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동양사

임진왜란때 왔던 이여송과 같이왔던 명나라 장군들 분류 (명나라 보다 더 자세히 정리한 조선)

작성자배달민족|작성시간20.11.29|조회수545 목록 댓글 6

 임진왜란때 명나라가 도우러 왔다는 사실은 매우 유명하지만, 이여송, 낙상지, 송응창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았죠.

 

 사실 이는 관심이 적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학계 혹은 대중적 분위기도 생각을 안할 수 가 없는게, 9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군은 와서 도움이 된 것은 맞지만 민폐만 많이끼쳤다는 인식이 많았을 뿐더러(시청률이 저조하기는 했지만 천둥소리같은 사극에서는 허균이 명나장군에게 일갈하는 장면까지 묘사가.... ^^;;)

 

 또 작심하고 중국관련 연구에 집중을 해도 문제인게, 자칫하면 또 임진왜란을 가지고 중 · 일 대결로 몰아간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었거든요.... (그래도 2000년대 넘어와서는 많이 좋아지고 한중간 연구교류도 많아졌지요) 

 

 그렇다고 물론 근대이후 학자들이 이들에 대해서 정리를 하지 않았던 건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외국의 사례들을 좀 소개해 보면

 

좌협군(左協軍)        지휘관  부총병 양원      병력:14000인

 대장(大將)친병(親兵)                                       2000인

 마군(馬軍)2영(營)              부총병 왕유익등        3000인

 마군(馬軍)5영(營)              참장    이여매등        6500인 

 보군(步軍)2영(營)              부총병 사대수           2500인 

 

중협군(中協軍)         지휘관 부총병 이여백    병력:13500인

 대장(大將)친병(親兵)                                        1500인

 보군(步軍)3영(營)              부총병 임자강등         4000인 

 마군(馬軍)6영(營)              유   격 고   책등         8000인

 

우협군(右協軍)          지휘관 부총병 장세작   병력:13000인

 대장(大將)친병(親兵)                                        1500인

 보군(步軍)4영(營)               부총병 오유층등        5000인

 마군(馬軍)5영(營)               부총병 조승훈등        6500인

 

총계                                                            40500인

 

 이게 대만3군대학(臺灣三軍大學)에서 편찬한 중국역대전쟁사의 명실원조항일전역(明室援朝抗日戰役)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 책은 1955년부터 장개석이 직접 명령해서 발족시킨 '중국역대전쟁사편찬위원회' 가 16년간 연구해서 1972년에 나왔다가, 나중에 미국 콜롬비아 대학등과 협력해서 1979년에 재판이 나왔고, 중국대륙에서는 1983년에 출판되었지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런 정리의 끝판왕(?) 격인 일본의 참모본부 조선역에서도 이를 적어놓았고 훨~씬 더 세세하게 분류를 해 놓았습니다(참 징(?)하긴 하네요^^;;)

 

 근데 근대 이후 가장 먼저 정리한게 일본 참모본부애들이라 쳐도 그럼 참모본부 얘네들?은 어디서 봐서 정리를 했을까요.

 

 

 

 

 

 

누구긴 누구야 나지 

 

 아이러니 하게도 가장 정리를 잘해놓은 사료들이 명실록 명사는 애초에 아니고 경략 송응창이 쓴 문서들을 모아놓은 경략복국요편도 아닌 조선왕조실록같은 조선사료들이었습니다  ^^;;

 

 물론 당연하게도 경략 복국요편의 황제에게 진격일정을 보고하는 상주(報進兵日期疏)에 자세히 나와있기는 한데(근데 이 상소문이 정작 명실록에는 없다는게 참;;), 이 내용에 나와 있는 군사 숫자와 조선에 왔을때의 군의 편제가 조금씩 다르기도 하거니와 조선왕조실록같은 조선사료에 나와있는 인물이 없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죠 ㅎㅎ

 

 한 예로 경략복국요편에서는 이여백이 좌군을 이끌게 한다고 되어있지만, 정작 선조 수정실록에서 좌군을 이끌고 있는 건 양원이었고 중군을 맡고 있던건 이여백이었죠. 이여송이 중군을 자신의 동생에 맡겨야 된다 싶어서 그렇게 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또 헷갈리는 건 선조 실록에서는 또 경략복국요편에서처럼 되어있습니다....(아니 이거 어쩌라는 거임?)

 

 근데 사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자세한 건 좋은데 한자인건 둘째치고 편리성과 가독성은 좀 떨어지는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참모본부 조선역에서 인물의 정리 구성은 이 책을 기준으로 삼게 됩니다(다만 실록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는 경우는 실록의 기록을 따름).

 조선 후기학자인 신경이 쓴 재조번방지인데, 이 책이 전근대 서책중에 그나마 가장 자세하게 그리고 알기 쉽게 당시 명나라 군대의 편제를 정리하였습니다. 

 

 송응창, 이여송 밑에 좌중우 3영이 나뉘어져 있었고, 그 3영을 누가 이끌었고(좌군 양원, 중군 이여백, 우군 장세작), 그 밑의 장군들이 누구며 각 장군들이 각기 군사 얼마를 그리 어떤 병종을 이끌었는지에 대해서 같이 기록하였을 뿐만아니라(실록은 다 따로 기재), 그 외에 별도로 온 사람들까지 일일이 다 기록하였습니다. 

 

 사실 신경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배경은 신경 본인이 똑똑하기도 했지만 그 할아버지인 '신흠'덕분 이었습니다. 

 

 신흠은 임진왜란 기간중에 이조정랑 이조좌랑을 역임하였을 뿐만아니라 대명외교문서를 담당하는 승문원 교감을 겸대하기도 하였기때문에, 당시 명나라 관련 소식에 대하여 매우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선조의 신임을 받아 나중에 그의 장자인 신익성은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와 결혼하여 부마가 됩니다)

 

 그 신흠의 문집인 '상촌집' 이 남아 전해져 오는데, 당연하게도 임진왜란 관련기록을 남겼고, 그 안에 조선에 왔던 각 명나라 인물들에 대한 매우 자세한 기록들이 있습니다.(임진년부터 경자년 사이에 우리 나라를 다녀간 중국의 조사(詔使) 및 장신(將臣)의 성명.天朝詔使將臣先後去來姓名。記自壬辰至庚子。)

 

 아마 당대 중국에서도 이정도까지 상세하게 정리는 안했을 것 같은데, 아무튼 할아버지의 이런 기록을 토대로 (물론 상촌집 뿐만이 아니라 징비록 지봉유설 백사집 등등 쟁쟁한 문서들도 참고 하고 있습니다), 재조번방지의 저 기록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거겠죠.

 

 그리고 그 덕분(?)에 근대 이후 일본의 참모본부 조선역도 대만의 중국역대전쟁사에서도 해당 국가인 명나라사료가 아닌 조선사료를 기반으로 명나라군 편제를 정리하는 아이러니가 펼쳐지게 되는 거지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배달민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1.29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ㅎ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0.11.29 조선사료가 명실록 명사보다 명나라군 편제 정리가 잘되어 있군요
  • 답댓글 작성자배달민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1.29 명사는 편찬 목적상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명실록은 좀 의외였습니다 ㅎ.
    혹시몰라 명사 기사본말도 찾아봤지만^^;;
  • 작성자bamdori | 작성시간 20.11.29 정말 기록덕후 조선...
  • 답댓글 작성자배달민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11.29 어쨌든 은인들이었으니 ㅎㅎ 하긴 6.25참전국가들과 그 전공에 대해서 한국사람들이 각 파견국가 국민들보다 더 관심이 크지 않을까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