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카페에는 많은 고수분들이 있지만.. 저 처럼 아직은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제가 수업시간에 들은 재미있는 내용을 알려드릴려고 합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이란 것은 동양 사상 속에서 하늘의 모습과 땅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즉 우리내 사고 속에서 팔각이란 하늘과 땅이 만나는 모양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 이전의 우리나라 건물에서 팔각건물은 종교적인 색채를 띄는 곳 외에는 없었다고 합니다..(ex옛날 바퀴를 만들 때는 원 모양을 나무에 그려서 만든게 아니라 사각형의 각 각을 짤라서 팔각형 십육각형 삽십이각형 등으로 점점 원에 가까운 모습을 띄게 했다고 합니다..)
그럼 최초의 팔각정 건물은 어디에 있었고 왜 생겼을 까요.. 팔각정 건물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공원 탑골공원에 생겼습니다.. 때는 고종이 천자로 승격된 이후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천자는 하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일반 백성들 민중들은 땅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팔각정 건물은 당시 천자인 고종과 일반백성들이 만나는 건물이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팔각정 건물과 건물의 의미에서 좀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기존 우리나라의 친일적인 시선과 일제 강점을 미화하고자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고종의 개혁이 결국은 타파되어야 할 차르정치와 비슷한 모습을 띄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종이 추구한 개혁정치와 차르정치가 과연 같은 성격인 것인가에 대한 비판을 이 팔각정과 공원의 의미로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근대 사회내 절대왕정을 타파하고자 했었던 때 사회내 계급의 대립 구조를 살펴보면 왕과 귀족 대 부르주아 대 일반 민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서양의 절대 왕정과는 다른 모습을 띕니다. 왕의 권력은 절대적이지 못했고 영,정조 때(탕평책, 금난전권 등)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왕의 정치적 주적은 서양의 귀족 세력과 비슷한 세도가들이었습니다. 이전 왕들처럼 세도가들과 갈등관계에 있었던 고종은 공원 건설과 팔각정을 통해 일반 민중들과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 와중에 이미 국권을 빼앗겨서 실패했다고 볼 수 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실 전제군주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었기 때문에 고종이 황제가 된 후 그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공원이라는 광장을 만들어 준 것은 상당한 의미를 시사한다고 볼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교육의 측면이 있습니다. 고종의 광무 개혁 당시 세워졌던 많은 학교 출신들이 국권을 잃은 후 보여지는 여러 독립활동의 최 전선에 습니다. 이는 을사조약 당시 세도가 출신들이 정국을 주도했던 것에 비교하면 그 극명한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즉 고종의 교육적 개혁을 통해 자신의 세력을 확보하고자 했던 거에 미루어 비판 받았던 서양의 절대 왕정과는 다른 모습의 정치적 행태로 진보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제가 수업시간에 들은 재미있는 내용을 알려드릴려고 합니다.
천원지방(天圓地方)이란 것은 동양 사상 속에서 하늘의 모습과 땅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즉 우리내 사고 속에서 팔각이란 하늘과 땅이 만나는 모양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 이전의 우리나라 건물에서 팔각건물은 종교적인 색채를 띄는 곳 외에는 없었다고 합니다..(ex옛날 바퀴를 만들 때는 원 모양을 나무에 그려서 만든게 아니라 사각형의 각 각을 짤라서 팔각형 십육각형 삽십이각형 등으로 점점 원에 가까운 모습을 띄게 했다고 합니다..)
그럼 최초의 팔각정 건물은 어디에 있었고 왜 생겼을 까요.. 팔각정 건물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공원 탑골공원에 생겼습니다.. 때는 고종이 천자로 승격된 이후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천자는 하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일반 백성들 민중들은 땅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팔각정 건물은 당시 천자인 고종과 일반백성들이 만나는 건물이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팔각정 건물과 건물의 의미에서 좀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기존 우리나라의 친일적인 시선과 일제 강점을 미화하고자 일본인들이 주장하는 근거는 고종의 개혁이 결국은 타파되어야 할 차르정치와 비슷한 모습을 띄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종이 추구한 개혁정치와 차르정치가 과연 같은 성격인 것인가에 대한 비판을 이 팔각정과 공원의 의미로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근대 사회내 절대왕정을 타파하고자 했었던 때 사회내 계급의 대립 구조를 살펴보면 왕과 귀족 대 부르주아 대 일반 민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서양의 절대 왕정과는 다른 모습을 띕니다. 왕의 권력은 절대적이지 못했고 영,정조 때(탕평책, 금난전권 등)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왕의 정치적 주적은 서양의 귀족 세력과 비슷한 세도가들이었습니다. 이전 왕들처럼 세도가들과 갈등관계에 있었던 고종은 공원 건설과 팔각정을 통해 일반 민중들과 손을 잡으려 했지만 그 와중에 이미 국권을 빼앗겨서 실패했다고 볼 수 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실 전제군주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었기 때문에 고종이 황제가 된 후 그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공원이라는 광장을 만들어 준 것은 상당한 의미를 시사한다고 볼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교육의 측면이 있습니다. 고종의 광무 개혁 당시 세워졌던 많은 학교 출신들이 국권을 잃은 후 보여지는 여러 독립활동의 최 전선에 습니다. 이는 을사조약 당시 세도가 출신들이 정국을 주도했던 것에 비교하면 그 극명한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즉 고종의 교육적 개혁을 통해 자신의 세력을 확보하고자 했던 거에 미루어 비판 받았던 서양의 절대 왕정과는 다른 모습의 정치적 행태로 진보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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