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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사/현대사

[펌] 1945년 8월 만주 작전에 대한 흔한 오해

작성자워라|작성시간22.02.03|조회수178 목록 댓글 3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5081636

소련군의 작전개시일이 모스크바 표준시 8월 9일, 동경 표준시 8월 8일에 실시되었다는 점에서 나오는 흔한 오해는, 미국이 원자폭탄을 투하하니까 부랴부랴 참전하여 전리품을 거두려 했다는 겁니다. 

고등학교 시절 근현대사 선생님도 그렇게 말한 적이 있지요.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오해는, 소련군이 참전할 생각이 없었는데 미국에 일본이 항복할 것 같으니까 급하게 참전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소련군의 대일전 참전의사와 작전준비기간을 잘 모르면 나오는 오해입니다.

소련은 1941년 12월부터 미래에 대일전 참전을 할 의사가 있음을 미국에 밝히고 있었습니다. 미국이 일본에 선전포고한 이후인 1941년 12월 10일에, 미국의 코델 헐 국무장관은 소련 대사인 리트비노프를 만나서 소련의 대일전 참전을 요청했습니다. 당시 소련은 모스크바가 간당간당한 시기라 대일전 참전이 도무지 불가능하다고 답변했지만, 이는 상황이 나아지면 대일전에 참전하여 미국을 도와주겠다는 의사와도 같았습니다.

소련이 대조국전쟁의 승기를 틀어쥔 1944년 3월, 스탈린은 처칠과의 정상회담에서 대일전 참전의사를 밝혔으며, 5월에는 총참모장 바실렙스키 원수를 불러 대일전에 참전 시 그가 극동사령관이 될 것이니 만주에서 수행할 작전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 시점부터 총참모부에서는 만주의 지리, 관동군의 전력과 배치상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며 작전 연구에 들어갔으며, 전쟁에 이겨가며 여유가 생긴 병력을 슬슬 극동으로 재배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45년 2월에는 얄타 회담에서 소련군의 대일전 참전 시기를 "독일 항복 3개월 후"로 명문화하며 연합국 내에서 대일전 참전을 공식화했습니다.

독일이 패망한 직후 소련군은 본격적으로 병력을 극동으로 재배치하며 3개월 동안 더 집중적인 작전준비를 하고는 참전한 것입니다.

최대 15개월 동안 작전준비를 하고 선전포고한 것입니다.

물론 작전개시일이 8월 9일인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가 영향을 끼친 것이란 분석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아무튼 소련은 대일전 참전 준비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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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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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paul1117 | 작성시간 22.02.03 가만 생각해보면 관동군이 약해졌다지만 남아있는데 급하게 공세를 펼칠리는 없지 않습니까.

    당장 독일군도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공세종말점 보고 다시 미약하게나마 버텼다고 들었는데.

    소련군도 당근 준비 철저히 했겠죠
  • 작성자지옥괭이 | 작성시간 22.02.03 그와 반대되는 해석도 있습니다. 1945년 8월 초가 유럽전쟁후 3개월이 되는 시점이었고, 소련군도 만주공격 준비를 시작하려던 시점이고, 미국도 이를 알고 있었는데, 미국이 전후처리에서 소련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전쟁을 끝낼 목적으로 핵폭탄 사용을 서둘러 사용했다는 것이죠 사실 미국이 일본 본토 점령작전인 다운폴을 준비중이었고, 이작전은 1945년 11월정도에 개시될 예정이었기 때문에, 1945년 8월초에는 상륙작전에 대비해서 몇게 되지않는 핵폭탄을 비축해야 할 시점임에도 상륙작전과 무관하게 사용했습니다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2.02.03 소련의 대일전 참전 준비를 꾸준히 해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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