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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현대사

자유시 참변 100주년 (7) 한국계 여단장 오하묵

작성자신룡기2|작성시간21.05.15|조회수697 목록 댓글 2

 

1934. 11. 25. 일경 소련군 제 244연대장 시절의 오하묵, 러시아 역사학자가 사진 제공

오하묵(吳夏默, О Хамук (Огай Христофор Николаевич), 1895년~1937년)은 한국계 러시아인이었다.

그는 러시아령 연해주에서 이름이 상당히 알려진 독립운동가 오성묵의 동생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확인되기로는 일제시대의 한국계 러시아인으로 소련군에 복무한 사람들 중 최고 계급인 여단장(육군 대령)까지 이른 사람이다.

 

중국 등에서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김홍일, 오광선, 류동열, 김무정, 이범석, 김책, 최용건, 남일, 허가이, 이청천, 송호성, 채형세, 권준 등과는 달리 실제 한국 독립군 2,000여명 이상을 지휘한 적이 있으며 실질적 계급도 오하묵이 더 높았다.

그의 생애를 간단히 살펴보면,

오하묵의 출생지는 러시아령 연해주라는 설과 한국의 함경도라는 설이 있다. 러시아령 시베리아 연해주 지역의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연해주 고향 마을에서 교사로 일했다.

 

1914년 백파인 제정 러시아 짜르 군대에 입대한 후 이르쿠츠크의 군사 학교를 졸업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었고, 동원 해제되었다.

1920년 초경 일본 시베리아 침략군과 백군이 퇴각하자, 오하묵은 러시아 아무르 지역 볼셰비키의 일원이 되었다.

오하묵은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의 주요 지지자로 알려졌다. 1920년대 독립운동가 문창범, 원세훈, 최고려, 김하석, 장건상, 남만춘(남만총), 류동열, 김철훈, 안병찬, 박승만, 김만겸, 채동순, 리지택, 김낙현(김학현), 이성, 이재복, 한명세, 한안드레이, 박이노겐치, 채성룡, 최창식, 황하일, 최호림, 전희세, 유수연, 유선장, 이정(李檉, 이병휘, 李秉徽), 서초(徐超), 조훈(曹勳), 오진형, 최의수, 김기룡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이르쿠츠크파의 인물이다.

러시아 아무르강의 지류인 제야강 인근의 도시인 스바보드니시 한인 보병 자유대대의 대대장으로 재직중 1921년 6월 28일 자유시 사건에 직접 관여하였다.

스바보드니시에 있었던 고려혁명군정의회 총사령관 까란다리시비리(Каландаришвили, 그루지아계), 코민테른 동양비서부장 슈먀츠키(Шумяцкий)외에도 오홀라, 극동공화국 군사령관 블류헤르, 2군단장 셰르쇼프(Серышев) 등의 지휘를 받았다.

 

자유시 사건 당시 수라제프카에 주둔중인 사할린 의용대를 무력으로 무장해제시키고 간부 박윤천(박일랴) 등을 사살하기 위해 자유시에 주둔하였던 이르쿠츠크 합동민족연대 소속 독립군부대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인보병자유대대”로 알려진 공격 부대를 직접 동원하였다.

고려혁명군정의회 군정위원이었던 통역사 최고려, 이르쿠츠크파 김하석 등과 연합하여, 사할린 의용대와 만주에서 온 독립군을 반혁명⦁무정부주의 등의 혐의로 탄압하였다.

1921년 6월 28일 자유시 사건 당시 자신들에게 일부 협조하였던 홍범도, 안무, 이청천, 류동열 등이 자유시 사건 이후 독립군 포로 처리 등에 협조하지 않자 그들과도 다투었다.

1921년 7월경부터 자유시에 집결했던 독립군의 일부가 서쪽인 이르쿠츠크로 이동하자, 이르쿠츠크에서 결성된 한국 소총 여단 (2500여명)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이르쿠츠크에서 만들어진 한국인 여단은 한국계 적군(소련군)이나 러시아령에 있었던 독립군 부대의 핵심으로 여겨졌다.

그는 러시아 내전 이후 소련군(볼셰비키 적군) 대령 계급으로 승진하였다.

오하묵은 안무, 박윤천, 한운용, 김규면, 이용, 리인섭, 김홍일, 마춘걸, 임상춘, 엄준 등과는 달리 연해주로 이동하여 일제 침략군과 전투를 벌이지는 않았다.

 

1923년부터 1925년까지 레닌그라드 군사학교에서 공부하였다.

1925년부터 1937년까지 소련 적군의 연대장으로 근무하였다.

1937년 반혁명 혐의로 체포 당시 소련군 제244연대의 사령관이었다.

스탈린에 의한 대숙청 시기인 1937년 일제 간첩 혐의로 총살되었다. 1990년대 소련 붕괴후 완전히 복권되었다.

 

한국계로는 보기 드물게 구소련에서 고위직으로 일했으나, 자서전 등이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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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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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1.05.15 한국계로는 구소련에서 고위직으로 일했으나 대숙청 시기에 일제 간첩 혐의로 총살되었군요 다행히 소련 붕괴후 복권되었군요
  • 작성자서프라이징너글맨 | 작성시간 21.05.15 저정도로 활동하는 고려인이 많았으니까 고려인 자치공화국 줄까말까 얘기가 나올수는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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