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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세종 24년 왜인문제- 3. 최완의 왜인살해

작성자배달민족|작성시간14.01.12|조회수519 목록 댓글 10

(영화 해안선) 

 

2달전에 왜인들 추포에 공을세웠던 여도 천호 최완이 10월달에 이르러서 왜적들을 죽였다는 장계가 전라도에서 올라오지만, 조정에서는 사로잡힌왜적들이 한명도 없는것이 이상하다고 하여 그를 병조에 조사하라 명령을 내립니다. 

 

전라도 처치사
이각(李恪)이 급히 아뢰기[馳啓]를,
왜인금음모도(今音毛島)의 동면(東面) 우아포(亐兒浦)에 도착하여 하륙(下陸)하므로, 여도 부천호(呂島副千戶) 최완(崔浣)이 쫓아가서 싸워 적군 11명을 목 베고, 그 나머지는 모두 화살에 맞아 물에 빠져 죽었으며, 마침내 창·칼·활·화살·물고기·소금 등의 물건을 얻었습니다.”
하니, 병조에 전지하기를,
“굶주려 피곤한 왜적(倭賊)을 한 명도 산 채로 사로잡지 아니하고 다 죽여서 머리를 베었으니, 그 사유(事由)를 추국(推鞫)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세종24년 10월 6일 

 

그에따라서 병조에서 자체조사를 벌이는데 여기서 수상한점이 발견이 됩니다. 일단 죽은 왜인들에게 무기가 있었던것은 사실인데 무기의 수는 적고 오히려 어업을 하기위한 도구는 많이있으며 산속에 있다가 4일만에 잡혔다는 것입니다. 즉 처음부터 싸울의지가 없었다는것이죠. 병조에서는 자체조사차원이아닌 보다 정확한 진상의 규명을 위해서 조정에서 조사를 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여도 천호(呂島千戶) 최완(崔浣)이 왜인의 배를 쫓아가니, 왜인이 형세가 궁경에 빠져, 이에 하륙(下陸)하여 처음부터 항거해 싸운 자취가 없었는데, 말로써 개유(開諭)하여 산채로 사로잡지 아니하고 이에 다 죽여 남김이 없게 하였으며, 또 가졌던 군기(軍器)는 수량이 적고 물고기를 낚는 기구가 많았으니, 적왜(賊倭)가 아닐 것이라 의심이 나며, 이것은 고기를 낚다가 바람을 만난 배이고, 또한 산속에 나누어 숨은 지 4일 만에 잡혔으니, 매우 곤란한 처지에 있어 항거해 싸울 이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말한 ‘서로 만나서 항거해 싸웠다. ’는 것도 또한 실상을 인정하기가 어려우니, 원컨대, 속히 조관(朝官)을 보내어 추핵(推覈)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24년 10월 8일

 

결국 세종은 왜인살해사건과 관련하여 보다 정확한 사태파악을 명령하였고, 조정대신들 또한 이에 따랐습니다. 결국 대호군 김연지가 조사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정사를 보았다. 우의정 신개(申槪)·좌찬성 하연(河演)·예조 판서 김종서에게 이르기를,
“지금 최완(崔浣)이 잡은 왜인이 만약 물고기를 낚으러 왔다면, 옳고 그른 것을 묻지도 하니하고 다 잡아 목을 베었으니 교린(交隣)의 도리에 어긋남이 있다. 그러나, 물고기를 낚는 사람도 또한 혹 도적질을 할 때에는 잡지 않을 수가 없다. 최완(崔浣)의 일은 그 공로와 죄과(罪過)를 비교한다면, 공로가 죄과보다 크니 상벌(賞罰)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하니, 신개 등이 아뢰기를,
“성상의 말씀이 진실로 마땅합니다. 청하옵건대, 강직하고 명민(明敏)한 조관(朝官)을 보내어 사실을 조사한 후에 처리하는 것이 편리하겠습니다.”
하매, 임금이 그대로 따라, 즉시 대호군(大護軍) 김연지(金連枝)를 보내어 사실을 조사하여 아뢰게 하였다.

세종24년 10월 11일

 

그리고 나서 파견된 김연지에 의해 사건의 진상이 낱낱히 밝혀지게 됩니다. 애시당초 왜적이 싸움을 걸어 온것이 아니라, 도서문인(증명서)까지 소장을 하고 있던 왜인들이었는데 이를 확인하고서도 최완이 전부 죽여버리고 이를 왜적을 죽였다고 보고를 한것이었습니다.

 

전라도
경차관(敬差官) 김연지(金連枝)가 치계(馳啓)하기를,
여도 부천호(呂島副千戶) 최완(崔浣)이 왜인을 뒤쫓아 가서 싸운 것이 아니고, 왜인금음모도(今音毛島)에 이르러 육지에 내려오매, 최완이 손을 휘둘러 불러 오게 하니,왜인이 친히 도서문인 을 바치는데 최완이 이를 보고 모두 목을 베었습니다. 최완은 스스로 그 죄를 알므로 도망해 숨을까 염려되오니, 청하옵건대, 금고(禁錮)시키고 추국(推鞫)하소서.” 

세종24년 11월 13일

 

그렇다면 최완은 왜 왜인들을 다 죽였을까?

8월달에 최완은 여도천호였지만 10월달에 그의 직위는 여도부천호로 나타납니다. 단순히 조선왕조실록의 표기 실수일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그가 어떤 문제로 공을 세웠음에도 직책이 한단계 낮아졌고 그로 인해 공명심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증명서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조업을 하는 것을 인정 받았지만, 그 중에는 꼭 그를 이용해서 불법적인 일을 벌이는 집단이 생겨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관리/통제해야 하는 일선지휘관들은 당연히 일이 배가된 셈이니 골머리를 썩을수 밖에 없었고, 8월경에 왜인들을 추포한 일을 겪은 최완으로서는 왜인들의 불법적 행태에 대해 더욱 고압적인 자세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돼었든 함부로 왜인들을 죽인 최완의 행동이 용서가 될 일은 아니었지만요.

 

물론 무기를 소지하는 것은 불법이었고, 왜인들이 다니던 지역이 서로 약정된 지역이 아닌것 만은 분명했습니다만, 어쨌든 체포해서 벌을 주는 수준이 아니라 죽인 것은 분명히 나중에 말썽이 일어날 소지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사건의 전모는 밝혀졌지만 요즘도 그렇듯이 사건 하나가 사건 하나로 종결이 되지 않고 다른문제로까지 여파가 퍼지는 것은 피할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이번일과 같은 외교와 관련된 문제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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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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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배달민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1.13 다음번에 다루겠지만 인도주의적 모습을 보이는 조선의 위엄은 정말 ㅎㄷㄷ
  • 답댓글 작성자바실리우스 2세 | 작성시간 14.01.13 배달민족 하지만 그옆에 야만국 일본
  • 작성자presfox | 작성시간 14.01.13 금고와 추국의 명분을 세우는 부분이 참 흥미롭네요. 명분만 놓고 보면 마치 구속영장 발부 심사하는거 같음.
  • 작성자백운청산 | 작성시간 14.01.13 다음편이 궁금합니다~
  • 작성자블라디미르 대공 | 작성시간 14.01.13 와;;; 제대로 선진국이네;; 우리나라가 어쩌다 지금같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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