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사남의 현장 청령포에 왔다. 젊어서 왔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왕사남을 보고 나니 꼭 가 봐야하는 곳이 되었다.
평일인데도 꽤 많은 방문객이 줄이어 들어온다. 포란형 둥지에 하늘을 찌를 듯이 키가 훌쩍 큰 700여 소나무는 단종을 지키는 병사들 같다.
입장권 들고 강가로 내려가니 작은 배가 실어나른다. 엎어지면 코 닿을 듯 가까운 거리를 배를 타고 건넌다.
하늘 한 번 쳐다보고 강물 한 번 내려다 보면 벌써 강가에 다르니 내려야 한다.
도시의 탁한 공기와 다르다. 맑고 투명하니 햇살은 거름망없이 투과되어 살갗이 따갑다. 자외선 차단제는 기본이고 양산까지 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잠깐 걸어 오르니 소나무 숲에 가려진 집이 언뜻 언뜻 눈에 들어온다.
아, 가슴이 순간 덜컥 멈춤을 느낀다.
그토록 어린 소년을 이 으시으시한 숲속에 혼자 버려두었다니....
기와 본채 첫번째 방이 비어있었다. 밀랍으로 만든 단종이 오래되어 수리차 보내었다고 한다. 도포만 덜렁 걸려있어 허전하게 느껴졌다.
마침 문화해설사님이 대청마루에 앉은 관광객을 대상으로 단종애사를 해설한다.
태종 이방원 부터 당시 시대상과 왕위 찬탈, 단종 복위를 위한 사육신과 금성대군 이야기에 이어 순흥부 단종복위 운동까지 긴박했던 당시 역사적 사실을 실감나게 해설하니 듣는 이들은 숙연한 마음 금할 수 없다.
권력이 뭔지 숙질간 피비린내 나는 살륙의 출발점인 청령포는 지금 사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있나를 생각해 본다.
환한 대낮임에도 울창한 소나무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마치 이곳을 날아가지 못하게 눈에 보이지 않은 창살을 쳐놓은 듯.
청룡포를 휘둘러 서강은 오늘도 무심하게 흐르지만, 육백 년 전 그시절은 한소년의 두려움과 처절한 몸부림을 가로막은 철창이었으니. 인타까움을 뒤로 하고 다시 강을 건넜다.
오늘따라 살을 저미는 듯이 햇빛은 왜 이리 따가운지.
먹먹한 마음을 안고 제천으로 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