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는 Non-Governmental Organization의 약자로, 비정부기구를 뜻한다. 규모의 크고 작음을 떠나 NGO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공동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든 단체다.
13년 전, 뜻을 같이하는 지역 주민들과 학부모들이 힘을 모아 NGO환경청소년단을 창립했다. 지금도 회원들은 식지 않은 열정으로 정기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울릉도와 독도 탐사, 영흥도 국사봉 답사 등은 당시의 사진만 보아도 가슴이 설렌다. 망우산을 오르고 구리시 곳곳에서 펼쳤던 환경정화 활동은 그때 함께했던 수백 명의 청소년들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우비를 입은 채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은 내 기억의 깊은 곳에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 학생들에게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으리라 믿는다.
치기(稚氣) 어린 열정이었는지, 사명감이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연말마다 장학기금 마련 행사를 추진하느라 동분서주했다. 그 모습을 두고 혹시 개인적인 야심이 있는 것이 아니냐며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전해 들을 때면 어처구니가 없었다. 명분과 신념이 없었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 헌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회원들은 내 뜻을 믿어 주었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때가 되면 기꺼이 팔을 걷어붙였다. 연말 장학기금 조성을 위한 음악회는 매년 200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고, 모인 성금은 한 푼도 남김없이 위기 청소년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은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며칠 전 정기 모임에서 만난 회원들과도 여전히 선후배 이상의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나도 칠순을 맞았다. 이제는 충분히 나이를 먹었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맡았던 4년간의 공직을 마무리하고, 여러 단체에서 맡고 있던 '장(長)' 자리도 모두 내려놓았다. NGO환경청소년단 단장직 역시 10년 만에 미련 없이 물러났다. 홀가분했다.
그 후로는 직함에 얽매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 그동안 정 때문에, 혹은 명분 때문에 몸담았던 이런저런 모임도 여럿 있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서너 달 전에는 모 단체의 회장직을 맡으라라는 권유를 받았다. 노년의 삶에서 욕심이 날 수도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깊이 생각한 끝에 정중히 사양했다. 잘한 선택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만은 분명하다.
지금은 NGO환경청소년단의 고문으로 회원들과 함께하고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그들과의 인연을 이어갈 생각이다.
NGO는 내 삶의 한 시절이 아니라, 지금도 가슴 한켠에서 계속 자라고 있는 나무다. 그 나무 아래에서 나는 사람을 얻었고, 세상을 배우며, 함께 살아가는 기쁨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