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6968966
저는 앞서 시리즈2 글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은 독립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열풍이 불면서 반러 친서방 성향이 생겨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러 성향이 더 많았다고 썼었습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통혼과 먹고사니즘입니다.
우크라이나과 러시아가 서로 같은 민족이라고 여겨지던 시절 (소련 치하에서는 다들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인들과 러시아인들은 서로 결혼을 많이 하였습니다. 통혼이라고 하지요. 러시아인들 사이에서는 조부, 조모, 외조부, 외조모 4명 중에서 한명쯤 우크라이나인이 아닌 경우를 찾기 힘들다고 할 정도로 통혼이 많았다고 합니다.
통혼을 하지 않더라도, 러시아안에 우크라이나인들이 살고, 우크라이나 안에 러시아인들이 섞여 살았습니다. (우크라이나 인구의 17%가 러시아인).
그러다보니 인종적으로 우크라이나인 인데도, 주위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쓰니까 자연히 자신도 우크라이나어를 안하고 러시아어를 쓰고 사는 사람도 있고, 그 반대인 경우도 었있습니다.
대표적인 친서방 우크라이나 정치인인 티모셴코는 대학졸업할 때 까지 우크라이나어를 모르고 러시아어만 알았다고 합니다.
(소련 연방은 각 나라별로 자치 공화국 성격을 띄고 있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언어 교육이 허용되어 있었습니다. 티모센코가 우크라이나어를 몰랐던 이유는, 우크라이나 안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러시아어를 쓰는 지방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 먹고사니즘에 대해 이야기해볼려면
1991년 12월 우크라이나가 독립할 당시로 시계를 되돌려야 합니다.
소련연방에서 벗어나 독립국가로 다시 선 우크라이나였지만,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해서 자립하기가 어려웠습니다.
1992년 당시 우크라이나의 1인당 GDP는 $1.378에 지나지 않았고, 2020년 현재 기준으로도 $3,727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면 필리핀 ($3,300) 근방 수준입니다.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NY.GDP.PCAP.CD?locations=UA
반면에 러시아의 1인당 GDP는 그 당시에는 우크라이나의 4배 수준이었고, 2020년 지금도 3배 수준인 $10,126 (2020년)입니다.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NY.GDP.PCAP.CD?locations=RU
비옥한 우크라이나 대평원으로 유명한 우크라이나는 왜 이렇게 가난할까요.
딱 그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 대평원은 비옥한 흑토와 밀 재배로 유명합니다. 신문 기사들은 유럽의 빵공장이라고, 우크라이나 혼자서 2.7억명을 먹여살릴 수 있는 밀을 생산할 수 있다고 극찬합니다. 그런데 왜 가난할까요.
그 기사들이 말을 안한 빠진 정보가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강수량은 우리나라의 1/3수준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1207mm입니다. 반면에 우크라이나 키에프의 연평균 강수량은 615mm에 그치며, 남동부 흑해연안은 300mm, 그리고 카르파티아 산맥지역에 가야 1600mm가 됩니다. 이처럼 적은 강수량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물의 소비가 적은 밀 농사는 가능하지만, 쌀이라든가 물을 많이 소비하는 작물/과수를 재배하는 데에는 제약이 있습니다.
그리고 밀의 국제가격은... 미국 덕분에 상당히 쌉니다.
전세계 밀 수출 1위는 미국, 2위가 E.U. 3위가 캐나다, 4위가 호주, 5위 러시아, 7위가 우크라이나입니다.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기계영농과 경쟁해서 밀을 팔아먹고 살겠다고 해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농업만 하는 우크라이나가 너무 가난해서 정부를 운영할 세금수입이 모자랐기 때문에, 러시아는 소련 연방시절에 공업지역이 있는 지역을 우크라이나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입니다.
우크라이나 서부가 전통적으로 농업지역이었던 반면에, 러시아는 수백년전 폴란드로부터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을 빼앗아온 이후 소련시절에 공업지역으로 키웠습니다. 소련식 대규모 공업단지 콤비나아트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도네츠쿠주에 건설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이후, 동부의 도네츠쿠주 혼자서 우크라이나 전체 세금수입의 1/3을 차지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마저도 줄어든 것입니다. 소련연방 시절에는 도네츠쿠주 혼자서 소련연방 전체의 공업력의 25%를 감당했었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엄청난 공업도시였습니다.
공업지역을 넘겨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는 독립이후에도 만성적인 재정적자, 무역적자에 시달렸습니다.
아래는 한국무역협회(KOTRA)에서 나온 자료에 있는 우크라이나의 세율입니다.
우크라이나의 세율은 57%로 OECD 소득 상위국 평균 (42.7%)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_=a
세금 항목도 135개로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세금 부족하다고 계속 신설한 결과입니다.
우크라이나는 경제가 안돌아가니까, 세금이 안걷히고, 그러자 세율을 올리고, 세율을 올리니까, 경제가 다시 안돌아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때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경제원조를 해주었습니다. 동족이라는 인식이 강했거든요.
러시아는 형제국가인 우크라이나가 떨어져 나가 친서방 진영으로 넘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차관과 현물 자원으로 우크라이나에 경제지원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가 유럽에 천연가스와 석유를 팔기 위해서는 송유관이 우크라이나를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거미줄 같은 송유관 루트를 깔아놓고, 우크라이나에 송유관 관리요금을 지불하고, 우크라이나가 쓸 가스/석유는 할인하거나 일부 무상으로 제공하는 혜택을 주었습니다.
아래 지도는 우크라이나를 지나가는 러시아의 송유관 라인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천연가스와 석유가 소량 나기는 했지만, 석유는 자국이 필요로 하는 양의 15%, 가스는 25%를 충당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로부터 지원받는 천연가스와 석유는 우크라이나 경제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동부지역 같은 경우, 러시아와 붙어있고, 러시아계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니까 러시아로 돈 벌러 많이들 갔습니다. 일해서 받을 수 있는 월급 차이가 심했으니까요.
우크라이나 인구가 4천만인데, 3백만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인구의 8%에 해당하는 숫자이고, 이 정도면 세집에 한 명 꼴은 되었다고 봐야죠.
그 결과,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에 대해 자신을 먹여 살려주는 형제 국가 라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먹고사니즘.
우크라이나인은 러시아인과 다르다는 민족의식이 점점 강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계속되는 경제지원을 받고, 젊은 사람들은 러시아로 돈벌러가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의 대러시아 감정은 나빠지지 않았습니다.
먹고사니즘의 영향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의 대러시아 여론이 최근에 극적으로 변하게 된 것은 2014년 2차 유로마이단 시위와 그로 인한 정부 전복, 그리고 내전이 계기가 된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거기에 대해서 4부에서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