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랏첼
독일 국민이 충분한 영토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사상은 아돌프 히틀러의 주장으로 유명해지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레벤스라움(Lebesraum) - 독일어로 생활구역, 생활권을 의미함 - 이라는 단어는 1897년에 프리드리히 랏첼이 최초로 사용했으며 영국과 프랑스를 모델로 삼아서 국가를 통일하고 식민지를 획득하자는 독일의 표어로 사용되었다. 랏첼은 국민의 발전은 국가의 지형적 위치에 우선적으로 영향받으며 한 지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국민은 다른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가게 된다고 믿었다. 그의 주장대로 건강한 인종의 자연스러운 팽창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영토가 필요했다.

칼 하우쇼퍼

프리드리히 폰 베른하르디
칼 하우쇼퍼나 프리드리히 폰 베른하르디같은 동 시대 학자들도 이러한 이론을 내세웠다. 폰 베른하르디는 1912년네 '독일과 다음번 전쟁'이라는 저서에서 랏첼의 이론을 확장하여 최초로 동유럽이 새로운 영토의 적임지라고 명백하게 강조했다. 베른하르디에 따르면 레벤스라움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벌이는 전쟁은 뚜렷한 "생물학적 필요성"에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라틴과 슬라브 인종에 대한 설명에서는 "전쟁이 없으며 열등하거나 타락한 종족이 건강한 민족의 성장을 손쉽게 목조른다."고 주장했다.
"레벤스라움을 얻으려는 이유는 단순히 인구증가로 인한 잠재적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가 아니라, 퇴보하고 침체된 종족으로부터 독일 인종을 방어하기 위한 필수 수단이기 때문이다."


레벤스라움은 1차 대전 시기인 1918년에는 거의 현실이 되었다. 새로운 러시아 공산정권은 독일과의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통해서 평화의 댓가로 발트 지역,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코카서스를 둘러싼 거대한 영토를 획득했다. 독일은 본국의 불안한 사정과 서부 전선에서의 패배로 인해 베르사이유 조약에 따라서 새롭게 획득한 동부지역 -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단명했던 우크라이나 독립국같은 나라들 - 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는데 동의해야만 했다. 베르사이유 조약때문에 상실한 영토를 되찾겠다는 복수심에 의한 열정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탄생한 여러개의 민족주의와 극단주의 정파들이 내세운 핵심 교의였으며 특히 아폴프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당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과거의 피해에 대한 고찰을 뒤로하고 독일은 우리 국민을 결집시킬 용기를 반드시 발견해야하며 앞으로 나아길 길을 위한 지도력은 우리 국민을 현재 한정된 생활 구역에서 새로운 영토와 흙으로 이끌것이고 그러므로 독일민족은 지구에서 사라지거나 노예 국가로서 다른 민족에게 봉사해야만 하는 위험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다."
국가사회주의 운동은 우리 인구와 우리 영토가 지닌 불균형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우리의 역사적 과거와 현재의 희망없는 허약함 사이에서 권력정치의 기초와 마찬가지로 이후 식량공급의 주요 문제로서 중요시하고 있다."

알프레드 로젠버그
레벤스라움 이념은 히틀러가 1941년 6월에 시작된 바르바로사 작전을 개시하게 한 중요 원인이다. 나치는 소련의 거대 영토를 빼앗아 기본계획 OST(Generalplan OST)의 일부로서 독일 거주민이 정착할 지역으로 만들려고 했다. 이러한 사상이 발전하면서 나치 이론가인 알프레드 로젠버그는 정복한 소련 영토에 다음과 같은 라이흐스코미사리아트 (Reichskommissariat) - 제국 위원회 - 에 기반을 둔 나치 행정기구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국가들)
카우카수스 (코카서스 지역)
모스카우 (모스크바 대도시 지역과 인근의 유럽 러시아 지역)
라이흐스코미사리아트 지역은 우랄 산맥 근처의 유럽 국경선까지 확장되었다. 나치의 동부 레벤스라움 계획에 따라서 전쟁 초기에 점령한 영토에서 러시아인과 슬라브 민족들은 추방당하거나 살해되었고 그 자리를 독일 정착민들이 채웠다. 독일군이 소련 영토로 진격하면서 그들은 최초로 점령한 지역에 라이흐스코미사리아트의 첫번째 두 개 영토인 오스틀란드와 우크라이나에 신속하게 행정기구를 설립했다. 1942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제6군이 패배하고 이어서 1943년 쿠르스크 전투에도 참패한 후 연합군이 시칠리아에 상륙하면서 이 계획은 실행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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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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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사탕찌개 작성시간 09.03.10 아이러니하게도 독일민족은 동유럽이 아니라 미국에서 그토록 원하던 레벤스라움을 찾게 되었지요... 미국에 1억 2천만명의 독일계 사람들이 살고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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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타메를랑 작성시간 09.03.16 30년 전쟁 때문에 온 국토가 초토화되었고,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서유럽 국가들에 비해 국가 통합을 늦게 한 독일로서는 해외 식민지 경쟁에서 두 나라에 불리하자 그에 대한 열등감이 상당했다고 합니다. 두 번에 걸친 세계 대전도 그런 대결의 연장선상에서 비롯된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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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타메를랑 작성시간 09.03.16 그래서 어느 독일인은 "바다는 영국이 차지했고, 대륙은 프랑스와 러시아가 점령했다. 우리에게 남은 영토는 공상의 세계 뿐."이라는 자조적인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