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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현대사

[펌] 1944년~47년까지 중국에서 공산당,팔로군을 지켜본 미군 정보장교들.

작성자워라|작성시간22.01.13|조회수228 목록 댓글 0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5473566 

 

1944년 7월 일단의 미군 관찰조 정보장교들이 옌안에 갑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47년까지 머무르면서
옌안의 물정을 파악하고 중국공산당과 접촉합니다.

옌안에서 미군 관찰조와 공산당과의 관계는 매우 화기애애.
마오쩌둥과 격의없이 만나 식사하고 어울렸다고합니다.

목적은 대일항전 작전협의.
(주로 격추된 미군 조종사 구출 작전 등)

중일전쟁 이후에도 미군 정보장교 관찰조는 중국 옌안에 머물면서 미 국무부에 계속해 보고서를 올립니다.

핵심은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이 이길것이고..
미국은 부패한 장제스가 아니라 마오쩌둥에 딜을 해야 한다고.

존 서비스(https://en.wikipedia.org/wiki/John_S._Service?wprov=sfla1 ), 존 데이비스 등이 그런 분석을 주로 올렸습니다.(반면, 제2차 국공내전 초기만해도 소련은 중국 공산당보단 중국 국민당쪽에 딜을했었죠. 중국 국민당을 공식적으로 중국 정부로 인정했었던..)

이들 미군 정보장교들은 선교사 아들로 중국에서 태어나 자란 중국통들이었죠.

물론 미국내에서는 그들의 보고서에 경악했습니다.

친 국민당 세력의 로비, 반공주의가 강한 미국에서
그들의 보고는 용인될 수 없었던 것.

미소 냉전이 격화되면서 관찰조에 참여했던 미군장교들, 많은이들이...
매카시즘 광풍에 휘말려 빨갱이로 몰려 해고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분석은 결국 20년이 지나 현실이 됐습니다.

1970년대 미중화해,수교는 옌안 관찰조의 분석 및 처방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미중은 20년이란 시간을 까먹은것.

1949년 미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을 승인했었더라면..
중국은 바로 그때 개혁개방을 했을 것이고..
또 한국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오늘날 미국의 역사학계 평가가 있습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지금도 옌안에 파견했던 미군 정보장교 관찰조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고합니다.
그 요원들 유가족을 모셔다 기념하기도 한다고합니다.


또한 관찰조를 파견보내는데 공헌 한..
당시 국민당 정부의 군사고문이자 미군 사령관 조지프 스틸웰도 높이 평가합니다.(물론 장제스의 국민당으로서는 스틸웰은 철천지 웬수였죠.)

미중관계의 흥미로운 대목 중 하나.. 

hrothgar
냉전이라는 게 상대에 대한 정확한 분석에 기반한 게 아니라
정치를 위해 적을 만든 케이스고 그 덕분에 미국은 세계 곳곳에 빨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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