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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현대사

자유시 참변 100주년 (2) 홍범도(Хон Бом До,洪範圖) 장군의 증언

작성자신룡기2|작성시간21.03.21|조회수584 목록 댓글 1

자유시사건100주년 요약 ② (홍범도 장군의 증언을 통해서) 니항사건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  <방송에 출연한 홍범도의 손녀 한 빨리나 니꼴라예브나>

https://www.youtube.com/watch?v=9EuixtkQmU4

EBS에 방송된 양딸 박영식 여사의 장녀 한빨라니 니꼴라예브나 (세거함)

1921년 러시아 아무르주 스바보드니(자유시)에서 일어난 자유시 사건 100주년을 맞아 요약글을 써보려던 중

제 ①장 니항사건에 막히고 말았습니다.

김좌진 장군 후손을 만나서
고려인들의 도움으로 관리되었던 홍범도 장군의 묘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시 고려인문화센터내

시리즈에 차질이 생겨 함께 자료를 수집 했던 연해주의 향토 사학자분께 긴급하게 '니항사건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그분께서 와서 대면을 하자고 말씀하시니, 지금은 14일 격리를 견딜 수 없다. 불가능하다고 답을 했습니다.

연해주 향토사학자도 제가 자유시사건을 쓰고 있는 줄 알고 있는데, 갑자기 니항사건을 알아봐 달라고 하니 다소 황당해 하셨습니다.

일단, "니항사건에 참여한 독립군의 전체 명단, 친일파들이 주장하고 있는 독립군이 6,000명이나 학살했다는 일본군, 백파군, 러시아 시민, 어린이, 할머니 등 모든 자료"를 찾아봐 주실 것은 부탁은 드렸습니다.

명단은 찾으면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 호적기록은 정말 자세합니다.

공산당이 그냥 공산당이 아니죠.

숟가락 하나까지 기록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분도 00 역사책을 몇 권이나 썼는데, "니항에서 독립군이 민간인을 대량학살했다는 친일파의 이야기와 한국 역사학자1명이 쓴 책에 그런 내용이 있다"고 제가 말씀드리니, 아마

속으로는 '이 미친놈이 오늘 무슨 개소리를 하느냐?' 고 틀림없이 생각하시는 듯 하였고 대답도 결국 듣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대꾸할 가치가 전혀 없기 때문이겠지요.

자유시 사건에 관해 리00 선생님의 후손과 홍범도 장군, 김00선생의 후손 분들을 수차례 인터뷰하고 만나는 봤습니다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아마 적기 힘들게 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요즘 자유시 사건, 봉오동전투의 참고자료로 가끔 인용되는 『홍범도 자서전』의 진위 여부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대충 적어봅니다.

===자유시 사건에 관한 홍범도 자서전의 진위 여부에 관한 인터뷰 등, 참가자 3명 : 홍범도 장군 후손, 통역사, 필자====

문 : 홍범도 장군의 부인이 0분, 아들이 0분, 양딸이 0분 있었던 게 맞습니까?

답 : 그렇다.

문 : 홍범도 장군이 1943년 카쟉 크즐오르다 주 까라막치 군에서 세거하신 것이 맞습니까?

답 : 그렇다.

문 : 크즐오르다 시내에서 살 때 고려인 극장 수위를 진짜 하셨습니까?

답 : 그렇다.

문 : 현재의 묘지는 어떻게 조성되었습니까?

답 : 언니 한빨리나와는 10년이상 나이 차이가 나고, 언니 집에 사진 등이 있었다. 나는 카라막치에서 홍범도가 세거하여 3차례 정도의 이장을 거쳐 200킬로미터 떨어진 크즐오르다 시내의 묘지에 묻히게 되었다. 북한, 러시아 등 3곳에서 관이 와서 안쓰는 관은 불태웠다고 들었다. (EBS에서 방송된 동영상을 보여준다)

한빨리나는 도올 김용옥과 EBS에 한시간 가량 방송된 사람이 맞다.

그해에 한국에서 초청장이 오고, 블라디보스톡 총영사가 찾아와 500달러를 선물로 줘서, 100달러짜리를 꺼내 나에게 보여주며 자랑하는 것을 봤다.

나의 언니 한빨리나는 1990년대 초반 카쟉에서 연해주 해삼쪽으로 와서, 한국 가려고 준비했다가 몇 달 뒤에 죽었다. 카쟉에 있을 때 한국 사람이 인터뷰하러 자주 왔다. 한국 한번도 못가봤다. 나의 형제들은 여행 한번 못해봤다.

1993년 동아일보에서 국내 최초 보도한 1932년 홍범도 장군의 연금 신청용 자서전

문 : 홍장군의 세거지는 조살리(까라막치) 군입니까?

답 : 그렇다.

문 : 홍범도 연극이 크즐오르다 고려인 극장에서 상영되었다는데 이것이 진짜 입니까?

답 : 홍장군이 자신의 연극을 한 번 본적이 있는데, 어이가 없어, "내가 이랬단 말인가?"하고 모조리 그냥 부셔버리셨다고 한다. 그뒤 연극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문 : 아랄해의 송용준 선생은 사위가 맞습니까? 홍범도 장군의 양딸인 박영식 여사의 후손분이 대략 20여분 정도 있는 것이 맞습니까?

답 : 손용준은 모른다. 그정도 있을 것 같다. 나의 형제들은 어려서 죽고, 친척뻘 되는 허00은 하바로프스크에서 2000년경 죽었다.

문 : 허00은 서대문감옥에서 형이 집행된 왕산 허위 선생의 후손이 맞습니까?

답 : 그렇다. 친척관계다.

문 : 형제분들 중 살아계신 분은 있습니까?

답 : 모든 형제가 나를 빼고 모두 세거했습니다.

문 : 요즘 유전자감식을 통해 친인척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답 : 그 정도는 안다.

문 : 1950년대 우즈벡 타슈켄트를 찾아온 사람의 이름은 기억합니까?

답 : 모른다.

문 : 1950년대 타슈켄트를 찾아온 소설가가 1주일간 할머니 이인복 여사를 인터뷰 한 것이 맞습니까?

답 : 맞다.

문 : 할머니의 묘는 체첸으로 갔다고 인터뷰하셨던데 사실입니까?

답 : 적성국가 출신인 체첸인들이 귀양에서 풀려났을 때 소련에서 허락을 안해주니 밤중에 몰래 조상묘를 파가지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는데, 나의 할머니 묘를 자기 어머니 묘인줄 알고 잘못 파가지고 가져갔다. 할머니 묘는 체첸으로 갔다.

문 : 남한에서 요즘 유명하신 리인섭 선생의 후손과는 연락이 되십니까?

답 : 지금 처음 봤다.

문 : 어머니 박영식 여사의 성함은 박영식입니까? 박연식입니까?

답 : 박영식이다.

문 : 1980년대 초반에 세거하셨는데, 한국의 학계에서 인터뷰하러 온 사람이 있었습니까?

답 : 불가능하다. 소련시대에는 여행증, 거주증 등 없이 한국인은 올 수 없다.

문 : 스탈린 시대에 온 사람은 있었습니까?

답 : 없다. 그 당시 우리집은 감시 받았다. 그 시대에는 허가증 없이 올 수 없다.

문 : 한국 역사학자가 1980~1990년대 카쟉에서 홍범도 가족을 인터뷰한 것이 있는데, 인터뷰한 사람이 어머니 박영식 여사님입니까?

답 : 아니다. 아마 언니를 착각한 것일 것이다.

(사진들을 보여준다)

문 : 뒤에 솥깝있고 좌우측에 모자쓴 한국인과 함께 있는데 이 곳이 흥개호(한까이) 근처에 있던 홍범도장군 집입니까?

답 : 그렇다. 나도 들었고 이 사진은 어려서부터 많이 봤다

문 : 홍장군의 부인 이인복 여사가 맞습니까?

답 : 그렇다. 나의 할머니다. 나와 닮았다.

문: 가운데 아기는 누굽니까?

답 : 이웃집에서 놀러온 아기다.

문 : 홍범도 장군 결혼식 사진입니까? 같은 날 찍은 것입니까?

답 : 아니다. 아마 같은날 군인들하고 찍고, 할머니하고도 찍은 사진들이다.

문: 한까이 군에 가족관계 서류가 있습니까?

답: 한까이 군청이 수몰되었다. 한까이 호수가 커지면서 홍범도 장군이 농장하던 벌판은 물에 잠겼다.

=========중략, 인터뷰는 수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다.=======

문 : 자유시, 스바보드니 사건 당시 홍범도 장군 부대가 독립군을 매장했다고 하는데 아시는 것 있습니까?

답 : 모른다. 나는 카쟉, 우즈벡, 한까이를 거치면서도 그런 곳은 가보지 못했다.

문 : 오하묵, 최고려, 김하석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답 : 없다.

러시아 시베리아 스바보드니 시

문: 왕산 허위 선생은 아시지 않습니까?

답 : 허00과 나는 친척이다.

문 : 마스끄바에서 00을 만나고 받은 권총집입니까? 권총과 금화 00훈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답 : 권총은 못 봤다. 금화는 어떻게 했는지 모른다. 00이 돈을 주겠다고 하자 나에게 돈은 필요 없고 조국 독립을 도와달라고 했다고 한다.

나의 할아버지 혼밤도는 돈을 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했다.

문 : 대판(오사카)와 와카야마현 지도가 있는 수첩은 유품입니까?

답 : 그렇다.

문 : 이 지도가 니폰의 대도시 오사카인가?

답 : 대판의 일본군 병영, 와카야마현이라고 한자로 적혀 있습니다. 오사카가 한국어로는 대판입니다.

문 : 이게 어디서 난 것입니까?

답 : 왜놈 장교에게서.. 000방법으로 얻었다고 한다.

(함께 웃는다. 통역사 이상하게 본다.)

왜적 부대장을 때려잡고 노획한 오사카(대판) 왜군 병영 지도를 착용한 사진

(홍범도 자서전을 읽어준다. 통역사 통역한다.)

문 : 후치령 전투의 기록이 사실입니까? 00전투의 기록은 사실입니까?

답 : 모른다.

문 : 다른 숫자 기록은 정확한데, 일본군 숫자는 왜 이렇게 수십군데 틀립니까?

답 : 모른다. 이 책 자체를 처음 본다.

문 : 이동중인 적 병력 등은 오늘날의 사진기술과 인공위성 등으로도 정확한 숫자 파악이 힘듭니다. 이러한 숫자상의 수십군데 오판만을 가지고 가짜 자서전이라고 봐도 되겠습니까?

답 : 나는 모른다.

문 : 과거 이 기록을 봤지 않습니까?

답 : 한국에서 갔을 때 사진을 그렇게 찍은 것이다. 나는 이런 것인줄 몰랐습니다.

문 : 할머니 이인복 여사는 이승만 대통령과 친척이 맞습니까?

답 : 맞다. 그런데 한국에 가니 사람들이 이승만은 나쁜 사람이고 그런 사람과 친척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해서, 말하지 못했다. 할머니는 이승만과 친척이 맞다.

문 : 이 글은 000글 하고, 경술년 서력 1910년도의 홍범도 자필 편지에 나온 글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게 소설가 김세일과 리인섭이 인터뷰하고 소설로 써 놓은 것인가요?

답 : (한참 물어본다) 모르겠다.

홍범도는 중국어를 잘했는가?

문 : 홍범도 장군은 한자를 잘했습니다. 크즐오르다에서는 러시아말만 썼다는데 이것이 사실입니까?

답 : 아니다. 조선말도 했지비(조선말을 했다)

문: 진짜입니까? 바깥에서 러시아말만 썼다는 소리가 있어서요?

답 : 아니다. 혼밤도는 집에서 고려말 했다. 할머니도 조선말 했다. 언니도 했습니다.

문 : 오늘날 크즐오르다에는 왜 묻히게 되었나요?

답 : 홍범도는 큰 인물이다. 까라막치 같은 너무 시골에 놔둘 수가 없어서 이장한 것이다. 고려인들이 이장한 것이다.

문 : 연해주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톡에 언니 한빨리 여사의 후손은 몇 분이나 있습니까?

답 : 한국에 왔다간 적 있는 에르네스트와 2명 정도 있습니다.

문 : 국가보훈처에서는 홍범도 장군의 후손이 아니라고 합니다. 알고 있습니까?

답 : 알고 있다. 나의 할머니 자식이 3명인데, 2명을 출가시킨 후 나의 어머니만 데리고 재혼했다. 나는 친자식이 아니다.

문 : 한국법상 양녀는 상속권과 분묘관리권이 있는 자식입니다. 홍장군의 후손은 한국법, 북한법, 러시아법 3나라의 법중 하나만 적용되면 후손이 맞습니다.

답 : 그런가요?

문 : 그러나 그런 법에 없어도 후손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독립군에게 적용되는 법은 "독립군의 법"입니다.

홍범도 장군이 "손녀"로 인정하면 한국, 북한, 러시아 법이 가짜라고 주장해도, 독립군에게는 독립군의 법이 적용됩니다.

답: 고맙다. 나는 진짜 손녀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 현00은 홍장군을 20년 동안 모시고 자식 노릇을 했다. 나도 언니도 그런 점은 진짜 억울합니다.

문 : 아버지는 사할린 섬에서는 무슨 일을 했습니까?

답 :(이부분은 불확실하다) 광산, 석유채굴 등에서 기술자로 한 때 일했습니다.

문 : 북한 평양이나 함경도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호적기록은 찾아봤습니까?

답 : 나는 1960년도쯤에 연해주 왔고, 홍범도의 조선시대 호적을 찾아본 적이 없습니다.

문 : 홍범도 장군의 성은 “김씨입니까, 아니면 박씨입니까”

답 : “홍”씨로 알고 있습니다.

문 : 북한에서 “박범도”라고 하는 것은 어머니 박영식 여사의 성을 보고 홍범도의 진짜 성이 박씨라고 추측한 것입니까?

답 : 모른다. 나에게 북한에서는 연락이 한 번도 안왔습니다.

(사진을 보여준다)

문 : 이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답 : 모른다. 처음 봅니다.

(중략, 홍범도 묘지문제 관한 부분은 최근 북한의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문 : 방문하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까?

답 : 작년에는 한국인 10명 넘게 왔다. 권총집을 백달러 줄테니 팔라는 사람도 있었다. 안판다고 했더니 던져버리고 갔다. 그 뒤 관리를 잘합니다.

문 : 세거하신 형제분들은 교육을 잘 받으셨나요?

답 : 따시켄트에서도 어렵게 살았다. 나만 교육을 받았습니다.

문 : (홍범도 도서 3~4권을 보여준다) 이 책을 쓴 저자들 중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까?

답 : 없다. 누군지 모릅니다.

문 : 해줄 말씀이 있습니까?

답 : 할아버지가 한국에서라도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자서전이라는 것이 진짜 인지 아니면 소설가 김세일 선생과 리인섭 선생이 창작해서 써놓은 것인지 아무리 연구해도 쉽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다만 자유시 관련 부분에 있어서는 보다 더 신중한 접근을 해볼 필요가 있으며, 비교적 정확한 것은 러시아 문서로 남아 있는 각종 증명서이다.

※오늘날의 까자흐스탄 끄즐오르다주 까라막치 군의 명칭은 조살리 군으로 변경되었다. 주세죽(한베라)이라는 유명한 여자분이 홍범도 장군이 세거할 당시 귀양을 가 있었다는 소리가 있고, 까라막치 콜호즈는 인터넷 검색과 가끔씩 중앙아시아 고려인 역사를 연구하는 책에 등장한다.)

**최근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의 말에 따르면 북한의 홍범도 장군 묘지 이장 반대 운동은 분명합니다. 한국정부는 (한국에서는 후손이 아니라고 확인된) 최소 동거인 혹은 배우자의 후손으로 인정되고 있는 분들, 북한, 끄즐오르다 지역의 고려인과 협의를 했으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https://koryo-saram.ru/hon-bom-do-avtobiograf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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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1.03.21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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