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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insigel 작성시간15.03.03 제가 과문한 탓인지, 본격적으로 일제시대 문맹율을 다룬 연구가 노영택의 '일제시대 문맹율 추이' 정도밖에 기억이 안납니다.
이 논문에서도 국세조사 이전 문맹율을 90퍼센트, 99퍼센트 정도로 보던데 근거가 좀 빈약합니다. 한창 문맹율 퇴치 운동이 활발하던 20년대 신문기사가 주요 근거였거든요.
당연하지만 조선시대의 실제 문맹율과 상관없이 신문사 입장에서는 당시 문맹율을 최대한 부각하거나 과장할 수 밖에 없었죠.
때문에 비록 당시 조선 사회에 의무교육이 뿌리내리지 않았고 도시민의 비율이 낮았어도, 이러한 주장은 실제 조선조 문맹율을 엄정히 측정하는데 큰 도움이 못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찰스디킨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3.04 한글과 한문 능통자는 유식자 중 18%밖에 되지 못하고 한글 약간 이해자가 18%나 되었 다. 이들은 한문이 혼용되고 있는 신문을 읽을 수 없는 것이다. 한글로 된 글이라도 내용이 좀 어려운 것은 그 뜻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문맹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유식자 28명 중 정말로 신문 한장을 아무 거침없이 읽고 내용 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겨우 5명밖에 안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 남천리의 상황은 좋은 편이고 그 이웃 마을은 신문 한장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말씀주신 노영택씨 논문엔 이렇게 나오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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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bookmark 작성시간15.03.05 찰스디킨스 양반 숫자가 넘처나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과거급제를 못하고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잔반이 증가한거지 양반 숫자가 얼마 안되는데 그런건 아니죠. 애초에 양반의 '의무' 가 학문응 하는 것이고 학문을 안한다면 양반이 아니죠. 거기다 양반만 학문을 습득하려 하는 것도 아닌데.
17 18 19세기 조선 사회를 묘사한 글들이 하나같이 지목하는 게 상당한 향학열이고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던 것이 조선후기사회인데 글을 아는 사람의 숫자가 양반 숫자보다 적다고 하면 좀 말이 안될텐데요. -
작성자 Sinsigel 작성시간15.03.03 당연하지만 미취학 연령기 아동을 제외하고 나면 '의외로' 문맹률이 첫 인상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또 신기한 점은 1910년 이후로 일제가 설립한 보통학교 혹은 기존의 전통 서당에서 수학했을것이라 여겨지는 10대~30대의 윗세대 문맹율입니다.
즉 40대 이후의 문맹율인데, 적어도 이들의 한글 문맹율은 10대~30대와 비교해서 심히 높은 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슷하거나 더 높은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심지어 60대의 경우에도 한글을 아는 비율이 꽤 높은 편입니다. 자료를 다시봐야겠지만 10대~30대와 비슷하거나 약간 더 높은 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