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 6. 28. 발생한 자유시 참변과 관련하여
우리나라 인터넷 상에서 "구 소련 공산주의 찬양비석"으로 잘못 알려진
1918년 9월 19일 일제 시베리아 침략군의 비무장 민간 여객선 "무드레츠" 격침 추모비.
이 비석을 "공산주의 찬양 비석"으로 볼 것이 아니고, 일본군의 공격으로 희생된 수백여명의 민간인 위령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스바보드니시에 아직도 공산주의 기념물과 스탈린 동상?까지 있지만, 여객선 민간인 희생자 추모비를 공산주의 승리나 찬양으로 보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비문의 문구 «Здесь 19 сентября 1918 года японскими интервентами затоплен красногвардейский пароход «Мудрец» 다른면의 문구 Вечная слава борцам за Советскую власть!, Обелиск – это память о днях борьбы за власть Советов на Дальнем Востоке. С сентября 1918 по февраль 1920 года в городе находились оккупационные войска Японии. |
구글 대충 번역문 : "여기서 1918년 9월 19일, 일본 침략군이 증기선 "무드레츠"를 격침했습니다. 다른면 번역내용 : "소비에트 강국의 전사들에게 영원한 영광을!" 오벨리스크는 극동에서 소비에트 권력 투쟁의 날을 기억합니다. 1918년 9월부터 1920년 2월까지 일본의 점령군은 스바보드니시에 있었습니다. |
<제야강변에 있는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한 수백여명 민간인 희생자 추모비>
<지금은 사라진 "타타르스코예 이슬람교 묘지"로 가는 길>
사할린의용대가 이쯤에 묻혀 있다고 누군가 말하곤 했다.
스바보드니 시는 스탈린시대 대규모 굴락과 강제노동수용소가 있었던 곳이었고, 그 폐허가 아직도 남아있다. 냉전시대에 있던 핵미사일 기지가 오늘날의 바스토치니 인공위성 발사장이 되었다고 한다.>
사행천의 물길이 변경되어 과거 강이었던 곳이 평야가 되기도 한다.
출처 :
https://www.gzt-sv.ru/news/169037-odin-vopros-meru-svobodnogo-planiruets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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