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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역사 저런전쟁.19

작성자제국의명장| 작성시간06.12.28| 조회수1248|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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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구름에달빛 작성시간06.12.28 초딩이라 놀리는 거셈?
  • 작성자 -Ace-메피스토 작성시간06.12.28 크악! 연재속도가 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느려!
  • 작성자 한움쿰재 작성시간06.12.28 구리기둥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나보군요...모르죠.멸국의 왕이라 저렇게 왜곡된거 같네요.저렇게 가혹하게 쓰레기로 묘사가 되다니,대단한 증오심이 바탕에 있군요.유물과 여러 자료를 통해 동이계열의 나라라고 조심스럽게 추측은 하던데요.다음편이 정말 기대가 되는군요.은나라 최후의 날에 대한 묘사가,"혈천에 쇠절구통이 떠내려 갔다"라던데..아..두근..
  • 답댓글 작성자 제국의명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6.12.29 아마도 간략하게,아님 담담하게 처리할 듯 합니다.앞으로도 연재해야 할 내용이 산과 같은데...
  • 작성자 forzaamor 작성시간06.12.29 원조죵이//원래 무왕이 처음 등극하고 출정하려고 했는데 은군의 군세가 더 커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여상이 말립니다. 주왕이 안심하고 동쪽의 인상국과 전쟁을 하는데 그 사이에 무왕이 다시 들고일어나서 빈집털이를 했다는ㅇ_ㅇ.
  • 작성자 forzaamor 작성시간06.12.29 한움쿰재//뭐 사기 이전의 은주혁명을 다룬 역사서는 서주때 완전히 다 소실되었습니다..뭐..사마천시대에도 사료는 없었기때문에..탓할수가 없죠..
  • 작성자 forzaamor 작성시간06.12.29 그리고ㅋㅋ역시 사기에 따르면 5만대 70만이었답니다. 근데 정규군이 16만 5천명. 나머지는 주의 침입소식을 듣고 급히 긁어모은 노예들이고 주의 5만은 그때까지 주나라가 통합하느라 애썼던 제후국의 군대이죠..
  • 작성자 무장공비 작성시간06.12.29 달기 예쁘다 헤에 =ㅂ= (이놈봐라?)
  • 답댓글 작성자 전상용 작성시간06.12.29 진짜 예쁘네요
  • 작성자 Balian de Ibelin 작성시간06.12.29 주왕의 숙부가 조카의 타락함을 간언하니깐 주왕은 충신의 심장에는 구멍이 7개(맞는가?)있다던데 확인해보겠다, 그러면서 죽여서 배를 갈라버리죠;;; 여러모로 역사를 따지면 보통 성군이던 망국의 군주인던간에 숙부들이 상당히 뛰어난 인물들이더군요 보기에 안좋았던 예로 수양대군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 작성자 김경택 작성시간06.12.29 상나라 유적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신화시대로 구분됬죠. 주나라부터 역사시대라고 해왔는데 그건 그때부터 역사가 기록됬기 때문에 ... 주왕에 대한 엽기적인 기록은 혹 주나라가 과장해서 기록한 것일 수 있지 않을까요? 재판할때도 피고와 원고의 말을 다 듣는 법인데 주나라의 일방적인 기록만으로 판단할 순 없지 않을까 싶어요
  • 작성자 伊達政宗 작성시간06.12.29 초본을 지우다만 흔적이 조금 보이네요 =ㅂ=; 그 이외엔 딱히 아쉬운것은..
  • 작성자 forzaamor 작성시간06.12.29 김경택//물론 주의 기록을 완전히 믿을 순 없는 노릇입니다. 만약 그정도로 주왕이 포악했다면 그 아들이 제후로 임명받을리는 없을테니까요 ㅇ_ㅇ..주왕의 장례도 허락했으니.
  • 작성자 forzaamor 작성시간06.12.29 하지만..사료가 없어서 확인을 할수가 없으니 ㅇ_ㅇ; 여튼 신정일치의 나라인 은나라에서 왕이 죽었는데도 민중들이 봉기한번 안할정도면 주왕도 평범한 군주는 아니었을거같습니당
  • 작성자 술라 펠릭스 작성시간06.12.29 70만 병력이라.아무튼 중국인들 구라는 알아줘야 한다는.. 당시 중원인구를 전체 합쳐야 그정도 아니었을까
  • 작성자 치우승천 작성시간06.12.29 원래 지나족들은 수를 적어도 5배는 부풀리는 경향이 있죠. 단적인 예로 삼국시대 때 조조의 부하장군이 반란을 토벌하고 사살한 적수를 그대로 보고하자 조조가 놀라면서 왜 그리 적느냐..., 라고 말합니다. 진실을 말하면 공과가 없게 되니 뻥튀기는 기본이었고, 타국을 공격할 때도 숫자를 5배 이상 부풀리는 것은 기본이었습니다. 홍건적 20만 명이 고려를 침공할 때 '우리의 110만 대군이(5.5배 뻥튀기) 고려를 칠 테니 항복하라'고 으름장을 놓지요. 결국 최영장군과 이성계에게 깨지고 고려를 침공한 홍건적은 전멸합니다.
  • 작성자 유틸라이넨 작성시간06.12.30 그래도 도적떼가 20만이라면..........대략 안습이라는..........
  • 작성자 제국의명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6.12.30 이런 뻥튀기를 좋은 말로 표현하면 [군호]라고 하는데,의외로 저 군호가 상당한 심리적 효과를 줄 수 있습니다.1388년 고려의 요동 정벌군은 3만8천명 이었지만,군호는 10만 대군 이었습니다.또한 조사의의 난때는 진압군이 5만 대군이라고 하여,반군이 스스로 두려워 하다가 관군의 야습을 받아 무너졌으며,이시애의 난때는 10만대군이 북상한다는 말에 반란군이 사기를 잃고 크게 낙심했었다고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노란늑대 작성시간06.12.31 아 그럴듯 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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