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댓글

뒤로

오늘 신문을 보는데..

작성자BananaMilk.| 작성시간07.01.04| 조회수566| 댓글 30

댓글 리스트

  • 작성자 전상용 작성시간07.01.03 선조 23권 22년 8월 1일 (병자) 002 / 석강에 《강목》을 강하고 북변과 왜적의 대비에 대해 의논하다 (중략) 상이 이르기를 “그렇지 않다. 우리 나라의 사정을 저들이 죄다 알고 있으니 만약 우리 나라가 전라도에 주력하는 줄을 알고 딴 도(道)로 들어오면 어찌할 것인가?”하니 변협이 아뢰기를 “소적(小賊)이라면 천성(天城)·가덕(加德)이 염려되지만, 대적(大賊)이야 어느 곳엔들 들어오지 못하겠습니까.”결국 염려한되로 딴 도로 들어왔지만
  • 작성자 전상용 작성시간07.01.03 또 위에 중략된 부분에 “왜선(倭船)은 그다지 크지 아니하여 중국 배에 미치지 못하므로 한 척에 1백 명밖에 실을 수 없습니다. 1백 척이면 1만 명이니 1만 명밖에는 더 나오기가 어려울 듯합니다.”이게 전 병력으로 예상한건지는 모르겠습니다
  • 작성자 희망의 빛 작성시간07.01.04 근데말입니다....종묘제례악에 선조를 찬양하는 노래가 있지 않나요???(-_-;;좀 썡뚱맞지만....망국의 군주가 찬양을 받아서.... 신기해서 하는소리;;;)
  • 답댓글 작성자 전상용 작성시간07.01.04 실록을 보면 욕하는 기록도 많습니다 선조가 새로운 조총을 개발한 부분에서는 선조가 나설 분야가 아닌데 괜히 나서서 욕먹습니다 사실 연산군이나 광해군 처럼 중간에 물러난 경우 아니면 대놓고 욕을 못하죠 ㅡ.ㅡ;;실록으로는 사관이 논하면서 욕할 수 있지만
  • 작성자 전상용 작성시간07.01.04 그리고 그 신문이 도대체 어느 기록을 참고했는지 의문스러운게 선조 수정 실록에 보면 외모에 대해 논하는 것은 있어도 어떤 행동을 했다고 기록되 있지는 않습니다(사관들은 말만 기록하는게 아니라 행동까지 기록합니다)그리고 이게 나온 기록을 보면 확실히 서인 중심으로 써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 나옵니다
  • 작성자 위대한개척자 작성시간07.01.05 제가 알기로는 이이가 신하들과 지나가는 말로 10만 양병설을 하면 좋겠다 라고 한것을 지금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전폭적으로 주장했다라고 나오더군요....
  • 답댓글 작성자 전상용 작성시간07.01.05 선조수정실록에만 10만 양병설이 나옵니다 현재 서인들이 자기들 합리화를 위해서 쓰느라 조작된거 아닌가 생각됩니다 실제로 수정실록에보면 황윤길이 일본 침략 준비한다고 주장했는데 서인들이 분란 일으키는 거라며 동인들이 안 받아들였다며라는 식으로 말하고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반대했던 류성룡이 나중에 가서 이이의 지략에 감탄했다고 나오는 등 조선 왕조 실록 같지 않은 서술이 많이 나옵니다
  • 작성자 빌리븜 작성시간07.01.05 음......그렇다면 조선 조정은 오판(규모)으로 인한 탁상공론식의 준비(숫자만 채우는)를 했다고 생각하면 될까요?
  • 답댓글 작성자 전상용 작성시간07.01.05 더 정확히는 지휘관들의 문제가 더 크다고 봐야합니다 이일의 경우 초병도 안 세우고 전진했다가 된통당하기도 하고 원균은 초반에 빨리 대응했어야 하는데 자침시키는 뻘짓을 보였거든요 분명 전라도 위주로 대비는 했지만 경상도의 군사 움직임을 보면 경상도도 어느 정도 대비는 했지만 예상보다 일본군의 움직임이 빨랐고 또한 일본군이 얼마나 쎈지 모른게 문제였죠
  • 작성자 나욱 작성시간07.01.06 십만양병설의 경우는 왜군보다는 윗동네의 여진을 의식해서라는말도 있는듯합니다. 아닐수도 있지만요 ;; 그리고 여기에 조선이 준비가 없어서 밀렸다는분들 많은데 그보다는 체계에 문제가 있는게 더 맞는거 같습니다. 2차대전당시에도 프랑스는 준비 잘하고 병력도 많았지많고 장비도 괜찮았으나 뒤쳐진 체계로 인하여 완전 박살났습니다.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
카카오 이모티콘
사용할 수 있는 카페앱에서
댓글을 작성하시겠습니까?
이동시 작성중인 내용은 유지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