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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자의적으로 무리하게 맞춰본, 백제-신라 수정연대 (2차 수정)

작성자마법의활| 작성시간20.04.30| 조회수337|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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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5.01 백제는 기원전후 1세기부터 비류 계열 왕통이 소국 추장부터 주욱 한성에 자리잡았을 개연성이 있습니다. 흡사 졸본부여-고구려의 관계를 방불하게 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5.05 갑자기 저도 궁금해져서 강종훈 교수의 신라초기사 저서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 전에도 경주에 비파형 동검을 쓰는 공동체들이 있었긴 했는데 유물 량이 풍성해지고 이런저런 조직체들이 들어선 걸로 보이는게 2세기 말~3세기 초라고 합니다. 고조선 유민들이 이런저런 공동체를 세우고 살았는데
    아마 동한 말기 혼란 때 낙랑군 쪽이 시끄러워지니 낙랑인들이 한반도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나가는데
    박혁거세가 그 중 하나인 꽤 큰 세력족단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5.05 달마시안TV 그 이주민 세력이 주요 영도 세력으로 드러나고 있고, 그 시기부터 갑자기 유물 량이 풍성해져서 고대 국가로 진입하는 주요 단계로 보이니까요.

    마찬가지 이유 때문에 백제의 고대 국가 시기는 고이왕 이전 시기론 도저히 봐줄 수 없고 고고학적으론 비록 거주지 유적이 기원전 1세기로 있긴 하지만 아예 거론조차 되지 못합니다.

    사실 고이왕의 연대조차도 정확하지 못하다는 혐의가 있어서, 제가 그걸 토대로 자의적인 설정을 했던 것이기도 하고요.
  • 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5.05 달마시안TV 이례적으로 빠른 게 아니라, 고구려가 오히려 정상적인 경우고 신라나 백제가 늦게 시작했는데도 고대 국가를 꽤 빠르게 세워나간 경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신라와 백제의 근간에 공헌한 이주민 세력이, 이미 다른 체제에서 발달된 정치체제 경험을 했기에 가능했던 걸로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5.05 달마시안TV 제가 일본사는 잘 모르지만, 3세기에 위나라에 사절까지 보낼 정도로 성장한 걸 보면 신라-백제와 그렇게까지 진도(?)가 차이 나진 않았던 걸로 생각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5.05 달마시안TV 네 그렇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5.17 달마시안TV 히미꼬가 큐슈 정권이었는지 야마토 정권이었는진 분명하지 않습니다.
  • 작성자 돈데기리 작성시간20.05.01 초기적인 정치체제가 계속 발전하고 있었고, 어느정도 각 지역에서 큰소리 낼 만한 와꾸가 갖춰진게 2-3세기라는 말씀이시군요. 다만 박혁거세는 기록에 나타난 탄생신화를 본다면 이건 왕인지 동네 이장인지(...) 분간이 안될 수준이라 고고학적으로 나오는 2세기경 신라의 역량을 잘 비교해야 할 듯 합니다.

    즉위기간을 인위적으로 늘린게 역사를 뻥튀기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반대로 (정치투쟁으로 축출되거나 역사집필 당시 세계관에 맞지 않는) 몇몇 왕을 기록에서 까버린 흔적이라 볼 순 없을까요?
  • 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5.01 그렇게 보긴 힘듭니다. 연대는 몰라도 임금들이나 가계도는 그럭저럭 취신할만한 것으로 볼 수 있는걸로 압니다. 다만 아파트대책위 수준으로 돌아가면서 역임한 대표들은 누락되었을 개연성이 있으나 이런 사람들은 아예 왕도 추장도 군주도 아니라고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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