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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생각해봐요][나는 기간제 교사입니다. ⑪] “선생님 아니고요. 부장이요. 부장님이라고 부르세요.”

작성자@반달곰|작성시간25.12.31|조회수663 목록 댓글 4

여전히 풀지 못한 마음

 

저 복도 끝에 K선생님이 지나가시는 게 보였다.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칫했다. 계속 가면 마주칠 것 같아 얼른 계단으로 올라갔다. 3학년 교실에 가기 위해 다시 계단을 내려오는 일이 있더라도 여전히 K선생님과는 마주치기 싫다.

 

K선생님과는 예전에 다른 학교에서 같이 근무를 한 적이 있다. 같은 부서는 아니어서 서로 잘 알지는 못했지만 교사 동아리로 독서모임을 함께 한 적이 있어 복도에서 마주치면 인사를 하는 정도의 사이였다.

 

교과도 다르고, 부서도 달랐으며 나이도 나보다 어리시고 성별도 달라 친해질 일이 없었지만, 올해 몇 년 만에 같은 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어 반가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일 이후로 나는 K선생님을 피하게 되었고 이렇게 일부러 동선을 바꿔 다닌다.

 

학기 초에 있었던 일이다. 학교 내규집에 대해 물어보려고 K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업무 담당자가 자리에 없어 전화를 대신 받았고 나중에 담당자가 오면 내용을 전해드리겠노라며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몇 분 뒤, K선생님이 교무실로 오셔서 나보고 잠깐 나오라고, 이야기 좀 하자고 하셨다.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선생님 아니고요. 부장이요. 부장님이라고 부르세요.”

그 한마디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부장인 자기가 전화를 했는데 업무담당자가 아니어도 자료를 찾아줄 수 있는 거 아니냐며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부장님이라고 부르라’는 그 말이, 자신의 지위와 권위를 앞세워 기간제 교사인 나를 인격적으로 낮추고 관계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부장님이라고 부르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학교에 저마다의 부서가 있고, 보직교사가 있으며, 그에 따른 역할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보직을 맡은 선생님을 부장님이라고 부르는 건 내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학교에서의 보직교사와 평교사는 회사 조직과는 달리, 모두 함께 일하는 동료교사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평소 K선생님을 부장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 순간, 무심코 ‘선생님’이라고 불렀을 뿐인데, ‘부장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야기한 것은 다분히 의도가 있다고 여겨졌다. 이야기를 마치고 교무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자마자 손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음이 울컥해 끝내 눈물이 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또 울었다.

 

다행히 상처받은 마음은 같이 일하는 부서의 좋은 선생님들로 인해 괜찮아졌다. 함께 일하는 동료 교사의 든든함이 하루하루 쌓여 존중과 신뢰를 통한 동료애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어느새 잊힌 일처럼 그렇게 잘 지냈지만, 학교 복도에서, 급식실에서, 그리고 출퇴근길에서 우연히 K선생님을 마주칠 때면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주춤하게 된다. 여전히 풀지 못한 마음이다.

누군가에게 무례를 범하는 한국인의 모습이라며 AI가 그려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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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비니비니파파 | 작성시간 25.12.31 마음 아프네요. 선생님이라는 좋은 말을 들을 수 없는게.
  • 작성자오리배 | 작성시간 25.12.31 권위라는 것은 스스로 세우는 게 아니라 타인에 의해 세워지는 거랍니다. 스스로 권위를 강요하거나 내세우는 것은 오만 아닐지요.
  • 작성자잎싹 | 작성시간 26.01.02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같은 기억이 떠올라서....
    부서 계원으로 같이 근무하다가 부장교사를 맡게 된 선생님이 계셨는데, 제 입에 [선생님]이 붙어서 바로 [부장님] 호칭이 나오지 않더라고요.
    시간을 두고 좀 기다려주시면 될텐데.... 다른 경로로 당신을 계속 선생님으로 부른다는 불편한 이야기를 건너 듣고 그 분을 다시 보게 된 경험이 있습니다.
    권위는 당신이 스스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세워주는 것이라는 오리배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 작성자초록수집가 | 작성시간 26.01.03 부장님이지만
    선생닙이라고 불러도 상관없는데..
    학교 바뀌면 결국 선생님 들을텐데..
    부장이신 걸 뻐기고 싶나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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