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댓글

뒤로

엎치락~ 뒤치락~ "후한(後漢)"의 "외척"과 "환관"!!!

작성자★海東天子☆| 작성시간08.09.22| 조회수699| 댓글 15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 가스가겐고로 작성시간08.09.23 디씨의 100억고자랑 같은 맥락이군요.ㅋ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09.23 '고자되기'보다는 외척에게 연줄을 대거나, "환관"들에게 뇌물을 바치는 것이 더 빠른 방법이었습니다ㅡㅡ; 당시의 '고자되기'는 '인간의 길'을 포기하는 것이었죠ㅡㅡ;; "환관"들은 아무리 '조정대신'들과 관품이 같아도 상당한 차별대우를 받았습니다ㅡㅡ;;;
  • 답댓글 작성자 유문기 작성시간08.09.23 예외도 있는데 명의 '왕진'입니다. 향시에 합격한 거인출신이지만 스스로 고자가 되어 환관이 되었습니다. 선덕제 이후로 환관도 글을 배웠기 떄문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환관에게 글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어 급속하게 출세하게 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09.23 한나라 때와 명나라 때를 비교하는 것은 좀 그런듯 하네요ㅡㅡ; 명나라의 경우는 "환관"이 되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로 여겨져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거세하여 "환관"에 지원하는 바람에~ "환관"과 "환관 후보생"의 숫자가 수십만에 달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한나라 때는 그 정도로 인기있는 직업이 아니었고~ "환관" 자체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되도록이면 꺼려하는 직업중의 하나였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유문기 작성시간08.09.23 아 그렇군요. 후한시대인줄 모르고 괜히 엉뚱한 말을 적었네요
  • 답댓글 작성자 무장공비 작성시간08.09.23 해동천자/저도 명과 한을 좀 햇갈린듯하군요 //ㅂ//)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09.23 흔히 중국의 "환관"하면~ 주로 명나라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쉽게 시대구분을 하는 방법은~ 이전 시대일수록 "유교"의 원칙에 철저하다는 것이죠!!! 한나라는 모든 생활이 '예(禮)'에 따라 영위되는 "예교주의 사회"였던데 반해서~ 명나라는 '권력'과 '돈'이 우선하는 사회였습니다^^;; 따라서 "환관"이 되는 것에 대해 한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람의 길을 포기할 수가 있는가ㅜㅜ" 라는 의식을 보이는 반면, 명나라 사람들은 "환관이 되면 부귀를 한번에!!! 가자~ 거세하러!!!" 라는 행태를 보이죠ㅠㅠ
  • 작성자 유문기 작성시간08.09.23 환관은 후한, 당, 명 때 가장 많이 득세했지만 후한이나 명의 환관들은 당의 환관들보다 힘이 '약간' 약했습니다. 세 나라 환관 다 황제의 권력이 기생하는 존재였지만 후한과 명의 환관은 황제를 바꿀만한 힘은 없었던 것에 비해 당의 환관은 황제를 독살하고 바꾸어 버립니다
  • 삭제된 댓글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09.23 당나라의 "환관"들과 후한시대의 "환관"들은 권력을 장악하는데 좀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후한시대의 경우는 어린 황제가 "외척"들의 전횡에 눌려 있다가, 장성하여 '친정'을 할 무렵이 되면~ "외척"이 득세한 '조정'의 힘보다는 측근인 "환관"의 힘을 빌어 "외척"을 제거했기 때문에 "환관"이 일종의 '공신'으로써 정사에 참여했고, 어디까지나 황제의 종복으로써 '총애'를 매개로 정권을 유지합니다!!! 또 "외척"이 정권을 장악했을 때는 몸을 숙일 뿐이지~ 완전히 '숙청'당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09.23 그러나 당나라의 "환관"들은 아예 황제를 옹립하면서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단순한 '공신' 이상의 힘을 발휘했고, 마음대로 황제를 폐립하거나~ 시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문생천자(門生天子), 정책국로(政策國老)"라는 말이 생기게 되는 것이죠^^;;; 당나라의 "환관"들은 계속해서 정권을 장악했고, 정쟁도 같은 "환관"들이 서로 다른 황자를 옹립하는데서 발생합니다ㅡㅡ; '조정대신'들이 황제와 제휴하여 "환관"들을 제거하려다 번번히 실패하는 것을 봐도 그들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감로의 변"이 있죠ㅡㅡ;;
  • 작성자 지고의황제 작성시간08.09.23 후한은 환관과 외척중 외척이 좀더 강했다고 볼수있겠네요. 마지막은 환관이 잡았지만 말이에요.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09.23 그렇게 단정하는 건 좀 어렵습니다^^; "외척"의 경우는~ 대개 1대에 한해서 대권을 장악하지만, "환관"의 경우는~ 2대, 3대에 걸쳐서 위세를 부리죠^^;; "외척"이 좀 더 강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건~ "사대부"와 "문벌대족"들의 지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들은 "외척"에 대해서도 불만이 많았지만, "환관"을 아예 '인간'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둘 중에서 "외척"을 지지하는 편이었거든요^^;;;
  • 작성자 bookmark 작성시간08.09.25 강력한 외척을 환관을 키워 잡고 하는 패턴이 반복되다가, 결국은 환관이 잡아먹었죠. 환녕제가 괜히 암군의 대명사로 써먹힌 게 아니니까.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08.09.25 그런 패턴이 반복될 수 밖에 없었던 건~ "후한"의 황제들이 대부분 단명하는 바람에 어린 황제를 옹립한 "태후"와 "외척"이 손쉽게 대권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광무제"나 "효명황제(명제)"를 제외하곤 모두 젊은 나이에 승하했죠ㅜㅜ 또 "외척"들의 등쌀이 얼마나 심했던지~ "환제"가 "외척" 양씨를 제거하기 위해 "환관" "당형" 등과 모의했던 장소는 다름아닌 "측간(厠間 ; 화장실)"이었습니다ㅠㅠ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
카카오 이모티콘
사용할 수 있는 카페앱에서
댓글을 작성하시겠습니까?
이동시 작성중인 내용은 유지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