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 함께 근무했던 소대장과 분대장의 인연!
그동안 꾸준히 안부를 묻고 연락해왔던 사이, 45년 전의 군복무 시절에 함께했던 인연들이 모두 단절되고 지금까지 안부와 근황을 아는 사람은 몇 안되는 상황입니다.
제가 근무했던 보병 12사단 52연대 제4대대는 강원도 인제 원통의 백담사 입구 용대리에 주둔하였습니다. 사단의 37연대와 51연대가 철책선 경계업무를 맡고 있었고, 예비연대 소속으로 훈련과 사격 연습, 수색 정찰 등 일상의 군대 업무를 수행하는 부대였습니다.
당시 연대장님이 국방부장관을 지낸 조성태 대령이었습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ROTC 소위로 임관해서 최전방의 골짜기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의 말단 소대장으로서 임무와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지금은 백담사로 이어지는 도로가 뻥뚫려서 거의 4차선으로 개설되어 산간 오지라고 할 수 없을 정도지만, 당시에는 도로가 도로포장도 안되었을 뿐 아니라 외길이어서 반대쪽 초소와 서로 연락해서 이쪽 초소에서 30대 차량을 보내면,반대로 그쪽에서 정지하고 있다가 초소를 통과하면 길을 가는 방식의 아주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당시 용대리 황태덕장은 겨울철 동해에서 갓잡은 명태들을 가져와서 적당히 민물에 씻어서 덕장에 널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반건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동해 수온이 높아서 겨울에도 거의 명태가 잡히지 않아 캄차카반도 러시아에서 잡아온 수입산으로 가득찬 명태 덕장인 것같습니다. 백담사 초입에 있는 마을, 용대리가 유명한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담사 유배생활로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그때, 제가 연대의 4대대 1중대 1소대장이었고, 김하사는 화기분대 분대장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전방으로 배정된 병사들의 학력이 대부분 고졸이 많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전문대학을 졸업한 김하사는 화기분대 분대장으로서 매우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어쩌다 서울대 나온 친구들이 전방으로 배속받는 경우는 대학시절에 민주화운동 데모하다가 안기부나 보안사에 리스트가 올라있는 대학생들을 콕 찍어서 전방 부대로 전출시키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때 서울대 학보의 편집국장을 맡았던 김광일 병장(조선일보 논설위원, TV조선 김광일쇼 진행자 )도 같은 중대의 엘리트 병사였는데, 바로 그런 케이스였습니다.
2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교사로 발령받아서 정신없이 살다가, 우연히 어쩌다 김하사와 연락이 되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따님 결혼식이 있어서 부조만 했는데, 지난 번에 그가 영덕 고향에 살면서 지역신문 대표를 맡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엊그제 전화를 해서 집주소를 알려달라고 하기에 왜그러냐고 했더니, 가자미 반건조 생선을 조금 보낼테니 잘 드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냥 얻어먹기만 하면 그것도 예의가 아니어서 커피 쿠폰을 보내고 통화했습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듣고 있던 윤부원장님이 "아직도 군대생활했던 사람과 인연이 닿는다는 말이야? 대단하네!" 하고 칭찬하셨습니다.
군대의 조직이 상명하달의 엄격한 규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면, 따뜻한 인간미를 알게하는 면도 있는 것같습니다.
아무튼 지금은 교직에서도 퇴직하고 학원 창업해서 그런대로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교직 후배들과 즐겁게 배우고, 소통하면서 아직도 많이 부족하고 인생 최고점의 고지에 다다르지 않았지만 제 삶을 하나하나 채워가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하며 자기만족의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기에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 순응하면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과거라고 무조건 단절하지 않으려 합니다. 인연이 닿는 사람들과 서로 안부를 묻고 의지하면서 잘 어울리는 것도 즐거운 삶을 가꾸는 보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애써 위안으로 삼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