴 글 및 복합 텍스트를 집중하여 끝까지 읽고 이해하는 능력(89.4%)’과 ‘어휘력 및 개념 뜻을 이해하는 능력(79.7%)’ 순이었다. 위기의 본질이 단편적인 낱말 지식이 아니라, 문장 간의 관계를 파악하고 맥락을 스스로 구성해 내는 '종합적 독해 역량'의 저하에 있다는 의미다.
학교 교육 차원에서의 원인으로는 입시 위주의 ‘과도한 진도 이수와 평가 중심의 교육 체제(52.9%)’와 ‘교과 수업 내외에서의 독서 및 글쓰기 활동 위축(48.8%)’이 최상위로 지목됐다.
응답 교사의 61.1%가 '문해력 향상을 위한 교육과정 및 수업 설계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84.7%는 정규 수업 시간 중 긴 호흡의 독서·토론 시간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교육 당국의 현행 문해력 정책에 대해서도 77.1%가 '현장 대응이 불충분하다'며 낙제점을 줬다.
유아기는 '기계적 해독' 부작용 우려… 특수교육은 '소통 중심 인프라' 시급
유아 교육 단계에서는 사립유치원이나 학원 등의 마케팅식 조기 문자 주입 교육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유치원 교사의 52.5%는 기계식 조기 문자 주입이 “학습 흥미를 떨어뜨려 초기 독서 습관 형성에 부작용을 준다.”고 경고하며, 단순 한글 떼기가 아닌 ‘말놀이·이야기 중심의 문해 교육과정’으로의 전환(29.9%)을 촉구했다.
특수교육 현장의 사각지대도 드러났다. 특수교사의 84.7%는 일반 학교 기준의 획일적인 문해력 정책과 기초학력 진단평가가 특수학생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낱말 암기보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기초 의사소통 능력(34.1%)’이 시급하다고 보았으며, ‘특수교육용 한글 해독·문해력 진단 도구 개발(54.1%)’과 ‘쉬운 글 교과서 보급(50.6%)’ 등 독립적인 인프라 구축을 강하게 요구했다.
전교조 "점수 산출 위한 경직된 지침 버리고, 읽고 쓰는 사유의 시간 복원해야"
이번 조사를 진행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위원장 박영환, 전교조)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책을 제안했다.
전교조는 △전 교과를 아우르는 읽기·쓰기 교육 및 국가 단위 문해력 성취기준 수립 △학교 도서관의 교육과정 허브화 △교사의 수업·평가 자율권 전면 보장 및 서·논술형 평가 혁신 △현장 맞춤형 연수 및 자료 지원 △느린 학습자와 다문화 학생 등 취약 계층을 위한 '출발선 지원' 확대를 교육 당국에 강력히 촉구했다.
전교조는 "진도 나가기 급급한 주입식 교육과 교육청의 무분별한 에듀테크 기기 보급 기조 속에서 교실 내 활자 매체와 사유의 시간이 구조적으로 축소됐다."며 "탑다운식 보여주기 정책을 멈추고, 교사에게 교육과정 편성 및 평가 자율권을 돌려주어 교실 안에서 실질적인 문해 생태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