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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데미르 작성시간17.10.13 수당이야 그렇다치지만.. 북위 초~헌문제시기까지는 한화된 왕조라기에는 군정위주의 유목왕조에다가 한화에 대한 거부감이 엄청났습니다.
더욱이나 육진의 난이 근원인 관롱집단도 서위-북주시기 동위-북주에 비해 빈약한 선비군단였습니다. 효무제가 장안으로 도망칠때 급히 챙긴 우림군 1만여명에.. 우문태와 그 수하들, 만사추노같은 비선비계 민족 외에는 전부 한인였습니다. 호족이 비교적 적었기에 동위보다 더 적극적인
호화정책을 내세웠고.. 각 주국대장군에 배정된 병사들에게 호족계성씨를 뿌리고 한인였던 관료,군인들에게 호족의 복성으로 고치는 등의 정책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