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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왜인들에게 서양식 갈레온 만드는 법을 가르쳐준 에스파냐 모험가

작성자왕마귀|작성시간06.06.03|조회수744 목록 댓글 1



산 후안 바우티스타 (성 세례 요한) - 일본어로는 다테마루(伊達丸) - 라고 불렀다. -일본에서 최초로 제작된 서양식 선박이다. 바우티스타호는 1614년 태평양을 건넜다. 이 선박은 일본에서는 남만선(南蠻船) 이라고 알려진 에스파냐 갈레온 방식이었다.





바우티스타호는 하세쿠라 츠네나가(支倉常長)가 이끄는 180명의 사절단과 에스파냐 수도승인 루이스 소텔로(Luis Sotelo)를 태운 채, 에스파냐 지배하의 멕시코로 항해했다. 사절단의 최종 목적지는 유럽이었으며 바우티스타호는 일본으로 돌아가기전인 1615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 하세쿠라 츠네나가(支倉常長)에 대해서는 위의 글을 참고 ***





산 후안 바우티스타호(San Juan Bautista)는 1613년 일본 북부 센다이(仙台)의 다이묘인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의 명령에 의해 츠키노우라 항구에서 만들어졌다. 이 계획은 에도에 있는 쇼군의 승인을 받은 것이었다.








쇼군은 또한 아시아 무역에 참여하기 위해 서양식 선박의 요소를 받아들인 여러 척의 주인선(朱印船) 제조를 계획하는 중이었다.









산 후안 바우티스타호는 막부가 지원해준 800명의 조선공, 700명의 대장장이, 3,000명의 목수와 같은 기술자들의 도움을 받아, 45일 만에 만들어졌다. 배의 건조에는 에스파냐 사람 두 명의 공로가 컸다. 탁발 수도승 루이스 소텔로(Luis Sotelo)와 에스파냐 선장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Sebastian Vizcaino)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Sebastian Vizcaino)는 에스파냐인 선장이자 일본에 온 대사였다.


그는 1611년 대사로서 멕시코에서 일본으로 항해해왔으며, 루이스 소텔의 사절단과 함께 하세쿠라 츠네나가를 멕시코로 데려가기도 했다.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는 일본에 머무는 동안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다테 마사무네(伊達政宗)를 만났다.






그후 비스카이노는 일본 동쪽 바다에 있다는 전설적인 "황금과 은의 섬"을 찾기 위해 떠났다. 그의 배인 샌 프란시스코(San Francisco) 호는 악천후로 파손되는 바람에 원래 출발지였던 우라가로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다음 해에 비스카이노는 막부가 그를 위해 만들어준 배를 타고 멕시코를 향해 떠났으나, 다시 한번 악천후와 부딪쳐서 도로 우라가로 돌아와야만 했다.







두 번이나 실패하자, 센다이의 다이묘인 다테 마사무네는 튼튼한 배를 건조하기로 결정한다. 이 배가 하세쿠라 츠네나가가 이끄는 사절단을 멕시코와 유럽에 급파하는데 사용되었던 500톤급의 갈레온 타입 전함 산 후안 바우티스타호(San Juan Bautista) 이다. 선박의 건조와 사절단을 멕시코로 보내는 임무에는 세바스티안 비스카이노의 기술과 항해 능력이 크게 공헌했다고 전해진다.


비스카이노는 "황금과 은의 섬을 탐색하는 이야기"라는 보고서에서 일본에서 겪었던 모험에 대해서도 기록해놓았다.






비스카이노는 자신이 이름 붙인 샌 디에고 만(San Diego Bay)을 발견하지 못했다. 샌 디에고 만을 최초로 발견한 유럽인은 1542년 에스파냐로 항해하던 후안 로드리게스 카브릴로(Juan Rodriguez Cabrillo)이며, 포르투갈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지금은 에스파냐 출신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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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전상용 | 작성시간 06.06.03 왕마귀님 혹시 니혼마루에 대한 자료도 있으면 그것도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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