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의 함정

작성자신재옥|작성시간26.06.11|조회수97 목록 댓글 0

"대부도에서는 돈 자랑 말고, 영흥도에서는 술 자랑하지 말며, 덕적도에서는 배운 체하지 말라"라는 속설이 있다. 호남 지방에 전해지는 "순천에서 인물 자랑, 여수에서 돈 자랑,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말라"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1980년대 초, 성남에서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나는 영흥도의 한 바닷가 조그마한 학교로 부임했다. 지금은 영흥대교가 시원하게 뚫려 승용차로 가볍게 오가지만, 당시만 해도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고 꼬박 들어가야 했던 외딴섬이었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다. 88 올림픽의 열기로 온 나라가 들썩이기 직전인 1987년, 딱 일 년 동안 이어지던 나의 영흥도 생활은 서울 촌놈의 좌충우돌 섬 적응기였다.
​그 시절 나는 학교 사택에서 지내며 늘 울타리 안을 벗어나지 못했다. 주민들과 깊이 교류할 기회가 적다 보니 그곳 분들의 술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턱이 없었고, 당연히 술 자랑을 부릴 틈도 없었다. 야속하게도 내가 근무했던 그 학교는 세월의 흐름 속에 학생 수가 급감하여 결국 폐교되었다. 몇 년 전 옛 추억이 그리워 찾아간 교정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대신 잡초만 무성히 자라 있어 쓸쓸함만 더해 주었다.

​영흥도에서의 임기를 마치고 다음으로 향한 곳은 백령도였다. 내가 근무하게 된 두무진분교는 교사 혼자 근무하는 외딴곳이었다. 마을과도 거리가 있어 해가 저물면 짙은 외로움이 밀려오곤 했다. 순박한 섬 주민들은 타지에서 온 젊은 교사의 외로움을 십분 헤아려 주었다. 고된 뱃일을 마치고 돌아온 날이면, 그날 잡은 싱싱한 횟감으로 상을 차려놓고 나를 불러내 동무를 해 주었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정을 나누다 보니 어색했던 부임 초기의 서먹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 이내 식구처럼 가까워졌다.
​백령도 주민들의 대접은 늘 풍성했다. 상다리가 부러질 듯 음식을 차려내고 술잔이 비기가 무섭게 정을 채워주었으니, 그 억센 어부들 틈에서 어울리며 2년이라는 세월을 버텨낸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대견할 정도다. 지금 돌이켜보면 "영흥도에서 술 자랑하지 말라"는 말은, 어쩌면 백령도 두무진 주민들을 만나기 전까지만 유효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역마다 전해오는 이런 이야기들은 결코 근거 없는 낭설이 아닐 것이다. 자랑은 인간의 본성이다. 누구나 타인에게 돋보이고 싶은 마음에 조금씩 살을 붙여 부풀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나친 과시는 본질을 흐리고, 속된 말로 '허풍'이 되기 쉽다.
​세상에는 술 자랑 외에도 수많은 자랑거리가 존재한다. 돈, 자식, 학력, 배우자 등 저마다의 패를 쥐고 흔든다. 언젠가 스님의 법문에서 "절대 남 앞에서 자랑하지 말라" 하신 말씀이 깊이 와닿는다. 돈 자랑을 하면 앞에서는 부러워하며 손뼉을 쳐줄지 몰라도, 돌아서면 시기와 질투의 불씨가 되어 결국 인간관계를 해치게 된다는 가르침이었다.
​주변에도 만나기만 하면 자기 자랑 바쁜 친구가 한 명 있다. 새로 바꾼 자동차 이야기부터 시작해 쉴 틈 없이 과시를 이어가지만, 정작 상대방의 안부에는 귀를 닫는다.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독백을 듣고 있자면 피로감이 몰려와 나도 모르게 그 친구를 멀리하게 된다.

​자랑을 일삼다 결국 소중한 사람을 잃게 되니, 이 얼마나 미련하고 큰 손해인가. 자랑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겠다.

사진출처: 백령도 두무진과 영흥대교 전경(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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