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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사이토 도산(齋藤道三)

작성자Ota Ietada|작성시간04.07.06|조회수733 목록 댓글 0
그가 언제 태어나서 미노(美濃)국 수호인 도키(土岐)가의 가신인 나가이(長井)씨의 가신이 되기까지 그의 행적은 정확히 알려진게 없다. 이 당시의 미노국의 사정은 수호인 도키가의 상속분쟁으로 인하여 두 파간에 치열한 싸움이 되풀이되고 있었고, 농민의 반란도 많았으며 수호대인 사이토 도시쿠니(齋藤利國)와 도시치카(利親) 부자가 피살되는 등 그야말로 극도의 혼란기였다. 미노국으로 들어온 도산은 도키가의 중신이던 나가이씨에게 접근하여 무사가 되었고, 나가이씨의 신임을 얻기 위해 나가이씨의 부하였던 니시무라 마사모코(西村正元)가 죽자 그의 후계자가 되어 수호였던 도키 마사요리(土岐政賴)의 동생인 요리아키(賴藝)를 섬겼다. 그 후 도산은 평소 상속분쟁에서 패배하여 불만을 품고 있던 요리아끼를 설득하여 모반을 일으키게 하고 그 스스로 1527년 가와테(川手)성을 함락시켜 마사요리를 에치젠국으로 추방하는데 성공한다. 이로서 도산이 섬기던 요리아끼는 미노국의 수호가 되었고, 도산은 한 고을의 성주가 되게된다. 1533년 도산은 은인이던 나가이씨를 요시아키에게 참소하여 죽게만들고 수호대였건 사이토 도시요시(齋藤利良)이 죽자 다시 그의 후계자가 된다. 그리고 1539년 5월 마침내 미노국의 수호인 요시아키를 공격하여 오와리로 몰아내는데 성공하고 미노국을 빼앗아 마침내 수호가 되었다. 이처럼 도산은 기회를 포착하는데 민감하여 '살모사'라는 별명으로 불리었으며, 그의 딸을 오와리의 수호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에게 첩자의 형태로 시집보내 사위의 영지또한 오리게 된다. 하지만 1556년 그의 아들은 사이토 요시타쓰(齋藤義龍)이 도산의 친아들이 아닐 것이다는 의심으로 아버지인 도산에게 반기를 들었을 때 도산의 가신 중 누구도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아 아들에게 패사하는 비운을 격게됨으로써 파란만장하던 삶을 살아오던 사이토 도산은 그 운명을 마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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