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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사

중국인들은 언제부터 구이(九夷)를 조선이라 인식하였을까?

작성자배달의 민족|작성시간22.02.16|조회수554 목록 댓글 2

지난번에 레지사료를 언급을 하면서 후한서 동이열전을 언급한 일이 있죠.

 

근데 사실 후한서에 동이열전에 나오는 九夷는 워낙 유명했습니다. 왜냐면 공자가 九夷에 가서 살고 싶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서 말이죠.

子欲居九夷, 或曰, 陋如之何. 공자께서 구이에 가서 살고 싶어 하셨다. 혹자가 말하기를 누추한데 어떻게 하시렵니까?

子曰, 君子居之, 何陋之有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가 살고 있는데 무슨 누추함이 있겠느냐

 

논어 

 

이게 다른 책도 아니고 논어에 적혀있기때문에 전근대 한국과 중국의 서당에 다니는 학동들 조차도 후한서 동이열전의 九夷는 모른다고 하더라도, 九夷라는 존재자체는 대부분 다 알고 있는 그야말로 '기초상식'이었다는 거죠.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일찍부터 유학자들이 저 공자가 가고 싶어하는 구이는 '우리나라' 였다(^^;;)는 인식이 자리잡았었습니다. 

 

고운 최치원부터 그랬죠. 

 

...삼가 생각건대, 소방(小邦)의 땅은 진한(秦韓)이라고 칭해지고 도(道)는 추로(鄒魯)를 흠모합니다. 그렇지만 은(殷)나라 부사(父師)가 처음 가르침을 베풀 적에 직접 나서서 일을 행한 것을 잠시 본 것에 불과하고, 공 사구(孔司寇)가 와서 살고 싶다고는 했어도 입으로 은혜를 베푼 것만 들었을 뿐이요,담자(郯子)는 한갓 먼 조상만 자랑하였고,서생(徐生)은 완선(頑仙)이라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고운집 제1권 / 장(狀) 숙위하는 학생을 번국으로 방환해 주기를 주청한 장문〔奏請宿衛學生還蕃狀〕

 

역사 인식을 이야기한게 아니라 인용해서 표현을 한 것 이기는 한데, 신라를 가리켜서 "공자께서 와서 살고 싶다고는 했어도 "라는 표현을 한 건 추상적으로 "공자와 후한서에서 말한 九夷는 우리를 가리킨다라"는 인식을 일찍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거죠.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고려를 지나 조선에 이르기까지 유학자들 관념상에서 九夷=朝鮮(기자조선)이란 공식은 아예 고정불변의 사실인 것 처럼 자리잡았고, '유학자들의 국뽕(?)' 소재로서 매우 활발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오죽하면 연암 박지원은 "아 진짜 그런 걸로 국뽕 하는게 무슨 의미냐고!" 할 정도.

   

 

자 그렇다면 중국은 어땠을까?

 

당연하겠지만 공자의 九夷관련 언급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서 남송대 주희는 四書或問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어느 사람이 九夷에 대하여 물었다. 답하기를 邢은 九夷로써, 玄菟·樂浪·高麗 에 속한 곳이다. 또 胡氏가 말하기를 君子란 箕子를 가리키는 것이다. 箕子는 遼東에 居했다.

 

四書或問 권 14

 

즉 남송대에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九夷에 대해서 여러가지 의견이 나왔는데, 그 중에 胡氏라는 사람은 九夷= 기자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 한 겁니다.

 

마찬가지로 동시기 정여개라는 사람또한 論語意原이라는 자신의 책에서 "그러나 기자가 조선에 봉해졌으니 즉 구이의 종족이다" 라고 말하면서 비슷한이야기를 했고요. 

 

즉 중국에서도 공자가 가고 싶어한九夷는 朝鮮(당연히 기자조선)이라는 인식이 존재하긴 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九夷=朝鮮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을까.

 

 

당연하겠지만 고려나 조선도 아니고 그럴리가 없지요. 중국에서는 이후 계~속해서 九夷는 동방의 여러 민족을 지칭하는 관념적인 표현으로서 활용되었습니다.

 

 

명대 기록들을 살펴보면 九夷는 여러 동방의 국가들을 이야기 하는 것이었고, 고조선은 그 중의 하나로 언급되었을 뿐입니다. 

 

진자룡의 명경세문편의 요동변이(遼東邊夷)에서는

 

동이는 곳 구이의 땅으로, 소이 獻夷, 方夷, 于夷, 黄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가 바로 이것이다. 후에는 朝鮮, 高句驪, 女直, 읍루, 新羅, 百濟, 伏餘, 東胡, 烏桓, 鮮卑, 渤海, 沃沮, 三韓, 濊貉, 日霫, 安定, 樂浪, 玄菟, 直番, 臨屯, 帶方, 肅慎, 靺鞨, 勿吉, 高麗, 北貉, 契丹, 孤竹 등의 나라가 되었다.

 

명 경세문편 권 248

 

이는 魏焕의 황명구변고(皇明九邊考)의 요동진(遼東鎮)에서도 똑같은 문구가 나오고요.  

 

 

이러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하는게 바로 청대에 들어와서 입니다. 청대에 들어와서 부터 九夷=(箕子)朝鮮이라는 인식들이 기록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대망(戴望)이 찬한 戴氏注論語의 公冶長第五와子䍐第九에서도 공자가 가고 싶어한 九夷가 조선의 땅 기자의 나라라는 표현이 등장하고(魯與齊接壤盡 靑州海其東爲九夷朝鮮之地 箕子之國), (九夷嵎夷之地今朝鮮國也),

 

劉寳楠이 찬한 論語正義의 子罕第九에서도 공자가 바다건너 살고 싶어한 구이가 조선이라 표현하였죠(子欲居九夷與乘桴浮海 皆謂朝鮮) 

 

 

 전문가가 아니라서 확신은 없지만 레지신부가 이러한 분위기하의 청대 학자들의 영향을 받은것은 아닐까라고 추측하지만, 어째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났는지를 원인을 분석 하는 것은(고증학때문에?, 동이라고 부를 존재들이 이제는 조선 밖에 없으니까?) 청나라 시대 사회 및 사상을 연구하시는 전문가 분들의 몫이 되겠죠.

 

저 기록들이 한국의 고대사를 밝혀줄 수는 없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당시 학자들(한인들)의 인식을 확인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인 것 만은 틀림이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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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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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노스아스터 | 작성시간 22.02.16 조선 유학자들:공자님도 조선에서 살고싶어했어!
    이런거만 봐도 조선 유학자들이 사대주의자 라는 프레임이 거짓말인걸 알수있죠.
    살수대첩에 관련된것도 그렇고 국뽕 빨만한거는 야사여도 기꺼이 국뽕을 빨아서요.
    특히 공자의 발언은 논어에 나오니 더 국뽕을 빨만 했고요.
  • 답댓글 작성자배달의 민족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2.16 "어떤 학문이나 사상 종교를 가진사람은 국가 보다 그걸 더 중시한다" 라고 단정을 짓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인간의 사고방식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ㅎㅎ 그랬으면 맑스할배 꿈이 진즉에 이루어졌겠죠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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