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리스트
-
작성자 [Total-Hot]아하스페르츠 작성시간15.10.25 오호16국빠(?)로써 숟가락 하나 얹자면,16국 시기 각국의 수도를 보아도 중심 세력의 부침에 따른 것+기존 인프라 상의 대도시가 전부죠. 기존의 대도시가 장안을 제외하면 전무하다시피한 관중+관서 지역의 국가들은 초기 호하를 제외하면 전부 장안이 수도, 관동의 국가들도 패권을 잡기 전까지는 중심 세력의 근거지가 수도이고, 패권을 잡은 이후에는 기존 대도시를 수도로 했죠. 조금 특이한 케이스는 후연인데, 수도 중산은 수도급 대도시는 아니었습니다. 중산이 수도로 된 배경에는 비수대전 이후의 혼란기 와중에 중산 지역에 유랑민+선비족 인구를 정착시켜서 근거지를 마련했고, 덕분에 수도로 낙찰. 이 역시 생산력과 아무 관련 없죠
-
작성자 Dondegiri 작성시간15.10.26 근데 해동천자님이 드신 예는 중앙집권화가 진행된 국가, 그러니까 조운시설과 같이 수취제도에 필요한 인프라가 공고히 자리잡은 케이스를 주로 예를 드셨는데, 이런 중앙집권화가 아직 공고히 이뤄지지 않은 케이스나, 아니면 더 큰 반례로 이제 갓 정치집단을 구축하는 농경에 기반을 둔 초기정치체제 내에서 통치권을 가진 권력자를 가리는데 생산력(즉 전쟁에 쏟아부을 수 있는 힘)이 가지는 중요성은 무시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한 지역의 정치적 중심지가 대부분 물(바다, 강, 아님 둘 다)을 끼고 넓은 평야에 의존한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죠. 해동천자님도 언급하셨듯 '건국주체'의 정치적 권한은 굉장히 막강하고,
-
답댓글 작성자 Dondegiri 작성시간15.10.26 그들의 막강함은 굳이 정치적 정당성에서만 오는 그런 젠틀한건 아니었으니까요. 생산력과 경제력을 나눠서 보셨는데, 농업 생산력이 경제력과 일치하던 시대와, 상업화가 징행되는 시기에 따라 생산력과 경제력의 관계가 크게 달라지겠죠. 즉 생산력, 경제력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좀 더 샤프하게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고로, 그때 생산력=수도라는 의견을 제시하신 분의 원글이 그렇게 나쁜 글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그 논리가 너무 단순했을 뿐이고 정치적 중심지를 정하는 요소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 뿐이지.
-
답댓글 작성자 Dondegiri 작성시간15.10.26 [Total-Hot]아하스페르츠 네 그게 제 말입니다. (특히 정주사회에서) 땅의 생산력, 또는 경제력이 지역패자를 만드는데 굉장히 큰 공헌을 하기 때문에 전근대사회에서 땅의 생산력과 정치적 중심지의 관계성에 대한 얘기를 가볍게 비웃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분명 토지 생산력이 경제력과 일치하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덧: 무르님 글을 다시 보니까 좀 민망할 정도로 논지가 이상하긴 하지만(...) 그래도 시각의 방향 자체는 썩 나쁘지 않았던 글이라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10.30 거론하신 문제는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만- 중국의 경우는 이미 전국시대에는 각국이 군현제와 제민지배를 실현할 만큼 중앙집권화가 매우 진전된 사회였고, 시간이 지날수록 토지와 지배층 및 거주인민의 연관성이 점차 약화되는, 그러니까 [분권적 봉건성]이 점차 사라지는 경향을 보입니다. 위에 거론한 사례들은 중국사에서 대부분의 시기를 차지하는 가장 대표적인 왕조들이에요...ㅎㅎ;;
물론 중국의 혼란기에 분열된 왕조들이 좀더 나은 생산력과 경제력을 선점하면서 통일의 길로 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분명 존재합니다. 특히 '항산'을 가지지 못한 이민족의 중국지배는 매우 극적이죠. -
답댓글 작성자 ★海東天子☆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15.10.30 더구나 각각의 분열된 왕조들도 전국시대 이래로 내려오는 군현제의 패러다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군현제에 자연스럽게 연관되는 조세제도와 [운송체계]를 갖추는 성향을 보인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말씀대로 건국주체들이 기존의 중심세력으로 막강한 경제력을 갖추는 경우도 있습니다. 동진 이래의 남조귀족들이 대표적이죠. 그러나 관롱집단의 경우는 경제력 보다는 선비족이라는 정치집단과의 연관성이 더 큽니다.
다시 말하면, 중국의 경우는 대부분의 시기가 집권적인 통일국가였다는 점, 분열된 시기에 조차 각국은 하나의 "작은 중앙집권적 국가"였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