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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현대사

베토벤 프리즈

작성자Kriegsmarine|작성시간22.01.16|조회수164 목록 댓글 0

 

 제체시온Secession

 제체시온 건물 앞에 처음 섰을 때 나의 감정은 한마디로 ‘흥분’이었다. 별로 크지도 않은 이 건물이 빈의 정신과 역사를 집약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올브리히의 건축에 클림트의 문구가 금박으로 새겨진 예술의 신전. 베토벤을 신으로 모셨고, 클링거의 조각상이 제단을 이루고, 말러가 지휘했으며, 실레가 전시를 했던 곳. 젊은 예술가들임 모여서 새로운 예술의 앞날을 천명한 성전. 건물의 전면에는 분리파의 정신을 적은 유명한 모토가 새겨져 있다.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모든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모든 예술에는 자유를.

 

 빈 미술 아카데미의 권위와 아집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이 젊은 예술가 그룹은 1898년에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의 혁신적인 설계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건물을 세웠다. 베를린과 뮌헨에서도 태동한 분리파 운동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었고, 황실도 더 이상 그 흐름을 모른 체할 수는 없었다. 이에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부지를 내어 주었고, 회원들이 건물을 지었다. 그들은 제14회 전시회에서 독일의 조각가 막스 클링거의 베토벤상을 전시장 중앙에 놓았다.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혁명적인 음악가 베토벤의 정신을 (비록 장르는 다르지만) 계승하겠다는 의미였다. 베토벤이 선배, 멘토를 넘어서 우상으로 모셔지는 순간이었다. 그 전시장에는 클림트의 벽화 <베토벤 프리즈>가 3면에 그려졌는데, 이 그림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베토벤 프리즈Beethoven Frieze

 분리파는 제체시온 지하의 전시실에 그들의 우상인 베토벤의 조각상을 모시기로 하고 조각가 막스 클링거의 베토벤상을 임대했다. 이 때 클림트는 베토벤상이 놓일 방의 벽을 장식하기 위해 벽 맨 위쪽에 띠지처럼 둘러진 벽화를 제작했다. 이것이 <베토벤 프리즈>다. 이 그림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의 4악장에 나오는 ‘환희의 송가’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실러의 가사인 “환희여, 아름다운 신의 빛이여, 오 세상에 입맞춤을 해주리라”는 부분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방으로 들어가면 세 면에 걸쳐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모두 34미터에 이른다. 맨 왼편에서 시작하는 첫 부분은 ‘행복을 향한 동경’이다. 인간이 행복을 향해서 비상하기 시작한다. 화면은 우윳빛으로 비어 있고 인간들이 그 안을 헤엄치듯이 부유한다. 두 번째 부분은 ‘약한 자의 고난’이다. 황금 갑옷에 투구와 칼로 무장한 기사가 서 있고, 뒤에는 여인들이 있다. 병약해 보이는 남녀가 무릎을 끓고 기사에게 애원을 한다.

 전시장의 정면 벽부터가 세 번째 부분인데, ‘적대적인 힘’이다. 고릴라 같은 거인 티포에우스가 시커멓고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그 왼쪽에는 그의 세 딸인 고르곤이 있다. 그녀들의 뒤에는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세 가지, 즉 질병, 광기, 죽음을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오른편에는 세 여자가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음탕, 음란, 방종이다. 오른쪽에는 풍성한 머리카락을 지닌 여인과 뱀이 있다. 이는 인간의 끝없는 슬픔을 표현한다.

이제 오른쪽 벽으로 넘어간다. 다시 부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한 여자가 리라를 연주한다. 음악을 뜻하는 이미지다, 그리고는 한참 아무런 그림도 없이 비어 있다. 그러다 기뻐하는 여인들이 등장하는데, 예술을 상징하는 이들은 실러의 ‘환희의 송가’를 부르고 있다.

 이 그림 속에 시와 미술과 음악이 다 담겨 있다. 인간이 진정 기뻐할 수 있는 대상은 바로 이 예술 뿐이라는 것이 클림트의 결론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마지막이자 다섯 번째 부분은 ‘세상을 향한 키스’다. 밝은 화면 속에는 꽃이 만발하고, 그 위에서 천사들이 합창을 부른다. 그 앞에 한 쌍의 남녀가 서서 격렬하게 키스한다. 이 남녀는 클림트의 <키스> 속의 남녀를 연상시킨다. 실은 <키스>와 같은 인물들이다. 그렇다면 <키스>는 그저 애욕을 표현한 게 아니라, ‘환희의 송가’와 같은 뜨거운 인류애를 담은 그림이 아닐까?

 이제 <베토벤 프리즈> 전체를 다시 정리해보자. 인간은 끝없는 고통과 슬픔 속에서 유혹과 방해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런 인간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은 오직 시와 미술과 음악이다. 나약하고 불쌍한 인간이지만, 예술이 있기에 기쁨도 있으며, 그 속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상대와 행복하게 결합할 수 있다.

 

 1902년 분리파 전시회에서 베토벤상과 함께 <베토벤 프리즈>가 공개되던 날, 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이었던 구스타프 말러가 빈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금관악기 주자 20여 명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말러의 손이 올라가자 금관 주자들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이 좁은 방에서 연주했다. 말러가 클림트를 위해서 금관 앙상블용으로 ‘환희의 송가’를 직접 편곡한 것이다. 나는 빈을 찾을 때마다 이 방에 들어오고, 이 방에 들어올 때마다 그날을 상상한다. 한 구스타프는 베토벤을 그렸고, 다른 구스타프는 베토벤을 연주했다. 음악과 미술은 다르지 않다. 그저 형태만 다를 뿐, 늘 같은 것을 얘기한다.

 애당초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는 전시 기간에만 설치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감동과 충격은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전시가 끝난 뒤 소장가가 가져갔던 프리즈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구입해서 벨베데레 궁전에 보관했다. 그러나 어떤 그림은 자기 자리가 있는 법이다. 특별한 공간을 위해 만든 그림은 제 자리에 있어야만 빛난다. 우리가 빈까지 찾아가서 이 그림을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1986년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10년이 넘는 복원 작업 끝에 제체시온의 원래 자리로 돌아온 <베토벤 프리즈>를 공개했다.

 실러의 시는 베토벤을 음악을 만들었고, 베토벤의 음악은 클림트의 미술을 만들었으며, 클림트의 그림은 말러의 연주를 탄생시켰다. 클림트는 “인간은 예술 속에서만 열락을 누린다”고 말했다. 이 방 안에서 우리는 클림트를 보면서 눈으로 베토벤을 들을 수 있다.

 

 

 빈; 풍월당 문화 예술 여행 04 – 카를 광장 및 나슈마르크트 부근, p.236~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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