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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수도 장안, 그리고 관중지역에 대해

작성자캐리어| 작성시간24.09.02| 조회수0|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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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무장공비 작성시간24.09.03 오래써서 생산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오랫동안 구축된 인프라 자체는 강력하니까요. 삼국지 시절에도 삼보의 난으로 인구랑 인프라가 박살나니 똥땅 된거지 위가 주워먹고 재편하니 다시 든든한 배후지로 작동했지요.

    제갈승상이 그토록 따고 싶었던 배후지 ㅠ
  • 답댓글 작성자 캐리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9.03 인프라라고 하면 잘 정비된 농수로 같은건가요? 척박해도 인프라가 좋으면 생산력은 그럭저럭 나오나보네요.
    당나라가 멸망하고 5대10국 시절 더이상 장안은 수도로서 기능을 하기 어려우니 동쪽의 개봉으로 천도했다고 해서 삼국시대 이후 당나라시기까지 뭐로 버텼는지가 궁금했거든요.
  • 작성자 배달의 민족 작성시간24.09.03 어차피 도시(특히 수도)는 주변 인근 지역 생산력으로만 버티는게 아니라 운송망을 통한 외부 물자로 버티게 됩니다(ex 북경 대운하, 한양 조운선). 도로망이나, 타 지역과의 인적 네트워크 등등이 여전히 살아 있었으니 장안 or 낙양이 수도로 기능을 한 것이라 볼 수 있죠.
  • 답댓글 작성자 캐리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9.03 육로, 수로 등 교통망 같은 인프라도 무시못하겠네요 ㅎㅎㅎ
  • 작성자 大帝 작성시간24.09.03 관중이라는 이름의 가치가 크고 관중의 생산량이 줄었다고 해도 같은 화북 황하이북 파촉 화남에서 올라는 오는 교통은 그대로였습니다. 북조北朝의 경제적 기반은 사실 관중이 아닌 황하 이북 업땅이 중심였습니다. 북주北周가 북제北齊의 혼란을 틈타 화북을 통일한 힘이 수당의 힘이 되었죠 당나라시대만 해도 관중의 생산량은 급격히 하락 했습니다. 단지 황하와 위수의 수로가 발달하고 대운하로 강남의 곡물을 화북으로 옴겨 온 것입니다. 당이 망하고 오대시대를 통일한 송이 장안을 포기하고 개봉이라는 대운하 가까운 곳에 수도를 정한 것도 그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송나라 이후 장안은 그 가치가 계속 하락해 이후 역대 왕조의 수도가 되지 못한 이유이죠 다만 장안이라 이름의 값은 분명 존재하기에 송나라까지 수도는 변량(개봉)이라고 해도 장안을 경조부京兆府이라는 특별주 처럼 대접한 것도 오랜 기간 진 한 당의 고도이자 정통 수도라 그런 것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 캐리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24.09.03 장안의 상징성은 송나라 시대에도 여전히 강력했나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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