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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문맹률 관해서 질문

작성자찰스디킨스| 작성시간15.03.03| 조회수983| 댓글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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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키릴 작성시간15.03.03 강제로 학교에서 일본어 가르쳐서 그런거아닌가요? 조선 후기때는 당연 한자를 문자로 쳤을테니 양반들 말곤 거의 글을 모를테고...
  • 작성자 포레스트벨 작성시간15.03.03 단순하게 생각해서 조선시대 식자층인 중인 이상 인구 비율만 생각해도 99퍼센트 문맹률은 좀 이상한데요?
  • 작성자 Τιταυιζ 작성시간15.03.03 99%?
  • 작성자 Sinsigel 작성시간15.03.03 제가 과문한 탓인지, 본격적으로 일제시대 문맹율을 다룬 연구가 노영택의 '일제시대 문맹율 추이' 정도밖에 기억이 안납니다.
    이 논문에서도 국세조사 이전 문맹율을 90퍼센트, 99퍼센트 정도로 보던데 근거가 좀 빈약합니다. 한창 문맹율 퇴치 운동이 활발하던 20년대 신문기사가 주요 근거였거든요.
    당연하지만 조선시대의 실제 문맹율과 상관없이 신문사 입장에서는 당시 문맹율을 최대한 부각하거나 과장할 수 밖에 없었죠.
    때문에 비록 당시 조선 사회에 의무교육이 뿌리내리지 않았고 도시민의 비율이 낮았어도, 이러한 주장은 실제 조선조 문맹율을 엄정히 측정하는데 큰 도움이 못됩니다.
  • 답댓글 작성자 찰스디킨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3.04 한글과 한문 능통자는 유식자 중 18%밖에 되지 못하고 한글 약간 이해자가 18%나 되었 다. 이들은 한문이 혼용되고 있는 신문을 읽을 수 없는 것이다. 한글로 된 글이라도 내용이 좀 어려운 것은 그 뜻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문맹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따라서 유식자 28명 중 정말로 신문 한장을 아무 거침없이 읽고 내용 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겨우 5명밖에 안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 남천리의 상황은 좋은 편이고 그 이웃 마을은 신문 한장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말씀주신 노영택씨 논문엔 이렇게 나오는군요.
  • 답댓글 작성자 찰스디킨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3.04 근데 스웨덴이 1600년대까지 1퍼센트에, 폴란드가 3퍼센트정도란걸 봤을때 불가능하지 않지는 않을까 싶기도한데요 게다가 일본에서 책이팔린양에 비해서 조선에서 책이팔린양을 보면 인구비례해도 너무 적어보이고요.
  • 답댓글 작성자 찰스디킨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3.04 남천리의 경우도 실질적으로는 96% 이상이 문맹이고 이웃마을은 거의 전부 문맹이
    라는 것이다.
    남천리 학령아동의 취학율에서 보면 미취학율이 82% 이상인데 여기서 취학아동이 중도
    퇴학하는 경우를 감안하고 성인층이 거의 학력이 없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문맹률은 90% 내
    외였음이 틀림없는 것이다
  • 답댓글 작성자 bookmark 작성시간15.03.05 찰스디킨스 학문을 익힐 것을 요구받는 구 양반층만 처도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인구의 10%는 넘어갈텐데 다른국가의 그것을 끌고와봤자...

    솔직히 추정치 근거가 너무 거칠어 보입니다. 개항기와 이후 사회 격변으로 학문이 필수 소양이었던 양반층의 변화를 포함해 고려해야 할 건 대단히 많은데, 그런 변수를 모두 무시하고 일제시대의 그것을 조선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
  • 답댓글 작성자 찰스디킨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3.05 bookmark 근데 양반이라해도 제대로된 양반이 아니면 거시기 하지않았나요
  • 답댓글 작성자 bookmark 작성시간15.03.05 찰스디킨스 양반 숫자가 넘처나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과거급제를 못하고 경제적으로 몰락하는 잔반이 증가한거지 양반 숫자가 얼마 안되는데 그런건 아니죠. 애초에 양반의 '의무' 가 학문응 하는 것이고 학문을 안한다면 양반이 아니죠. 거기다 양반만 학문을 습득하려 하는 것도 아닌데.

    17 18 19세기 조선 사회를 묘사한 글들이 하나같이 지목하는 게 상당한 향학열이고 과거시험을 치르기 위해 도전하는 사람의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던 것이 조선후기사회인데 글을 아는 사람의 숫자가 양반 숫자보다 적다고 하면 좀 말이 안될텐데요.
  • 답댓글 작성자 찰스디킨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03.05 bookmark 뭐 그렇긴한데 벽화나 기록 몇개가 그렇다고 해도 통계란건 좀 다르게 나올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해서요. 구한말로가면 가라 양반도 상당하지않았나요.
  • 답댓글 작성자 bookmark 작성시간15.03.06 찰스디킨스 가라 양반이기에 더더욱 양반 티를 내려면 학문 익힌 척을 해야죠. 어설프게 하면 당장 일반 백성들에게도 저거 짝퉁이라고 놀림받는데.(예시: 봉산탈춤)

    조선의 신분체제는 각각의 신분을 구별하는 복장이나 기타 눈에 확 띄는 표식이 없기 때문에 행동으로 이를 드러내야만 합니다. 결국 '난 짝퉁이 아니라 진짜다!'는 것도 행동으로 보여줄 수밖에요.
  • 작성자 Sinsigel 작성시간15.03.03 결국 1930년 총독부 주관 국세조사야말로 가장 시기가 이르고 비교적 신뢰도 높은 문맹율 통계라고 볼 수 있죠. 그 이전 시기는 물론이거니와 조선시대의 문맹율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서구나 에도 막부 일본 연구 사례처럼 조선조 문맹율을 진지하게 연구한 사례도 제가 알기론 전무합니다.
  • 작성자 Sinsigel 작성시간15.03.03 물론 자료가 부족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의무교육이 제도화되지 않았고 농민의 비율이 높은 조선조 사회 특성상 문맹율이 아주 낮지는 않았겠죠.
    다만 몇가지 음미할 점이 있죠. 1930년 국세조사에 따르면 조선인의 문맹율, 그러니까 한글과 일본어 둘 다 읽거나 쓸줄 모르는 사람의 비율은 약 76퍼센트입니다.
    하지만 주의해야할 점은 이 통계의 대상이 당시 조선 전 인구 2천만명입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미취학 연령 아동까지 모조리 포함한 통계라는 것이죠.
  • 작성자 Sinsigel 작성시간15.03.03 당연하지만 미취학 연령기 아동을 제외하고 나면 '의외로' 문맹률이 첫 인상에 비해 낮은 편입니다.
    또 신기한 점은 1910년 이후로 일제가 설립한 보통학교 혹은 기존의 전통 서당에서 수학했을것이라 여겨지는 10대~30대의 윗세대 문맹율입니다.
    즉 40대 이후의 문맹율인데, 적어도 이들의 한글 문맹율은 10대~30대와 비교해서 심히 높은 편이 아닙니다.
    오히려 비슷하거나 더 높은 경우가 많이 보입니다. 심지어 60대의 경우에도 한글을 아는 비율이 꽤 높은 편입니다. 자료를 다시봐야겠지만 10대~30대와 비슷하거나 약간 더 높은 편이었습니다.
  • 작성자 Sinsigel 작성시간15.03.03 연구가 진척이 거의 안된 상태에서 하는 억측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점과 의외로 많은 조선인들이 한글을 쓰고 읽을 줄 알았다는 구한말 방한 외국인들의 기록을 종합하면
    딱히 조선이 산업화 이전 전통사회에서 문맹율이 특별히 높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 작성자 Mr.비버 작성시간15.03.04 ㅋㅋ 양반이 1%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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