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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는 여러 악행 중 하나지만
부청멸양을 기치로 내건 ‘의화단’이라는
사이비 무술수련 양아치 도적단을 활용해
북경 진격을 눈감아줬죠.
당시 상황은 1, 2차 아편전쟁으로
외세 열강이 외항 외에도 내륙시장의
상당부분의 경제이권을
잠식해가던 상황입니다.
이를 해결해가려면,
내부적으로는
부정부패척결, 사회정의 실현,
세제개혁, 민생안정 등
각종 병폐를 순차적으로 개선해나가고
외부적으로는
외세열강과의 교류를 통해 국방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꾀해야 했지만
당시 강경보수파와 서태후 황실세력은
자신의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고
호의호식하기 위해
세수를 늘리는 악수를 두고
오히려 의화단 지지성명을 포고해
이들이 자행하는 온갖 불법적인 행위,
선교사와 외국인 학살을 눈감아줍니다.
서양과의 교류로 개혁을 꾀한
양무개혁파는 이를 반대했으나
지도층의 방해로 의화단 토벌은 지지부진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토벌 선봉장이 위안스카이…)
열강 8강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 미국, 일본, 오스트리아)은 2개월 이내에 의화단을 진압할 것을 요구하고 만약 진압에 실패하면 연합군을 결성, 이를 진압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아사리판 내겠다는)
결과는 뭐 뻔하죠.
의화단 패퇴.
서태후는 장안(시안)으로 도망가고
의화단을 재빨리 손절, 열강 연합에
토벌을 약속하죠.
이를 후원한 청은 패배의 댓가로
열강 8강과 신축조약을 체결합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청나라는 배상금 4억 5,000냥을 연리 4%로 1940년까지에 지불하되 관세, 염세 등을 저당으로 잡는다.
2. 대고포대를 해체하고 베이징에 공사관 구역을 설정하며 베이징과 상하이 간의 철도 연변에 열강의 군대가 주둔한다.
3. 청나라는 중국인의 외세 배척 운동을 철저하게 탄압해야 하며 만일 지방관이 진압하지 못하면 즉시 파면하고 영구히 등용하지 말아야 한다.
4. 청나라는 총리아문 대신 외교부를 설치해 6부의 위에 둔다.
5. 기왕의 통상조약에 대해 열강이 요구하면 청나라가 이에 협상해 수정할 수 있다.
6. 청나라는 황제와 대신을 독일 제국과 일본 제국에 파견하여 독일 공사와 일본 서기관의 피살 사건에 대하여 사죄한다.
많은 분들이 누가 당선되면 어떨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시길래
저는 과거사례를 가져와봤습니다.
위 사례와 현재 한국사회가
똑같다고 하기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만
과거를 통해 미래를 ‘점’치는 것도
인간의 지혜입니다.
여러분 저는 그 누구도 지칭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