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해안선)
2달전에 왜인들 추포에 공을세웠던 여도 천호 최완이 10월달에 이르러서 왜적들을 죽였다는 장계가 전라도에서 올라오지만, 조정에서는 사로잡힌왜적들이 한명도 없는것이 이상하다고 하여 그를 병조에 조사하라 명령을 내립니다.
전라도 처치사 이각(李恪)이 급히 아뢰기[馳啓]를,
세종24년 10월 6일
그에따라서 병조에서 자체조사를 벌이는데 여기서 수상한점이 발견이 됩니다. 일단 죽은 왜인들에게 무기가 있었던것은 사실인데 무기의 수는 적고 오히려 어업을 하기위한 도구는 많이있으며 산속에 있다가 4일만에 잡혔다는 것입니다. 즉 처음부터 싸울의지가 없었다는것이죠. 병조에서는 자체조사차원이아닌 보다 정확한 진상의 규명을 위해서 조정에서 조사를 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병조에서 아뢰기를,
세종24년 10월 8일
결국 세종은 왜인살해사건과 관련하여 보다 정확한 사태파악을 명령하였고, 조정대신들 또한 이에 따랐습니다. 결국 대호군 김연지가 조사관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정사를 보았다. 우의정 신개(申槪)·좌찬성 하연(河演)·예조 판서 김종서에게 이르기를,
세종24년 10월 11일
그리고 나서 파견된 김연지에 의해 사건의 진상이 낱낱히 밝혀지게 됩니다. 애시당초 왜적이 싸움을 걸어 온것이 아니라, 도서문인(증명서)까지 소장을 하고 있던 왜인들이었는데 이를 확인하고서도 최완이 전부 죽여버리고 이를 왜적을 죽였다고 보고를 한것이었습니다.
전라도 경차관(敬差官) 김연지(金連枝)가 치계(馳啓)하기를,
세종24년 11월 13일
그렇다면 최완은 왜 왜인들을 다 죽였을까?
8월달에 최완은 여도천호였지만 10월달에 그의 직위는 여도부천호로 나타납니다. 단순히 조선왕조실록의 표기 실수일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지 않다면, 그가 어떤 문제로 공을 세웠음에도 직책이 한단계 낮아졌고 그로 인해 공명심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증명서를 통해서 합법적으로 조업을 하는 것을 인정 받았지만, 그 중에는 꼭 그를 이용해서 불법적인 일을 벌이는 집단이 생겨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관리/통제해야 하는 일선지휘관들은 당연히 일이 배가된 셈이니 골머리를 썩을수 밖에 없었고, 8월경에 왜인들을 추포한 일을 겪은 최완으로서는 왜인들의 불법적 행태에 대해 더욱 고압적인 자세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어찌돼었든 함부로 왜인들을 죽인 최완의 행동이 용서가 될 일은 아니었지만요.
물론 무기를 소지하는 것은 불법이었고, 왜인들이 다니던 지역이 서로 약정된 지역이 아닌것 만은 분명했습니다만, 어쨌든 체포해서 벌을 주는 수준이 아니라 죽인 것은 분명히 나중에 말썽이 일어날 소지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사건의 전모는 밝혀졌지만 요즘도 그렇듯이 사건 하나가 사건 하나로 종결이 되지 않고 다른문제로까지 여파가 퍼지는 것은 피할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이번일과 같은 외교와 관련된 문제는 말이죠.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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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배달민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14.01.13 다음번에 다루겠지만 인도주의적 모습을 보이는 조선의 위엄은 정말 ㅎ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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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바실리우스 2세 작성시간 14.01.13 배달민족 하지만 그옆에 야만국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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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presfox 작성시간 14.01.13 금고와 추국의 명분을 세우는 부분이 참 흥미롭네요. 명분만 놓고 보면 마치 구속영장 발부 심사하는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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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백운청산 작성시간 14.01.13 다음편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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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블라디미르 대공 작성시간 14.01.13 와;;; 제대로 선진국이네;; 우리나라가 어쩌다 지금같이 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