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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손권의 형주 공략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

작성자데스사이즈|작성시간13.02.15|조회수937 목록 댓글 21

삼국지를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유비가 촉 지방을 장악하고 한중에서 조조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군을 이끌고 대판 싸움을 벌여 승리해 한중을 장악하고 한중왕이 되죠. 이에 형주를 다스리고 있던 관우가 형주에서부터 북상하여 번성을 공략하던 중 여몽이 이끄는 손권군이 뒷치기를 감행해 형주는 손권에게 넘어가고 관우는 패퇴하다가 붙잡혀 결국 처형당하고 이에 깊은 빡침을 느낀 유비가 손권을 향한 복수전을 벌였다가 이릉 전투에서 대패하게 됩니다.


흔히 이때의 형주 공략에 대해 손권이 짧은 식견으로 유비를 배신해서 일을 그르쳤다는 비판 일색이 많은데 옛날에 댓글에서도 한번 쓴 적이 있지만 전 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서 부족하게 나마 글을 좀 써봅니다. 


1. 손권이 유비와의 동맹을 통해 얻는 건 뭔가.

1강 2약의 상황에서는 분명 유비와 손권은 순망치한의 관계이죠. 제1의 국적인 조위를 무찌르고 후한 재흥을 목표로 삼은 유비의 입장에서는 손권과의 동맹은 동쪽으로부터의 공격을 막고 국력이 압도적인 조위를 함께 막아내면서 또한 조위의 방어력이 나뉘어지게 되는 효과를 내게 되죠. 물론 손권 입장에서도 익주를 차지하고 있는 유비는 국가의 존망을 위해서라도 친하게 지내야할 상대이고. 


문제는 만약 북벌이 성공했다고 한다면 그 이후입니다.  손씨 가문은 본질적으로 강동 지방의 유지 가문에 불과합니다. 황족의 피를 이은 유비와는 명분 면에서 상대가 안되죠. 거기에 애초에 조위를 주적으로 보는 것 자체가 후한의 재흥과 연결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합니다. 거기에 실질적인 면을 봐도 유비가 이끄는 익주의 군세와 관우가 이끄는 형주의 군세가 뒷통수 안맞고 무사히 북벌에 성공한다면 유비는 중원을 차지하게 됩니다. 반면 손권은 합비에서 보여준 각종 졸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서주나 제대로 차지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전력이죠. 


만약 북벌에 성공하고 조위가 멸망했다면 결국 헌제가 복위되던 유비가 다음 황제에 오르던 차기 중국의 주역은 명분으로 보나 실리로 보나 당연히 유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손권은 죽쒀서 남준 꼴이 되버리는 거죠. 거기에 조위가 무너지고 중국에 통일 정권이 들어설 경우 강동 전체가 형주의 일부를 가지고 있는 손권 세력은 중앙의 입장에서 볼때 폭탄을 안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으며 어떻게든 제거하려고 들 수 밖에 없을 겁니다. 또한 손권 세력 자체가 호족들의 집합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을 때 호족들이 손권 휘하에서 이탈해 자멸할 수도 있죠.


결론적으로 1강 2약의 상황에서 촉한과 손오가 서로를 의지할 때는 저 동맹이 꼭 필요합니다만 북벌이 실행되고 조위가 무너질 경우 손권 입장에서는 잃을 것만 잔뜩 있고 얻을 게 없습니다.


2. 손권 세력이 삼국 통일을 원하기는 했을까

유비와 동맹을 유지하며 재통일을 이루어낼 때의 문제점은 위에서 이미 서술하였고. 결국 손권이 삼국 통일을 이룩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유지하고 정점에 오르기 위해서는 유비는 그냥 얼굴 마담 정도로만 남고 손권이 주도하는 형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주유가 살아있던 시절에는 그럴 의도가 충분했다고 봅니다. 처음 동맹이 성사된 후 주유는 유비군 장수들에 대한 통솔권을 지속적으로 원했고 적벽대전 역시 주유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죠. 또한 적벽대전 이후 적극적으로 형주를 공략하면서 최종적으로 익주 정벌까지 자신이 이루어내려고 했습니다. 성공 가능성의 여부는 둘째치고 일단 주유의 구상대로 일이 이루어졌으면 손권 세력은 강동, 형주, 익주등 장강 남쪽의 모든 땅을 장악하면서 조위와 대적하는 천하이분지계의 구도가 이루어질 수 있었죠. 유비는 그냥 형주나 익주에 조만한 땅 하나 떼어주면서 얼굴마담으로 삼고 조위와 싸울 때마다 군사나 내게 하는 명분용으로 쓰고. 


그러나 유비군의 빠른 행동과 제갈량의 지략으로 저 구도는 다 깨져서 형주의 대부분은 유비에게 넘어가고 익주 공략군 역시 형주에서 유비군에게 포위당해 패퇴합니다. 이 시점에서 천하이분지계의 구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덤으로 주유마저 요절했죠. 애초에 강동의 지방 유지 성격이 강했던 손권 입장에서 굳이 자기 주도하의 통일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조위 멸망, 재통일에 대한 의지가 있었는지는 의문스럽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삼국지라는 명칭 특성상 당연히 여기 등장하는 모든 세력은 통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고정관념 비슷한게 박혀있는데(삼국지 게임의 영향도 크다고 봅니다. 장수제 시리즈를 제외하면 무조건 천하통일을 해야 엔딩이 나오니까요.) 북쪽에서의 조위군의 침공은 강동의 수군이 막아주고 서쪽으로부터 장강을 따라올 우회루트는 촉한이 막아주고 있는데 동맹만 잘 유지하면서 나라 보전하고 굳이 명운을 걸고 싸울 것 없이 영토나 넓히자 라는 게 주유 사후 손권의 기본 마인드가 아니었나 싶네요. 그러면 형주 공략 역시 그렇게 설명할 수 있죠. 강동에서의 진출가능한 영토는 북쪽의 서주와 서쪽의 형주인데 서주 공략은 이미 합비 하나도 못뚫고 있는 상황이고 거기에 설사 서주를 공략한다고 해도 이 동네 지키기가 힘든 땅으로 정평이 나있어서 금방 빼앗겼겠죠. 그래서 좀더 공략하기 쉽고 지키기도 용이하고 마침 관우가 주력군을 이끌고 원정까지 나간 형주로 눈을 돌렸다고 봅니다.


3. 동맹이 일시적이나마 깨졌으니 실패 아닌가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습니다만 이건 예상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어찌보면 애초에 호족 연합체 성격이 강한 손권 입장에서는 유관장 삼형제의 강한 유대같은게 이해가 안간 걸 수도 있고. 관우가 사망하고 형주가 손권에게 넘어간 이후 촉한 진영을 보시면 주전론자는 황제인 유비와 장비 뿐이었습니다. 제갈량도 그렇고 대다수의 부하들이 우리의 주적은 조위이지 손오가 아니라고 하면서 손오와 전쟁하면 안된다고 만류하였죠. 이것이 촉한의 전체적인 여론이었고 의제인 관우와 장비를 잃은 유비의 분노가 상상 이상이었기에 결국 촉한과 손오의 전쟁으로 이어지기는 했습니다만 손권 입장에서는 어차피 조위가 있는 이상 우리가 형주를 차지한다고 해도 촉한이 우리를 공격하지는 못할 것이다 라고 충분히 예상할만 한 상황이었다고 봅니다.


결론 : 정리하자면 손권의 형주 뒷치기는 단순히 영토에 대한 탐욕으로 인한 짧은 식견으로 이루어진 무리수가 아니라 당시 손권의 입장에서는 대안이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유비에 의한 정벌과 이릉대전으로 인해 양국이 피해를 보기는 했습니다만 당시 상황을 보면 쉽사리 예측가능한 일은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촉한과 손오의 동맹은 다시 복구되었으며 이로 인해 손오는 합비에서의 각종 뻘짓과 손권의 말년과 그 이후 후계자들의 각종 뻘짓에도 불구하고 촉한이 멸망하고 서진의 총공세로 인해 멸망하기 전까지 사직을 보전하면서 잘 먹고 살 수 있었죠. 천하 통일이라는 하나의 관점에서만 보면 심각한 뻘짓입니다만 손권이 처한 당시의 상황이나 손오를 보전하면서 적당히 발전시켜 나가는 관점으로 보면 형주 공략은 좀 오버이기는 하지만 신의 한수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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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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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hark | 작성시간 13.02.17 이왕 결판내기로 한거 유비가 그냥 이릉대전에서도 이기고 싹 쓸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요 크흑.. 손제리는 나의 원쑤 손제리를 죽입시다
  • 작성자블라디미르 대공 | 작성시간 13.02.18 아.. 유비가 이릉에서 이겨버렸다면... ㅜㅜ 오나라 잘 박살내주다가 한방에 훅...

    손제리 입장에서는 오나라가 형주를 집어삼켜도 북쪽에 위나라가 있는 한 절대 촉나라가 보복을 하지 못할거라는 계산이 있었겠죠. 쥐새끼.
  • 답댓글 작성자데스사이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2.18 그렇죠. 실제로 촉한 내에서도 유비하고 장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신료들은 손오하고 전쟁하면 안된다는 여론이었고 말이죠. 손권의 실책이라면 유관장 3인방의 강한 인연을 무시했다가 졸지에 피봤다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차라리 관우를 살려서 촉한으로 보냈으면 형주는 형주대로 먹고 촉한과 전쟁까지는 안갔을텐데 말이죠.
  • 답댓글 작성자블라디미르 대공 | 작성시간 13.02.18 옙. 동감입니다. 오나라 입장에서는 형주를 먹긴 먹어야하는데, 그대로 있다간 영영 못 얻을 수도 있으니 일단 먹을 기회가 있으면 재빨리 먹고보자고 나왔을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일단 먹고나면 촉한도 위나라 때문에 보복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하에...

    만약 관우만 안죽이고 촉한으로 돌려보냈다면 전쟁까지는 안났을 듯 한데... 오나라 보복전도 순전 의형제간의 의리 때문에 일어난 것이니.
  • 답댓글 작성자데스사이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2.18 아무래도 관우가 살아있으면 복수를 해오지 않을까 후환이 두려워서 아예 죽여버린게 아닌가 싶은데 이 부분은 확실히 손권이 계산 잘못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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