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6월 23일, 충청도 금산을 점령한 일본 제 6번대 고바야카와 다카가게의 군대는
웅치와 이치를 넘어 전라 감영이 있는 전주로 진공하고자 하였습니다.
고바야카와의 휘하 승병장 안고쿠지 에케에이(안국사 주지)가
별대 7000여명을 이끌고 용담-진안을 거쳐 웅치로 진격하였고
코바야카와 다카가게 자신은 금산성에 일부 병력을 남겨두고
본대를 동원하여 진안을 통해 이치로 진출 하였습니다.
1592년 7월 7일,고바야카와의 본대는 금산을 출발하여 진산에 이르렀고
안고쿠지의 별군은 용담-진안을 지나 웅치에 도착 하였습니다.
한편 전주에 집결한 전라도 조선군은 웅치와 이치에 방어진을 설치하고
일본군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웅치에는 김제군수 정담과 전라 의병장 황박,나주판관 이복남,해남현감 변응정 등이 지휘하는
수백명의 조선군과 의병들이
7월 7일부터 안고쿠지 에케에이의 일본군 7000명과 싸우기 시작했고
남원을 방어하고 있던 광주목사 권율과 화순 동북현감 황진의 조선군은
전주에 입성한 이후,웅치로 이동하여 일본군과 싸우려고 하다가
고바야카와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이치로 진격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치로 이동하여 목책와 장애물을 설치하고 방어진을 형성 하였습니다.
고바야카와 다카가게는 그의 군대를 2개조로 나누고
조선군은 장애물 지대를 통과한 일본군에게 화포를 발사 하였습니다.
조선군의 포격을 돌파한 일본군은
측면에서 조선군의 공격을 받은 일본군은 크게 당황 하였고,
황진이 총에 맞자 위축되어 있던 일본군의 기세가 크게 살아나 맹렬하게 공격하여
권율은 대기시켜둔 예비병력을 방어진에 투입시켜
1592년 7월 8일 오후4시경, 고바야카와 다카가게는 이치의 조선군 공격을 중단 하였습니다.
1592년 7월 8일, 고바야카와 다카가게의 본대는
고바야카와 다카가게의 군대는 그날 밤 급히 금산으로 회군 하였습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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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明智光秀 작성시간 06.08.08 에케에이는 누구고 에케이케는 누구? 승병장이라든가 아시가루=총포병 등의 개념 오류도 있긴한데... 황진이 일본군에게 쌍검을 들고 돌진하다가 전사했다는 일본측 기록은 정확히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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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제국의명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6.08.10 오타 수정 하였습니다. 아시가루는 농민 출신의 각종 병장기를 다루는 일반병으로 알고 있습니디만,여기서는 그냥 총포병으로 표기 했습니다.이해하는데 문제가 있다면 수정하겠습니다. 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일본측 기록은 여러가지 인데,기록한 사람마다 서로의 전공을 자랑하는 투로 제작한 고로 객관성을 확보하기 힘듭니다.구로다의 기록에 의하면 [성문이 열릴 때 쌍검을 든 조선 장수가 성문에서 일본군을 향해 뛰쳐나오다가 집중 사격을 받고 죽었다.]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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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RougeEtNoir 작성시간 06.08.09 황진이... 청산리 벽계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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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대협 작성시간 06.08.10 항상 재밌게 읽는 팬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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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明智光秀 작성시간 06.08.10 친절하신 답변은 감사합니다만... 제가 몰라서 묻는게 아닐진데... 재밌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