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스기 겐신 그는 전국시대 최고의 무장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여 전투를 한 장군으로 이름이 높다.
우에스기 겐신(아명 나가오 가게토라)은 1529년 에치고의 수호대인 나가오 다메카게(長尾爲景)의 아들(2남)로 태어났다. 1536년 다메카게가 죽자 다메카게와 합심하여 관동관령을 몰아내고 유폐중인 우에스기 사다자네(上衫定實)를 형인 나가오 하루카게(長尾春景)가 수호로 옹립하려하자 이에 반대하던 나가오가의 가신들이 가게코라(景虎) 밑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때 그의 나이 7세였다. 이 후 1548년 형을 은퇴시키고 가스가야마성(春日山)성의 성주가 되면서 에치고 지방을 장악하게 된다. 이후 1552년 우에스기 노리마사가 호죠 우지야스(北條氏康)에게 패하여 겐신에게 몸을 의탁하였고 1553년에는 신겐에게 패한 시나노(信濃)의 무라카미(村上)씨가 겐신에게 몸을 의탁하러 왔다. 이로서 신겐은 강력한 호죠씨 및 다께다씨와 세력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특히 1554년 호죠,이마가와,다께다 3국동맹으로 인하여 그 위험은 더욱 가중되었다. 특히 다께다 신겐과는 가와나까지마(川中島)에서 접전을 벌이지만 쌍방 모두 손실만 입은채 결착상태에 빠지게 되고 결국 이마가와의 중제로 휴전에 들어가게 된다.1560년 3국동맹이 이마가와의 사망으로 인한 다께다의 이마가와 영지 침공으로 깨어지자 1561년 호죠씨의 거성인 오다와라(小田源)성을 15,000의 병력으로 포위하고 공격을 시도하던 중 가마쿠라의 쓰루오카 하치만의 신사 앞에서 우에스기 노리마사로 하여금 관동관령(관동지방의 무사들을 다스리는 역직)을 양도받고 우에스기 겐신이라 칭하게 된다. 하지만 오다와라성을 1년동안 함락시키지 못한체 다께다의 가와나까지마 재차 침공으로 겐신의 전병력 15,000과 신겐의 전병력 20,000이 격돌하는 건곤일척의 전투로 쌍방의 전략과 전술의 극치였다. 병력에서 열세였던 겐신은 임기응변으로 병력의 열세를 보완하며 전투를 벌여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 전투 역시 승패를 보지 못하고 결착상태가 되게 된다. 그 후 신겐이 죽자 시나노에 침공하여 노토(能登) 등을 정벌하여 영지를 확장한다. 1578년 오다 노부나가의 부장인 시바타 가쓰이에(柴田勝家)가 에치젠의 기타노쇼(北莊)에서 겐신을 견제하자 1578년 교토로 진격하여 노부나가와 자웅을 결하려 출진 중 뇌출혈로 사망하게 되면서 그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하게 된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