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근대사/현대사

심양수비사령 주장군

작성자신룡기2|작성시간23.03.05|조회수340 목록 댓글 4

1948년 피로 물든 요하강 (3) 심양수비사령 주복성 장군

 

심양수비사령, 눈강성 송강성 주석 및 제8병단장 겸 제53군 군장

1948년 심양수비사령 주복성(1898-1953) 장군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에 동참한 군인으로 육군중장을 지냈다.

1898년 청나라때 오늘날의 중화인민공화국 요령성 심양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출생하였다.

보정육군군관학교 제9기 보병과를 졸업하였고,

여산 군훈련단 3기 졸업, 육대 장관반(장교반)을 2기로 졸업하였으며,

만주지방의 만복린 등 휘하 육군 제15여 연장, 배장, 영장 (연장은 '소대장', 배장은 '중대장', 영장은 당시 편제상 '대대장'으로 간주한다.)

1925년 제6여 제18단 중교 부단장 (부단장은 ‘부연대장’으로 간주한다. 중교는 한국군의 '중령'으로 간주한다)

1925년 곽선생 의거

1927년 5월경 동북 육군 제6여 17단 단장 (단장은 당시 편제상 '연대장'으로 간주한다.) 하남성 일대 주둔

1928년 동북역치후 동북변방군 보병 제6여 제44단 단장

1931년 5월 제13여 제639단 단장

독립 제29여 여장

1930년경 북평 주둔 (북평은 조선시대에 ‘순천부’ 혹은 ‘연경’ 등으로 불려졌다.)

1932년 고북구 항전 참가

1933년 3월경 제53군 제129사 사장 (사장은 당시 편제상 ‘사단장’으로 간주한다.)

장성 항전 참가

1935년경 섬북 주둔

1936년 12월 12일 서안사변 발생, 중국 공산군과 장학량이 내통했다고 함. 중화인민공화국 현대사에 중요 사건으로 등재

1937년 5월경 제53군 제116사 사장

1938년 6월 무한회전 참가

1938년 6월 화원구 사건

1938년 12월 제53군 군장 (군장은 당시 편제상 ‘군단장’으로 간주한다.)

1939년 7월경 육군중장 승진

1939년 9월 제1차 장사회전 참가

1942년 하남성 대기근 발생

1943년경 노강전선 동원

1943년경 운남일대에서 제20군, 제54군과 협동, 제53군은 미군의 장비로 개편

미얀마 인도 일대에서 황군 제18사단(전임 사단장중 한명은 '무다구치 렌야'), 제56사단, 제2사단 타격, 제30사단과 대치

1945년 1월경 미얀마(버마) 도착, 중국 인도간 통로 재개통

1945년경 중국서부지역의 위원회 후보

1945년 8월 이후 안남(월남) 하노이 등에 주둔

1946년 중화인민공화국 영내로 복귀

1947년 4월경 동북(만주)으로 이동

1947년 제8병단장 겸 제53군 군장, 눈강성 주석. 심양 주둔

1948년 4월경 송강성 정부 주석 겸임

1948년 11월 2일경 심양에서 수십만의 부하를 데리고 신중국 건설에 동참

1953년경 만주 하르빈에서 사망

참고사이트 및 출처 :

https://www.itsfun.com.tw/%E5%AD%AB%E9%8A%98%E4%B9%9D/wiki-9669836-8246716

https://www.newton.com.tw/wiki/%E5%91%A8%E7%A6%8F%E6%88%90

https://www.itsfun.com.tw/%E5%91%A8%E7%A6%8F%E6%88%90/wiki-0208356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2000년대 이전에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인물들이었으나, 1920~1950년대 조선내의 신문들은 만주에서 반일 사건이 있을 때마다 수십~수백차례 대서특필하고 톱뉴스로 보도하였다.

1938년 황하제방 사건으로 일본군에게는 별 다른 타격을 주지 못했다는 주장도 많다. 뉴욕타임즈 등 세계 주요언론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한국에서도 관련도서가 다수 출판되었다.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에 의해서도 대대적으로 선전된 황하제방 사건, 뉴욕타임즈 등 세계 주요신문에도 톱뉴스로 보도되었고

한국에서도 '1942년 대기근'이라는 제목의 관련도서가 출판되었다.

미얀마 방면에서 전사한 '대안란 장군', 미국의 여류 소설가 펄 S 벅의 소설 '약속'의 모델중 한명이라는 소리가 있다.

인도 미얀마(버마) 방면 전투, 한국에서는 '임팔전투'라는 명칭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도 미얀마(버마)방면 중국원정군

독일식 소총으로 무장한 중국원정군, 한국에서는 '콰이강의 다리', '임팔전투'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졌다.

임팔, 미얀마(버마) 방면 중국원정군 진로

미얀마 방면에서 역덕들에게 유명한 미군 장성 '스틸웰 중장'과 사진 촬영한 '주복성 장군'

가운데는 국공내전 당시 동북지방 국민혁명군을 지휘하던 위립황

https://youtu.be/moS0r6HW1bg

 

미얀마(버마) 방면의 미군, 영국군

좌측 인물은. 건군과 지나사변에 대하여 구두 진술은 남긴 사람중 한분인 지나 군관학교 졸업생, 미군 혹은 영국군의 철모로 추정되는 모자를 쓰고 있다

가운데 월남(안남)의 공산당 지도자 '호지명'

주관적인 기준으로 볼 때 1940년대 연안이 아닌 '중경'을 방문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보여진다. 바로 우측 인물은 중화인민공화국의 그 유명한 '모택동'으로 보인다.

군통조직의 보고는 정확하여 호지명이는 공산당이 맞는 것으로 역사가 판단하였다.

가운데 인물은 일제시대 안남의 지도자로 급부상한 '호지명', 지금도 베트남에서는 상당히 유명한 인물이라고 한다.

호지명은

1945년 8월이후 지나군의 안남주둔을 두려워하였지만 오늘날 알려지기로는 '월남국민당' 등은 호지명의 적수가 되지도 못할 정도의 존재였으며,

안남 독립운동에 나서면서

외부의 지원이라도 받아보자고 명칭을 그렇게 지은 것에 불과하였고....... 

 

과연 그들이 호지명의  정치적 라이벌이 맞는 지도 의문이며.....

호지명이 지나군의 장기간에 걸친 안남주둔을 두려워하여,

만만한 프랑스군의 월남 재진주를 허용한 것은 좋게 평가될 수만은 없다.

냉전시기,

프랑스군을 패퇴시키는 것은 더욱 강한 군사대국의 간섭을 불러올 수도 있는 위험한 모험이 분명하였고,

1945년 장개석은 안남에 장기간 지나군을 주둔시키고 꼭두각시 정권을 수립할 만한 능력도 없었다는 것이

오늘날 거의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의 견해다.

우측 심양수비사령 '주복성 장군' ,

청나라 시대 만주 봉천부의 으뜸 아전인 이방, 즉 봉천장군의 지위에 뒤이은 '대청호부시랑 봉천부윤 순무사'와 비슷한 지위였고 명나라 때 '요동총병'과도 품계가 유사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3vZSpXrxKk&feature=youtu.behttps://youtu.be/l3vZSpXrxKk

 

동남아시아 삼각지역에 존재했던, 국적불명 정체불명의 군사조직과 관련된 유덕화 주연의 영화 '이역',

마약왕 쿤사는 2007년경 죽었다고 한다.

1948년 중국 내전 중 심양 포위

1948년 만주의 대도회 심양(과거 명칭은 '봉천')이 공산군에 포위되자, 한국에서 알려지기로   '방호산', '김무정', '최창익', '김두봉' 계열로 추정되는 조선의용군 수천~수만여명도 이에 참가하였다고 한다.

이를 다룬 인터넷 자료와 논문, 도서, 증언록 등이 상당하다.

이 과정에서 심양 일대에서 공산군과 '조선의용군'에 의해

포위된 수백~수천여명의 조선족을 책동하기 위해, 북한 공산당의 지도자가 된 '김일성'의 회유가 있었다는 주장은 찾기 힘든다.

빈말과 거짓 수작으로도 '고향에 돌아와 편하게 한번 살아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책동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심양일대의 인물중 몇몇은

김일성의 라이벌격인 '박헌영, 김무정, 김원봉, 허가이, 최창익, 홍범도, 안무, 김좌진' 등등과는 경력이 다른 인물들이었다.

과거에도 실제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고려시대 몽골족의 원나라 순제의 후처가 '주원장'이 이끄는 명나라 군대가 북상하자,

몽골로 쫒겨나며

자신들의 과거 행실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절대 오지 않을 '구원병'을 마냥 기다리더라는 것이었다.

명나라 말기 만주의 '요동총병'중에는 한국에서도 알려진 인물이 있어......

근래 임진왜란을 다룬 TV 드라마, 영화에서

명나라 병부시랑요동경략 '송응창', 혹은 요동총병 '이성량'을 다루는 경우도 있다.

수년전 송응창의 자료를 다룬 책도 출판되었다.

과거에는 1592년 임진왜란을 다루면

그 유명한 충무공 이00 장군과 라이벌 원0

이 대부분 주인공이었는데......

진짜 주인공은

무려...'충무공 이00' 장군이었다.......

중국 장수들은 그냥 조선의 장수들에게 딴지나 걸고 지나가는 엑스트라로만 출현했지요. ㅎㅎㅎ

근래 드라마에는 약방의 감초처럼 '송응창, 이여송, 유정, 진린, 심유경, 김충선' 등등도 나타난다.

더 오랜 시간이 흘러

중국 당나라 안서사진절도사 '고선지'처럼

비록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삼국사기, 삼국유사, 직지심경, 금강경, 해동역사, 발해고, This is total war 카페' 등등에 단 한번도 출현은 못했지만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는 나타나는 인물이 또 등장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ㅎㅎ

https://youtu.be/hJVU-Xshq2U

 

근래 한국드라마에도 종종 출몰하는 명나라 병부시랑요동경략 '송응창' ,

예전에는

무려????? 충무공 '이00' 장군과 '원0' 에 가려서 엑스트라 라도 제대로 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heidegger | 작성시간 23.03.05 주복성 장군의 인생이 파란만장했군요
  • 답댓글 작성자신룡기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3.06 이분이 좀 파란만장 하셨어요. 동료들도 거의 전멸에 가깝게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 작성자더벨라지오 | 작성시간 23.03.05 후속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어 보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신룡기2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3.06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