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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5.05 갑자기 저도 궁금해져서 강종훈 교수의 신라초기사 저서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 전에도 경주에 비파형 동검을 쓰는 공동체들이 있었긴 했는데 유물 량이 풍성해지고 이런저런 조직체들이 들어선 걸로 보이는게 2세기 말~3세기 초라고 합니다. 고조선 유민들이 이런저런 공동체를 세우고 살았는데
아마 동한 말기 혼란 때 낙랑군 쪽이 시끄러워지니 낙랑인들이 한반도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나가는데
박혁거세가 그 중 하나인 꽤 큰 세력족단이었던 걸로 보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마법의활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0.05.05 달마시안TV 그 이주민 세력이 주요 영도 세력으로 드러나고 있고, 그 시기부터 갑자기 유물 량이 풍성해져서 고대 국가로 진입하는 주요 단계로 보이니까요.
마찬가지 이유 때문에 백제의 고대 국가 시기는 고이왕 이전 시기론 도저히 봐줄 수 없고 고고학적으론 비록 거주지 유적이 기원전 1세기로 있긴 하지만 아예 거론조차 되지 못합니다.
사실 고이왕의 연대조차도 정확하지 못하다는 혐의가 있어서, 제가 그걸 토대로 자의적인 설정을 했던 것이기도 하고요. -
작성자 돈데기리 작성시간20.05.01 초기적인 정치체제가 계속 발전하고 있었고, 어느정도 각 지역에서 큰소리 낼 만한 와꾸가 갖춰진게 2-3세기라는 말씀이시군요. 다만 박혁거세는 기록에 나타난 탄생신화를 본다면 이건 왕인지 동네 이장인지(...) 분간이 안될 수준이라 고고학적으로 나오는 2세기경 신라의 역량을 잘 비교해야 할 듯 합니다.
즉위기간을 인위적으로 늘린게 역사를 뻥튀기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반대로 (정치투쟁으로 축출되거나 역사집필 당시 세계관에 맞지 않는) 몇몇 왕을 기록에서 까버린 흔적이라 볼 순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